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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 지음, 이수영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9월
평점 :

콜카타. 우리에겐 '캘커타'로 더 익숙한 인도의 도시 명칭이다.
소설 『콜카타의 세 사람』의 제목이자 주요 인물 세 사람은 다음과 같다.
지반, 대형 쇼핑몰에서 일하는 22살의 무슬림 여성
러블리, 트랜스 여성, 히즈라로 주위의 천대를 받는 여성, 연기를 배운다.
체육 선생, 지반이 학창 시절 지반의 능력을 높이 여겼으나 말도 없이 간 지반에게 섭섭함을 느낀다.
소설은 기차역 화재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누군가 달리는 기차 창문으로 횃불을 던져 대형 화재로 번진 화재였다. 정부는 피해자에게 보상을 약속하고 범인을 꼭 색출할 것을 약속하지만 아무도 정부를 믿지 않는다. 화재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기보다 구경만 했던 무능력한 경찰들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이 현장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사는 지반은 페이스북에 자신의 운명을 바꿔 놓을 한 문장을 쓴다.
"경찰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다면, 죽는 모습을 그냥 지켜만 본다면,
정부 역시 테러리스트라는 뜻 아닌가요?"
이 한 문장이 가져 오는 여파는 컸다. 아니 엄청났다. 지반은 테러리스트로 지목되어 잠결에 경찰서로 연행된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은 지반과 지반의 부모님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느닷없는 경찰의 침입에 지반의 아버지는 큰 부상을 당하고 지반은 죄인이 되어 감옥에 넘겨지는 신세가 된다. 국선변호사를 소개받지만 국선변호사는 이미 그녀가 유죄라는 판단 하에 죄를 인정하라고만 한다.
이 소설의 배경이 여성의 인권이 인도여서인지 지반이 수감되는 감옥의 배경은 인도 여성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듯하다. 잘못을 했음에도 고발을 당하며 어떤 보호막도 없는 억울한 사연들이 감옥에 넘쳐난다.
뒤에는 애꾸눈 칼키디가 있다.
얼굴 반쪽이 불에 탄 그녀가 크게 웃어서 돌아보니
벌어진 잇새가 보인다.
남편이 그녀에게 염산을 뿌렸는데 어떻게 해선지
그녀가 감옥에 있다.
여자가 되면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이 소설에서 주목된 부분은 나날이 부풀려지는 언론들의 행태이다.
그들은 지반의 설명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니 듣고 싶어한다. 그래서 지반의 부모님께 무례하게 요구하는 등 무리수를 둔다. 특종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사실 지반과 지반의 부모님을 취재하고 싶지만 중요한 건 언론에게 진실이 아니다. 진실보다는 대중이 듣고 싶어할 수 있도록 조작하는 것이다. 경찰도 무능력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위해 지반을 희생시켰고 언론은 그에 맞장구친다. 언론은 지반의 이야기를 날마다 과장시킨다.
그리고 그 언론의 이야기에 생각없이 동의하는 지반의 옛 체육 선생이 있다. 어떠한 사실 확인도 없이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체육 선생은 지반이 감사의 말도 없이 자신을 떠난 것에 대한 괘씸함과 섭섭함으로 여과 없이 언론의 말을 믿기로 한다.
이제 그는 안다.
예전부터 지반이 뭔가 잘못돼 있었음을.
그녀의 사고방식이 어딘가 잘못돼 있었음을.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을 아끼던 교사에게 말도 없이,
인사나 감사의 말도 없이
학교를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한 사람, 지반에게 영어를 배우는 트랜스 여성 러블리가 있다.
사랑하는 남자가 있지만 남자의 가족에게 냉대를 받으며 헤어질 것을 요구받고 사회의 냉대를 받는 러블리.
그녀는 지반을 위해 법정에 서지만 현실은 결코 쉽지 않다. 사회적 소수자인 러블리의 발언은 무시된다.
『콜카타의 세 사람』은 지반의 누명 속에 뒤얽힌 인도의 사회 모습을 보여준다.
공권력의 희생양이 된 지반, 한국에서도 '기레기'라 불리는 언론들의 행태, 보여지는 대로 믿으며 흥분하는 군중들 등 각종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그런데 이 인도의 모습이 한국과 다르지 않다. 독재 시절, 공권력에 희생된 많은 사람들, 한국에서도 여전히 기승인 기레기 언론, 보고 싶은 대로 믿으며 남을 몰아가는 군중들..
그래서 이 소설은 우리에게 경고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가 생각 없이 살아간다면 어떻게 되는지, 언론이 부패하면 한 개인의 삶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언론에 대한 군중들의 자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소설은 지반의 비극을 통해 보여준다.
그저 페이스북에 한 문장으로 시작된 작은 불씨는 지반의 생애를 불태웠다. 이 책의 원제인 '버닝 (Burning)'은 기차역의 화재를 말하는 버닝이기도 하지만 지반의 생애를 불태운 버닝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작은 불씨가 더 커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걸 지켜야 하는지 작가는 집요하게 묻는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읽어나가며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갈수록 커져 나가는 불이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한다. 누군가는 이 소설을 인도니까 가능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결코 그렇지 않다. 지금 바로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그에 대한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