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왔구나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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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까지 부모의 도움은 내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부모님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고 내가 도움이 필요해 SOS를 요청하면 언제나 Yes맨으로 우리 곁에 올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결혼 후 친정 엄마의 병진단 및 어머님의 입원, 아빠의 눈에 띄는 흰머리들을 볼 때면 어느새 내 마음에 묵직한 돌멩이가 내 가슴에 안기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결국 왔구나#카모메식당 [카모메 식당]의 작가 무레 요코#무레요코의 여덟 편의 #대공감 단편소설집이다. 이 여덟 편의 단편들은 부모 또는 친척의 치매와 노환으로 병든 부모들을 돌보면서 살아가는 자식들의 일상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아버지의 임종 후 마음에 맞는 남자를 만나 자식 곁을 훌쩍 떠난 후 치매에 걸려 다시 돌아온 어머니, 전직 교사이자 정정하셨던 시아버님께 들이닥친 치매, 남편과의 이별 후 아들과 자신의 다리 역할을 하던 엄마의 치매 등 주인공들의 잔잔한 일상에 들이닥친 부모의 병환에 인물들은 각각 여러가지 모습을 보인다. 당혹스러움, 현실 부정, 좌절, 갈등,불안 등.. 치료책도 없이 더 악화되기만 할 뿐인 이 질환에 누가 과연 태연할 수 있을까?



<아버님, 뭐 찾으세요?>의 마리의 남편이 자기 친아버님인데도 불구하고 자꾸 현실을 부정하려고 하며 책임을 아내 마리에게 떠 넘기고 <아버지, 왜 왔다갔다해요?>의 아키와 나쓰키 자매가 아버지의 병원행을 차일피일 미루며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들이 답답하고 화가 나기 보다는 공감이 갈 수 밖에 없는 건 이 막막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침착한 사람일지라도 이 상황에서까지 침착하게 대응하기는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여덟 편의 단편 중 가장 공감이 된 이야기는 <형, 뭐가 잘났는데?>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큰형님이 갑자기 동생들을 불러 모으며 어머님을 돌보지 못하겠다고 선언하며 벌어지는 형제들의 이야기다 큰형님 덕분에 각자 모두 자신들의 평범한 일상을 지킬 수 있었지만 갑작스런 형님의 선언은 그들에게 폭탄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서로 어머님 모시기를 거부하며 이유를 대는 형제들의 모습을 보며 과연 나는 모실 수 있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어머님도 중요하지만 애들을 우선으로 하고 싶다는 하소연도, 자식이 없어도 서로의 직장 생활을 해야 하기에 어렵다는 유키와 남편의 하소연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섭섭할 수 있지만 자신들의 일상을 지키고 싶은 그들을 나는 비난 할 수 없었다. 친부모님을 둔 딸의 입장에서, 또는 며느리의 입장에서, 두 아이의 엄마의 입장에서 나는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었을까?




등장인물들 중 마리의 남편이나 아키와 나쓰키 자매처럼 쉽게 인정하지 않는 모습도 있지만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하나씩 현실을 인정해가며 방안을 찾아 나간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개호 인정 접수를 하고 케어매니저 서비스를 신청하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 간다. 부모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조절해 가며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자식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정부의 공익 광고인 [치매, 국가 책임제]의 한 카피 문구가 떠 올랐다.



"나는 엄마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도움을 받기만 하던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의 부모가 되어야 하는 이 현실 속에 인물들은 인생이 결코 자신의 뜻대로만 되어가지 않는 것을 체감하고 부모님의 증세가 심해져도 그들은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 현실이 버겁고 힘들지만 삶은 계속되고 살아가야 한다. 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결국 오고야 마는 부모의 노년.

그 현실 속에서 과연 나는 어떤 자세를 보이게 될까 많은 질문을 하며 읽을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닥치는 이 현실 속에 담담하게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그래도 삶은 이어짐을 생각하며 공감을 받는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떤 결과든 그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시아버지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니까.

<아버님, 뭐 찾으세요? 중 53p>



사치는 엄마의 말에 맞장구치면서, 인생이란 자신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절실하게 느꼈다.

<엄마, 돌아왔어? 중 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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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관하여 - 비로소 가능한 그 모든 시작들
정여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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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란 이런 것이구나. '내려가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에 괴롭다가도, 뭔가를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기.

어쩌면 예전보다도 훨씬 더 지혜롭고 활기차게,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중년이다.

(24p. 설레고 기특하며 눈부신 시간)

올해 마흔의 문턱에 들어서며 유난히 나이에 민감해지고 한없는 우울감이 파도처럼 나를 집어삼켰다.

2-30대의 청년층에서 중년이라는 옷을 새롭게 입기 시작하며 왠지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듯한 어색함에 스스로 위축되곤 했다. 비 온 후의 나뭇잎의 색상이 더욱 또렷이 보이는 것처럼 마흔의 길에 들어서면서 내 자신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게 생생하게 실감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내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이 마흔이라는 나이는 누군가 나에게 내 나이를 물어보면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조심스레 내 나이를 말하곤 했다.

이런 내 마음이 나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것일까. 전에는 삼포, 오포,칠포 시대를 일컫는 2030 세대에 관한 책이 출간 열풍이 한참이더니 이제 마흔을 이야기하는 책들을 많이 보게 된다. 최근 내가 읽은 기시미이치로의 《마흔에게》부터 시작으로 《마흔, 공부법 》 등... 그 중 나와 같이 마흔의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며 마흔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쓴 정여울 작가 의 마흔에관하여 는 작가가 마흔의 길에 새롭게 발견한 인생의 진리들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흔히 마흔을 위기의 세대라고 불린다. 청년층도 아닌 노년층도 아닌 그 중간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는 세대. 또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며 자조적인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곤 한다.

하지만 작가는 왜 마흔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시기라고 말할까? 어떠한 것을 새롭게 배울 만한 최적의 시기라고 말할까? 이 새로운 마흔에 대한 정의는 작가의 글만이 아니다. 기시미 이치로 또한 《마흔에게》에서 나이든다는 것은 배움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준다고 하였다.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2-30대의 배움은 매우 한정적일 때가 많다. 영어,일본어,컴퓨터 등 온갖 자격증 및 취업을 하기 위한 방편의 공부에 집중하기 쉽다. 그런 목적이 있는 공부는 우리에게 배움의 기쁨을 앗아가기 쉽다. 반면 중년이 시작되는 시기는 자격증 보다는 자신을 위한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피아노, 기타, 마라톤, 글쓰기 등 나만을 위한 공부를 아무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해 준다.

회사의 동료 중 나와 같이 마흔의 길을 넘어선 동료, 또는 상사들의 배움을 보면 골프 또는 외국어 공부하는 행위에 전혀 부담감 없이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 아닐까.

'불편함'보다는 '옳지 않음'이 더 무서운 것이다. 그 정도의 어색함은 견딜 수 있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강해지고 대담해졌기에. 나를 싫어해도 괜찮다. 진심으로, 개의치 않는다.

남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얻지 못하는 것이 훨씬 무서운 일임을 뼈저리게 실감하기 때문이다.

(56p. 피스메이커를 졸업하며)

마흔, 진정한 나 자신으로 설 수 있는 시간이라고 작가는 정의한다. 마음이 불편해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 참고 피스메이커로 살아가며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둥,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둥 핑계를 대며 나 자신의 의견도 말하기 조심스럽던 2-30대를 지나 마흔이야말로 나의 목소리를 내 가며 진정한 나의 목소리를 찾아갈 수 있는 나이라고 말한다. 2-30대는 자신의 부족함과 컴플렉스 모두를 바꾸기에 바빴다. 나 자신의 입장보다는 다른 사람의 기준에 나를 맞추기 바빴다. 하지만 40대가 들어가면 내 모난 부분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리고 2-30대에 내 의견을 강하게 주장했다면 예의 없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 쉽지만 40대에 들어서면 나의 말과 행동에 무게감이 실린다.

젊으면 어린 것이 버릇없다고 할 수도 있고 노년층이라면 꼰대라거나 고집이 세다고 할 수 있지만 40대는 그야말로 중간에 서서 그 모두를 아우르고 이해할 수 있는 더 깊어진 내 자신이 될 수 있다.

그 무게감을 알기에 자신이 하나의 디딤돌이 되어 남성의 편견에 맞서 싸우는 작가도 그 마흔의 무게를 알고 있기 떄문일 것이다.

마흔의 문턱을 넘어서며,재빨리 요약하고 번개처럼 핵심을 파악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는 일을 멈추었다.

그런 '얼리 어답터'스러운 삶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느림보로 살더라도 대상의 섬세한 디테일을 하나하나 쓰다듬고 관찰하는 삶을 사랑한다.

(166p. 이제는 조금 느리게 걸어도 괜찮아)

작가와 나 모두 마흔의 문턱을 넘어섰지만 작가가 느낀 마흔의 깨달음이 모두 공감이 가는 것은 아니다.

미혼이며 예술가로서의 길을 걸어가는 작가와 두 아이의 엄마이자 회사와 육아 워킹맘의 삶을 살아가며 가까운 근교로의 여행도 버거운 나와의 마흔이 똑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서로는 자신이 결코 얻어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눈물 흘리는 것도 그리고 우리가 2-30대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깨달아가는 과정은 동일할 것이다. 정상을 바라보고 살았던 2-30대의 삶을 지나 이제는 어떻게 조심히 산을 내려올 수 있는지 그리고 그동안 어깨에 잔뜩 힘을 주었던 힘을 빼고 하루 하루의 소중함을 더없이 실감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건 2-30대의 나이가 결코 줄 수 없는 것이니까.

인생을 하나의 축제라고 말하며 축제를 준비하는 자가 아닌 즐기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삶.

진정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도전과 삶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삶.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작가는 매월 「월간 정여울」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책을 출간하고 '감성을 깨우는 글쓰기' 팟캐스트 방송도 진행하며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실패보다는 도전하지 않는 삶을 두려워 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더욱 충실할 수 있는 마흔.

작가의 마흔이 부럽다. 작가의 마흔을 바라보며 나의 마흔 또한 새롭게 정의하고 싶다.

"매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나이",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나이"

마흔의 문턱에 서서 나의 버킷리스트를 써내려가며 새롭게 꿈꾸며 도전하는 나의 마흔을 응원하고 싶다.

실패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내가 꿈꾸는 더 나은 나, 내가 살아가고 싶은 더 아름다운 세상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225p '욕망의 대체제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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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앱솔루트 달링
가브리엘 탤런트 지음, 김효정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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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앱솔루트 달링] My absolute darling. 나의 전부, 나의 전부인 내 사랑. 매우 사랑스러운 사람을 지칭할 때 부르는 호칭이다. 애정과 사랑이 듬뿍 담긴.. [마이 앱솔루트 달링]의 주인공인 터틀, 본명 줄리아 또한 아버지에게 마이 앱솔루트 달링, 나의 전부, 내 사랑이라는 말을 매번 듣는다. 넌 내 것이야, 난 너 밖에 없어, 아빤 널 사랑해..

주인공 터틀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없이 아버지와 단 둘이 산 속 깊은 곳에 은둔하다시피 살고 있다. 매번 사격연습을 시키는 아버지의 밑에서 학대와 성폭력 속에서 길들여진 터틀은 마치 코끼리를 연상케 한다.

서커스단에서는 아기 코끼리의 발을 묶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사육한다. 그 구속에서 코끼리는 처음에는 저항하지만 끝내는 그 구속에 굴복하여 몸집도 커지고 힘도 세지지만 자신의 힘을 눈치채지 못한다. 아기 코끼리의 나약한 모습으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한 나약한 모습에 길들여진 코끼리. 바로 주인공 터틀이자 줄리아이다.

개밥, 형편 없는 것, 못난이 등으로 불리며 줄리아를 폭행하는 아버지의 만행에 길들여진 줄리아는 수시로 되새김질한다. 아빠는 나를 사랑해. 아빠는 엄마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해서 그러는 거야. 아빠가 아니면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없어... 선생님과 주변의 도움을 내미는 손길도 줄리아는 잡지 못한다. 그렇게 줄리아는 아빠의 폭력과 성폭행에 아빠를 거부할 용기조차 내지 못한다.

자신 안의 울타리에서 지내던 줄리아가 우연히 길을 잃은 브레트와 제이콥을 만나게 되며 줄리아는 전혀 다른 관계를 인지하게 된다. 친구라는 것을 알아가고 자신을 걱정해 주며 돌보아 주는 관계를 통해 줄리아는 아빠의 사랑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아빠가 몰래 데려온 9살 소녀 카이엔을 보며 자신에게 지킬 대상을 찾게 되며 아빠와 맞서게 된다.

마이 앱솔루트 달링, 사랑스러운 호칭이지만 줄리아에겐 줄리아를 구속하고 떠나지 못하게 하는 밧줄과 같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폭행하며 자신의 울타리에만 가두는 아빠의 방식은 줄리아가 주위에서 전혀 다른 사랑의 방식을 마주쳤을 때 줄리아는 서서히 깨어나게 되는 과정을 저자는 섬뜩하게 그려낸다.

한 소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맞서는 과정은 매우 담대하면서도 긴박감있게 그려낸다.

폭행에 무기력한 한 소녀가 지켜야 할 대상을 만나면서 달라져가는 모습은 총기가 용납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현실이다. 아버지와 딸이 총을 들고 한 집에서 서로를 향해 겨누는 모습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듯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줄리아가 당하는 폭행들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때론 읽고 있기가 힘들 때도 있지만 줄리아가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어느새 줄리아의 모습을 응원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긴박감 넘치는 과정 속에 그려지는 이 장편소설은 결코 끝까지 손을 놓치 못하게 할 만큼 가독성이 뛰어난다.

이 책을 읽으며 사람이 진정 강해질 때는 지킬 대상이 있을 때 강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줄리아가 그러하였듯이.




-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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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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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켄 리우우리에겐 낯선 이름이다더구나 영미 작가들이 대부분인 SF 환상문학에서 중국계 미국인이라니... 휴고상네뷸러상 세계환상문학상 3관왕은 사상 처음이라는 타이틀 또한 화려하다
켄 리우의 14편의 단편집을 모아 엮은 『종이 동물원』은 처음부터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표제작 『종이 동물원』의 주인공 잭은 미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다영어를 전혀 알지 못하고 외로웠던 어머니는 종이로 동물을 만들어주고 그 종이 동물들이 잭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새로 산 스타워즈 장난감을 자랑하려고 방문한 이웃 친구 마크가 엄마의 종이 호랑이를 쓰레기라고 비웃는 순간 잭의 화는 폭발하며 엄마를 온 몸으로 거부하기 시작한다
중국어로 말을 하는 엄마에게 영어로 말 하라는 아빠의 말에 엄마는 대답한다


내가 사랑(love)이라고 말할 때난 그 말을 여기서 느껴요
하지만 '아이 [
]
라고 말하면여기서 느껴요.


하지만 잭은 엄마를 계속 거부한다시간이 흘러 엄마의 임종을 지켜 볼 때 엄마가 남긴 마지막 말... 

하이즈마마아이니 .... (아들엄마는 널 사랑해....)


엄마의 임종 후 여자친구와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던 잭은 종이 동물에 숨겨진 엄마의 편지를 발견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슬픈 과거잭을 출산하며 느꼈던 행복과 잭이 자신을 거부함으로 느낀 안타까움과 극한 외로움.. 잭은 그토록 외면하려고 했던 엄마의 과거와 자신의 존재를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 깨닫는다그리고 쓰레기라고만 여겼던 종이 호랑이 라오후와 함께 돌아온다

어느 기사에서 이 책의 저자 켄 리후가 SF문학을 쓸 때 자신의 출신을 배제한 체 정통 스타일만의 SF소설만을 쓰려고 했지만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는 기사를 읽었다그 후 켄 리후는 자신의 근원인 중국과 동아시아의 이야기를 접목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그 성과는 보다시피 문학상3관왕이라는 영예를 차지했다『종이동물원』을 읽으면서 그 기사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외면하려고만 했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는 듯한 참회와 결심을 위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의미가 아니였을까를 떠올리게 한다

14
편의 단편 중 『천생연분』은 현세대에서 급성장하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인간을 조정할 수 있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사용자 맞춤 모드'로 설정하면 사용자에게 적합한 데이트 상대 추천 및 데이트 코스 및 대화 화제까지 정해 주며 그저 인공지능 '틸리'가 정해 준 대로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이런 사회에 저항하는 극소수의 인물 이웃집 제니는 사이에게 묻는다


틸리는 단순히 알고 싶은 것만 가르쳐 주지 않아요
뭘 생각해야 할지까지 가르쳐 준단 말이에요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지금도 알아요
?


모든 것을 인공지능 틸리가 정해주는 대로 살아가는 수동적인 삶더 이상 흥분도 없고 설렘도 없으며 꼭두각시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현재 우리가 만드는 인공지능이 과연 인간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진지하게 질문한다
저자는 우리가 배워 온 생각하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이 생각하는 능력을 빼앗겼다면 과연 우리는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까라는 진지한 물음을 우리에게 던진다

14
편의 단편 소설은 대충 읽게 되는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읽는 이에게 많은 질문과 생각을 하게 한다
『파자점술사』에서는 한자의 획을 이용하여 운세를 치는 파자점술사로 이용하여 대만의 아픈 과거사와 공산당으로 누명을 씌우며 무고한 할아버지와 손자를 죽이는 미군의 행태는 6.25 이후 공산당으로 몰아넣어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만든 한국의 슬픈 현대사를 떠올린다 
『즐거운 사냥을 하길』은 산업화로 인하여 서양 열강의 침탈과 함께 전통 속에서 살아가던 1세대의 종말과 새로운 문명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2세대의 아픔과 다시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염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온갖 장르를 아우르는 켄 리우의 단편집 『종이 동물원』은 동아시아의 슬픈 역사를 SF까지 접목시킴으로서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과 그 접목력에 매번 감탄하면서 읽게 되는 소설이다
단순히 흥미를 위한 방편으로 동아시아의 역사를 곁들인 게  아닌 슬픈 과거에 대해 신중하면서도 잘못된 과거에 대해 침묵이나 방관이 아닌 역사를 돌아보고 바로잡을 수 있도록 끌어들인다『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에서는 나 조차도 알지 못했던 731부대 이야기와 한국의 아픈 역사인 위안부 이야기까지 저자는 이 책으로 하여금 슬픈 역사를 모두에게 알리고 있다

역사와 일상이 만나고 역사와 우주가 만나는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 』
내가 애정하는 작가 목록에 켄 리우라는 이름 한 명이 추가되었다근간 출간 예정인 <민들레 왕조기 1> 또한 매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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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고독
크리스틴 해나 지음, 원은주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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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고독』은  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에서 전쟁 속 여성들의 강인함과 용기를 보여주었던 소설 ,<나이팅게일>로 유명한 크리스틴 해나의 신작이다

『나의 아름다운 고독』은 베트남 전쟁 참전 후 돌아온 아버지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이 삶을 살아가던 리나의 가족이 아버지와 같은 포로병이었던 보가 유산으로 알래스카에 있는 자신의 조그마한 오두막과 토지를 리나의 아버지에게 넘겼다는 편지를 받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알래스카. 알류트 어로 '거대한 땅'을 일컫는 인디언 말 답게 광활하고 거대한 대지이다. 여름과 겨울이 길고 미국인들도 살기 꺼려졌던 땅,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산과 얼음, 추위로 알려진 이 알래스카에 리나의 가족은 이 곳에서라면 아빠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이사한 알래스카 주에서는 비록 사람은 많지 않지만 살아남기 위한 지역 공동체를 만나게 되고 정착하기 위한 도움을 받는다. 부유한 이웃 톰 워커, 전 검사출신이자 이젠 잡화점 주인인 큰 마지, 오두막을 리나의 아버지에게 넘긴 보의 아버지 얼 할렌 등.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그들은 결속하여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

그 곳에서 만난 리나의 유일한 친구 매슈 워커는 아직 알래스카의 겨울을 겪지 못한 리나에게 알래스카의 겨울에 대해 설명해 준다

끔찍하고 아름다워
내가 정말 알래스카인이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지
대부분은 겨울이 끝나기 전에 남쪽으로 도망 가.


거대한 고독의 땅


레니가 정의한 알래스카의 겨울. "거대한 고독의 땅." 진정한 알래스카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 고독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리고 레니의 가족들 또한 이 고독을 피할 수 없다
점점 심해져가는 아빠의 광기어린 삐뚤어진 사랑과 폭력, 극한 추위, 경제적 궁핍, 야생동물의 공격, 이웃의 죽음, 살아남기 위한 끝없는 생존을 위한 노동 등 레니는 알래스카의 겨울을 통과하며 서서히 알래스카인으로 성장해 나간다.  

『나의 아름다운 고독』의 절정은 바로 저자가 그린 알래스카의 아름다움이다
거칠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미지의 땅. 알래스카의 아름다움을 저자는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자연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바위에 와서 부딪히는 파도의 숨소리, 수상 비행기와 부교에 찰싹거리는 물소리
바위 위에 모여 있는 바다사자들의 먼 울음소리
머리 위를 도는 갈매기의 수다 소리 
(p210-211)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만끽하며 자연과 더불어 때론 맞서며 살아가는 알래스카인들을 저자는 아름답게 보여진다. 그리고 왜 이러한 환경에서 공동체들의 사람들이 이 잔혹한 알래스카의 고독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지를 보여준다

 
시간은 흘러 새로운 문명이 알래스카에 들어오며 이 공동체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전기가 들어오고 관광객으로 붐비며 오래 된 술집을 개조하며 이 곳을 더욱 발전시키고자 하는 톰 워커와 변화를 원치 않는 사람들 간의 대립, 그리고 생계를 위해 변화를 수용하는 젊은 세대와 변화 거부파인 레니의 아버지와 얼 할렌 등의 세대차를 통해 저자는 시대에 따른 공동체의 대립과 변화를 보여준다

혹독한 겨울을 통과하며 알래스카의 고독까지 사랑하게 되는 레니의 성장기
그 잔인함까지 레니는 『나의 아름다운 고독』이라 명하며 알래스카를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읽고 난 후 과연 내가 레니의 입장이였다면 이 고독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엇이 레니에게 이 고독까지 사랑할 수 있게 만들었을까
그건 사랑이 아니였을까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당사자의 장점 뿐만 아니라 단점과 아픔까지 사랑하고 감싸주는 것이듯 알래스카의 여름 뿐만 아니라 잔혹한 겨울까지 사랑하게 되면서 이들은 알래스카와 하나가 되어 갔을 것이다

『나의 아름다운 고독』을  읽은 후 알래스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알래스카에 간다면 레니와 그 이웃들이 반겨줄 것만 같은 건 나만의 착각일까?
광활한 대지 위에 펼쳐지는 사람들의 삶이 장엄하게 펼쳐지는 이 책은 600페이지를 훌쩍 넘기게 할 만큼 매혹적이다. 깊은 감동과 안타까움, 긴 여운을 남기는 이 소설을 다른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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