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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언의 정원
애비 왁스먼 지음, 이한이 옮김 / 리프 / 2021년 10월
평점 :

남편이 죽은 지 3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그 어느 때보다 내게 필요한 사람이다.
『릴리언의 정원』은 남편과 사별 후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는 릴리언의 심경을 드러내며 시작한다.
책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일곱살과 네 살이 된 두 딸의 엄마인 릴리언. 이제 자신은 엄마의 역할만 있다고 생각하는 릴리언에게 사람들은 말한다. 아직 젊다고. 잊으라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라고...
하지만 릴리언에게 남편 댄 이외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건 다른 세상 이야기다. 릴리언은 아직도 남편을 사랑한다.
출판 사업이 힘든 건 한국 뿐만이 아닌 전세계적인 현상인 듯하다. 릴리언이 근무하는 출판사 또한 상황이 좋지 않다. 어린 딸 둘을 홀로 키워야 하는 릴리언에게 회사 로버타 킹 실장은 특명을 내린다. 출판사의 거대 프로젝트.
원예 가문으로 유명한 블레엄가에서 의뢰한 채소 안내서 시리즈 일러스트레이터를 릴리언이 담당하는 것!
단순히 그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로버타 실장은 이 작업을 위해 블레엄가에서 하고 있는 6주간의 원예수업을 받으라는 것이다. 하루 하루 육아와 직장만으로 바쁜데 주말에 원예수업까지 받으라니... 어쩔 수 없다. 회사의 운명이 걸려 있는 사업인 만큼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릴리언은 두 딸, 그리고 동생 레이철과 함께 원예수업을 시작한다.
소설은 짐작하듯 릴리언이 원예수업을 받으며 조금씩 변화하는 릴리언의 모습이 그려진다. 일과 아이들에 치어 살아가던 그녀에게 식물을 가꾸는 일은 회사 부수적인 업무에서 하나의 일상으로 자리잡아간다. 남편과 아이들에 집중되었던 생각이 식물의 성장과 함께 그녀 또한 새로운 삶을 조금씩 받아들여간다.
"애너벨과 클레어의 엄마 릴리언 기번 드림"
" 아니에요. 내가 모두를 초대했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우리 집을 변화시키러 새로운 분들이 오는 건데 멋지죠!
그리고 집이 엉망인 것에 대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 지 신경 안 쓸 만큼 이제 나이도 먹었고요."
릴리언. 그녀는 남편을 잃은 후 자신의 존재는 독립적인 인격체 릴리언은 존재하지 않았다.
애너벨과 클레어의 엄마, 레이철의 언니, 엄마의 딸로 존재할 뿐이었다. 그래서 원예 선생님이 첫 번째 내 준 과제에서도 자신의 이름보다 아이들의 엄마임을 밝히고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춰 말한다.
자신의 존재를 그렇게 한정했던 릴리언이기에 그녀는 살며시 다가온 새로운 감정에 선뜻 용기내지 못한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힘들지만 식물을 돌보는 일 또한 쉽지 않다. 때론 비바람이 거세고 벌레의 공격도 받는다. 하지만 그 고난 속에서도 견뎌내고 성장한다. 릴리언도 마찬가지다. 식물을 키우며 다른 기쁨을 맛보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아기였을 때 아빠를 잃었기에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거의 없는 둘째 딸 클레어에 비해 아빠를 그리워하는 첫째 달 애나벨, 그리고 남편 댄이 없이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릴리언의 발걸음을 늦추게 한다. 그럼에도 그녀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녀를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수업을 받는 이웃들이다.
그 애 자리를 대체하려고 애쓰지 말거라, 릴리.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받아들이고,
그 애는 그냥 그 자리에 있게 둬.
그건 배신도 거부도 아니야.
나는 클레어와 애너벨에게서, 마지에게서, 폴에게서 기쁨을 느끼단다.
그게 댄을 잃은 내 슬픔을 지워 주지는 못하지만,
내가 그 애를 추억할 때 느끼는 기쁨을 휘발시키지도 않다.
그 애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릴리, 그 애는 우리를 떠났고, 그냥 그게 현실인 거야.
『릴리언의 정원』에서 식물을 키우며 변화되어가는 릴리언의 성장도 눈부시지만 두 아이의 엄마로 겪는 현실적인 부분 또한 공감되었다. 워킹맘으로 매일 바쁜 일상, 현실과 판타지는 다르다며 현실에 한숨 쉬는 모습, 두 자매의 다툼을 중재하는 릴리언의 모습, 아기 같은 친정 엄마를 다독이며 딸 역할도 해야 하고 직장 생활까지 감당해야 하는 릴리언의 역할이 마치 현실 속의 바쁜 내 모습을 연상하게 되어 공감이 되었다.
댄 없이 여기에서 행복해도 될까? 그래도 정말 괜찮을까?
내가 아는 한, 그는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려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이다.
나는 세상 최고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저 여기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이라고 받아들였던 릴리언. 식물이 성장하듯 그녀도 비로소 자신의 행복을 찾는 법을 깨달아 나간다. 식물이 각자의 특성에 맞춰 자라나기 위한 환경이 다르듯 그녀 또한 자신의 행복을 키워나가는 자신의 방법을 깨달아간다.
책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 채소 키우는 방법과 식물에 관한 여러 팁은 식물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나에게도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정원, 햇빛, 토양, 채소 등 초록빛이 감도는 이 소설, 사랑스러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