일중독자의 여행 - 형과 함께한 특별한 길
니콜라스 스파크스 지음, 이리나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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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중독자의 여행 』은 우리에게 소설과 영화로 익숙한 < 노트북 >, < 워크 투 리멤버 > 등의 저자 니컬러스 스파크스의 에세이다.

주로 감성 넘치는 로맨스 소설의 저자로만 알려져 있던 니컬러스 스파크스의 에세이는 과연 어떨까 궁금했다.



『일중독자의 여행』의 저자는 다섯 자녀를 둔 다둥이 가족이다.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듯 저자와 아내 캐시는 육아와 일로 누구보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매일 육아와의 전투를 치루며 여행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저자에게 어느 날 대학 동창회 사무실로부터 온 '하늘 숭배자가 사는 땅으로의 여행' 투어 홍보책자가 날아온다.




3주간에 걸친 세계여행, 과테말라,페루,이스터 섬,호주의 에어스록, 인도,에티오피아, 몰타 등을 전용비행기를 타고 경험하는 이 여행.. 평소같으면 그냥 무시했을 이 홍보책자에 저자는 예전처럼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어렵게 아내에게 여행을 제안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역시나 No였다. 어린 아이들을 두고 떠 날 수 없다는 모든 엄마들이 납득할 수 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 이에 저자는 형과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어렵사리 말을 꺼내고 뜻밖에 아내는 좋은 생각이라며 여행을 지지해주며 형과의 세계여행이 시작된다.



『일중독자의 여행』은 형과의 여행 이야기와 함께 주로 저자의 가족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다. 왜 저자가 아내가 아닌 형과의 여행을 결심하게 됐는지, 그리고 남편이 3주간 여행을 떠나면 홀로 다섯 아이를 돌봐야 하는 데 그 부담을 감수하고 아내가 형과의 여행을 수락할 수 있었는지 저자는 그 이유를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설명해 나간다.



저자는 부모님과 형 미카, 여동생 데이나와 함께 살고 있다. 보통 사내들이 그렇지만 형과 저자는 매우 개구지며 심술궃은 장난을 하며 어른들께 혼이 나곤하는 소년들이다. 자신보다 키가 크고 사회성이 좋은 형은 저자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였다. 자녀들에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잦았던 부모님의 다툼, 학업과 가장의 역할을 동시에 꾸려나가야 했던 아버지, 세 남매 육아와 일을 하느라 피곤하셨던 어머니는 비록 넉넉지 않은 형편에 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곤 선물을 사 주기 어려웠지만 자녀들에게는 항상 웃는 얼굴을 보이려 노력했다.



어린 시절의 회상은 사내들끼리 벌어지는 수위 높은 장난들과 형제들간의 알력(?)다툼, 그리고 둘째로서 부모님께 느끼는 소외감 등 어느 가정 흔히 겪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커가면서 변하는 형제와의 관계, 그 빈 자리를 메워주는 동생 데이나의 존재 등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들 초반부는 사실 내 흥미를 잡아끌지 못했다.



하지만 중반부를 지나 저자가 아내 캐시를 만나 결혼을 하고 그 후 이 가정에 들이닥친 불행의 그림자가 하나 둘 펼쳐지면서 이야기의 분위기는 급반전된다. 가정의 버팀목이였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임종 후 흔들리는 가정, 배우자를 잃은 충격에 벗어나지 못하는 아버지, 동생 데이나의 투병...



"살다 보면 행운은 단발로, 불행은 어깨동무를 하고 찾아온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만큼 저자의 가정을 잘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어머니의 임종 후 한 고개를 힘겹게 넘으면 더 깊은 고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현실 속에 독자인 나 조차도 어쩜 신은 이 가정에 이리도 힘든 시험을 연달아 주실 수 있을까라는 한숨을 자아내게 만든다.


원래 인생이란 늘 엎친 데 덮치기 마련이다.

291p


이 불행의 파도 속에 서로 온전히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존재는 형 미카와 저자 뿐이였다.

저자에게 형은 첫째로서의 무거운 짐을 묵묵히 감당해내면서 동생의 일을 지지해주며 현실에 충실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저자의아픈 아들 라이언을 유일하게 아껴주며 걱정해 주는 존재였으며 형에게는 저자인 동생이 있어 힘든 일을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고 의논해 줄 수 있는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동생이였다.

성경에 "하나님은 시험을 주시사 피할 길을 내사 감당치 못할 시험은 주지 않으신다"는 말씀이 있다.

이 가정에게는 이 말씀이 원망스럽게 들리겠지만 어쩌면 하나님은 형과 동생의 존재가 피할 길로 이 힘든 여정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데이나의 죽음뿐 아니라 모두의 죽음이 차례차례 우리에게 시련을 주었다.

지금도 우리가 목표를 달성하거나 시련을 극복했을 때, 형과 나 말고는 아무도 곁에서 함께 기뻐해주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기쁨이 반감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다.

사람들은 왜 형과 내가 그렇게 친하냐고 묻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야 하니까.

406p-407p


동생 데이나와 생일이 같아 매년 생일 때마다 오빠인 저자에게 전화를 걸어 "생일 축하합니다."를 불러주었던 데이나. 그 동생을 대신 해 저자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형의 이야기를 읽는 순간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일중독자의 여행』은 가정이 어떤 의미인지를 잔잔한 감동으로 깨닫게 해 준다. 내 곁에 있는 잔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불행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노력이 안타까우면서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불행은 한 가정을 파탄에 빠질 수도 있게 할 수 있는 반면 더욱 단단한 결속력을 갖게 할 수 있다.

형 미카와 저자에게 불행은 결속력을 곤고히 하는 매개가 되어주었다. 비록 그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웠을지라도..



책을 읽은 후 깊은 여운으로 한동안 내 가슴이 먹먹했다. 저자의 많은 소설 또한 마음을 울리는 내용이 많았지만 실제 이야기의 감동을 압도하진 못한다. 내 일상을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 주는 이 에세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하는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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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 - 김현의 詩 처방전 시요일
김현 지음 / 미디어창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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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디 말보다   줄의 글이 우리의 마음을 울릴 때가 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작가의 글이 또는 담벼락에 씌여진 낙서가 심금을 울릴 있다.

여기 편의 시로 독자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시인이 있다.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 예전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프로그램에 사연을 올리고 사연을 읽어주는 이문세의 목소리와 함께 사연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환호했던 때처럼 시인 김현 시요일 사연을 올리는 독자들의 사연에 시를 들려주며 詩처방전 함께 독자들의 사연에 귀기울여준 위로의 산문집이다.


독자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아이돌에 환호하는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연, 동성애로 사회에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사랑에 괴로워하는 사연, 오랜 취업 준비로 자신감 저하와 함께 혼란스러워하는 취준생..

어느 하나 쉬운 인생이 없는 다양한 사연에 시인은 거라는 응원보다는 지금도 충분히 해내고 있다고 괜찮다고 토닥토닥 두드려준다.


별빛도 흔들리며 곧은 것이다 여기 오는 동안

무한대의 굴절과 저항을 견디며

그렇게 흔들렸던 세월

흔들리며 발열하는 사랑

<그네> -문동만 124p


거라는 흔한 응원이 아닌 흔들리는 과정 속에서도 성취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그네를 양보하겠다는 시인의 글은 결코 우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며 우리 모두 넘어지며 성취해 가는 과정이라고 말해준다.


시인은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지시를 하지 않는다. 아이돌 강다니엘을 좋아하는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독자의 사연에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자제하라며 미래를 생각하라는 고리타분한 훈계보다 순간을 즐기며 아이돌과 함께 건강한 미래를 만들어 있도록 노력하라는 저자의 위로를 듣다보면 어느 인생 하나 잘못 살아가는 인생이 없다는 느끼게 된다.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나와 함께 나이 먹어가는 아이돌이 있다는

어른의 세계에서 얻게 되는 가장 소박하고 역사적인 행복 하나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돌을 응원하는 일은

얼마나 흥미진진할까요.

< 아이돌 미래에게 76p, 77p>


시인은 독자들의 사연마다 자신의 현재를 힘껏 사랑하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임종을 끝까지 보내드리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연에도, 어느 사연 하나 억지로 상황을 이겨내라고 하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 의미를 찾아주고 부여해 준다.

힘든 육아에 지친 엄마들에겐 무엇이든 해내고 있는 힘찬 도전자라는 의미를,

말하기 어려워하는 이에게는 누구보다 들어주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인식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에게는 미래를 위해 꿈꾸는 위대한 사랑이라는 의미를 주며

모든 사연 하나 하나에 이름을 지어준다.


시인이 처방해 주는 처방전을 읽다 보면 정해신 박사의 저서 「당신이 옳다」라는 책이 생각난다.

모든 인생은 옳다.

흔들리는 인생도 옳고

용기 없어 힘들어하는 인생도 옳고

동성애든 모든 사랑은 옳다.

어느 인생 잘못 인생은 없으며 아름답다.

흔들리면 흔들리는대로

꿈꾸면 꿈꾸는대로.


나는 엄마이기에 시인으로부터 무엇이든 해내는 자라는 칭호를 얻었고

나의 영원한 아이돌 신승훈과 함께 늙어가는 미래를 꿈꾸며

말을 하기 보다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받았다.


김현 시인의 처방전은 결국 우리 삶에 대한 사랑이다.

당신 마음의 온도가 1도라도 올라가길 바란다는 시인의 바람처럼 시인은 당신은 옳다라고 말해주며 따스하게 바라봐준다.

자신을 옳다라고 말해주는 것보다 더한 위로와 응원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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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프랑스 외인부대원 아내의 이야기
표정희 지음 / 더블:엔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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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프랑스 외인부대>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외인부대의 존재도 몰랐고 외국인들로 이루어진 부대라고 하는데 정규군과 외인부대의 차이가 무엇이고 왜 프랑스는 외인부대를 두는 이유도 알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궁금증은 더 커져갔다.



프랑스 외인부대, 프랑스 육군 소속의 외국인 지원병으로 구성된 정규 부대이며 남극,북극,적도, 사막, 섬 세계 어디서나 복무가 가능한 병력을 선발하는 것이 외인부대의 취지이며 외인부대원은 5년차에 프랑스 국적 신청을 할 수 있으나 기혼인 경우 국적 신청이 거절당할 수 있다고 한다.


전 세계 어디든 복무할 수 있는 병력을 선발하기 위한 부대인만큼 외인부대원의 가족 또한 어디서든 나그네가 될 채비를 갖춘다. 저자 또한 결혼하여 프랑스 몽펠리에, 프랑스 님,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 현재 프랑스 파리 등 항상 어디서든 떠날 준비를 하며 살아간다.잦은 출장으로 인한 직업의 특성상 혼자 있어야 할 때가 많은 생활 속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저자의 프랑스생활과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에서의 생활 그리고 내가 여태까지 알지 못했던 프랑스의 진짜 모습에 관한 모습이 담긴 에세이다.


<어느 외인부대원의 아내 이야기>는 저자가 보낸 남미의 기아나 쿠루에서의 3년, 프랑스 몽펠리에 3년, 프랑스 님에서의 생활 3년에 대한 생활이 담겨있다.

그 중 가장 흥미롭게 읽은 이야기는 남미 기아나 쿠루에서의 생활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아나도 처음 알았고 프랑스가 세계 곳곳에 프랑스령 땅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거 죄수들을 가두기 위한 교도소로 활용되었던 아픈 과거를 갖고 있는 슬픈 역사와 함께 기아나 우주 센터가 있어 인공위성이 발사되는 모습, 더운 날씨와 함께 집 마당 곳곳에 자주 출현하는 이구아나의 존재 등 기아나 쿠루에서의 생활이 다이나믹하게 그려진다.




기아나의 경우 프랑스 본토의 지원을 받고 기아나 우주 센터로 인해 다른 남미에 비해 우월하지만 이 땅은 또한 배를 타고 또는 땅을 넘어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오는 불법체류자의 천국이기도 한다.

금을 캐기 위하여 불법으로 사금 캐석을 하고 이 와중에 상권을 장악하며 부를 축적하는 중국인들, 돈이 있음에도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가게를 물러받으면 그만이라는 중국의 아이들, 아이티 난민, 라오스의 흐몽족 등 많은 외국인이 있는 이 곳.. 불법으로 체류하는 자들을 잡아달라고 하소연하지만 손을 놔 버린 프랑스 정부,

이 기아나의 모습을 보며 저자는 남미의 실감나는 빈부의 격차를 느끼곤 한다.





프랑스에서의 생활은 저자와 남편과의 첫 만남과 프랑스 곳곳에 대한 장소에 대한 정보가 가득 담겨 있다.

자유롭게 이웃 나라를 왕래할 수 있는 유럽답게 바르셀로나에 남의 차를 빌려 타고 여행갔다가 견인되어 고생한 에피소드 및 프랑스의 출산 시스템과 높은 실업률, 그리고 프랑스에 아랍인들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것과 우리가 미디어로만 접한 IS 테러와의 위협이 이 곳에서는 실감한다는 등 각종 에피소드 및 프랑스인들의 생활 등이 흥미로웠다. 한국에서는 출산한 산모에게 무조건 따뜻하게 할 것을 신신당부하는 데 비해 프랑스에서는 찬 음식을 주며 찬 바람을 쐬며 산책을 하는 출산 문화 또한 신기하게 다가왔다.



사실혼이 인정되며 개개인의 행복이 강조되는 나라, 대통령 재임 중 불륜을 저질러도 개인의 사생활이라 일축하며 문제가 되지 않는 나라, 예술의 나라 프랑스, 하지만 높은 실업률로 인해 사회 곳곳에 잠재되어 있는 불만이 높은 나라에서 한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제대하지 않고 외인부대원으로서의 삶을 계속하는 남편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어디든 떠날 준비를 하며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외인부대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삶, 저자의 생활 속에 프랑스와 유럽 곳곳의 모습을 알 수 있어 좋았고 기아나이기에 가능한 해프닝과 인공위성 발사 등을 그려가며 읽을 수 있었다. 앞으로 저자에게 어떤 모험과 여행이 저자의 가족에게 다가올 지 궁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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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왔구나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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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까지 부모의 도움은 내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부모님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고 내가 도움이 필요해 SOS를 요청하면 언제나 Yes맨으로 우리 곁에 올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결혼 후 친정 엄마의 병진단 및 어머님의 입원, 아빠의 눈에 띄는 흰머리들을 볼 때면 어느새 내 마음에 묵직한 돌멩이가 내 가슴에 안기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결국 왔구나#카모메식당 [카모메 식당]의 작가 무레 요코#무레요코의 여덟 편의 #대공감 단편소설집이다. 이 여덟 편의 단편들은 부모 또는 친척의 치매와 노환으로 병든 부모들을 돌보면서 살아가는 자식들의 일상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아버지의 임종 후 마음에 맞는 남자를 만나 자식 곁을 훌쩍 떠난 후 치매에 걸려 다시 돌아온 어머니, 전직 교사이자 정정하셨던 시아버님께 들이닥친 치매, 남편과의 이별 후 아들과 자신의 다리 역할을 하던 엄마의 치매 등 주인공들의 잔잔한 일상에 들이닥친 부모의 병환에 인물들은 각각 여러가지 모습을 보인다. 당혹스러움, 현실 부정, 좌절, 갈등,불안 등.. 치료책도 없이 더 악화되기만 할 뿐인 이 질환에 누가 과연 태연할 수 있을까?



<아버님, 뭐 찾으세요?>의 마리의 남편이 자기 친아버님인데도 불구하고 자꾸 현실을 부정하려고 하며 책임을 아내 마리에게 떠 넘기고 <아버지, 왜 왔다갔다해요?>의 아키와 나쓰키 자매가 아버지의 병원행을 차일피일 미루며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들이 답답하고 화가 나기 보다는 공감이 갈 수 밖에 없는 건 이 막막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침착한 사람일지라도 이 상황에서까지 침착하게 대응하기는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여덟 편의 단편 중 가장 공감이 된 이야기는 <형, 뭐가 잘났는데?>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큰형님이 갑자기 동생들을 불러 모으며 어머님을 돌보지 못하겠다고 선언하며 벌어지는 형제들의 이야기다 큰형님 덕분에 각자 모두 자신들의 평범한 일상을 지킬 수 있었지만 갑작스런 형님의 선언은 그들에게 폭탄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서로 어머님 모시기를 거부하며 이유를 대는 형제들의 모습을 보며 과연 나는 모실 수 있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어머님도 중요하지만 애들을 우선으로 하고 싶다는 하소연도, 자식이 없어도 서로의 직장 생활을 해야 하기에 어렵다는 유키와 남편의 하소연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섭섭할 수 있지만 자신들의 일상을 지키고 싶은 그들을 나는 비난 할 수 없었다. 친부모님을 둔 딸의 입장에서, 또는 며느리의 입장에서, 두 아이의 엄마의 입장에서 나는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었을까?




등장인물들 중 마리의 남편이나 아키와 나쓰키 자매처럼 쉽게 인정하지 않는 모습도 있지만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하나씩 현실을 인정해가며 방안을 찾아 나간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개호 인정 접수를 하고 케어매니저 서비스를 신청하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 간다. 부모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조절해 가며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자식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정부의 공익 광고인 [치매, 국가 책임제]의 한 카피 문구가 떠 올랐다.



"나는 엄마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도움을 받기만 하던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의 부모가 되어야 하는 이 현실 속에 인물들은 인생이 결코 자신의 뜻대로만 되어가지 않는 것을 체감하고 부모님의 증세가 심해져도 그들은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 현실이 버겁고 힘들지만 삶은 계속되고 살아가야 한다. 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결국 오고야 마는 부모의 노년.

그 현실 속에서 과연 나는 어떤 자세를 보이게 될까 많은 질문을 하며 읽을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닥치는 이 현실 속에 담담하게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그래도 삶은 이어짐을 생각하며 공감을 받는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떤 결과든 그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시아버지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니까.

<아버님, 뭐 찾으세요? 중 53p>



사치는 엄마의 말에 맞장구치면서, 인생이란 자신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절실하게 느꼈다.

<엄마, 돌아왔어? 중 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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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관하여 - 비로소 가능한 그 모든 시작들
정여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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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란 이런 것이구나. '내려가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에 괴롭다가도, 뭔가를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기.

어쩌면 예전보다도 훨씬 더 지혜롭고 활기차게,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중년이다.

(24p. 설레고 기특하며 눈부신 시간)

올해 마흔의 문턱에 들어서며 유난히 나이에 민감해지고 한없는 우울감이 파도처럼 나를 집어삼켰다.

2-30대의 청년층에서 중년이라는 옷을 새롭게 입기 시작하며 왠지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듯한 어색함에 스스로 위축되곤 했다. 비 온 후의 나뭇잎의 색상이 더욱 또렷이 보이는 것처럼 마흔의 길에 들어서면서 내 자신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게 생생하게 실감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내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이 마흔이라는 나이는 누군가 나에게 내 나이를 물어보면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조심스레 내 나이를 말하곤 했다.

이런 내 마음이 나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것일까. 전에는 삼포, 오포,칠포 시대를 일컫는 2030 세대에 관한 책이 출간 열풍이 한참이더니 이제 마흔을 이야기하는 책들을 많이 보게 된다. 최근 내가 읽은 기시미이치로의 《마흔에게》부터 시작으로 《마흔, 공부법 》 등... 그 중 나와 같이 마흔의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며 마흔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쓴 정여울 작가 의 마흔에관하여 는 작가가 마흔의 길에 새롭게 발견한 인생의 진리들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흔히 마흔을 위기의 세대라고 불린다. 청년층도 아닌 노년층도 아닌 그 중간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는 세대. 또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며 자조적인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곤 한다.

하지만 작가는 왜 마흔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시기라고 말할까? 어떠한 것을 새롭게 배울 만한 최적의 시기라고 말할까? 이 새로운 마흔에 대한 정의는 작가의 글만이 아니다. 기시미 이치로 또한 《마흔에게》에서 나이든다는 것은 배움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준다고 하였다.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2-30대의 배움은 매우 한정적일 때가 많다. 영어,일본어,컴퓨터 등 온갖 자격증 및 취업을 하기 위한 방편의 공부에 집중하기 쉽다. 그런 목적이 있는 공부는 우리에게 배움의 기쁨을 앗아가기 쉽다. 반면 중년이 시작되는 시기는 자격증 보다는 자신을 위한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피아노, 기타, 마라톤, 글쓰기 등 나만을 위한 공부를 아무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해 준다.

회사의 동료 중 나와 같이 마흔의 길을 넘어선 동료, 또는 상사들의 배움을 보면 골프 또는 외국어 공부하는 행위에 전혀 부담감 없이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 아닐까.

'불편함'보다는 '옳지 않음'이 더 무서운 것이다. 그 정도의 어색함은 견딜 수 있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강해지고 대담해졌기에. 나를 싫어해도 괜찮다. 진심으로, 개의치 않는다.

남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얻지 못하는 것이 훨씬 무서운 일임을 뼈저리게 실감하기 때문이다.

(56p. 피스메이커를 졸업하며)

마흔, 진정한 나 자신으로 설 수 있는 시간이라고 작가는 정의한다. 마음이 불편해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 참고 피스메이커로 살아가며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둥,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둥 핑계를 대며 나 자신의 의견도 말하기 조심스럽던 2-30대를 지나 마흔이야말로 나의 목소리를 내 가며 진정한 나의 목소리를 찾아갈 수 있는 나이라고 말한다. 2-30대는 자신의 부족함과 컴플렉스 모두를 바꾸기에 바빴다. 나 자신의 입장보다는 다른 사람의 기준에 나를 맞추기 바빴다. 하지만 40대가 들어가면 내 모난 부분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리고 2-30대에 내 의견을 강하게 주장했다면 예의 없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 쉽지만 40대에 들어서면 나의 말과 행동에 무게감이 실린다.

젊으면 어린 것이 버릇없다고 할 수도 있고 노년층이라면 꼰대라거나 고집이 세다고 할 수 있지만 40대는 그야말로 중간에 서서 그 모두를 아우르고 이해할 수 있는 더 깊어진 내 자신이 될 수 있다.

그 무게감을 알기에 자신이 하나의 디딤돌이 되어 남성의 편견에 맞서 싸우는 작가도 그 마흔의 무게를 알고 있기 떄문일 것이다.

마흔의 문턱을 넘어서며,재빨리 요약하고 번개처럼 핵심을 파악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는 일을 멈추었다.

그런 '얼리 어답터'스러운 삶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느림보로 살더라도 대상의 섬세한 디테일을 하나하나 쓰다듬고 관찰하는 삶을 사랑한다.

(166p. 이제는 조금 느리게 걸어도 괜찮아)

작가와 나 모두 마흔의 문턱을 넘어섰지만 작가가 느낀 마흔의 깨달음이 모두 공감이 가는 것은 아니다.

미혼이며 예술가로서의 길을 걸어가는 작가와 두 아이의 엄마이자 회사와 육아 워킹맘의 삶을 살아가며 가까운 근교로의 여행도 버거운 나와의 마흔이 똑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서로는 자신이 결코 얻어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눈물 흘리는 것도 그리고 우리가 2-30대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깨달아가는 과정은 동일할 것이다. 정상을 바라보고 살았던 2-30대의 삶을 지나 이제는 어떻게 조심히 산을 내려올 수 있는지 그리고 그동안 어깨에 잔뜩 힘을 주었던 힘을 빼고 하루 하루의 소중함을 더없이 실감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건 2-30대의 나이가 결코 줄 수 없는 것이니까.

인생을 하나의 축제라고 말하며 축제를 준비하는 자가 아닌 즐기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삶.

진정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도전과 삶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삶.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작가는 매월 「월간 정여울」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책을 출간하고 '감성을 깨우는 글쓰기' 팟캐스트 방송도 진행하며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실패보다는 도전하지 않는 삶을 두려워 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더욱 충실할 수 있는 마흔.

작가의 마흔이 부럽다. 작가의 마흔을 바라보며 나의 마흔 또한 새롭게 정의하고 싶다.

"매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나이",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나이"

마흔의 문턱에 서서 나의 버킷리스트를 써내려가며 새롭게 꿈꾸며 도전하는 나의 마흔을 응원하고 싶다.

실패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내가 꿈꾸는 더 나은 나, 내가 살아가고 싶은 더 아름다운 세상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225p '욕망의 대체제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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