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돌 - 가부장적인 혼인제도에 도전, 가출한 천석꾼의 딸
이상영 지음 / 렛츠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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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방에서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댓돌을 밟아야 한다. 서민의 집에서의 댓돌은 낮지만 양반의 집의 댓돌은 높다. 아마 그 집의 위상을 상징하는 것이리라.그 높은 댓돌만큼 바깥과 자신들을 구분짓는 하나의 표식일 것이다.

소설 『댓돌』은 조선 시대와 일제 시대 신분이 다른 두 남녀가 신분의 격차를 뚫고 사랑을 이루게 된 현아와 강준수의 이야기다. 마을의 대지주 집안에서 넉넉하게 자란 '현아'와 현아의 집을 섬기는 '강준수'가 주인공이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신분의 벽이 존재하지만 일제 시대의 조선에서 천석꾼의 자녀인 현아는 일반 동네 사람들에게는 넘보지 못할 넘사벽이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지만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의 애정을 독차지한 현아는 아버지 편승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이며 기대치가 높다.

소설은 현아가 동네에서 강준수를 만나며 사랑하게 되며 급물살을 탄다. 성품과 능력츤 차차하고 강준수의 신분이 못마땅한 현아의 아버지는 자신의 권세를 이용해 강준수의 집안을 멀리 이사 보낸다.

일제 시대, 아직까지 남녀 관계에서 남자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관계에서 중심을 잡는 이는 여성 현아이다연인 준수는 신분의 차이로 자존심이 상해 하기도 하며 관계에서도 현아에게 의지하기도 한다. . 물론 신분이 높고 자존감이 높은 여성이기에 더 적극적으로 나올 수 있을 수 있지만 소설의 배경이 일제 시대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떨치고 나오기까지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 현아는 시대를 뛰어넘는 여성상을 보여준다.

다만 표지에 설명된 대로 결혼풍속에 도전한 제2의 나혜석과 같은 주인공이라고 현아를 묘사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소설의 '현아'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자 자신의 모든 걸 포기하고 연인 준수를 택했다. 물론 강준수를 격려하며 자리를 잡게 하는 면이 있지만 자신보다 연인 강준수를 내조하는 데 더욱 큰 정성을 쏟는 듯 보인다. 반면 나혜석은 그야말로 인형이 되기를 거부하고 여성의 정조 못지 않게 남성의 정조도 지켜져야 할 것을 주장하는 등 시대를 뛰어넘는 여성이었다. 물론 신분을 박차고 나와 사랑을 쟁취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나혜석의 정신과 삶을 비교할 수는 없다.

만약 여성 현아와 연인 준수의 신분이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결국 조선시대 신데렐라 이야기로밖에 되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 『댓돌』은 신데렐라가 되기를 거부한 여성 현아를 통해 시대를 뛰어넘는 파격성을 보여준다.

소설 『댓돌』에서 나혜석과 같은 진취적인 여성을 보기 원했다. 하지만 여성 현아의 진취성이 사랑에 머무르는 듯 해 아쉽다. 그럼에도 그 시대에는 사랑 하나 지키기에도 힘들었을 배경을 생각하면 현아의 진취성이 떨어진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된 듯하다. 다만 현아가 사랑과 자신의 일도 함께 성공하는 걸 더 중점적으로 보여주었더라면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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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는 꿈을 지킨다
무라야마 사키 지음, 한성례 옮김 / 씨큐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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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과연 마녀가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마녀란 악하거나 심술 궃은 마녀를 떠올린다.

악한 존재로 인식되어 '마녀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죽이곤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람들과 함께 하며 도와주는 마녀는 없는 것일까?

무라야마 사키의 소설 『마녀는 꿈을 지킨다』 는 니콜라 마녀와 170년 된 마녀 나나세의 9편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집이다. 항구 미카즈키를 수호하는 마녀 니콜라는 <마녀의 집> 카페를 운영하며 사람들을 돕고 나나세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미카즈키 거리로 돌아왔다.

이들이 돕는 사람들의 사연은 여러가지다.

책을 좋아해서 서점에 취직했으나 일은 고되고 힘들기만 한 가나에.

어린 시절 추락하는 다른 마녀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한 원로 여성 화가.

사라져가는 추억들을 그리워하는 사토 씨.

그리운 할머니를 방문하던 중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마녀의 집> 카페에 가는 소라야 등등...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 속에 마녀는 사람들과 친구과 되며 그들을 도와간다.

마녀에게 도움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히 마녀가 또는 천사가 자신을 도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말에 콧방귀만 뀔 뿐이다. 단지 운이 좋았다고. 혹은 착각일 뿐이라고.

책을 읽어 나가면서 느끼게 된 건 진짜 마녀를 만나지 못하게 된 건 바로 다름아닌 우리의 배척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옛 이야기 또는 전통을 고지식한 것으로 여기고 과학만을 최고로 여기며 증명할 수 없는 건 철저히 배척하는 우리의 믿음이 어쩜 마녀가 앞에 있는데도 보지 못하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일본의 추석이라 할 수 있는 '오본'의 날에 망자들의 영혼이 바다를 건너 그리운 가족들에게 찾아오고 '오본'이 끝나면 다시 돌아가야 하는 외로움 속에 망자들끼리 함께 길을 떠나는 모습은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망자들의 사연들은 우리에게 말해 준다.

지금이 서로 사랑해야 할 때라는 걸,

지금이 바로 용기를 내야 할 때라는 걸.

지금 마음껏 사랑하고 고백하고 즐거워해야 한다는 걸.

조금만 미루면 우리에겐 다음이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만약 마녀가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도 니콜라와 나나세 같은 마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조금만 더 마음을 열면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나를 돕는 누군가가 마녀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이 언젠가 훌쩍 떠날지 모르니 더욱 친절해야한다.

그리고 중요한 건 바로 지금 우리 열심히 행복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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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아니 에르노 지음, 김선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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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는 것. 그것은 내려놓는 것이다.

혈기왕성한 체력, 지성, 아름다운 미모 등 나이가 들어가며 우리는 내려놓는 것을 배운다.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하나 둘씩 내려놓는 과정은 잃어가는 본인도 고통스럽지만 지켜보는 보호자에게도 쉽지 않다. 포기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게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자신의 모든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가 아닐까.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힘든 내려놓음이 아닐까.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작가가 어머니의 치매를 지켜보며 써내려간 자전적 에세이이자 소설이다.

'자신이 체험하지 않는 일을 허구로 쓰지 않는다는 작가는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이제는 모든 것이 뒤바뀌엇다.

어머니가 나의 어린 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


이 문구 앞에 얼마전 화자가 되었던 공익 광고를 생각한다.

"엄마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이 강렬한 카피는 치매의 모든 걸 설명한다. 모든 병 중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급격하게 역전되는 관계. 부모는 자녀가 되고 자녀는 부모가 되어 아이처럼 모든 걸 돌보아주어야만 한다. 처음에는 부분적인 돌봄이 전인격적인 돌봄으로 바뀐다. 하지만 우리가 광고에서 보았던 "엄마의 엄마가 되었습니다"라는 문구처럼 우리가 부모의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저자 아니 에르노는 엄마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엄마의 엄마가 된다고 하지만 과연 우리는 엄마처럼 해 낼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우리는 부모처럼 우리의 부모님을 돌볼 수 없다. 그러기에 저자가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가 없다고 했듯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은 사실이다.


어머니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사람이 바로 나인 것만 같다.


어머니의 상태가 악화됨에 따라 어머니의 거처도 바뀌어져간다. 집에서 병원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요양원으로 하나씩 마지막을 준비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악화되 가는 어머니의 상태를 바라보며 저자는 깊은 죄책감에 휩싸인다. 과연 그 죄책감에 자유롭지 않은 자녀가 얼마나 있을까. 병마에 시달리는 부모의 모습을 바라보는 자녀의 심정 중 가장 큰 감정은 바로 '죄책감'일 것이다.

저자의 '죄책감' 감정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엄마에게 가지는 감정을 돌이켜본다.

저자의 어머니처럼 '치매'는 아니지만 나의 엄마도 불치의 병을 앓고 계신다. 엄마의 병명을 의사에게 확진받았을 때 나와 오빠 그리고 동생이 느꼈던 감정은 바로 '죄책감'이라는 한 단어였다.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엄마의 상태를 잘 몰랐다는 것. 그리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사실. 결국 우리가 엄마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우리를 내내 힘들게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실이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그럼에도 살아야 하고 사회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더 큰 죄책감을 일으켰다. 살아간다는 것만으로, 엄마의 상태가 악화될수록 죄책감은 커져갔다.

자주 내려가던 부모님 방문도 바빠지며 뜸해져가고 가끔씩 엄마를 뵐 때마다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도 고통이었다.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의 고통을 바라만 보며 내가 느낄 수 없다는 건 나를 깊은 죄책감에 빠뜨렸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에서도 저자 또한 그런 죄책감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느니 미쳐서라도 살아 있기를 바랐다.


엄마의 병 확진 후, 엄마의 몸 상태를 알리는 게 우리들의 큰 숙제였다.

아빠는 차마 그 역할을 하지 못하셨고 오빠는 스스로 이 숙제를 떠맡았다.

오빠는 울면서 엄마의 병명을 알렸고 엄마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제발 10년만이라도 살아달라고. 힘들겠지만 살아달라고. 절대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다혈질인 성격과 달리 마음도 여리고 겁도 많은 엄마가 쉽게 자포자기할까 무서운 오빠의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나는 저자의 미쳐서라도 살아 있기를 바란 저자의 글이 오빠가 엄마를 향한 울부짖음이 겹친다. 어떤 모습으로라든 우리 곁에 존재하기만을 바라는 마음. 그 처절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된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은 저자의 어머니가 생전 마지막으로 쓴 글이었다.

밤... 그건 아마 인생의 암흑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하나씩 내려놓으며 조금씩 어둠은 짙어진다.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되면 밤이 길어지듯 병마는 깊고 긴 어둠으로 인도한다. 그럼에도 저자의 어머니가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라고 쓴 건 힘듬에도 그 밤을 껴안고 끝까지 살아내겠다는 몸부림처럼 들린다.

엄마 또한 나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 너희를 위해서 살아간다."

살아있다는 건 하루를 또한 고통 속에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고 감내해야 하고 더 악화되는 자신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나의 엄마도 나를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자신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힘들지만 밤을 껴안으며 어둠을 통과해간다.

책을 읽으며 내내 후회했다. 왜 나는 이 책을 읽었을까. 비록 저자와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편찮으신 엄마를 지켜 보는 자녀의 입장으로 저자와 비슷한 감정 기복을 느끼며 저자의 어머니 모습 속에 나의 엄마 모습을 비추어보곤 했다. 읽는 동안 결코 쉽지 않았던 소설이였다.

이 책에서 가장 큰 울림을 꼽느라면 단연 제목이자 저자의 어머니가 쓴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이다. 나는 저자의 어머니의 마지막 문장에 엄마의 살아있음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는다. 그리고 이 문장 속에 엄마의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알아간다. 밤을 떠나지 않는 엄마가 유난히 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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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 -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
잭 홀런드 지음, 김하늘 옮김 / ㅁ(미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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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가 첫 손님이면 재수가 없다."

"여자가 기가 세다."

모두 여성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발언들이다.

택시에 여자가 첫 손님이면 재수 없다면서 승차를 거부하는 택시 기사도 있었고 여자가 똑똑하면 망조라며 못마땅해했다. 지금에서야 그런 기세가 눌렀다고 하지만 아직도 이런 여성 혐오 말들을 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여성을 비하했을까. 언제부터 여성을 남성보다 못한 존재로 여겼을까. 그 근원은 어디일까?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는 여성 혐오의 역사를 추적해 올라간다.

여성 혐오는 만연해 있고

끈질기며 유해하고 변화무쌍하다.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의 저자 잭 홀런드는 남자이다. 그는 이 작업을 딸과 함께 작업하며 집필해 왔다.

다가온다. 이제까지 주류세력인 남성들이 비주류였던 여성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현재까지 여성 혐오의 역사를 심층적으로 연구한 작품이다.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판도라의 상자'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데 가장 잘 쓰이는 신화이다.

저자 잭 홀런드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부터 여성 혐오의 역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분석한다. 가령 제우스가 다른 여성을 강간하여 태어난 신화는 제우스의 여성 혐오를 정당화해주는 구실이 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부터 남성이 여성을 함부로 대하도록 읽혀졌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심지어 아테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여성의 배움을 억제하라고 강요했다.


"여성이 이성을 발달시키지 못하게 하라.

그건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를 강조하는 기독교 신앙에서는 과연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까.

슬프게도 우리는 하와의 존재부터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배운다. 뱀의 꾀임에 넘어가 이 세상에 죄악이 들어오게 한 존재. 그 죄로 임신과 출산이라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고 비난한다. 또한 믿음을 위해 여성의 화장을 거부하고 남편이 죽으면 그 친인척에게 결혼시키는 법률 등 성경의 말씀이 여성들을 혐오하는 수단으로 종종 이용되었음을 저자는 파헤친다.

그리스와 로마의 여성 혐오자들은 도덕적인 결함을 지적하며 끊임없이 여성을 질책했다.

그런데 여성 혐오의 역사에 신의 반감이라는 새롭고 강력한 요소가 추가되었다.


이 밖에도 저자는 문학 작품에서 나타나는 여성 혐오의 역사를 소개한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서정시와 여성 혐오를 분출하는 시가 동시에 나타나며 설전을 벌인다. 여성의 의견은 없이 화장을 반대함 여성의 자립을 막고자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이에 대해 모호한 결론을 내리고 계몽시대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루소는 여성이 '복종해야 하는 성'이라는 믿음을 정당화했다. 시대에서는 계몽을 외치었을지언정 여성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은 전혀 발전이 없었다.

저자 잭 홀런드의 말처럼 여성 혐오의 역사는 끈질기게 변화하며 괴롭혀왔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변화하며 이 사회에 만연해 왔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여성 혐오란 우리의 생각보다 매우 오래되었으며 한순간에 마술처럼 사라질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대로 포기해야 할까? 그리스 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여성 혐오를 우리는 자포자기해야 할까?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 책 말미에 수록된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 줄 필요는 없다>의 저자인 이라영 사회학 연구자의 특별 서평을 꼭 읽어야만 한다.





지금도 여성 혐오의 역사는 변화무쌍하게 쓰이는 중이다.

그러나 혐오의 역사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는 저항의 역사도 있다.

무력하고 수동적인 피해자로 살지 않았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그 저항의 역사가 축적되어 오늘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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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 한 권으로 읽는 오리지널 명작 에디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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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의 대작이자 방대한 시리즈인 『안나 카레니나』를 한 권의 책으로 압축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안나 카레니나』는 크게 대조되는 두 가지 사랑으로 나눌 수 있다.

사교계의 여왕이자 화려한 안나 카레리나. 그녀는 가정도 있고 주변의 부러움도 받지만 공허함을 느낀다.

동생 부부의 문제를 중재해주기 방문한 안나 카레니나는 브론스키 백작의 열렬한 구애에 빠져 가정을 버리고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택한다.

열렬한 안나 카레리나의 사랑과 대척점에 서 있는 또 한 명의 인물은 레빈이다.

결혼이 일생일대의 축복으로 여기며 선량한 삶을 꿈꾸는 레빈은 브론스키에게 버림받은 여성 키티를 만나 결혼하며 소박한 사랑을 한다.

화려한 안나 카레리나의 도시에서의 생활과 레빈과 키티의 농촌에서의 삶. 이 둘은 철저히 평행선을 걷는다.

이혼을 요구하지만 응해주지 않는 남편때문에 집을 버리고 브론스키와 떠나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극복하지 못해 스스로 불행한 결말을 선택한 안나 카레리나. 톨스토이의 시대에 가정을 버린 선택도 놀랍지만 안나 카레니나가 끝내 불행을 선택한 과정 또한 놀라움을 자아낸다.

톨스토이는 무엇이 그녀를 불행에 이르게 했나를 알게 하기 위해 대조되는 레빈의 사랑을 전면에 내세웠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신에게 의존하며 선행을 베풀며 살아가는 레빈과 키티 부부의 모습을 통해 톨스토이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남긴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의 사랑이 정답이 아님을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나 카레니나를 결코 부도덕하다고 매도하지 않는다. 비록 그녀의 선택은 옳지 않았을지언정 안나 카레니나의 공허한 심리를 충분히 대변한다. 아내이자 엄마이지만 한 여성으로서 사랑받고자 했던 그녀의 욕구가 안나 카레니나를 응원하지 못한다 해도 그녀의 심리에 공감을 하게 한다.

한 권의 책으로 압축되어 방대한 분량에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던 독자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은 좋은 입문서가 될 듯하다. 먼저 이 한권의 책을 읽은 후 시리즈로 읽는다 하여도 좋은 디딤돌이 되어줄 듯하다. 『안나 카레니나』는 쉽지 않은 책이다. 그럼에도 한 여성으로서 안나 카레니나의 욕구가 공감이 되면서 과연 레빈의 기독교적 삶이 정답일까라는 생각 또한 들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은 여유가 될 때 다시 곱씹어 천천히 재독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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