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선택을 강요하는가? : 여성, 엄마, 예술가 사이에서 균형 찾기 - What Forces Women Artists to Give Up: Balancing Being a Woman, Mother, and Artist
고동연.고윤정 지음 / 시공아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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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남편이 아내 김지영에게 아이를 낳자고 조르는 장면이 있었다. 아이가 있는 행복한 삶을 꿈꾸며 남편은 김지영에게 말한다. 자기가 다 도와주겠다고. 변하는 건 없다고. 그러니 "내 아이를 낳아도'라고.

남편의 말에 김지영은 혼자말로 말한다.

"그런데 왜 나는 세상이 바뀔 것만 같지?"

영화 속 김지영의 대사는 내내 마음에 머물렀다. 결혼과 출산을 하면 원하지 않아도 세상이 바뀌어버리는 현실. 그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들. 현모양처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멋진 커리어우먼을 원하는 사회. 지금이야 조금씩 나아가고 있지만 8,90년대에서는 도전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누가 선택을 강요하는가?』는 그 당시 자신의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 저항으로 받아들였던 시대. 그럼에도 끝까지 나아갔던 그 시대를 어떻게 연대하고 나아갔던 여성 미술가들의 인터뷰이다.

여성, 엄마, 예술가 사이에서 양립하기 어려웠던 시대 그들이 어떻게 선택해왔고 일을 지켜왔는지 이야기한다.


내가 여성 작가이기 때문에 인터뷰도 하는데,

거기에 한정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작가로서 끝까지 가고 싶어요.

근데 그것이 여성 작가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될 수 있다면

정말 고마운 거죠.

끝까지 그리고 싶어요.


여성 작가이기보다 한 명의 작가로 서고 싶다는 윤석남 작가. 늦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일을 확장해 간다. 자신에게 맞는 선생을 고르기도 쉽지 않았던 때 윤석남 작가는 뉴욕에 가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고 그림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아주는 계기가 있지만 윤석남 작가와 달리 이 책의 인터뷰에 참여한 작가들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어떤 결혼도 여성이 작가가 되는 데에는 도움이 안 돼요.

제일 좋은 건 방해되지 않는 남편이에요. 도움은 기대하면 안 돼요.

결혼 잘못하면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반납해야 해요.


누군가는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이 굳이 여성에게 부정적인 면만 있지 않다고. 긍정적인 면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고. 하지만 결혼생활의 속에서는 여성의 희생과 배려를 전제로 유지되고 있다는 걸 남자들은 알지 못한다. 정정엽 작가는 결혼 잘못하면 자신의 정체성을 반납해야 한다고 했지만 결혼 자체만으로도 정체성이 흔들리기 쉬운 위험을 항상 견디고 있다. 엄마이기에, 아내이기에, 며느리기에 본분에 먼저 충실하라는 압박...

나의 경우 글쓰기 수업을 듣고 싶다고 했던 남편의 반응이 떠올랐다. 돈도 안 되는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차라리 직장생활에 도움 되는 학원이나 애들 반찬을 더 잘 할 수 있는 요리학원에 다니라는 핀잔. 돈 한 푼 요구하지 않았건만 나의 배움을 가로막으려는 남편의 말. 정정엽 작가의 말대로 내게 도움은 커녕 방해가 되지 않는 것만으로 고마웠다.

작가니까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 1차 성공이라고 하는 작가를 보며 당연할 수 있는 바램이 여성에게는 얼마나 큰 도전이고 모험인가를 깨닫게 한다. 계속하기가 쉽지 않기에 여성 작가들이 서로의 선례를 만들어내고 후배들을 이끌어줄 수 있는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는 모든 여성 작가들의 삶이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성들에게는 사회적 성공에 대해 이미 제도화된 무엇이 있어요.

그렇지만 여성 작가는 성공 사례, 실패담

이런 것 자체가 별로 없거든요.

비극적인 어떤 삶의 스캔들만 있죠.

여성은 전형만 있을 뿐 좋은 선례가 없어요.

작품만 창작이 아니라 삶의 방식도

여성 작가들은 모두 개척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요.



여성에게만 유난히 좁은 선택의 굴레. 그 위기 속에서도 작품을 놓지 않았던 건 지금 놓으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빨리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흐름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인터뷰에 넘쳐난다. 책 속 밑줄이 늘어나고 나의 상황에 대입하며 공감하며 읽게 된다.

그들의 계속하는 것이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현장을 지키고 있는 미술계의 거장들을 보며 나는 내 위치를 생각해본다. 회사에서 또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선례를 남기고 있나. 나를 보며 아이들은 어떤 길을 선택할까. 결코 쉽지 않지만 내 딸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나 자신이 먼저 내 정체성을 지키고 살아가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이 책을 모든 엄마들이 꼭 읽기를 권장한다. 특히 나와 같은 딸을 둔 엄마들이 읽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우리 딸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겨주자고. 쉽지 않겠지만 그 길을 걸어가고 지켜나간 선배들이 있다고.

그러니 우리의 정체성을 잊지 말고 끝까지 계속하자고 꼭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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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행복론 - 97세 경제학 교수가 물질의 시대에 던지는 질문
리처드 이스털린 지음, 안세민 옮김 / 윌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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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소원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 집'이라고 말할 것이다.

2년마다 돌아오는 전세 만기, 갈수록 고공행진하는 서울의 집값, 아이가 커갈수록 답답한 집...

집을 생각하면 답답한 현실에 나만 불행한 듯 해 울화통이 터졌다.

『지적행복론』 은 '집'만 있으면 원이 없을 것 같다는 나에게 과연 '집'을 살 만큼의 소득이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는 행복경제학이다.

<행복경제학>. 우리에게 낯익은 용어는 아니다. 저자 역시 인정한다. 경제학의 여러 분야에 있어서 행복경제학은 경제학의 주변부라고 말한다. 모두들 수치를 말하고 성장만을 강조하는 경제학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를 논하는 경제학. 이 자본주의 시대에 행복경제학은 어울리지 않다.

『지적 행복론』의 저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90대의 노교수로 이 책은 저자가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내용을 담은 글이다. 대학 강당에서 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얼마나 부자가 되어야 행복할까?"

"소득이 많으면 행복도 증가할까?"

황당할 정도로 당연한 질문에 저자는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왜 소득이 높이 올라가도 행복이 정체인 상황이 많아지는가?"

"30대에는 20대에 가지지 못했던 고가품을 소유했음에도 왜 행복을 더 느끼지 못하는가?"

이 질문에서 저자는 '준거 기준' 즉 표준으로 잡는 기준이 무엇인가에 따라 행복이 달라진다고 강조한다.

기준을 무엇으로 잡는가.

예전의 나인가?

아니면 주위 사람들과의 비교인가.

아이러니한 건 소득을 생각할 때는 '준거기준'이 예전의 나가 아닌 '주위 사람'들이다. 내가 동료보다 더 적게 번다면 더 많이 벌어도 불행하다.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을 맞는다.

반면 '젊음' '건강'과 같은 부분에서는 준거기준이 '주위 사람' 이 아닌 '예전의 나'가 되어 버린 경우이다.

40대인 나는 20대, 30대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자꾸만 젊었을 때의 나 자신과 비교하기 때문에 주위 사람과 똑같이 노화됨에도 예전의 나만 비교하고 그리워하기에 행복할 수 없다. 이 '준거기준'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과연 행복해지기 위해 뭐가 중요할까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바로 우리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적행복론』에서는 여러 방식의 행복을 비교한다. 남녀 행복의 차이, 생애주기에 따른 차이, 정치시스템에 따른 차이 등 여러 구조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 남녀 행복의 차이는 저자는 이 사회가 남성보다 여성이 더 살아가기 힘든 구조임에도 여성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사실 공감하지 못했다. 남성보다 결혼을 일찍 해서 배우자를 이른 나이에 만나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는 기쁨이 남성보다 여성이 크다는 사실은 현 시대에 조금 뒤떨어지는 생각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어떻게해야 행복을 찾아갈 수 있을까? 그건 결국 어느 누구도 답을 내려줄 수 없는 게 아닐까?

결국 행복경제학도 행복하기 위한 하나의 가이드라인일 뿐 결정하고 찾아가는 건 자신만의 몫이다.

그럼에도 행복에 대한 연구는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주변부에 있는 행복경제학이 중심으로 와서 소외된 사람들의 행복을 찾아주는 연구가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그래서 저자 역시 비록 주변부라고 인정함에도 끝까지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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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쓰는 날들 - 어느 에세이스트의 기록: 애정, 글, 시간, 힘을 쓰다
유수진 지음 / 상상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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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하고 강한 애.

그 이미지는 타인이 씌워준 것이 아니라, 그동안 내가 나에게 씌운 이미지다.

이미지가 딱딱하게 굳으면 이미지의 주도권은 내가 아닌 타인에게 간다.

'원래 그런 사람'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개성 있는 이미지를 원한다. 누군가는 강하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부드러운 이미지를 선호한다.

그렇게 이미지가 고정화되면 사람들은 상대방에게서 그 이미지만을 요구한다. 저자에게도 그랬다. 냉철하고 강한 애. 그 이미지 속에서 저자는 자신의 다른 모습을 드러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타인에게 맞춰진 이미지는 자신만을 지치게 할 뿐이었다. 울기도 하며 심리 상담도 받기도 하며 자신의 문제를 알아갔다. 그렇게 저자 유수진씨는 남에 맞추어진 이미지가 아닌 제목 그대로 『나답게 쓰는 날들』처럼 살아 가기로 다짐한다.

『나답게 쓰는 날들』이라 하면 누군가는 너무 평범해서 말할 게 없다고 말한다. 나 역시 그렇다. 출근하고 아이들 등교 준비에 출근, 그리고 퇴근 후 아이들 식사 등 매일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 아무 것도 남아 있을 것 같지 않다. 사실 유수진 작가의 『나답게 쓰는 날들』 역시 새롭지 않다. 지극히 평범한 것들을 말한다. 직장에서의 경험, 가족 이야기, 친구 이야기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일상들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땀에 젖은 셔츠로도, 고기 한 점으로도 연결되는

그 어느 곳에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 책엔 사랑 이야기가 없지만,

또 어떻게 보면 모든 글이 결국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답변해 본다.


그럼에도 이 글들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똑같은 일상 속에서 감사할 줄 알며 자신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저자의 태도가 느껴진다. 저자의 전작을 보며 저자는 독자들에게 '사랑 이야기'가 없다는 글을 받았다고 말한다. 자신의 지난 또는 현재 이야기는 좋은 소재이다. 하지만 저자는 사랑을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로만 국한하지 않는다. 삶 속에서 사랑은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존재함을 인지한다. 사람의 삶이 땀에 젖은 셔츠, 또는 고기 한 점 속에서도 연결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사랑의 의미의 폭을 넓혀나갈 때 삶은 사랑으로 빛날 수 있음을 저자는 알려준다.

회사에서는 마케터, 회사 밖에서는 작가로 살아가는 저자. 때로는 회사원인데 작가로 소개받기도 하는 저자는 가끔씩은 정체성이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굳이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러 맛이 알맞게 섞인 아이스크림처럼 다른 정체성을 적절하게 섞여가며 자신의 삶 속에서 환상의 궁합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간다.


서른한 가지 맛이 있는 아이스크림 집에

'초코나무숲'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스크림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녹차맛과 초코맛 아이스크림을 섞어놓은 맛인데,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합친 이 맛이 환상의 궁합이 아닐 수 없다.

이 두 가지 맛을 혼합한 아이스크림처럼, 나는 좋아하는 일들을 병행하면서

나만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나답게 살기 위한 삶.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하지만 가장 어렵기도 하다. 회사에서는 회사에 맞는 사람이 되기 원하고 가정에서는 현모양처의 모습을 원한다. 저자의 글 속에는 충실히 살아가는 하루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자 애쓰는 태도가 느껴진다. 자신의 한계를 두지 않고 자신을 하나씩 알아 가고 배워나간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을 조금씩 인정해나간다.

『나답게 쓰는 날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 지친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글이다. 지루한 삶 속에서 일상 속의 윤슬 한 조각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에세이다. 모든 이의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나와 당신의 삶 속에서도.

단지 그것을 찾지 못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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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선의 사람들 - 후쿠시마 원전 작업자들의 9년간의 재난 복구 기록
가타야마 나쓰코 지음, 이언숙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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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재난 사고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이 사고에서 꼭 배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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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선의 사람들 - 후쿠시마 원전 작업자들의 9년간의 재난 복구 기록
가타야마 나쓰코 지음, 이언숙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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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부의 운영계획안이 발표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자력 건설 및 재가동 방침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 방류를 공식화하고 중국과 한국의 항의에도 끄덕하지 않는다.

지난해, 많은 언론들이 전력 부족을 언급하며 원자력이 없이는 전력 공급이 불가능함을 토로했다. 전까지만 해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남의 일이 아니라고 했던 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후쿠시마 원전은 아주 옛날 이야기가 된 듯하다.

사회비평 《최전선의 사람들》은 <도쿄신문> 기자인 가타야마 나쓰코가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9년 동안 일본 정부가 은폐하려 한 재난 복구 기록을 집중 취재하며 기록한 일들을 엮은 르포르타주이다.


9.0의 대지진 발생 후, 저자는 신문사로 긴급 호출을 받는다.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의 상황이 불안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제1원전 1호기 수소가 폭발하고 14일 3호기, 15일 4호기까지 폭발했다. 정부는 주민들에게 피난 지시를 내린다. 기자인 가타야마 나쓰코는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제대로 된 식수도 공급해주지 않는 정부, 원전 재난 사고 수습자들에게 피폭량을 측정하는 장치인 선량계도 지급해주지 않는 무책임 속에 현장 작업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일을 해야만 했다.



현장 작업자들이 목숨을 걸고 작업하는 동안 일본 정부는 현장 상황에 대한 함구령을 지시했다. 따라서 취재도 쉽지 않았다. 실명 보도가 원칙이었지만 정부의 함구령에 따라 익명으로 해야만 했고 장소도 제공되지 않았다. 함구령이 내려진 가운데 정부와 도쿄 전력은 안정화되고 있다며 국민을 거짓 안심시켰고 정작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은 현장 상황을 뉴스로 알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지금도 체르노빌은 사람이 살지 못한다. 하지만 후쿠시마는 정부의 방침 하에 사람들이 살고 있고 일본 정부는 사람들에게 후쿠시마가 정상화되었다며 홍보한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언젠가 어느 글에서 체르노빌은 원자력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므로 사람이 살 수 없지만 후쿠시마는 일본이 기준을 대폭 낮춤으로 억지 이주시킨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최전선의 사람들》에서는 바로 그 점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통근 버스에서 타이어만 확인할 뿐 오염 검사는 하지 않는 엉터리 검사, 방사선량이 40분 접촉시 사망하는 수치임에도 무리하게 진행되는 정부의 일상화 방침은 국민들을 사지로 몰아넣게 한다.

재난은 그 사고 현장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 땅에 터를 잡고 있던 사람들의 삶 또한 재난이 된다. 후쿠시마 피해자들의 가정이 무너지고 배상금을 노린다며 매도하는 사람들 속에서 차별을 받는 일본의 현실을 보며 세월호 사건 때 보상금을 바란다고 유족들을 매도한 일부 언론과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와 일본이 재난을 대하는 방식은 왜 이리 차이가 없단 말인가 하는 현실에 개탄하게 한다.

9년간의 기록 동안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피폭량은 높고 일본은 오염수 방류를 결정한 것도 그에 따른 맥락이다. 전세계 곳곳에서 탈원전, 녹색 에너지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과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해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이 책에서 보여지는 일본의 모습은 무리한 일상화 작업 속에서 어떤 안전 지침도 세워지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위험성을 인정하고 여러 위험에 대해 다각도로 준비된 대책이 준비되어야만 한다. 이 무책임한 일본 정부과 후쿠시마의 모습은 원전 건설을 정책으로 삼은 한국 정부에 청사진을 제시해준다. 전력 공급. 짧은 시각에서의 전력 공급 대책은 결코 해답이 되지 못한다. 지속 가능한 삶으로의 전력 공급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원전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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