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없는 사랑에 대하여 - 더 이상 사랑에 휘둘리고 싶지 않은 여자들을 위한 자아성장의 심리학
비벌리 엔젤 지음, 김희정 옮김 / 생각속의집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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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기 전엔 남녀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여성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자신을 존중해 주지 않는 사람을 단호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걸까? 나 같으면 당장 헤어질텐데 왜 저런 대접을 받으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답답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난 후, 답답하게만 생각했던 그 문제가 내게도 보이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튀어나오는 문제 또한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쉽게 회복되지 않는 내 자신을 보며 위축되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과연 문제가 무엇인 걸까 고민하던 와중에 《자존감 없는 사랑에 대하여》를 만나게 되었다. 


《자존감 없는 사랑에 대하여》의 저자 비벌리 엔젤은 여성 문제와 인간관계 분야의 전문가이자 심리치료사이다. 저자는 자신이 만난 수백만 여성들의 고민과 경험을 바탕으로 남녀 관계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여성들이 어떻게 자존감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준다. 


저자는 먼저 남녀관계에서 자기를 상실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음을 강조한다. '자기를 상실하는 여성' . 남녀관계에 빠지면 우정에 소홀히 하고 남자의 생활패턴에 따라 자신의 일상을 조정하며 남성에게 종속되어 가기 쉬운 여성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자기를 상실하는 여성"의 정의를 명명할 때 누군가는 비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솔직하게 주위를 돌아 보면 새로운 인연이 생기면 당장 연락이 뜸해지는 지인들이 생기고 기꺼이 자신의 일정을 애인과의 만남을 위해 조정하거나 포기하는 여성들이 많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왜 여자들이 남자에 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들이 많을까. 저자는 그 원인을 생물학적 그리고 문화적인 요인에서 설명한다. 남성보다 더 뛰어난 감정 정보 처리 기능인 신경 다발 뇌량의 구조로 인해 감정이 풍부하고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더 발달했음을 설명해 준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요인은 차치한다해도 문화적인 요인에는 바로 순종을 강요하는 문화적인 요인이 훨씬 더 큼을 강조한다. 


오래전부터 여성은 불평등과 편견, 폭력의 희생자였다. 

이런 피해자 역할을 사회가 정당화하기도 한다. 

아들에게는 모욕을 당하면 맞서 싸우라고 가르치면서 딸에게는 참으라고 한다. 


많은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스스로 조심하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자랐다. 밤에 늦게 다니지 마라, 치마를 너무 짧게 입고 다니지 마라 등 남성을 도발시킬 수 있는 행위를 스스로 조심하라고 가르친다. 남성에게는 조심하라는 경고 대신 여성에게만 조심해야 하는 책임이 강하게 주어진다. 자신을 지키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여성들이 성인이 되어 자기를 상실해 가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교육 뿐만 아니라 많은 여자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동화 속의 백마 탄 왕자님을 그린 동화 또한 원인에 일조한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콩쥐팥쥐 등 수많은 동화책들이 왕자님이 고생에 찌든 주인공을 구해주는 기사 역할을 보며 사랑을 쉽게 미화하며 사랑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심어 준다는 분석 또한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분석 위에 저자는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단계별로 설명해준다. 먼저 저자는 자기를 상실해 가는 여성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남성과 연애하면 일상 생활을 희생하는 여성들, 남성에게 주도권을 넘긴채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저자가 만난 수많은 내담자들의 사례들은 계급의 구분 없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관계 속에서 자존감을 잃어가는지 보여준다. 심지어 유명한 페미니스트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조차도 남성의 의견에 자신을 상실한 이야기는 이 일들이 매우 광범위하게 많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경우를 대입시켜 보았다. 과연 나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자존감 있는 사랑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또한 내 자신을 지킨다고 말하지 못한다. 이 책에 나오는 자기 목소리를 상실한 케이스라고 말할 수 있다.


제가 무슨 얘기를 시작하기만 하면 남편은 한숨을 쉬고 눈동자를 굴리면서 '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데?' 라고 말해요. 

불평만 늘어놓는 여자 취급을 한다니까요. 정말 맥이 빠져요. 

이런 식으로 나오는데 혼자 애쎠봤자 무슨 소용 있겠어요?

나 또한 출산 후 힘든 신생아 육아를 시작할 때 남편에게 하소연하곤 했다. 

"나 힘들어." "정말 미칠 것 같아." 등 괴로운 나의 마음을 표현하며 공감 또는 위로를 구할 때 남편에게서 나오는 대화는 저자가 말한 사례와 동일했다. 


"모든 엄마가 다 힘든데 왜 너만 유난스럽게 굴어?" 

"또 시작이냐?" 

"정말 질린다."


그 냉담한 반응 속에 나는 지쳐갔고 더 이상 내 안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내 꿈도, 내 문제도 나 혼자만의 몫으로 삭여왔다.  목소리를 높여도 의미없는 싸움의 연장선이 되어버린 상황이 싫어 말을 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이런 현상을 '자기 목소리'를 상실한 케이스라고 분명하게 정의한다. 


저자는 남성이 비록 벽창호 같다 하더라도 끝까지 대화를 포기하지 말 것을 단호하게 주장한다. 심지어 성관계에서도 불만이나 요구사항이 있으면 상대방에게 명확한 표현을 하도록 권하며 그게 바로 평등한 관계로 가는 걸음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자신이 한 말에 대해 끝까지 고수하며 자신의 입장을 지킬 것을 말한다. 


시대는 변했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자존감을 잃는 사랑을 한다. 하지만 저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사랑 이전에 먼저 온전한 '나'가 성립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온전한 '나'와 온전한 '너'가 만날 때 비로소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다. 

"우리"보다 "나"가 먼저 바로 서야 한다. 


진정한 본래 모습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라.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지켜줄 것이다. 

그 결과 관계는 건강하게 꽃필 것이며, 건강하지 못한 관계라면 끝날 것이다. 

결과가 어떠하든 당신은 자기 자신이 돼 있을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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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도에서 넘어지며 인생을 배웠다 - 넘어져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법
캐런 리날디 지음, 박여진 옮김 / 갤리온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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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을 보았을 때 단순한 자기 계발서라고 생각했다. 저자가 서핑을 시작하며 그 일로 얻게 된 희열과 성취감을 찬미하는 글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 책은 서핑을 하면서 시작하면서 얻게 된 기쁨 또한 말하고 있지만 성취가 아닌 실패하는 법에 대해 말하는 책이였다.  즐겁게 실패하는 법, 어려움에 좀 더 의연하게 상황을 마주하는 법을 저자는 서핑의 경험을 통해 설명해 주는 책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못하는 것이 아닌 잘하는 것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자신의 강점에 집중하고 못하는 것은 과감히 포기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하퍼콜린스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 이론을 뒤집는다. 자신이 원하지만 못하는 활동을 통해 인생에 닥치는 불행을 이겨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파도에서 넘어지며 인생을 배웠다》의 저자이자 하퍼콜린스 편집장인 캐런 디날디는 서퍼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서핑을 결코 잘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서핑을 배운 지 5년만에 첫 파도를 탔고 파도를 잘 타지 못하고 서핑을 하다 응급실에 실려가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저자가 서핑하는 동영상을 온라인에 올린 후 지인이 저자에게 "정말 서핑 잘 못하네요."라고 말할만큼 저자는 서투른 서퍼이다. 하지만 왜 서핑을 계속하는가? 왜 5년 ,10년이 지나도 실력이 늘지 않는 서핑을 계속 하며 독자들에게 못하는 일을 하도록 독려하는가. 


저자는 서핑을 잘 하지 못하지만 그 자체로 즐기는 방법을 터득해간다. 소용이 아닌 하는 행위 자체로 기쁨을 즐기는 것. 그것이 바로 못하는 일을 해 나가는 데 얻는 기쁨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완벽주의, 생산성 있는 삶, 소용있는 삶 속에 매몰되기 쉽다. 우리는 심지어 취미 생활조차도 완벽을 추구하도록 생활해왔다. 하지만 우리가 못하는 일을 순수하게 즐길 때, 완벽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비로소 인생을 즐길 수 있다. 


저자는 때로는 상처입고 늘지 않는 서핑 실력에 화를 내지 않고 그 상황 그대로 받아들인다. 다가오는 파도를 향해 패들링을 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계속 해 나간다.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기보다 자신의 못함을 인정함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태연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은,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계획대로 되지 않거나, 갑자기 닥쳐온 불행 앞에서  우리는 좌절도 하고 때로는 분노한다. 하지만 이 못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힘은 이러한 상황에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해 주는 회복력을 제공해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성공한 화려한 이야기보다 실패한 경험을 더 많이 이야기한다. 노력한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유방암 진단을 받고 몇 차례의 수술을 하게 되는 등 저자의 인생에 여러 역경이 찾아온다. 

저자는 그 때마다 자신이 파도 앞에서 했던 습관을 되풀이한다. 못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했던 경험들은 그 역경의 순간에 힘이 되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결혼 전 배웠던 피아노 수업이 생각났다. 저자에게는 서핑이 못하지만 즐거운 일이였다면 나에게는 피아노가 그 대상이였다. 하지만 저자가 못하는 자신을 용서하고 순수하게 즐기던 반면 나는 잘 늘지 않는 실력에 화가 나서 몇 번이나 나를 자책하곤 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 피아노 선생님이 내게 해준 조언은 저자가 했던 충고와 같았다.


"즐기면서 하지 못하면,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그리고 현경 씨가 부모가 되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게 되요." 


못하는 자신을 인정하고 그냥 해 나가는 일이  시간 낭비처럼 보일 수 있다. 저자 또한 아버지로부터 "대체 무엇 때문에 계속하는 거니?"라는 핀잔까지 받기도 했다. 하지만 못하는 일을 계속 해 나가는 힘은 역경의 때에 보석같이 빛나는 경험이 되어 주었다. 이 책을 읽은 후 나 또한 그만두었던 피아노를 다시 배울지 아니면 못하는 운동을 하게 될까 고민하게 되었다. 아마 여러분도 이 책을 읽는다면 꼭 하고 싶었던 못하는 일을 궁리하게 될 것이다. 


인생은 알아내는 게 아니라 사는 거다. 

꾸준하게 그리고 못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우리는 편한 것을 찾지만 불편한 것과도 분명 마주치게 된다. 

못하는 일을 하면 그 불편함이 아름다운 무언가로 바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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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푸른 눈의 증인 - 폴 코트라이트 회고록
폴 코트라이트 지음, 최용주 옮김, 로빈 모이어 사진 / 한림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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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 항쟁의 푸른 눈의 증인을 생각할 때 우리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떠올린다. 

영화 <택시 운전사>의 실제 모델이자  세계에 전두환 정부의 만행을 폭로했던 위르겐 힌츠펜터씨는 모든 광주인들에게 잊히지 않는 사람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유일한 푸른 눈의 증인인 위르겐 힌츠펜터씨에 뒤이어 또 다른 푸른 눈의 증인들이 광주의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취재기자가 아닌,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 체류 중  자신이 보고 겪고 들었던 5.18의 아픔을 꼭 증언해달라던 광주시민들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또 한 명의 증인  폴 코트라이트니씨는 회고록을 출간했다. 


《5.18 푸른 눈의 증인》의 저자 폴 코트라이트니씨는 1980년 5.18 민주화항쟁 당시 나주의 나병환자시설인 호혜원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나병환자들을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받게 해 주는 일을 하는 저자는 두 명의 환자들의 안과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야만 했다. 한국말도 서툴어 의사 소통을 위해 늘 사전을 가방에 들고 다니는 저자는 병원행을 위해 광주를 경유해야만 했다. 


그에게 비친 광주의 풍경은 그가 알던 곳이 아니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20대 청년을 구타하며 짓밟는 군인의 만행, 그리고 우체국에서 갑자기 일어난 최루탄 폭격에 놀라 도망가는 그를 붙잡고 한 할머니는 부탁을 한다. 


우리는 여기를 알릴 방법이 없어. 

자네는 봤지? 

자네가 본 것을 다른 나라 사람에게 꼭 알려주게. 


이제까지 출간된 많은 5.18 민주화항쟁 책들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또는 문인들의 시선에서 쓰여진 책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관찰자, 특히 한국말에 서툰 외국인의 입장에서 쓰여진 회고록이라 다른 관련 서적에 비해 이 항쟁의 원인보다 객관적인 상황에 집중한다. '전두환', '김대중 석방' '독재 타도'등의 편파적인 단어 속에 저자는 자신이 본 이 끔찍한 현실과 정치적인 표현을 금하는 평화봉사단원의 입장 속에 갈등한다. 조직의 규칙을 준수하고 침묵을 지킬 것인지, 이 부당한 상황에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것인지 어렵기만 하다. 


《5.18 푸른 눈의 증인》의 저자는 초반 자신이 평화봉사단의 규칙을 어길까봐 갈등하는 만큼 이 항쟁에 한 발 멀찍이 떨어선 입장을 취한다. 저자의 입장만큼 초반에는 상황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치를 취하려는 태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악랄해져가는 군사정권의 만행 속에 더 이상 관찰자, 구경꾼이 될 수 없다고 결심한 저자는 구경꾼에서 증인이 되기를 자처하며 또다시 서울로 가기로 결심하는 위험한 모험을 감행한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나주 보건소에서 열심히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이 정권의 만행에 어이 없는 웃음을 지어보인 보건소 직원의 웃음을 오해한 저자의 울분에서 그의 감정의 변화는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웃음이 나오세요? 

나는 당신 나라 국민인 할머니와 어린이가 죽는 것을 봤어요. 

살해되는 것을요. 

군인들이 수백 명의 사람들을 죽였다고요!


비록 한국 내부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외국인의 시선에서 쓰여진 광주의 모습이지만 저자가 그리는 그 모습만으로도 이 5.18 민주항쟁의 아픔은 충분히 느껴진다. 때로는 건조한 듯한 말투에서, 때로는 공포와 격분에 찬 저자의 글에서 느껴지는 그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도 군사정권에서 가한 만행은 읽는 이를 분노케 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이 진실을 세계에 알려달라고 부탁한 할머니와 나주 보건소장의 요청을 40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밝힌 저자가 야속하기만 하다. 물론 저자에게 이 진실이 또 하나의 공포이고 트라우마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10년 전이라도 아니 20년 전이라도 더 먼저 진실을 밝혀 주었다면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 정당한 심판을 받을 수 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깊게 남는다. 


또 한 번의 5.18 기념일이 지났고 전두환은 다시 법정 위에 섰다. 

또 한 번의 광주시민들의 아픔이 되새김질되고 전두환은 다시 뻔뻔하게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5.18을 검색하면서 저자 포 코트라이트와  이 민주항쟁을 함께 한 외국인이 한국에 자신이 헬기 사격을 봤노라고 증언하겠노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저자부터 또 다른 푸른 눈의 증인들이 법의 온전한 심판을 요구하며 진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증인들의 목소리에 법원은 답해야 한다. 이 한국정치는 답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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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황가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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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때 한국은 일본 식민지로 위안부, 강제 징용, 마루타 등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어 왔다. 그리고 이 일본에 의해 유린되어온 수많은 피해자분들은 돌아가실 때까지 그들의 만행을 잊지 못한다. 잔혹한 만행으로 인한 후유증은 그분들 인생 마지막까지 괴롭혀왔고 그 후유증과 고통은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이다.

독일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유대인에게는 아마 가장 큰 후유증을 남긴 고통을 묻는다면 단연코 홀로코스터일 것이다. 그 지옥보다 더한 홀로코스터에서의 약몽은 아직도 생존자들을 괴롭게 한다.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는 이 홀로코스터가 유대인들에게 무슨 의미인지 진지하게 묻는 소설이다.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는 맨부커 수상 작가로 유명한 이스라엘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의 대표작이다. 보통 홀로코스터에 관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피해자 입장에서 쓰여진 소설이 많지만 저자는 관찰자 시선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아홉 살 모미크는 죽은 줄 알았던 안센 할아버지가 등장하며 부모님과 안센 할아버지 그리고 다른 어른들이 암묵 속에 말하지 않는 짐승에 대해 궁금증을 키워 나간다.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모미크의 부모님, 끝내 실종된 안센 할아버지 등을 피해자가 아닌 어린 모미크의 시선으로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1장이 어린 관찰자 모미크의 이야기였다면 2장은 나치에게 살해당한 작가 부르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2장은 상상과 현실이 함께 써내려지고 환상과 은유가 많아 읽어 나가는데 어려움이 많은 부분이다. 모미크가 '저 멀리' 이야기를 재창조시키며 인간이 최후까지 어떤 가해를 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그 후의 삶 또한 과연 영위될 수 있을 것인지를 진지하게 묻는다.

3장은 피해자 안센 할아버지와 가해자 나르겔의 시점이 매우 독특하다. 살기 위해 소장 나르겔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와중에 서로의 마음이 열리며 나르겔 또한 평범한 가장이며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 일을 할 수 밖에 없음을 알려주는 나르겔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과연 이게 불의인 것을 앎에도 가장의 역할을 위해 이 불의에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정의를 위해 가정의 안위보다는 정의를 따라야만 하는가. 과연 나르겔의 행위는 정당화할 수 있는가. 결국 전쟁 속에 선과 악이 불분명해지며 가해자 역시 하나의 피해자일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는 최근 내가 읽은 책 중 결코 읽어 나가기 쉽지 않은 책이였다.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과 환상과 은유가 사실과 혼재되어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질 때도 많았다. 하지만 피해자 시선이 아닌 관찰자의 시선으로 생존자 그 후의 이야기까지 바라볼 수 있는 모습이 한국의 현 모습과 겹쳐지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끝났음에도 계속 진행되는 생존자의 고통이 담담하게 그려져서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환상과 은유 이야기와 백과 사전 등 다양한 형식의 이야기로 이 방대한 이야기를 꾸려나간 다비드 그로스만은 이 소설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쳐보인다. 전쟁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고통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생각하게 하는 긴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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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에게 웅진 모두의 그림책 30
전이수 지음 / 웅진주니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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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을 하자면 전이수 작가를 잘 알지 못했다. 그가 SBS 프로그램 <영재발굴단>에서 출연했다는 사실도, 그리고 어린 나이에 이미 다섯 권의 책을 출간한 동화작가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나의 무지 속에 시작된 이 작은 그림책 《소중한 사람에게》는 마흔이 넘은 아줌마를 울리게 될 줄 전혀 알지 못했다. 



형제 중 첫째이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글을 자라는 저자의 작품은 집 제주도의 자연 그대로의 삶의 행복을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행복이 드러난다. 이수 군이 그린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한 기계문명이 없다. 기타, 의자, 목공, 축구, 철봉, 그네 등 집 안에서, 또는 바깥에서 즐기는 외부 활동 그 자체이다. 단순하지만 소박하고 탐내지 않으며 그 자체로 만족하는 그림 속에 아이의 순수함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현재 만족하는 이에게 불평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전이수 작가의 글과 그림에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덜도 말고 더도 말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듬뿍 드러난다. 하늘이 있어, 바람이 있어, 꽃이 있어, 소나기가 있어 행복함을 표현하며 그 존재 자체만으로 자신이 행복해야 할 이유를 찾는다. 그 행복 때문일까? 전이수 작가의 그림은 밝은 색깔의 그림들이 많다. 



어른으로서 가장 부끄러웠던 그림은 핸드폰의 영상을 쳐다보고 있는 아이 얼굴이였다. 기쁨도, 슬픔도, 어느 감정도 없이 멍하니 앞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아이의 눈망울을 외로워 보인다고 말한다.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두 아이들에게 핸드폰 또는 텔레비전을 보여주는 나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동안 우리 아이들 또한 이 그림 속의 아이들처럼 멍하니 화면만 보고 있었을까? 

우리 아이들도 저렇게 슬픈 눈망울을 하고 있었을까? 

내가 어쩔 수 없다고 정당화하는 동안 아이들도 이 그림처럼 외로워하고 있었을까? 

왜 나는 아이들의 눈을 바라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이 아이의 그림이 하루 종일 내 마음에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이수 작가의 동물 그림들은 자연에서 자란 어린이가 자신의 놀이터인 자연이 사람들의 무관심속에 훼손되어 가는 아픔이 드러난다. 모든 것이 그의 놀이터이자 소중한 공간이 이수 작가에게 쓰레기가 점점 쌓이는 제주도의 모습은 자신의 모습만큼 아파하며 제발 소중히 다뤄달라고 울부짖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어른들은 편의와 욕심을 위해 이 소중한 공간을 훼손할 권리가 있을까? 미래의 어른인 아이들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어느 노력도 하지 않으며 지금의 편리함만 생각하는 어른들의 이기심은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내 귀에 소리가 들린다. 

바다가 슬퍼서 울고 있다.

새들이 서러워 울고 있다. 

당신에겐 들리지 않나요. 



이수 작가의 글과 그림은 한없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어린 아이의 순수함 속에 바라보는 세계의 모습은 깊고 크다. 

작가가 보는 세상의 눈은 약자들을 향해 있다. 코로나 속에서도 위험한 바깥에서 폐지로 가득한 수레를 힘겹게 밀고 가는 할아버지, 노키즈존으로 점점 소외되어 가는 아이들, 스스로 소중한 자연을 훼손하는 어른들 속에 눈이 멀어가는 북극 곰과 자연들..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길 소망하며 어른들에게 호소하는 저자의 글을 보며 당연한 그들의 권리인 것을 왜 우리는 이 어린이가 부탁하게까지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에 할 말을 잃게 한다. 


균형을 이루며 모두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길 원하는 그의 글과 그림 속에 내가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또 다시 찾게된다. 비록 나 혼자는 힘이 약하지만 너희들이 자라갈 사회가 조금이나마 따뜻한 곳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다짐해본다. 이수 작가와 그녀의 세 동생들, 그리고 내 두 아이들 모두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온기를 더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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