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제 여성 신은 필요 없는 거야. 남자가지배하는 세상을 여성이 만들었다고 하면 말이 안되니까." - P42

 사람들은, 협박을 받는 여성들에게 왜 반항하거나 신고하지 않았냐고 묻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아니었다.  - P98

"가희야, 네가 지금 안나 서를 알고 있지 않니?
나도 안나를 기억하고 있고, 우리 모두 안나를 기억하고 지금까지 말하고 있어."
"네?"
"이게 바로 낙관이야. 우리는 낙관할 수 있어.
우리가 잊지 않고 있으니까."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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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1
한정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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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麻姑)는 한국 신화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유일한 여성 천지창조신이었다. 남성 신들이 파괴하며 세상을 창조할 때 여성 신은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세상을 만든 여성 신 마고. 그들의 존재는 조선 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지나 여성 신인 마고에서 마녀, 마귀할멈이 되었다. 역사는 그렇게 여성 신의 존재를 쫓아내었다. 일제가 조선의 역사를 왜곡하려고 한 것처럼 여성 신 마고도 마귀할멈으로 바뀌어갔다.

 

그냥 이제 여성 신은 필요 없는 거야.

남자가 지배하는 세상을 여성이 만들었다고 하면 말이 안 되니까.

 

한정현의 소설 《마고》는 역사에 의해, 시대에 의해 마귀할멈으로 취급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일제가 물러가고 미군정의 치하에 있는 남한. 미군정에 눈 밖에 나면 좌익으로 분류되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시대,

독립은 했다지만, 여성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지만 여전히 여성은 천대받고 불법은 판을 친다.

이 살얼음판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여성 검안의로 살아가는 연가성.

책상 위에 수북히 쌓여 있는 사건들 속에서 수상한 살인 사건을 접한다. 친미 세력을 등에 업고 귀국한 윤박 교수의 살해 사건. 범인은 미군. 하지만 미군정은 이 살인 사건의 진짜 범인을 몰래 미국으로 내빼고 윤박 교수에게 원한이 있는 여성 세 명을 용의자로 내세우며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덮어씌우려고 한다.

미군이 주목한 용의자 세 명은 <모던조선>의 편집장 선주혜, 윤박 교수의 식모였다가 기생집에서 성매매 일을 한 전력이 있던 윤선자, 그리고 윤박 교수의 조수였던 한초의. 이 세 명은 모두 한 날 호텔 포엠에서 윤박 교수와 실랑이를 벌인 알리바이가 있다. 모두 윤박 교수에게 원한을 품을 일이 있다. 과연 이 중에 범인은 누구일까?

연가성과 함께 사는 룸메이트이자 오랜 지기인 곽운서와 함께 이 사건을 조사해가며 이들이 알게 되는 진실은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에게 드리워진 억압의 굴레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여전히 여성 및 약자에게 가혹한 시대. 마고 신이 마귀할멈이 되었듯 여성들의 존재는 남성들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고 짓밟히는 모습이 목격된다.

 

사람들은,

협박을 받는 여성들에게

왜 반항하거나 신고하지 않았냐고 묻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만약 소설이 여성들이 시대에 의해 마귀할멈으로 짓밞히는 모습만을 그려냈다면 이 소설은 타 소설과 차별성이 없다. 한정현의 소설은 남성주의 역사에 맞서 여성들, 소수자들이 그려내는 사랑의 방식을 맞서 보여주는 데 있다.

서로를 짓밟고 죽이는 대신 연가성을 포함한 모든 여성들은 자신을 낮추더라도 함께 하는 방식을 택한다.

호텔 포엠의 사장이자 목격자인 에리카.

이 소설의 중심축인 연가성과 연가성을 끝까지 사랑하는 곽운서.

자신을 도와준 은혜를 잊지 않으며 끝까지 함께 하는 삶을 택한 카페 주인 송화.

그리고 윤박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여성 신주혜까지... 이들은 알고 있다. 남성들의 방식으로 남을 짓밟고 파괴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남을 구할 수 없음을. 마고신이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세상을 창조했듯, 자신의 것을 나누고 함께 할 때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임을 알고 함께 하는 길을 택한다. 태양처럼 강한 빛이 아니지만 태양의 빛을 나누는 은은한 달빛이 되는 삶을 택한다.

 

 

태양도 그냥 무수한 별 중에 하나래.

너무 밝아서 주변 별들의 빛을 다 가져가버리지만 말이야.

태양이 너무 빛나면 오히려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천지를 뜨겁게 태우는 태양의 존재는 강렬하지만 달빛에게는 그런 강렬함이 없다. 태양은 홀로 빛나지만 달빛은 별과 함께 빛난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모두 그러하다. 함께 빛나는 존재로 살아가길 택한다. 그래서 더 강한 태양의 존재에 죽임을 당하거나 사라져 가거나 마귀할멈으로 추락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라고 묻는 연가성에게 스승은 답한다.

 

우리 모두 안나를 기억하고 지금까지 말하고 있어.

이게 바로 낙관이야.

우리는 낙관할 수 있어.

우리가 잊지 않고 있으니까.

 

비록 이 순간 우리가 지고 있는 것 같다 하더라도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낙관할 수 있다는 것.

계속해서 말하고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희망이 있다.

지금은 아무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가 기억하는 한 희망의 불씨는 살아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고 기억하고 함께 해야 한다. 그게 마고의 신을 다시 복원할 수 있는 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 격동의 시기를 통과해 낸 많은 여성들과 소수자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비록 지금까지 차별금지법은 통과되지않고 제자리걸음인 것 처럼 보여도 결국엔 서로의 연대가 우리의 끝없는 기억과 말들이 희망의 불씨가 되어 또 다른 불씨를 키워나갈 수 있음을 말해준다. 태양처럼 단번에 빛을 내진 못해도 느려도 함께 빛나는 삶을 택하는 마고들의 빛이 더 오래 은은하게 모두에게 비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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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MBTI이건 철액형이건 별자리건, 그를 통해 무엇을 하려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타인을 규정짓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가 혹은 타인에 대한 디테일 수집가가 되기위해 사용하는가. 나아가 그런 디테일들을 사랑하고 더 또렷이 기억하기 위해 사용하는가. - P26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나 자신과 싸우는 일을 보다더 부지런히 해야겠다는 점이다. 말하고 싶은 것을 잠시 멈추고 듣는 데 더 집중한다든지, 칭찬받고 내말을 쏟아내고싶은 욕망 앞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일들을 의식적으로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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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여행을 계속하자. 영상과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추억을 하나씩 형태로 만들자. 언젠가 이 아이와 함께 다시 찍을수 있게. - P88

꿈을 버리고 가업을 잇는 게 아니다. 내 혼이 원하는 작품을만들어내려고 일부러 꿈을 내던지는 것이다. - P129

원작의 결말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이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든다면 이런 결말로 하자. - P172

 아니면 도망칠 수 없다면 포기하란 소리일까. 한정된 환경속에서 최선책을 생각하라고,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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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끝
미나토 가나에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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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확실한 닫힌 결말을 선호한다.

그래서 어떤 책을 볼 때면 책의 뒷부분을 먼저 확인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결말 부분이 마음에 들 때 비로소 첫 장을 시작할 용기를 낸다.

 

그런 면에서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이야기의 끝》은 내 취향과 어울리지 않는 소설이다.

 

소설은 산간마을에 사는 에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작은 산골마을, 에미는 저 산 너머 세상이 궁금하다.

가보지 못한 세계, 누가 살고 있을까, 뭐가 있을까 궁금한 에미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베이커리 라벤더>를 운영하는 부모님은 항상 바쁘시고 외동딸 에미는 혼자 있는 시간을 상상의 시간으로 보낸다.

 

상상은 또 다른 상상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 상상의 세계는 갈수록 커져간다. 그렇게 상상의 세계가 커져 갈 때 마침 같은 짝이 된 친구 미치요가 묻는다.

 

"네 머릿속에는 뭐가 있어?"

 

그 상상 속의 이야기를 미치요는 놀라워하며 에미에게 작가라고 말해준다. 그제서야 작가라는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된 에미는 미치요의 격려에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그 후 부모님의 가게에서 일을 도와주던 중 늘 같은 시간에 햄 샌드위치를 사 가는 남학생 '햄 씨'를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하는 연인이 된다. '햄씨'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햄씨'가 홋카이도에서 대학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결혼만을 약속했을 때 어린 시절 자신을 작가라고 격려해주었던 친구 미치요에게 연락이 온다. 자신이 견습생으로 있던 유명한 마쓰키 류세이의 일을 도와주지 않겠느냐고. 더구나 마쓰키 류세이가 에미의 작품을 읽었고 재능이 있다고 한다면서.

부모님의 가게를 물러받고 햄씨와의 결혼만을 생각하던 잔잔한 에미의 심장이 뛴다.

마쓰키 류세이 밑에 일하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이 나오지 않을까? 이 기회를 꼭 잡고 싶다. 하지만 약혼자 햄씨도, 그리고 부모님의 강한 반대에 눈물을 흘리며 꿈을 접는다. 이대로 지나가자 생각한다.

하지만 한 번 뛰기 시작한 심장이 멈추지 않는다. 힘들어도 해 보고 싶다. 그렇게 에미의 발걸음은 역으로 향한다. 역에서 도착한 순간... 햄씨가 있었습니다. 마치 내가 그 곳에 올 줄 안 것처럼.

 

드라마라고 한다면 '다음 시간에' 라는 자막이 뜨며 다음을 기약하겠지만 이 소설은 대담하다.

 

이 이야기에 다음은 없다.

결말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고 해야 할까.

경황없는 일상 속에서 소설 결말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을지 모르겠으나

결말 없는 이야기는 여행의 동반자로 안성맞춤일지 모른다.

<이야기의 끝> 48p

 

그리고 소설은 훌쩍 시간을 지나 홋카이도를 여행하는 여러 여행자들에게 전해진다.

 

홋카이도. 라벤더 꽃이 피고 유명한 사진가 마에다 신조의 <다쿠신칸>이 있는 곳. 사람들마다 여행의 목적이 모여든 만큼 홋카이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투병 생활을 하며 임신을 유지하는 도모코, 그녀는 배에서 만난 십대 소녀 모에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소녀에게 부탁을 받는다. 이 이야기를 읽어달라고. 출처 미상, 열린 결말의 이야기의 에미와 햄씨의 이야기를 읽으며 도모코는 생각한다. 과연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그 결말을 자신의 상황에 비추며 자신이 원하는 결말로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 결말을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인다.

 

'에미와 햄씨의 이야기'는 도모코가 또 다른 여행자에게 만난 청년 다쿠마에게 전해지고 다쿠마는 시바타 아야코에게 그리고 아카네에게 전해진다.

 

재미있는 사실은 에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각자의 다양한 사연만큼 서로 다른 인물들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다른 해답을 찾아간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꿈을 잃을 위기에 처한 에미의 입장에서,

누군가는 꿈을 포기할 것을 종용하는 에미의 부모님 또는 햄씨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본다.

자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자신이라면 꿈을 포기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자신의 상황에서 이야기의 중간을 이어가며 결말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각자가 만들어낸 결말은 자신들의 삶에 새로운 시작이 되어 준다.

 

원작의 결말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이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든다면

이런 결말로 하자.

 

내가 꽉 닫힌 결말을 선호했던 이유는 바로 그 이야기에서 멈추었기 때문이다. 더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린 결말은 다르다. 이야기는 진행형이고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이 열린 결말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만나고 화해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니까. 이 끝나지 않은 결말을 만들어가며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아직 인생이 끝나지 않았음을.

인생은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하며 틀린 답은 없으며 결국 모든 답이 정답이자 소중함을.

 

이야기는 결국 돌아돌아 다시 '에미와 햄씨'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리고 숨겨진 결말을 확인할 때는 최고의 감동어린 반전이 독자들을 기다린다.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결국 인생이란 우리가 결말을 만들어가는 여정임을 알게 해 준다.

그러하기에 이 이야기를 전달받는 사람들 모두 여행자들인 것도 우리가 인생이라는 여정을 걷는 여행자임을 말하고자 함이 아닐까. 그 여정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여기서 멈출지 아니면 계속해나갈지 만들어가는 건 결국 여행자의 선택이다. Go할지 Stop할지. 하지만 중요한 건 모든 선택이 끝이 아님을. 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있음을.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가자고 여행해준다.

 

올해 만난 소설 중 하나를 꼽는다면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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