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까짓, 집 - 없으면 안 되나요? 이까짓 2
써니사이드업 지음 / 봄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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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부터 지금까지 내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대학생때는 기숙사와 닭장촌이라 불렀던 방 한 칸짜리 방에서 자취생활을 했고 취업 후부터 지금까지 전세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나도 남편도 은행님에게 대출을 최대한 자제하고자 과감한 내 집 마련 대출을 못 하고 한 집에서 7년 째 전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까짓, 집』 이라는 표지와 함께 작은 글씨로 '없으면 안 되나요?"라는 문구에 귀여운 그림은 자가 소유가 없어도 씩씩한 저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책을 막상 펼쳐보면 현실에서 집을 찾으러 다니며 정착하기까지가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저자 써니사이드업은 유년 시절, 그리고 청소년 시절, 독립 후 잠시 머물던 공간에서 결혼하여 지금까지 떠돌아다니던 방랑기를 유머러스하게 펼쳐나간다. 마치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 이야기한다. 하지만 전세를 구하기 위해 방랑하는 전세유목민들은 알 수 있다. 좋은 전세 구하기가 과연 하늘에 별 따기라는 걸.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사장님일 수 있는 남편과 달리,

믹스 커피를 들이켜 가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던 밤이 무색하게도

부동산 중개인에게 나는 '사모님'이거나 '아줌마'이거나 '저기요'였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집에 얽힌 이야기들 증 공감이 가는 사연들 중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이라면 바로 여자인 저자 혼자만 방을 구하러 갔을 때와 남편과 함께 혹은 남편 혼자 방을 구하러 갈 때의 부동산 중개인의 달라지는 태도이다. 즉 미혼 여성과 남성을 대하는 태도가 방을 구하는 데에서도 차별된다는 점이다.

똑같은 조건으로 방을 구해도 여성인 저자에게는 전화번호만 받아놓고 가르는 둥, 또는 XX 조건 구하는 사람이라는 둥 장난삼아 대한다. 하지만 남편과 함께 갈 때는 '사모님'이라고 존대하고, 남편만 갔을 경우에는 동일한 조건임에도 자신에게는 결코 보여주지 않던 방을 보여준다. 같은 조건임에도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며 대하는 뼛 속 깊은 태도는 매번 저자를 힘들게 했다.

나의 경우 결혼 전에는 친오빠와 함께 살았고 결혼 후에는 남편이 혼자 부동산을 돌아다닌 경우이기에 이러한 차별을 받은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나와 친한 지인 중 미혼으로 지내고 있는 언니가 내게 해 준 말들이 떠올랐다. 그 언니는 방을 보러 다닐 때 절대 혼자 다니지 않고 가까이에 있는 큰아버지와 함께 동행한다고 했다. 자신이 많이 다녀보았지만 항상 무시하는 태도에 기분이 상했고 큰아버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태도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같은 고객이지만 손님을 가려 받고 여자를 경제적인 주체로 잘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의 악습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남편과 내가 사는 우리집이 내 기억 속 우리집과 같아지려면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가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던 우리가,

이제 스스로 엄마가 되어 서로를 맞아주어야 한다.

그렇게 상실감으로부터 독립한다.

돌아가고 싶은 우리집이 된다.


부부가 결혼 후 함께 살게 된 집이 진정 자기 집으로 여겨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저자는 결혼 후 2년 동안 '우리집'은 친정 본가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마음에 남편이 섭섭한 마음을 표현해냈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랬다. 특히 신혼초, 다툼이 많았던 때에는 지금 이 집이 내 집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드물었다. 온전한 우리집이 되기 위해서 더욱 많은 희생과 양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간다. '우리집'이 되는 건 노력이 필요하다.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제 대출이 없이는 집을 구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나 역시 치솟아오르는 집값을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렵다. 은행님 집이라는 둥, 방 하나만 우리 집이라는 우스개 소리는 이제 흔한 말이 되어버렸다. 전세유목민에게 2년은 어찌나 이리 빨리 다가오는지. 그럼에도 느슨하게 즐겁게 살아가고자 하는 저자의 글에 같은 유목민으로서 공감과 함께 저자의 웃픈 현실을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글에 위로도 함께 받는다.

그래도 저자님.... 이까짓, 집 없으면 안 되나요? 라고 묻지만... 그래도 있는 게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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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요테의 놀라운 여행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13
댄 거마인하트 지음, 이나경 옮김 / 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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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이야기를 좋아하는 소녀 코요테.

코요테는 엄마와 언니 동생을 한꺼번에 잃고 아빠 로데오와 함께 스쿨 버스 '예가'를 타고 길거리에서 살아가는 아이다.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빠와 단 둘이 집을 떠나 여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코요테는 할머니와 통화하던 중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엄마와 형제들이 죽기 전 놀이터에서 함께 추억상자를 묻었던 공원이 철거된다는 사실!

비록 추억상자를 묻은 네 명 중 코요테만 살아있지만 함께 꺼내리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코요테는 그 장소가 철거되기 전에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단 문제는 한 운전자인 아빠 로데오는 절대 집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는 것. 아빠 모르게 집으로 운전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야 한다.

소설 『코요테의 놀라운 여행』은 가는 도중 스쿨버스에 합류하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빨리 가야만 하는 밴드 연주자 레스터부터 살바도르와 엄마 등등. 그들에게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코요테 또한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이들은 서로를 응원해 준다. 단지 스쳐 가는 사람이 아닌 서로를 응원해 주는 과정이 따뜻하다.

가족을 잃어 본 경험이 없는 이들은 결코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막상 슬플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슬픔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다. 가족 세 명을 한꺼번에 잃은 코요테는 아빠 로데오에 의해 감감정을 통제당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건 아무 소용 없는 일이야, 코요테.


안 돼, 아가.

거기로 돌아가지 마.

네 행복은 여기, 지금에 있어.

예전 일은 다 잊어야 해.


잊기 위해 5년 넘게 길 위의 삶을 살아가고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살아간다. 이 소설은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 감추려 들면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코요테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작전을 펼치고 그 여행 도중에 사람들과 함께 가고 추억 상자를 열기까지 비로소 감정을 드러내며 서로를 위로해준다. 물론 이들이 그저 떠도는 삶이 아닌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뭔가를 향해 달려가는 건

뭔가로부터 달려가는 것보다 낫다.

훨씬 낫다.


소설에는 책을 좋아하는 코요테가 캠핑장에서 만난 또 다른 친구 피오나와 책을 매개로 친해지는 장면이 나온다.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피오나의 말을 보며 같은 책을 좋아하는 기쁨과 책만큼 친구 사기기에 좋은 매체가 없다고 말하는 코요테의 말이 너무 공감이 되었다. 또한 코요테에게 호의를 베풀던 피오나의 엄마가 코요테가 스쿨 버스에서 살아가는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태도가 단번에 달라진 피오나의 엄마를 보며 어른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게 되어 씁쓸함이 느껴지는 대목도 있다. 그럼에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씩씩한 코요테를 보면서 그 밝음 속에 슬픔의 감정이 숨어 있다는 사실에 안타깝기도 했다.

아빠 로데오와 고양이 아이반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위해 떠나는 제 2의 여행. 코요테는 과연 집을 찾았을까? 아직도 길 위에서 찾고 있어도 상관없다. 희망이 있는 한, 그리고 서로가 있는 한 이들은 행복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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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여자는 체르노보로 간다 걷는사람 세계문학선 4
알리나 브론스키 지음, 송소민 옮김 / 걷는사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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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 [사마리아]이다.

시리아 내전으로 연일 폭격이 계속되고 전기도 먹을 것도 모두 단절되고 폐허가 되어 버린 알레포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한 여인의 카메라에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바로 눈 앞에 폭격이 떨어지고 어린 동생이 목숨을 잃는 그 현장에서 우리는 사람들을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 곳에서 아픔을 감내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세상의 모든 여자는 체르노보로 간다』라는 소설 또한 비슷한 의미를 준다. 1986년에 있었던 체르노빌 원전 사건 이후 우리는 그 현장을 사람들이 살지 않는 재앙의 장소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그 재앙의 장소였던 그 곳에 아직도 살아가는 사람이 있음을 보여주며 삶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바 두냐라는 할머니다. 원전 사고가 있고 다시 체르노빌로 돌아온 첫 번째 사람이다. 모든 것이 방사능에 오염되어버린 이 현장에 돌아가는 걸 가족들은 반길 리 없다. 하지만 바바 두냐는 극구 말리는 딸 이리나를 향해 말한다.


난 늙었어.

나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킬 수 있는 건 이제 아무것도 없다.

혹시 그렇다 해도 세상이 망하지는 않아.


소설에는 원전 사고 후 달라진 이 체르노빌의 모습이 바바 두나 할머니의 설명 속에 그려진다.

새들이 사라져서 큰 거미들이 생겨나고,

오염된 동물들이 기형의 모습으로 변형된 동물들의 모습,

전화선도 끊겨서 바깥과 연락할 수 없으며 바깥의 시간과 단절된 체르노빌.

그 곳에 사는 소수의 사람들은 바바 두나와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다. 아. 마지막으로 이 곳에서 세상을 떠난 망자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

분명 이 재앙은 마을을 황폐화시켰지만 바바 두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원망하기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체르노빌에 살기 때문에 멀리 독일에서 사는 손녀를 단 한 번도 못 만나지만 그 역시 자신이 감내해야 함을 받아들이며 딸과 편지로 서신을 주고 받는데에 만족한다.

이 조용한 공간에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동안 할머니 바바 두냐는 가장 주체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며 사람들은 바바 두냐를 의지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삶의 의지를 불태움 자신의 삶을 끝까지 껴안는다.

비록 방사능이 뼈속까지 침투해 작은 원자로와 같은 몸이 되었지만 삶을 살아가며 주변의 사람들을 챙기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생각한다. 코로나라는 재앙이 우리의 삶을 바꾸어놓고 그 원인을 아시아인에게 돌리며 폭행하는 아시아인 혐오, 코로나 확진자를 죄인 대하듯 바라보는 시선 등이 바로 재앙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였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럼에도 사랑할 것이 있는 한 살아간다. 그 안에서 결혼을 하고, 정원을 가꾸고 이웃을 챙기며 삶을 살아간다.

내가 영화 [사마에게]를 보았을 때는 전쟁 외면의 모습만 보았을 뿐 그 안에 감내하며 그 곳을 지키는 사람들을 생각하지 못했었다. [사마에게]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게 한 영화였다. 『세상의 모든 여자는 체르노보로 간다』은 체르노빌로 그치지 않고 그 재앙의 현장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게 해 주었다. 자신의 터전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 고양이가 눈 없는 새끼고양이를 낳아도 사랑하며 방사능에 오염된 자작 나무 수액조차도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해도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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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 내로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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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 퍼킨스 길먼의 단편 소설 『누런 벽지』는 페미니즘의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한 여성의 일기로 이루어진 이 짧은 글은 주변의 억압에 의해 정신적으로 죽어 가는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월간 내로라는 한 달에 한 권 짧은 영미 고전 소설을 소개하는 시리즈이다. 올해 2월부터 시작되었으며 『누런 벽지』는 지난 4월에 소개된 세 번째 시리즈이다. 내로라 시리즈의 『누런 벽지』는 한영대역판이다. 영어와 한글 본문이 나란히 삽입되어 문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누런 벽지』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앞서 말했듯, 『누런 벽지』는 한 여성의 일기다. 총 열한 번째 일기로 이루어진 이 일기의 주인공 여성의 남편의 이름은 '존'으로 사람의 몸을 치료하는 의사다. 남편과 주인공(주인공은 이름이 없이 '나'로 표기된다)은 삼 개월을 지내기 위해 한 저택에 머무른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남편, 부유한 환경을 보여주는 상황 속에서 나는 이상 증세를 느끼지만 남편은 아내의 말을 무시한다. 의사인 자신이 잘 안다면서. 나의 오빠인 유명한 의사인 오빠마저도 똑같이 동생이 신경 쇠약일 뿐이라며 모든 행동을 금한다. 글쓰기도, 일도 금하고 휴식만을 강요한다.


내가 병들었다는 것을 그는 부정해!

그런데 내가 무얼 할 수 있겠어?


의사이기에 환자인 아내의 말을 믿지 않고 자신들이 병명을 진단하고 모든 것을 억압해 버리는 남편. 그 남편의 억압 속에 주인공 나는 모든 활동을 금지당한다. "그런데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냐"며 자포자기한 듯한 말투가 책 속에서 흘러나온다.

책의 내용은 벽에 붙은 '누런 벽지'를 보며 아내는 계속 이상 증세를 호소하지만 남편은 끄덕하지 않는다. 다만 아내를 억압할 뿐이다. 의사인 내가 잘 안다면서 자신이 진단하고 처방내리며 아내를 금한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존은 절대 모를 거야.

내가 힘들어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확신하고,

그 사실에 흡족해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누런 벽지』를 설명하는 문장은 바로 주인공의 한 마디가 모든 걸 대신한다고 믿는다.

남편은 경제적으로 어려움도 없는 풍족한 아내가 힘들게 없다고 생각한다. 아내를 믿으려 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내를 대하고 다른 방으로 옮겨달라는 아내의 말도 무시하고 점차 아내를 무너트린다.

힘들어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믿는 남편 존의 모습에서... 나 역시 나의 남편의 모습을 보았다...

물론 나와 이 책의 주인공의 모습은 다르다.

『누런 벽지』에서의 나는 풍족하다. 그리고 아이를 돌봐 주는 사람도 있고 남편과 오빠 또한 유명한 의사이다.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조건이다. 그래서 남편은 "네가 힘들어 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한다.

나의 경우는 다른 의미에서 달랐다. 쌍둥이들에게 지극정성인 남편, 육아에 적극적이며 술 한 번 안 마시고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주변인들은 말했다. "잘 도와주니 좋겠다고", "가정적인 남편을 만나 부럽다고". 어머니도 이런 남편을 보며 흐뭇해하며 내게 자랑하셨다. 자신의 아들이 이렇게 잘 하는 남자인 줄 몰랐다며.

하지만 막상 내가 힘들다고 하면 주변의 반응은 달랐다. 남편은 "내가 얼마나 더 해야 힘들다는 소리를 안 할래?" 라고 말했고 주변에서는 그렇게까지 하는데 힘들다고 하냐고 나를 탓했다. 적극적인 남편이 있으니 내가 힘들어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들으려 하지 않았고 나의 말은 차단되었고 억압되었다.

그래서 주인공이 힘들다고 하는 그 절규가 내 마음 속의 메아리처럼 울러 퍼진다.

『누런 벽지』에서 얼마나 힘들지 모를거다라는 주인공의 말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난 이후에도 내 마음 속에 메아리친다. 왜 내가 힘들다고 하는데 그들은 무슨 근거로 아프다는 소리를 차단하는가. 자신들 위주로 해석하며 아플 이유가 없다고 듣지 않는가. 누구를 위한 처방인가. 누구를 위한 억압인가.

책 속의 나에게 가해진 억압이 현대에서는 이름과 형태만 달라질 뿐 억압은 같은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 주인공을 조금씩 무너트리는 누런 벽지, 그리고 남편은 다른 이름으로 계속하여 변주되며 억압한다. 비록 짧은 단편이지만 여운은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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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들 - 나를 둘러싼 존재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 들시리즈 2
박훌륭 지음 / 꿈꾸는인생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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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아독방" 은 인스타그램에서 '독립서점'의 아이돌이나 다름없다. 약국 안에 '아직 독립 못한 책방'이라는 이름으로 서점이 있는 이 서점은 주인장이자 약사인 박훌륭씨의 위트 넘치는 글과 깊은 리뷰로 책덕후들에게 많은 각광을 받는다. 책 이야기만 있을거라면 금물. 자신이 춤을 추는 동영상도 올리고 출판사들의 유튜브에도 출연하기도 하고 책도 출간하는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이름답게 모든 일을 훌륭하게 해 내는 박훌륭씨가 자신을 둘러싼 의미 있는 존재들의 '이름들'로 그 의미를 이야기한다.

『이름들』은 저자 박훌륭씨를 둘러싼 존재들에 대한 이름들을 이야기한다. 먼저 학창 시절 가장 큰 놀림 대상이 될 수 있었던 저자의 이름 '박훌륭'부터 쌍화탕, 라면, 춤, 돈가스 등등 자신의 일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이름들과 그 존재가 주는 의미들을 이야기한다.

여러가지를 다루고 있기에 이 책의 특징을 한 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먼저 이 책은 재미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저자가 뽐낸 유머들이 이 책에서도 빛을 발한다.

과학고에서 수학 성적이 '양'과 '가'를 오갔던 자신의 흑역사를 위트 있게 소개하기도 하고 자신의 책방 '아직 독립 못 한 책방'이라는 이름의 중의적인 의미 등을 재미있게 설명해낸다. 인스타그램을 보며 느꼈던 저자의 유머와 여러 이벤트등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던 질문 또한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무슨 일이든 오래 하려면 무엇보다 그 일에 재미를 느껴야 한다.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비록 약국이 잘 되는 것도 아니고 독립서점이 대박이 나는 것도 아니지만 춤도 추며 매 순간 재미있게 살려고 노력하는 그가 약국과 책방을 함께 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일상에서 재미를 포기하지 않기에 젊었을 때 추었던 춤을 지금까지도 춤을 추며 재미를 찾아 나간다.

'춤'이라는 이름은 나에게는 꾸준함이고 희망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는 이런 꾸준한 마음을 갖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지 문득 궁금하다.


이 책을 읽노라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의 시 '꽃'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존재들에 관심이 없으면 그 존재들은 단지 하나의 사물일 뿐이다. 하지만 관심을 갖고 의미를 부여하면 그 존재는 달라진다. 이 책 『이름들』 또한 저자가 자신의 일상에서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이름들에 이야기가 생겨난다. 과연 나는 내 존재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 적이 있었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주위를 돌아보며 그 이름을 불러보았을 때가 있었을까? 내가 아닌 나를 둘러싼 많은 책들, 사물들을 떠올리게 하며 관심을 갖게 한다.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저자의 인스타그램 (@a_dok_bang) 을 꼭 방문했으면 좋겠다. 저자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이 책을 읽으면 저자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이 재미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저자의 책 이야기는 덤이다. 재미와 의미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싶은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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