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여자 -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을 위하여
줄리엔 반 룬 지음, 박종주 옮김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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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렵다. 그래서 철학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드물다. 작년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등 철학이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책이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하지만 이는 일상에서의 철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많은 철학자들이 남성이고 실생활과 멀다 보니 일상과 철학을 접목하기는 힘들다. 정말 여성을 위한 철학. 우리의 실생활과 접목할 만한 철학은 없을까? 호주의 작가이자 철학박사인 줄리엔 반 룬은 이 철학에서 소외되어 있는 여성들을 위한 "삶을 위한 생각" 생각하는 여자를 위한 대중철학 프로젝트로 현존하는 여성 사상가와 활동가들을 인터뷰하고 우리의 일상을 생각할 수 있는 《생각하는 여자》 책을 출간하였다. 


《생각하는 여자》는 저자 줄리엔 반 룬의 경험과 어울려 8명의 여성 활동가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영국으로 직접 가서 그들을 인터뷰한 책으로 여섯 가지 주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랑, 놀이, 일, 두려움, 경이, 우정등 모두 우리의 일상에 관한 주제이다. 



제1장 사랑의 부제는 내게 굉장히 도전적이였다. <어떤 사람으로, 어떤 사람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파트너와의 사이에 아이를 낳았으며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녀는 하지만 파트너와의 관계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지치는 일상사, 활력 없는 일상 속에서 그녀는 학장에게 호감을 갖는다. 


이 "사랑" 파트에서 저자가 만난 비평가이자 작가인 로라 키프니스는 가정, 결혼이라는 제도의 구속성을 강조한다. 결혼이 개인의 자유,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억제하며 파트너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도록 해 준다고 말한다. 


리는 모두 좋은 결혼은 노동을 필요로 한다.


불륜을 장려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과 결혼에 대해 '상식'이나 '관례'의 이름으로 처음부터 모든 변화의 억압을 차단해 버리는 결혼에 대해 이야기한다. 달리 보면 로라 키프니스의 주제는 논쟁의 소지가 많을 수 있다. 하지만 결혼, 가정이라는 이름으로 행복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의 경우 결혼이 파트너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도구로 억제된다는 주장이 매우 인상깊었다. 결혼을 하면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은 노동이 가게 된다. 부인으로, 엄마로, 며느리로, 좋은 딸로 여성에게 많은 역할을 할 것을 강요하며 현모양처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미화한다. 여성의 자유보다는 의무가 강조되는 이 결혼이라는 굴레, 특히 사실혼이 인정되지 않고 혼인신고라는 법적체제만 인정받을 수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어쩌면 여성에게 더 가한 조건일 수 있다. 


일에 대한 철학은 <경이>의 부분과 접목해 볼 수 있다.  <어떻게 스스로를 팔지 않고 일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부제 앞에서  미국 철학교수인 낸시 홈스트롬은 자본주의가 여성의 일에 대한 영향을 먼저 이야기한다. 자본주의로 여성이 교육 혜택을 받게 되었고 여성에게 사회로 나갈 수 있는 일자리를 주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부 학계에 낸시 홈스트롬은 강하게 반발한다.  여성이 이득을 본 부분이 있지만 혜택은 불균등했으며 여성은 출산 및 양육 역할로 인해 불합리할 수 밖에 없음을 말한다. 여성이기에 더욱 '불안정한' 상황에 내몰리며 자신을 더 많이 소모해야 하는 여성의 역할에 대해 강조한다. 


슬프게도 '불안정한'은 여성과 노동에 대해 지금 필요한 모든 해설에서 여전히 중요한 용어다. 

<생각하는 여자> 135p 


<경이>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품이 왜 어린 소녀 앨리스로 설정되었는지 이야기한다. 호기심 많고 배우고 싶어하는 어린 소녀를 긍정적인 의미가 아닌 조롱하는 의미로 설정되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배움과 호기심이 억제당하고 침묵과 순종을 미덕으로 삼길 종용하던 성 바울의 가르침의 경험등이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남성의 역할은 동,서양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여성을 향한 억압은 동,서양 서로 차이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발언권이 강화되고 조금씩 나아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나아갈 길이 필요하며 우리에게 가해진 제약을 결코 어쩔 수 없다고 여기지 말길 강조하는 글 속에서 나는 최근 남편과의 다툼이 떠올랐다. 


글쓰기 수업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수업에 참가할 것을 원하는 내게 남편의 첫 마디는 


"요리를 배우는 것도 아니고 쓸모없는 글쓰기냐? 그럴 바에 집안 반찬을 하나 더 할 생각을 해라!" 


가정을 위한 배움보다 내 자신을 위한 배움에 관심을 가지는 나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고 나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몰아세웠다. 어쩌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호기심 많은 소녀를 조롱하는 것처럼 나 또한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 배우면 안 된다고 종용받았다. 시어머니, 친정 엄마 모두 이제 공부 그만하고 애들을 위한 기도를 하도록, 애들 육아에 신경쓸 것을 조언하셨다. 아직도 이 여성에 대한 배움이, 특히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위해 포기할 것을 강조받아서인지 이 <남성중심사회는 여성의 배움을 어떻게 여성의 배움을 억압했는가>라는 주제는 내게 많은 공감이 되었다. 


《생각하는 여자》는 실존하는 여성 활동가들의 철학이 있어 더욱 현실 밀접성을 갖는다. 물론 이 책이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과 두려움, 놀이, 우정 등 여성의 생활에 가장 큰 뼈대를 일으키는 생활을 주제로 한 여러 사유들은 여성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철학을 세워 갈 것을 권한다. 이제 우리는 일상에 더 많이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자. 그리고 우리들을 위한 또 하나의 철학을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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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 14년 차 방송작가의 좌충우돌 생존기
김선영 지음 / 유노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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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지금도 힘들지만) 회사 일로 힘들 때,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길을 나서면서 내 마음 속에 들었던 생각은 "교통사고라도 나면 좋겠다"였다. 이 모든 부담에서 자유롭길,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무탈한 하루를 감사해야건만 나는 무탈한 하루를 원망하곤 했다.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라는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내게 다가온 이미지는 바로 그 때의 내 마음이였다. 물론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 제목이 나의 상황과 다른 상황임을 알았지만...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의 저자는 14년의 방송 작가로 활동하며 겪어나갔던 일들에 관한 에세이다. 글 쓰는 일을 하고싶어 아카데미 학원에 다니고 교양 방송작가로 일을 시작했지만 끊임없는 야근과 아이템 취재 및 방송 후 물밑들이 다가오는 안도감등을 저자는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우리는 흔히 방송작가라 하면 김은희, 김은숙 등 히트 드라마를 써내는 권위있는 작가들을 생각하기 쉽다. 저자가 이 책에서 그려내는 방송작가는 외주제작사에서 쥐꼬리같은 월급 80만원으로 시작해 온갖 뒤치닥거리를 해내며 인터뷰이를 따내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쉬지 않고 날마다 치열해가는 시청률에 몸살을 앓으며 자신이 담당하는 프로그램이 조기종영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방송작가를 이야기한다. 건강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정작 자신의 몸이 병들고 있는 에피소드 등 우리가 일을 위해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자신이 열심을 다해 기획하고 취재했건만 갑인 방송국에 의해 편집되어지고 열심히 노력해도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 세상, 어렸을 때는 이 부조리에 발끈하지만 이제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저자의 모습은 현재 나의 위치를 보게한다. 한 때 나도 풋풋한 청춘이였을때 세상을 바꿀 수 있을거라 장담했지만 세상과 타협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들을 위해 비굴해지기도 하는 나 역시 이제 나이가 먹은 것일까?

저자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였다. 저자에게는 방송사가 갑이였듯이,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자신만의 갑이 있다. 아무리 온몸을 다해 일을 해도 프로그램이 종영하면 그 순간 바로 일을 잃어버리는 방송작가처럼 모든 직장인들 또한 문자로 해고통지를 받을 수 있는 바람 앞의 등불신세이다. 이 불안함 속에 하루를 버텨가는 노동자들에게 비록 힘들지만 힘내자고 하는 위로의 글이였다.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를 읽으면서 저자가 PD 또는 메인작가, 또는 일을 통해 만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 속에 내 과거부터 지금까지 나의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저자와 만난 사람들에 맞아 ,맞아 맞장구 치기도 하고 나도 한 때 이런 때가 있었지라며 신입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지금의 나보다는 한참 일을 배우고 힘들어하는 신입 직원들에게 이 책이 더 많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에게 비록 지금이 힘들지만 결국 다 지나게 될 것이라 말하며 오늘 하루도 힘내라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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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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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이후로 여자, 엄마의 존재는 많이 부각되었지만 할머니의 존재는 여전히 관심 밖에 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끝까지 자식 손녀들의 뒷바라지 역할을 하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할머니들이 늘어나지만 우리는 그분들의 희생을 어쩔 수 없다며 당연시한다. 뒤에서 쓸쓸해하는 그들의 모습까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나의 할머니에게》는 한국 문학계의 젊은 작가들이 여러 할머니의 모습에 대해 쓴 단편소설집이다. 부제 제목 그대로 이제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할머니'를 내세운 첫 소설집이다. 그리고 이 여섯 편의 작가들 모두 여성들이라는 점도 매우 인상깊다. 이 소설 속에는 6명의 할머니들이 나온다. 재혼하여 전처의 자식을 키웠지만 자식을 위해 집을 팔지 않는다며 매정해하게 여긴다는 오해를 받는 할머니, 어린 시절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엄마 역할을 해 주며 프랑스에서 쓸쓸해하던 할머니, 치매에 걸려 손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 부자 할머니를 두었던 손녀, 템플 스테이를 하는 모습까지 각각 그 모습들이 여러 모습으로 그려진다.

윤성희 작가의 <어제 꾼 꿈>에서는 자식들이 자신을 매정한 할머니라고 내세우는 모습이 전개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당연히 작은 집으로 이사해 남은 돈을 줄 것을 요구해하는 자식들. 그 자녀들의 모습 속에 끝까지 퍼 주기를 바라는 자녀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소설에서 자녀들이 전처의 자식들이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도 결코 다르지 않음을 알기에 씁쓸해진다. 그럼에도 동시를 외우며 꿋꿋이 살아가는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가 후에 되고 싶은 할머니의 모습이 아닐까.

여섯 편의 단편 중에서 가장 쓸쓸하면서 여운이 남는 작품은 단연 백수린 작가의 <흑설탕 캔디>였다. 죽은 며느리를 대신해 손주들 뒷바라지를 해주고 파리까지 가서 손주들을 보살피지만 한 마디도 못하는 불어로 인해 쓸쓸해 하는 할머니의 모습. 그 모습에서 나는 가끔씩 부모님이 서울로 오실 때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후 쓸쓸해 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발견했다. 직장으로, 어린이집으로 가는 한바탕 소동이 끝난 후, 정적이 흐르는 집에서 홀로 집을 지키는 부모님의 모습. 솔직히 바쁘다는 이유로 그분들의 외로움까지 헤아리지 못했다. 이 소설이 단지 할머니의 외로움을 부각시켰다면 마음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프랑스 타지에서 만난 낯선 할아버지와의 로맨스를 대입시키며 할머니에게도 할머니대의 삶과 사랑 그리고 추억이 있음을 감동 깊게 이야기한다.

요양원으로 보내지는 노년의 현실, 죽음에 대한 노년의 모습, 외로움, 자신의 삶을 고집한다는 이유로 이기적이라며 내몰리는 할머니의 모습 등은 현실 그대로의 노년 모습을 보여 주지만 결코 수동적이 아닌 끝까지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민자와 세대 문제를 통해 씁쓸한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손원평 작가의 <아리아드네 정원> 또한 강한 여운을 남겨 주는 등 여섯 편의 소설 모두가 반짝 반짝 빛이 난다.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고 이제는 할머니,할아버지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부모님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노년에 과연 어떤 할머니가 되어 있을까 상상해보며 빠르게 다가오는 나의 노년 생활이 과연 어떻게 다가올지 많은 생각을 하며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소외된 존재들이 이렇게 하나씩 세상의 전면에 부각되고 더 많이 말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책이 바로 그 첫 시발점이 된 것 같아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의 할머니에게》 바로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미래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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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요스트 더프리스 지음, 금경숙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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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소재로 한 소설 및 영화 작품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때로는 히틀러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기도 하고 다른 작품 같은 경우는 히틀러의 만행을 철저하게 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히틀러를 연구하는 학자에 관한 이야기라면? 접하기 힘든 분야의 사람들이고 그 학문 조차도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과연 그 학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능할까? 


소설 《공화국》으로 황금부엉상을 수상 작가 요스트 더프리스는 이 작품에서 히틀러를 연구하는 학회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의 찬란한 지식으로 우리에게 소개한다. 


책 표지 앞면, "자네는 나를 이을 후계자인가? 나를 지울 혁명가인가?"라는 부제는 이 책의 이야기 방향을 소개한다. 히틀러 학문의 권위자인 브리크 교수의 소개로 히틀러에 관한 잡지 <몽유병자>의 편집장 프리소는 소설 초반부터 자신과 브리크와의 친분을 강조한다. 네덜란드인인 자신이 미국으로 오게 된 계기가 브리크의 추천이였으며 <몽유병자> 또한 브리크의 강력 추천이 있었기에 일할 수 있었고 따라 브리크의 책을 편집한 사람도 자신이다라고 자부한다. 브리크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브리크가 칠레에 있는 동명의 히틀러를 만나 볼 것을 권해 칠레에 간 프리소는 뜻하지 않은 감염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병상에서 브리크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된다. 투병 중 장례식과 추모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던 프리소는 귀국 후 브리크의 사망 소식에 관한 기사를 읽던 중 대부분의 기사들이 브리크를 잇는 후계자로 자신이 아닌 처음 접하는 필립 더프리스를 지목하게 됨에 분개한다. 흥분한 프리소는 연인 피파에게 대체 필립이 무슨 말을 했기에 모두 그를 후계자로 지목하느냐며 열변을 토하면서 필립에 대한 질투심에 불타오른다. 


《공화국》은 후계자 자리를 되찾아오려는 프리소가  빈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가하게 되며 사람들이 자신을 필립 더프리스로 오해하고 프리소 또한 필립 행세를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벌이는 복수가 일파만파로 퍼지는 사태에 관해 이야기한다. 간혹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자신을 필립이라고 강조하는 프리소의 모습과 자신에 대해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필립이라고 받아들이는 학회 사람들, 기자, 이스라엘 첩보부, 과격 단체등들이 그를 방문하면서 프리소는 그들과 히틀러에 대한 변론을 펼친다. 


이 히틀러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히틀러 본인이 아닌 학자들의 입에서 이토록 풍성하게 알 수 있는 작품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작가는 다양한 히틀러의 이야기를 풀어준다. 단편적으로만 알던 지식이 아닌 프리소의 입에서 나오는 히틀러의 이야기를 통해 단지 광적인 독재자 히틀러가 아닌 여러 모습으로 보게 된 다는 점은 아이러니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저자가 자신의 성 더프리스를 작품에 똑같이 이용한 부분은 저자의 재치를 엿보게 한다.


다만 아쉬운 건 이 분야가 우리에겐 생소한 부분이고 저자의 해박한 지식의 향연이라 할 만큼 굉장히 많은 주석들로 가득차있어 가독성이 떨어진다. 모르는 부분이 많다 보니 주석을 보기 위해 읽는 내내 주석을 살펴보느라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재독을 한다면 이러한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그래서 내게 이 책은 또 다른 도전을 안겨준다. 다시 한 번 읽어서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고 말겠다는 도전 욕구를 불태운다. 


브리크를 잇는 후계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벌이는 복수극이였지만 전개될수록 그 흐름과 역행하기도 하면서 과연 후계자인지 또는 혁명가인지 종잡을 수 없는 이 프리소의 이야기 속에 마약처럼 단숨에 몰입하는 가독성은 없지만 서서히 스며들게 하는 저자의 재치와 풍자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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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수업 - 나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9가지 질문
김헌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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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선생님께 질문했던 경험이 많지 않다. 그냥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할 뿐이었다. 성인이 된 후,내가 진지하게 묻기 시작한 건 결혼하고 엄마가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기혼녀, 엄마라는 이름으로 정해진 굴레를 알면서부터 나는 진지하게 이게 맞는 것일까라는 질문 앞에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대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아마 질문의 경험이 많지 않는 내게 답을 찾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천년의 수업》의 저자 김헌 교수는 '차이나는 클라스'의 명강의로 일반인인 우리에게 익숙한 저자이다. 서울대 도서관 대출순위를 바꿀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저자의 강의는 이 《천년의 수업》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독자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고 있는지 묻는다.

상황에 순응하며 끌려가는 삶인지, 끊임없이 질문하여 정답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물으며 저자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면서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묻는 이 아홉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에서 찾는다면 아마 의아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단편적으로 알고 있지만 그 표면적인 이야기의 이해에 그치며 재미있는 옛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저자의 질문은 매우 심오하며 진지하다. 이 질문들에 대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천년의 수업》에서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아울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화 속 수많은 인물들에게서 지금의 우리와 대입시켜 질문을 하며 답을 찾아간다. 저자가 신화를 읽으면서 신화가 단지 한 두 명의 신과 영웅들에 의해서 지어진 것이 아님을, 그 뒤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이 거대한 이야기로 발전할 수 있었음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삶 중 소중하지 않은 것임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 예가 바로 로마공화정이 수립될 수 있었던 이야기다.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하지만 그에 동의하고 공감한 한 명 두 명의 시민들이 모여 로마 왕정을 무너 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한 계기를 예로 들며 저자는 결코 자신의 영향력을 무시하지 말도록 조언해준다.


그리스 로마 신화로부터 많은 예를 들지만 이 책의 강의는 주로 저자의 깊은 혜안과 경험에서 우려나온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교육자로서 프랑스 유학 시절 느낀 프랑스와 한국의 교육에 대한 단상과 죽음이 있는 유한한 삶과 영원한 무명의 삶 중 어떤 삶을 택할 것인지 묻는 저자의 강의 등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학창 시절 선생님이 수업 시간 후 들려주시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다. 또한 인문학이 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상류층에 집중되어 있고 나와 같은 일반인들은 오히려 먹고 살기에 바빠 인문학을 접할 기회가 없는 현실에 대한 저자의 고민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


저자는 "답은 틀릴 수 있지만 질문은 틀리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왜 저자는 질문의 중요성을 이토록 강조했을까? 아마 질문을 하는 삶과 하지 않는 삶의 극명한 차이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역사는 이게 옳은 것인가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답을 내리며 행동으로 옮긴 이들로 이루어져왔다. 질문이 있을 때 답을 찾기 위해 변화를 시도해온다. 그리고 저자는 이 답을 그리스 로마 신화로부터 찾아왔고 우리에게 그 여정에 함께 할 것을 제안한다. 아마 이 책을 읽노라면 어느 새 그리스 로마 신화를 검색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을 읽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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