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 차별과 배제, 혐오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하여
악셀 하케 지음, 장윤경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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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지금 미국의 흑인 사망으로 인한 폭동 소식을 듣는다. 어쩌면 이는 세상에서 가장 무례한 트럼프가 대통령이 당선되고부터 예고되었던 건지 모른다. 선거 때부터 약자에 대한 조롱과 멸시를 숨기지 않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 들어가서도 그 무례함을 숨기지 않는다.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 또한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인해 유럽에는 동양인 혐오를 숨기지 않는다. 동양인은 분노의 타깃이 되어간다. 무례함이 널뛰는 시대. 이 시대를 과연 품위있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이 저자 악셀 하케는 독일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언어의 집을 짓는 글쟁이"라는 평가를 받는 저자는 이 무례의 시대에 '품위 있는 삶'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이야기한다. 


 먼저 저자는 『품위」라는 단어의 정의를 묻는다. 과연 무엇이  『품위」인가 ? 사전에서 뜻을 검색해 본다.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이라는 의미가 눈에 띈다. 그렇다면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은 무엇일까? 저자는 먼저 이 '품위'라는 뜻이 상대적일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특히 우리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 '품위'가 나치 친위대에서 유대인을 학살하면서 독일인들에게 품위를 강조하였음을 강조한다. 


품위는 어떤 이름이 붙여지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한다.

확실히 품위는 모호하고 흐릿하며 불분명한 경향이 있다. 

어떤 행동을 두고 품위라고 명명하면 그 행동은 이내 품위에 속하게 된다.


저자는 이 품위에 대한 의미에 칸트가 말한 품위의 의미를 인용한다. 그렇다면 칸트는 품위를 뭐라 명명했을까? 철학자 칸트는 품위란 "타인의 운명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타인과 더불어 사는 데 완충재와 윤활제의 역할을 하는 이 품위가 결속과 분열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있는 '중간 세계;에서 품위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품위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품위를 지키기도 결코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왜일까? 저자는 사회의 변화에  주목한다. 많은 직업들이 디지털화되며 사람들이 직장을 잃어가고  일회용성 말이 난무하는 소셜미디어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키워간다.  편하고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지만 그에 비해 즉흥적이고 폭발하기 쉬운 그 안에서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는 자신의 이익 앞에 온갖 무례가 난무하지만 침묵을 지킨다. 0과 1만 있는 디지털 사회에서 그들은 돈 앞에 무례를 허용하며 손을 놓는다. 


우리는 알고 있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범죄율이 치솟고 약자를 향한 혐오가 난무하다는 것을. 그 속에서 과연 품위가 가능할까. 선을 악으로 갚는 이 시대에,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저자는 어디에서 답을 찾을까. 저자는 기본으로 돌아간다.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함을 강조한다. 


앞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과 공존하려면

더불어 살아야만 하고 

또 더불어 살고자 하는 타인에게  일말의 관심이라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대안은 사람이 아닐까? 코로나19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저소득층이 힘들 때 마스크를 수제작하며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배포해주며 선행을 베풀던 사람들이 화제가 되었다. 모두 마스크를 사기 위해 사재기할 때 그들은 선행을 베풀었다. 그리고 그 선행은 또 다른 미담을 만들어 내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관심이 이 사회의 품위를 지켜낼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악셀 하케 또한 강조하고 있다. 


품위는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는 우리 세대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시급한 태도이다. 우리에게는 전염병 백신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품위를 회복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타인을 향한 포용과 연대가 중요하다. 


품위는 혼자서 이룰 수 있는 태도가 아니다. 공존하는 사회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삶의 태도이다. 그리고 그 품위는 우리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며 함께 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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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김수현 지음 / 놀(다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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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한국이라는 나라가 관계로부터 얻는 상처가 가장 많은 나라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개인주의이고 '나'를 우선시하는 유럽보다 '나'보다 '우리'를 중요시하는 우리 나라가 관계라는 이유로 서로의 일에 깊숙이 개입하곤 하기 때문이다. 그 관계 속에서 나에게 건네는 충고와 관심이 때로는 상처이고 자존감을 상하게 할 수 있음을 사람들은 간과하곤 한다. 하지만 모두 사랑이니까,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라는 말로 듣는 이에게 일방적으로 수용할 것을 강조하곤 한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는  베스트셀러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의 저자인 김수현 작가가 4년 만에 펴낸 "관계"에 대한 에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관계로부터 받을 수 있는 여러 상처를 언급하며 이 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쉽고 따뜻하게 풀어나간다. 


우리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해를 가할 때는 상대방에게 강하게 항의할 수 있다. 하지만 관계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행해지는 상처는 그게 악의가 없음을 알기에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기가 곤란할 때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있다면 바로 부모님 또는 친척 어른들이 가하는 간섭등이 아닐까? 명절에 만난 자리에서 "언제 시집 갈 거니?" "이제 너도 빨리 정신 차려야지." "빨리 취업해라." "일자리는 알아보고 있니?" 등등 사랑과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주곤한다. 하지만 이 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이러한 일들에 당사자는 그만 하라고 말하지 못한다. 가만히 감당하면 끝도 없이 늘어놓는 간섭에 시달려야 하고 그만하시라고 말하면 대뜸 버릇 없는 아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 모든 잔소리의 가장 큰 문제는, 

어려운 걸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는 거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아닌 이상, 취업과 결혼, 임신 등 모든 것을 쉽게 이야기한다. 나에게 쉬웠던 일이 상대방에게는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하곤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없는 부부엑 그 속사정은 생각하지 않고 빨리 아이를 가질 것을 재촉하는 경우 또한 상대방에게 쉽게 상처를 주곤 한다. 이런 관심을 가장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지켜야만 한다. 자신의 상황과 비교해 쉽게 판단하고 이야기하기보다 그들의 삶을 온전히 존중해주는 것이 바로 중요하다. 


산다는 것 역시 집안일을 하는 것과 같아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일상을 돌봐야 한다. 


살아간다는 건 파도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넘어지지 않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노력과 힘이 필요하다. 


우리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나쁜 감정들을 참기도 하고 손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간과하는 관계가 있다. 가장 놓치기 쉬운 관계가 있다. 그건 바로 '나' 자신과의 관계이다. '나'와의 관계는 세상 어떤 관계보다도 더 중요하지만 우리는 남을 챙기느라, 또는 살아가느라 정작 중요한 '나'는 챙기지 못하고 '나'와의 관계에 소홀해지곤 한다. 끊임 없는 일상을 견뎌내느라, 삶이라는 바다에서 여러 파도를 부딪혀가며 파도를 넘느라 어느새 기진맥진해지고 '나'를 돌보지 못한다. 우리는 이제 '나'를 생각하고 위로해주어야 한다. 오늘 하루도 살아낸 나에게, 오늘 하루도 버텨나가느라 힘들었던 '나'에게 "애썼다." "수고했다"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나'와의 관계는 세상 그 누구보다 가장 중요한 관계이다. 


모성의 상향 평준화는

우리 모두를 죄책감과 상처에 취약한 존재로 만들었다. 

원래 이상적인 걸 정상적인 거라 여기면

소수의 이상적인 사람을 제외하곤 다  힘든 법이다. 


"엄마니까!"라는 말을 엄마가 되면서 수도 없이 들었다. "엄마니까 할 수 있어" "엄마란 그런 거다." "엄마는 대단해" 그런 세상이 쉽게 말하는 것들은 나를 무기력한 사람으로 만들어갔다. 나는 힘든데 엄마니까 감당하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의 힘듬이 나쁜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 무조건 참아야 하고 나의 감정을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억압하곤 했다. 상대방의 감정과 상관없이 '모성'이라는 이상향이 억압이 될 수 있음을 사람들은 간과한다. 

육아라는 이름은 자신을 포기하며 끊임없는 연단의 과정이거늘 '모성'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도록 채찍질한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는 결국 모든 관계의 중심에서 '나'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에세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많은 관계들 속에서 상처 받지 않을 수는 없다. 그리고 매번 그 상처를 표현한다면 관계가 멀어질까봐 더욱 조심하게 될 때가 많다. 이 관계들 속에서 저자는 자신의 경험담과 여러 책들의 인용을 통해 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켜나가는 방법등을 이야기해준다. 이 책이 에세이인만큼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전문적인 방법은 제시하지는않지만 관계를 지키려 애쓰기보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관계 맺는 법 등의 여러 가지 조언등을 따뜻한 언어로 말해준다. 


관계는 소중하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니만큼 딸, 엄마, 아내, 직원, 학부모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관계는 바로 '나'이다. 자신과의 관계가 바로 서지 못하면 다른 관계들은 무의미해진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는 바로 나를 지켜갈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나를 지키고 나를 보호하면서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말해준다. 오늘도 만약 다른 사람들이 건네는 여러 말과 관계로부터 힘든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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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컬렉션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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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 6년차에 들어섰다. 보통 결혼 전 불타오르는 사랑은 3년을 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후는 사랑이 아닌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산다고 말한다. 사랑하기에 결혼했는데 사랑이 아닌 정으로 버텨가는 게 부부라면 참 슬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역시 슬프지만 사랑보다는 익숙함에 살아간다. 그 익숙함이 사랑이 아니라는 게 슬픔으로 다가오곤 한다. 앨리스 먼로의 작품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은 내게 그런 느낌이었다.

82년의 노령에 단편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거장 앨리스 먼로는 주로 여성의 삶에 집중한다. 작가의 전작들 <거지 소녀>, <행복한 그림자의 춤>, <착한 여자의 사랑>, <소녀와 여자들의 삶>등 여성이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총 9편의 단편 소설이 있는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또한 화자가 모두 여성들이다.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의 느낌은 앞에서 말했듯, 익숙함 속에 슬픔을 느끼는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물 위의 다리]에서 위중한 병에 걸린 지니, [위안]에서 남편 루이스를 떠나 보낸 니나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남편의 별난 성격에 익숙하다. 창조론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남편 루이스에 대한 반발이 없어 보이고 지니 또한 자신을 간병할 헬렌을 고용하며 간병 모드로 돌입하는 남편 닐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소설은 곳곳에 이 논쟁 속에 지쳐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위안]의 남편 루이스의 끝없는 논쟁이 아내 니나를 피곤했음을 알려주며 이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의사 에드와의 시작을 알려준다.

이 소설 속에 흥미로운 건 결혼하는 여성에 대한 인물의 시선이였다.


"네가 알아서 하겠지. 가고 싶은 곳엔 가봐야지.

어쨌거나 곧 결혼한 여자가 될 테니까."

그녀가 덧붙였다.

그녀의 말은 '이제 네가 성인이라는 걸 인정해야겠구나.'라는 뜻인 것 같기도 했고

'너도 곧 구속된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거야.'라는 뜻인 것 같기도 했다.


"네가 알아서 하겠지. 가고 싶은 곳엔 가봐야지. 어쨌거나 곧 결혼한 여자가 될 테니까." 라는 친척 앨프리다의 말을 보면서 나는 엄마들이 결혼 하지 않은 딸들이 엄마를 도와주려고 할 때 자주 하던 말들이 떠올랐다.

"결혼하면 다 하게 되니 지금이라도 쉬어라." 라는 엄마들의 말이 연상되며 서양이든, 동양이든 결혼이 여성에게는 구속의 의미로 다가옴이 인상깊었다.


집에 갈 때마다 부딪치는 어려움이 하나 있었다.

거기에서는 내 인생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이 되었던 문장이였다. 나의 인생이 부모님에게 또는 다른 이웃들의 시선에 재해석되고 짜맞추어진다. 그리고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던 나의 인생이 남의 시선에 의해 불쌍하게 되고 안쓰럽게 보여진다.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인생에 대한 어려움이 시대가 지나도 여전하구나 하는 한탄과 이 현실을 적시하는 작가의 표현력이 매우 놀라웠다.


이 소설은 불륜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부부이기에 언뜻 보기에 다른 상대방과 관게를 갖는 그들의 모습이 당혹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상대방에게 익숙해졌지만 익숙해졌기에 슬픔을 느끼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공감대를 만들어준다. 우리 부부의 경우만 해도 내가 남편의 면들을 잘 알고 있지만 끝내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면들이 내게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그래서 내게는 다른 상대방과 관계를 갖는 그들의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그 관계에서 갖는 슬픔과 피로감을 다른 상대방에게서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그 현실을 나는 비난할 수 없었다.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는 큰 사건이나 서사는 없다. 다만 평범한 일상 속에 상대방의 심리 묘사가 매우 탁월하다. 이들의 관계에 생겨나는 감정, 상태등이 상황과 어울러져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만들어낸다.

결코 영원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이 상대방에 의해 어떻게 변해져 가는지 작가는 세심하게 보여주며 사랑, 그리고 결혼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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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 Art & Classic 시리즈
진 웹스터 지음, 수빈 그림, 성소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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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주일 교회 종소리와 함께 시작되던 텔레비젼 만화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일요일마다 방영되던 만화가 있었습니다. 일요일에만 방영되었던 그 만화를 보기 위해 교회를 늦게 가기 위한 꼼수를 쓰다 엄마에게 혼이 나곤 했습니다. 혼나면서도 꼭 놓칠 수 없었던 만화는 바로 <키다리 아저씨>였습니다.

그 때는 이 만화가 원작 소설이 따로 있다는 사실도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 만화 속 개성 강한 아가씨 주디와 멋있는 저비 도련님을 보면서 매번 마음이 설레이곤 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키다리 아저씨》는 고전이니만큼 여러 형식의 콘텐츠로 제작되어왔습니다. <키다리 아저씨>를 읽어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책 제목만큼은 많은 독자들에게 친숙한 작품입니다. 보육원에서 생활하던 주디가 한 후원이사의 도움으로 대학에 입학하면서 자신의 일상을 편지를 써 내려가는 편지 형식의 이 소설이 너무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출간되었습니다. 제가 만화에서 보던 주디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인데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가씨로 그려져서 책을 본 순간 '주디가 이렇게 이뻐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제게 다가온 주디의 이미지는 피상적이였습니다. 가난한 한 고아가 운이 좋아 한 부자의 도움으로 대학을 가게 되고 멋있는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전형적인 여주인공이였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본 주디는 제가 알고 있던 것 이상으로 주체적이고 독립성이 강한 여성이였습니다. 비록 주디는 자신이 고아원 출신이고 남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자격지심이 있지만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이 받는 혜택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다른 친구들이 부모님이 주는 도움으로 당연하게 생각하며 누리는 일상을 주디는 감사하고 다른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하기에 공부도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고 그 장학금 수령을 거부할 걸 명령하는 키다리아저씨게 반항할 수 있는 건 바로 남의 도움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일어서려는 주디의 강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1912년에 발표된 《키다리 아저씨》가 쓰여진 시기는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었던 시절입니다.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1920년에서야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었다고 합니다. 책 곳곳에 여성 참정권이 없는 현실을 아쉬워하는 주디의 말은 아마 작가 진 웹스터이 주디를 통해 참정권을 외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비록 상류층이지만 그들과 달리 고아들을 후원하고 부의 재분배를 외치는 사회주의자 저비스 펜들턴과 뉴욕 상류층의 화려하고 풍요로운 삶을 동경하기보다 덜 화려하지만 그들만의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샐리 가족의 삶을 더 동경하는 주디의 모습은 저자의 사상이 들어가있지 않을까 추측하게 합니다.



《키다리 아저씨》 는마치 다른 사람의 연애편지를 읽은 듯 설레기도 하고 키다리 아저씨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전혀 알지 못하는 주디를 보는 저비스의 마음은 어떨까 상상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주디가 대학에 가서 자신의 신분 컴플렉스에서 벗어나며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키다리 아저씨》는 재독의 기쁨을 알게 해 준 책이였습니다.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정치적인 상황 등 또한 엿볼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의견을 교류해가며 키다리 아저씨이자 정신적인 동반자로 함께 사랑을 키워가는 주디와 저비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전은 시대를 떠나 후세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는 문학을 말합니다. 《키다리 아저씨》 또한 제게 고전이란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 줄 수 있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재탄생과 함께 한 키다리 아저씨 이 우울한 코로나 일상에 휴식이 필요한 분들꼐 강력 추천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건 대단한 기쁨이 아니에요.

소소한 기쁨을 한껏 즐기는 것, 그게 중요하죠.

아저씨, 제가 참된 행복의 비결을 알아냈어요.

바로 현재를 사는 거예요.

지나간 일을 영원히 후회하거나 다가올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게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최대한으로 누려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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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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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의 거장 황순원 작가의 신작 《철도원 삼대》를 가제본 형식으로 만나보게 되었다.

600페이지가 넘는 내용 중 앞 부분 3분의 1 내용만을 소개한 이 《철도원 삼대》 가제본은 이백만, 이일철, 이진오 삼대에 걸친 노동자들을 소개하는 데 집중한다.

소설 초반은 진오가 굴뚝농성을 하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해고자의 신분, 공장이 폐쇄되고 다른 회사에 매각된 직장, 복직과 고용승계를 주장하지만 이제 모두 뿔뿔히 흩어지고 열한명이 남아있는 투쟁의 현장. 기약 없는 시간은 그들을 더욱 애태우게 하고 사업주는 그들이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묵묵부답으로 느긋하기만 한다.

이진오의 고공농성은 외롭고 고되다. 여름에는 찌든 더위와 싸워야 하고 비오는 날은 온 몸으로 비를 맞아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외로움이다. 홀로 이 좁은 공간에서 버텨야 하는 외로움은 지상에서 그에게 식사를 보조해주는 동료들도 해결해 줄 수 없다. 외로움에 진오는 페트병 다섯 개에 이름을 붙여주고 말을 건다. 그들에게 말을 걸며 진오는 할아버지, 아버지의 세대인 일제강점기부터의 이야기들을 생각해낸다.

일제강점기 기관차에 매료된 이백만은 기관사가 될 수는 없지만 이 철도원으로 일할 수 있음을 큰 자랑으로 여긴다. 그리고 성적이 좋은 큰 아들 일철이 철도 기관사가 될 수 있는 학교에 입학한 것이 매우 뿌듯하기만 하다. 자신의 오랜 숙원을 아들이 이뤄준다고 생각하니 어찌 뿌듯하지 않을 수 있으랴. 비록 형 만큼은 아니다 하더라도 이철 또한 아버지 밑에서 함께 일을 하며 기술을 배워나간다.

소설은 일제시대, 조선인이 일제치하에서 철도 공사를 위해 일제가 조선인들의 토지를 가차없이 몰수해가며 졸지에 터전을 잃어버린 실향민들의 아픔과 무작정 착출하며 강제 노동에 동원하는 노동의 현실을 가차없이 보여준다.

이 현실에 분개한 사회주의자들과 이백만의 둘째 아들 이철이 함께 하며 위에서부터가 아닌 아래서부터의 노동 운동을 꿈꾸지만 탄압과 해고 속에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왜 작가는 이진오의 고공농성으로 시작했을까 생각해본다. 그건 바로 일제강점기의 일제가 조선 노동자에게 가했던 탄압과 지금의 현실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설명하기 위함이였다. 이철의 노동 운동에 화내는 백만에게 이철은 소리친다.


아부지가 운이 좋긴 뭐가 좋아요?

아부지한테는 왜놈들이 상전이구 주인이잖아요?

제 말씀은요, 일본 놈이든 조선 놈이든, 그냥 목숨만 부지할 정도로

주는 대루 먹구 사는 종놈이 아니라,

일한 만큼 대우를 받으며 살자는 거예요.

그런 사회가 오면 나라도 독립이 되곘지요.


일한 만큼 대우를 받는 사회가 독립이 될 것이라는 이철이 지금의 모습을 보면 뭐라고 말하까?

100년의 세월이 지났고 독립도 되었지만 우리는 이철이 원하는 사회가 살고 있나? 일한 만큼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나? 이백만 집안의 종손 이진오가 굴뚝농성을 하며 복직투쟁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그는 이게 독립된 나라의 모습이라고 말할 것인가?

시간이 흘렀지만 노동자를 착취하고 탄압하는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고달픈 노동자들의 현실을 저자는 이 삼대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준다. 처음 고공농성을 시작했을 때 언론의 주목을 받고 큰 화제였지만 이제는 보편적인 투쟁이 되어버린 현실, 기약 없는 시간 때우기로 투쟁하는 이들이 스스로 지쳐 떨어지기를 원하는 사측, 자신의 일에만 관심있는 사람들... 이 현실이 일제치하시대의 모습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소설의 일부만을 소개한 것이기에 이철의 노동운동에서 멈추었다. 이들의 투쟁과 진오의 힘든 투쟁이 어떻게 이어질까. 진오는 이 힘든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이 가제본은 나의 마음에 궁금증을 불태워 기어이 예약구매를 하게 만든다. 집필만으로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이 역작이 과연 어떤 내용으로 끝마쳐질지 매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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