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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린생활자
배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7월
평점 :

<안녕, 뜨겁게>의 저자 배지영 작가가 이 헬조선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아픈 소시민들의 모습을 가득 품은 작품으로 돌아왔다.
배지영 작가의 소설집 「근린생활자」는 여섯 편의 단편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제작 「근린생활자」를 포함한 여섯 편의 단편의 인물들은 일명 이 세상의 흙수저들이다.
아둥바둥 살아보려고 아껴쓰고 회사의 지시에 충성하고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소박한 인생들이다.
상가용으로 건축된 근린시설이지만 내 집 마련이라는 소박한 소망 하나로 대출 받아 집을 장만한 상욱도,
은퇴 후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북쪽 땅에 투자한 할아버지 순병도, 기숙사에 머물며 야근을 밥먹듯이 하던 그와 그 농사짓고 살아가던 동생 내외도... 이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모든 이들의 꿈은 소박하다.
내 집 장만, 노후 장만, 은퇴 후 동생 내외와 함께 사는 것, 시급900원 인상 등등..
욕심내지 않았다. 그저 하루를 충실히 살 뿐이였다.
하지만 있는 자들의 음모와 방해, 그리고 언론의 불공정 보도 등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아둥바둥 아끼고 고생해도 서울에서 내 집 장만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만큼 불가능한 현실임을 들으려 하지 않고 오로지 법을 어겼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인 법의 보복만이 가해진다. 코너에 내몰린 그들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는 이 사회는 약자의 하소연은 통하지 않는다.
동생 내외의 죽음을 밝혀달라는 하소연도 있는 자들에 의해 비웃음을 당하고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자본주의 하에 인간의 모습을 저자는 소설을 통해 보여준다.
여섯 편의 소설 중 「삿갓조개」는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를 모티브로 한 만큼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 몰락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발전소에서 도수관 청소를 위해 숨막히는 공기를 참아가며 삿갓조개를 캐지만 무상으로 제공되는 산소통마저 자가 구매해야 한다는 상부의 불합리한 처사에 맞서 시급 900원을 올려달라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상부와 언론은 불법으로만 매도해 버린다. 그들이 왜 도수관에 갇혀 있어야만 했는지, 시급 900원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 어느 누구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저당잡히며 아둥바둥 일하지만 돌아오는 건 어느 새 무너져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단지 적은 월급을 주고 시킬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관리인들의 월급을 함부로 깎고 일자리를 자르고
또 뽑으면 그만이라 여기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진압대는 망설임 없이 최루탄을 터트리기로 했다.
산소가 희박한 도수관 안에서 최루탄을 터트렸다간
누군가 죽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비용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세월호 희생자, 근린생활자, 청소기 판촉사원, 태극기 부대 할아버지 등등..
이 모든 사람들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사람들이었다.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고 법적인 안전망이 없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만 하고 재계약을 하기 위해 처절하게 버텨야만 하는 인생들...
이 사회는 무자비한 자본주의하에 수많은 인생을 인생의 비정규직으로 내몰았다.
소설 속 인물들 뿐만 아닌 바로 현실에 살아가는 나와 너 조차도 인생의 비정규직으로 전락해버렸음을 이야기해준다. 비정규직 인생들에게는 그저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몸부림만이 있을 뿐이다.
현실의 무게를 그려낸 배지영의 소설집 「근린생활자」를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소설이라기엔 바로 나와 이웃의 이야기였기에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 세상의 비정규직들을 위로할 수 있는 건 바로 같은 비정규직인 우리들임을 저자는 또한 말해준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자고, 손 내밀어주자고 말해준다.
마지막 단편 <청소기의 혁명>에서 판촉사원인 길 씨가 세월호 학생의 어머니를 쫓아가 위로해 주었던 것처럼..
그렇게 서로 손 내밀어 줄 때 우리는 작가의 좀 더 밝아진 사회를 그린 작품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