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였을 때
민카 켄트 지음, 공보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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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였을 때> _ 민카 켄트.

이 책의 소개 글을 읽었을 땐 사건의 중심이 브리엔 과 그녀를 사칭하는 또 다른 브리엔의 관계를 풀어 나가는 것인 줄 알았으나 책을 읽어 갈수록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관계는 전개상 빠져선 안될 것이었지만 좀 허무했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진정한 의도가 궁금하여 계속적으로 읽었습니다. 사건의 중심인물들은 브리엔 과 그녀의 집에 들어와서 살게 된 룸메이트 나이얼이었는데 이 둘의 관계가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게 보였습니다. 일단 그의 직업이 의사였지만 녹색 수술복 차림으로 집에 출입하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이해가 안 되었으며 혼자 사는 젊은 여자의 집에 낯선 남자를 들여서 주인과 세입자의 관계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미국 문화 특유의 생활이 아닐까 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것도 결국은 작가가 만들어 낸 이야기의 틀이었기에 한편으론 놀랍기도 했습니다. 브리엔 두그레이란 여자는 이 책의 주인공입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녀는 알지도 못하는 어떤 괴한으로부터 갑작스러운 공격을 당해서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기게 되고 그 이후로도 외상 후 스트레스와 단기 기억 상실, 악몽의 후유증으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삶을 살아갔으며 그녀 주위에 친구라곤 하나 없는 혼자였습니다. -물론 결말에 그러한 이유가 해석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심적인 동질감을 느꼈으며 현시대의 사람들이 흔히 겪는 외로움이란 것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만의 공간인 집에서 느끼는 텅 빈 공허함, 세상을 살아갈 이유를 망각해서 겪는 허탈감은 일종의 고통이며 자기의식 내에서 겪는 평범해 보이면서도 그렇지 못한 정신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외로움을 SNS 매체를 통해 타인의 일상을 몰래 들여다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집안에서 창밖을 보며 지나가는 이웃들의 모습을 보면서 외로움을 잠시 풀어내지만 그들의 삶을 자신에 빗대어 평가하기도 하고 나 자신은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지는지에 대한 자의식에 깊게 빠져버리기도 합니다. 어쩌면 브리엔 은 바로 우리 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투영한 삶의 한 단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조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막대한 부를 가지고 유복한 생활을 하는 상류층이었으며 서민의 시각으로 보자면 꿈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어서 그녀를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소설을 통하여 상류층의 삶을 느껴보는 것이 일종의 간접적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선과 악의 관계는 분명히 나누어지지만 각 인물의 살아온 인생을 파헤치면 상처가 없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그것을 떠안고 있지만 애써 드러내지 않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상처가 결국 분노를 낳게 되고 분노는 인생의 복수로 치환되어 그 대상을 향해 끊임없이 공격을 하게 됩니다. 결국 브리엔 은 회복이 필요한 과정에서 그것을 가장한 또 다른 이의 범죄 대상이 되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지만 작가 <민카 켄트>의 마법 같은 필력으로 사건은 예상할 수 없게 되고 더 흥미롭게 흘러가게 됩니다. 브리엔 과 나이얼의 관계는 소설의 중반을 넘어가면서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며 물고 무는 심리전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시작되게 되는데 이때부터 진실을 알아가는 재미가 더해졌던 것 같습니다. 번역의 매끄러움과 작가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탄탄한 스토리, 늦출 수 없는 긴장감, 탁월한 문장력 때문인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막힘없이 속도감 있게 읽어 나갈 수 있는 저 자신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여러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없이 브리엔과 나이얼 두 인물의 심리전을 중심으로 전개가 되어서 더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 <민카 켄트>의 필력에 그저 감탄하며 읽어 나갔습니다. 완전 범죄를 꿈꾸던 자와 배신감과 상실감으로 또다시 상처를 받게 되지만 범죄자를 응징하려는 브리엔의 정의감이 불타는 모습은 차분하면서도 강했으며 어떤 부분에선 소름 끼칠 정도로 냉정하고 차가웠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나이얼이라는 지능적인 범죄자로부터 절대 순하고 바보같이 당하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바로 경찰서에 도움을 청하지 않고 나이얼의 허점을 파고들어 증거를 확실하게 잡은 뒤, 끝을 내려고 하는 모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탐정 이상의 기지를 발휘했던 것 같습니다. 미스터리의 매력을 새삼 다시 느꼈습니다.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중간에 끊김 없이 각 인물의 시점을 단락으로 나누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설정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성 작가가 여자의 시각에서 남자의 시각으로 변화를 주어 글을 써가는 것이 남녀 간의 감성적인 부분에 있어서 차이가 있기에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인데 거부감 없이 읽혔습니다. 브리엔 특유의 섬세함과 함께 나이얼의 점진적이면서도 빠른 상황 판단에 의한 전개는 다른 작가가 쓴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착각을 했었습니다. 그만큼 이 소설을 위한 작가의 피나는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나이얼이 범죄자였으며 -나이얼은 자상하지만 똑똑하고 빈틈없어 보이는 인물로 비추어졌습니다.- 브리엔을 모방하는 제2의 브리엔은 그의 여자 친구 사만다였습니다. 특히 작가의 장치에 속았던 게 나이얼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등장하여 제2의 브리엔 (사만다)을 만나려고 기다리던 브리엔을 다중인격이 있는 아내로 만들어 버린 부분이었습니다. 그녀를 정신병원에 반강제로 입원시키는 나이얼의 완벽한 연기는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외상 후 단기 기억 상실로 고생하던 그녀의 약점을 잘 공략하며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막대한 재산을 빼앗기 위한 일종의 작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예상과 다른 변화에 적지 않게 당황하고 놀랐던 부분이었습니다. 만약에 사건이 그녀의 다중인격이 사실임이 되고 그녀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후 치료하는 이야기로 흘러갔다면 뻔한 진행이었을 것이지만 역시 작가는 그것을 또 틀어서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건은 결국 비극으로 점점 빠져들고 나이얼은 브리엔 보다 한발 앞서가지만 작가는 이야기 자체를 잔인한 살인에 맞추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점이 저는 장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살인을 최소화하면서도 심리 미스터리의 본질을 잃지 않았 다는 게 어쩌면 진짜 매력이라고 봅니다. 이 책에서 저는 두 가지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스라이팅은 사전적인 의미로 상황을 조작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잘못된 것을 옳다는 걸로 믿게끔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작가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접어들면서 독자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단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건의 전체적인 틀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가 저는 가스라이팅이라고 봤으며 사회의 인간관계적인 면에서 암적인 존재인 것 같습니다. 물론 단어가 정의 되기 이전에도 이미 있었던 현상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당하는 것이 더 심각한 것이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드러나진 않았지만 책의 전반을 다루고 있던 문제였던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SNS를 해킹하여 타인을 도용하는 범죄가 심심치 않게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브리엔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일상을 흉내 내고 생김새까지 따라 하는 소름 끼치는 부분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인스타그램을 예를 들면 여러 개의 아이디를 만들어서 같은 인물 -유명한 공인의 팬심이 아닌-의 사진으로 도배를 해놓은 정황을 직접 확인 하기도 했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최근 문제시되고 있는 사회적인 현상들이 생각나서 한편으론 놀랍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깊은 안목을 새삼 다시 확인한 것 같았습니다. <민카 켄트><내가 너였을 때> 를 읽고 그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졌습니다. 독자들의 소설적 목마름을 시원하게 꽤 뚫은 듯했습니다.



사람들은 남에대해 멋대로 추측하길 좋아한다.

우리는 대부분 나름의 이유로 진실을 외면하며 살아간다.p49


졸부는 요란하고 거부는 조용하다. p97


결국 모든 게 괜찮아진다.

괜찮지 않다면 아직 끝난 게 아니다.

p368


사실 소설에선 그렇게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사회가 살아 숨 쉰다는 건 괜찮지 않기 때문에 괜찮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작가 <민카 켄트>의 생각을 존중하며 저는 그저 다르다고 볼 뿐입니다. 그녀 덕분에 사회 문제에 대하여 좀 더 깊게 생각하고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갖게 되어서 독자로서 행복하고 그저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리고 좋은 번역이 있었기에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번역자분께도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 봅니다. 고맙습니다.



-메모 노트-



p161부터 브리엔의 시점에서 나이얼로 바뀜

p173

브리엔이 나이얼 엠벌린의 병원을 찾아가 그가 의사인 것이 거짓임을 알게 됨.

p176 의사가 아닌 환자 이송직원임이 드러남.

의사신분증을 주워 앰벌린이라고 사칭하고 다님.

p181 여자가~ 썩꺼져야 한다.

p186 브리엔의 총자산 13358000달러.

한화 약 1609639만원

p192 나이얼은 여자친구인 사만다를 통해 가짜 브리엔을 만드는 계획을 실행함.

p204 조지아주 정보처리 센터 엠벌린 의료기록 조회안됨.

p214 거짓말~ 신세가 되고 만다.

p222 3498997 달러

4216291385

p242 브리엔이 나이얼이 준 반지가 가짜 다이아몬드 반지인 것을 알게 됨.

p276

35년 평생~. 사만다의 나이를 통해 나이얼과 브리엔의 나이를 유추할 수 있음.




브리엔 두그레이: 자의식이 강한 여자. 외롭다. 사립탐정에 의뢰하나 웃음 거리만 됨. 사건을 스스로 헤쳐감.그녀가 원하는건 정상적인 생활. 집에서 동네 사람들을 관조하는게 일상.그녀는 조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수백만달러의 자산이 있고.의심이가면 끝까지 파고드는 편집증적 성향이 있음.

나이얼: 브리엔의 어머니 소냐의 양아들, 소냐가 뺏긴 부모의 재산을 찾으려고 브리엔을 다중인격자로 속인 후 정신병원에 넣고 브리엔의 재산을 빼돌려 도망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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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 눈의 여자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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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올빼미 눈의 여자> _ 박해로

<박해로> 작가의 <올빼미 눈의 여자>는 일반적인 공포 소재가 아닌 한국 특유의 무속신앙을 바탕으로 한 무속 미스터리 호러 스릴러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한자어나 단어가 거의 없어서 사전 검색을 거의 할 필요 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만 소설 속에 나오는 지역을 찾아봤는데 경상도에 섭주가 어디인지, 봉평 마을 끝의 강가에 있는 정자가 어디인지 나오지 않아서 궁금했습니다.-어쩌면 작가가 지어낸 것인지 나오지 않더라고요- 어느 평범한 공무원 기성이 9월 16일부터 20일까지 지방 시골 도시에 교육파견을 가면서부터 벌어지는 사건이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적 아픔의 시기라 할 수 있는 1997년 IMF를 겪은 세대의 이야기였습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은 정부의 일꾼이라 할 수 있는 국가 공무원이 되었으며 특별한 과실을 하지 않는 이상 강제 퇴직할 시킬 수 없음을 이 책의 프롤로그에 쓰여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당시도 그렇고 지금 현시대의 힘든 경제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직업이 주는 보장성이 얼마나 처절하면서도 간절했는지 서민의 애처로운 마음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 다소 선정적이며 기괴하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잔인한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올빼미의 눈을 가진 여인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정말 무서울 것 같았어요. 물론 공포 소설의 특성이 그러하듯 그 이면엔 올빼미가 신으로 모셔지는 <치효성묘>에 관한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설의 내용만으로 비추어 볼 때 무속신앙이 마치 사이비 종교처럼 보여 질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에 <작가의 글>에서 진실이 아닌 허구임을 솔직하게 알려주었습니다. 한국 고유의 무속신앙의 바른 정신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얘기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작가가 얼마나 많은 수고와 검증을 위한 정보 조사를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 진행이 어설픔 없이 굉장히 탄탄했으며 소설 장치들을 하나하나 마련하고 연결지어서 완성해간 노력이 글에서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사실 무속신앙은 이해되기에 난해할 수 있는 소재여서 처음부터 제대로 읽기가 어렵진 않을까 하고 선입견을 갖게 되었지만 어려운 한자어나 단어 없어서 가독성이 너무 좋았습니다. 머릿속에 인물을 비롯해 지역 배경과 사건의 상황들이 형상화가 잘 되어서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고 흥미진진했으며 이야기의 흐름이 해설 부분이라 할 수 있는 2부 전까지 끊김이 없어서 편하고 즐겁게 소설을 읽었습니다. 보통 스릴러의 일반적인 구성이라 생각하는 절단 신공이 없어서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한국의 무속신앙을 다룬 어떤 공포 영화나 소설 보다도 독특하고 기괴한 공포가 있었으며 꿈속에서 그려지는 상징적인 모습들은 하나의 예술 그림을 보듯 눈과 코와 귀와 촉감,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찐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음악 설정 또한 우리가 흔히 즐겨 듣거나 어른들이 노래방에서 불렀을 쉬운 가요들과 전통 악기인 대금의 설정은 너무나 한국적이고 익숙해서 반갑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한국의 미>라 할 수 있는 무속 의상과 한복도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현수와 연진이 머무르는 거주지 또한 전통적인 분위기와 이국적인 것들이 뒤섞인 독특함이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진행에 있어서 복선적인 설정을 눈치가 좀 있는 독자들은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았으며 내가 소설 속에 있다고 생각하며 주인공과 시련을 함께하며 사건을 풀어나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작가의 장치에 속아 넘어가기도 하고 예상대로 가는 부분도 있고 해서 더 긴장되고 사이다 같은 후련함도 있었습니다. 각 인물의 소품들과 주인공 기성의 악몽, 소설에 나오는 지역들 그 모든 것들이 사건의 복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전개상의 억지스러운 면과 비약 좀 심한 건 아닐까 하는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현실성이란 것을 초월하기에 이것이야말로 소설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고 매력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으나 기승전결의 세세함과 개연성을 따지는 일부 독자들에겐 질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치효성모>에 대한 그 근원을 알려주는 무속신앙 자료는 이 책의 이해를 돕는 것 같아서 흥미 있었으나 이야기의 흐름이 더디어지는 느낌이어서 조금은 지루함을 느꼈습니다. 사건의 진행을 위해서 빠르게 읽거나 생략을 하고 이후에 봐도 될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독자 개개인에게 맞춰 줄 소설은 없기에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봤습니다. 작가의 능력이란 소설의 캐릭터를 어떻게 독특하고 입체적이며 참신함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보는데 솔직히 처음은 다소 밋밋한 것이 아닌가 했으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입체적으로 바뀌는 인물들과 사건의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것에 궁금함을 가지고 속도감 있게 독서를 했습니다. 작가가 소설에 대해 얘기를 할 때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부분에서 공감이 많이 되었고 소설이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이해가 좀 더 되었습니다.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잔인함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회현상에서도 심심치 않게 드러나며 우리 가까이에 항상 있고 나 자신조차도 결국은 나를 위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이면에 선의에 경쟁에 의한 잔인함도 있다고 보는데 누군가는 결국 실패하고 그 실패자들 속에서 성공한 자들이 모든 부와 명예를 차지하는 것이 현 자본주의 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총체적인 경향인 것이 사실입니다. 이 소설에선 그런 것들이 훨씬 자극적인 표현들로 비수를 꽂듯 표현되어 졌던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 가장 소중한 가족과 친구를 배신하고 속이고 거기에서 더해 목숨까지 앗아가도 일말의 양심조차 없으며, 그것이 결국은 행복을 위한 과정이 되어버립니다. 지독한 잔인함과 슬픔은 교묘히 감추어져 가슴 속에 묻어 버립니다. 그렇게 욕심을 채우지만, 다시 비수가 되어 돌아오기도 하고 허무한 결말을 맞이하며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어버린 과거를 돌이킬 수가 없게 됩니다. 결국, 인간의 욕심은 그 값을 치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소설 속에서의 결말은 행복해 보이지만 그 이면엔 그렇지 않은 비극을 담고 있습니다. <박해로> 작가의 작품은 일반적이지 않은 독특함과 참신한 발상에서 나오는 깊은 철학적 깨우침이 있습니다.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는 순간 가만히 생각에 잠겨 책의 내용이 무엇을 전달하려 했고, 과연 나 자신은 무엇을 느끼고 감동한 건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현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이 이 소설 속에선 작가의 손으로 어떻게 녹여 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벌써 <박해로>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며 앞으로도 한국공포 문학의 계보를 잇는 좋은 소설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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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야성의 부름 - 문예 세계문학선 077 문예 세계문학선 77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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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렬하는 불꽃처럼 강렬하고 때론 고독하며 대자연의 웅장한 대서사시가 있었던 감동이 있었네요. 극적인 소설이었습니다. <야성의 부름>을 읽고 나서 마음의 요동침이 한동안 가라앉지를 않네요. 인간 세상은 참으로 잔인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전쟁이나 기근, 사람을 직접 죽이는 행위가 아니더래도 자유 민주주의 아래에 이 치열 한 경쟁 사회 자체가 참 무섭습니다. 물론 그런 게 있기에 사회가 발전하고 더 나아가 풍족해진다고는 하나 이 책에서의 적자생존 법칙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으며 약자에겐 가혹한 현실이라고 볼 수 있네요.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시대 인 걸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야성의 부름>은 제목에서 보다시피 정말 야성적입니다. 투박하고 거칠며 강하지 않으면 죽게 되는 잔인한 세계를 <벅>이라는 개의 시점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때로는 인간의 강압적이고 지배적인 행동에 살기 위해 굴복해야 하고 -몽둥이에 맞아 죽을 수도 있기에- 그리고 건강하지 못하면 결국은 동료 개들에게 죽임당하거나 주인의 손에 생명을 끊길 수밖에 없습니다. 썰매 개로서의 일을 못하게 되면 부족한 먹이 문제도 생기고 결국은 다수가 힘들어지기에 그것이 어쩌면 현명한 판단일 수밖에 없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알래스카의 혹독한 추위에 맞서서 무거운 짐을 실은 썰매를 끌며 개들 사이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싸움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비추어졌습니다. 그 안에는 위아래 서열 정리부터 시작하여 정치 공작으로 인한 살육이 있고 그곳에서 지게 되면 먹이가 되어 잔인하게 먹히거나 살아남거나 하는 부분은 어떻게 보면 개의 사회라고는 하지만 상징적인 관점에선 인간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 거침없이 느껴졌네요. 한 편의 누아르 같았습니다. <벅> 은 편안한 남쪽 지방에서의 삶에서 한순간에 납치되어 미국의 금광 시대에 썰매 개가 된 뒤 힘든 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적인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그곳에서 빨간 옷을 입은 개장수에게 몽둥이를 맡으며 느낀 두려움은 <벅>의 인생에 큰 깨달음을 주게 됩니다. 다른 다수의 평범한 약한 개들은 현실에 안주하며 거친 생활에 적응을 못 하여 죽게 되지만 <벅> 은 그것을 잘 알았기에 얼른 적응하면서 현명하게 대처를 하고 적자생존의 법칙을 인지하며 새내기에서 빠른 시간에 다른 개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게 되는데 그 과정이 참 가혹하고 냉정하게 느껴졌습니다. < 벅>은 주인이 주는 것만 받아먹는 척하며 약한 개가 아닌 강해지기 위해 주인과 선배 개들에게 썰매 끄는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고 먹이를 먹을 때는 얼른 먹지 않으면 뺏기기에 빨리 먹었으며 나중에는 다른 개들의 먹이를 뺏어 먹거나 주인이나 인간들의 먹이를 몰래 훔쳐먹는 대범한 행동을 합니다. 모든 게 결국은 살아남으려는 방법이었습니다. 순하고 약하면 결국은 다른 개에게 당한다는 걸 잘 알기에 사이가 좋지 않은 우두머리 개에게 대항하면서 다른 개들과의 사이를 교란해서 내 편으로 만드는 방해 공작을 하고 서서히 자기편으로 만드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으며 최후의 결전에서 승리하여 우두머리가 됩니다. 더 흥미로웠던 건 주인인 인간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방관을 해왔던 행동이었습니다. <벅>이 우두머리가 되었지만, 경험상 다른 개를 제일 앞에 끌게 하려고 했으나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승리자가 된 <벅>은 우두머리로서 인정받기를 원했고 다른 개들도 그걸 인정하기에 주인에게 반항하는 부분은 냉정했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 인생도 그렇듯이 만남이 있으면 기약 없는 이별이 있습니다. <벅> 역시 주인이 몇 번 바뀌었으며 그때마다 삶의 변화들을 맞이하게 되고 더욱더 처절해져 가는 생활 속에서 심연 깊은 곳의 야생의 이끌림을 느끼며 그 꿈을 좇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이겨내고 살아남았기에 꿈을 이루어 나가는 모습이 슬프고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론 아름다웠습니다. 냉정하면서도 주인에게만큼은 충성을 다 하는 모습도 멋져 보였습니다. 특히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손톱이 죽을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온 몸을 던지며 구해주고 때로는 손톤이 <벅>을 이용한 내기를 해서 이겨서 돈을 벌게 해주었던 부분은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무릎 '탁' 치며 즐거워했던 부분이었습니다. <벅>은 결국 야성적인 자연 그 일부가 아니였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도 선조들의 삶의 정보들이 유전적으로 입력이 되어 있으며 그것이 본능적인 행동으로 나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흔적이 있다고도 봅니다. 아무리 자연이 좋다고 한다지만 자연 일부가 되었을 때 가장 어울리고 평화로울 수 있으며 그것이 정서적인 건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강렬함,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늘 진취적이며 실천하는 생활로 정신 차리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시대상으로 지금과는 다른 배경의 소설이지만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사회주의와 <워버멘쉬> 적인 인간형의 모습, 적자생존 정신을 진지하게 바라 볼 수 있었으며 알래스카라는 웅장하지만 춥고 혹독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책을 통해서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은 인간의 진짜 인생을 여과 없이 보여준 생생한 삶의 현장을 <벅>과 함께 헤쳐나간 것 같았습니다. 사람이 아닌 개에게서 참된 인생을 배운다는 것은 이 책의 내용을 모르면 이해될 수 없겠지만 작가 <잭 런던>을 알게 되면서 <벅>도 작가 그 자신의 현재를 한 마리의 개에게 감정 이입을 하여 내면의 정신세계를 소설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삶 또한 풍파가 많고 처절했으며 이 책으로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되지만 사업의 실패로 쓰디쓴 패배의 잔을 마시게 되고 다시 또 일어나려고 많은 애를 쓰며 고생을 하게 되지만 그에게는 참으로 버거웠던 것 같습니다. 결국, 잦은 음주와 약물의 사용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 마틴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건 한편으론 마음이 아프고 짠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인생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존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책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책 <야성의 부름> 속에 인생이 또 있습니다. 작가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끼며 오늘 하루를 채워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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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코스트 블루스
장파트리크 망셰트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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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코스트 블루스 west coast blues >블루스 음악 장르 가운데 하나. 194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음악 장르로, 점프 블루스와 재즈 음악적 요소가 두드러지며 기존의 블루스보다 강하고 지배적인 피아노 연주, 재즈적인 기타 솔로가 특징이다.





 꿈과 예술의 나라 프랑스가 나은 스릴러의 거장 <장파트리크 망셰트> 의 소설을 읽으며 섬세한 묘사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에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핵심만을 파헤치는 이야기로 분명한 세트를 완성하는 플롯에 그저 감동했습니다.작가는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를 합니다. 얼굴의 형태와 옷을 입은 스타일, 성격 그리고 살아온 인생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맞닥뜨린 상황과 직업적인 부분까지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였습니다. 거기에 고급스러운 웨스트코스트 스타일의 재즈 음악이 있고 근사한 포도주와 진한 오크 향이 느껴지는 양주 <커티샥>의 감성과 함께 프랑스 도시 곳곳을 탐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보통 이 정도의 꼼꼼함은 개인적으론 일본 로맨스 소설이나 순문학 소설에서 느꼈던 것들이었는데 예상을 깨는 올망졸망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시나리오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타일의 느낌이었으며 결말은 비장함이 느껴질 정도로 외로우면서도 슬픔을 담고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작가 <장 파트리크 망셰트>는 오늘날 시나리오의 표본을 만든 선구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건이 있고 위기가 있으며 치유와 극복, 그리고 전투, 결말이 아주 예쁘게 다듬어진 느낌이었어요. 이야기 자체는 주인공 제르포가 정체 모를 두 사람을 사고 난 차량에서 구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곧 두 암살자의 추적당하는 흐름을 그리지만, 그 이면에는 부유층과 가난한 하층민들의 인생 끝과 끝이 있었습니다. 제르포는 대기업의 중간급 임원이자 성공적 인생을 사는 부유한 사람이며 두 딸의 아버지입니다. 그의 아내 베아 또한 부르주아 집안의 딸이었습니다. 행복한 그들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 두 암살자에게 암살의 이유는 지극히 단순했습니다. 여기에서 사람 목숨은 가볍게 여겨지게 되는데 그들에게 목표물에 대한 자비는 없었습니다. 만약 단순하게 일관된 추적을 하게 되고 총격이나 액션 장면 위주로 이야기가 집중되어 있었다면 이 소설은 재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의 천재적인 발상이 여기서 기지를 발휘합니다. 암살자 <카를로>와 <바스티앵>은 냉소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코믹 영화 <덤 앤드 더머>처럼 유머러스하면서 바보 같고 제르포를 추적하는 과정에선 서로 의견이 달라서 다투기도 하며 어설프게 짝이 없는 모습을 보입니다. 제르포를 목표로 한 첫 살인 시도의 장소였던 <생조르쥬르디돈> 해변에서의 모습이 그러했는데 살인 자체를 두고 그냥 무소음 총을 쏘거나 칼을 쓸 수도 있었지만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며 놓쳐버리게 됩니다.하지만 여기서 독자들은 제르포라는 캐릭터에게 다행이라는 동정여론이 생기고 그가 암살자들을 잘 물리쳤으면 하는 심리적인 동의를 하게 됩니다.살인을 하려 했지만 어설픈 추적 장면에서 느껴진 건 결국 그들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왜냐하면, 죽은 이에 대한 조의를 하고 좋아했던 것들을 기억하고 슬피 울며 소중한 물품들을 두고 가는 모습에선 암살자지만 동정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복수를 다짐하는 비장함을 느꼈습니다.소설 <웨스트코스트블루스>는 자연과 함께하는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제르포는 죽음의 위기 속에서 그것을 극적으로 이겨내고 치유의 시간을 갖는 동안 새로운 장소에서 그는 다른 인간으로 태어납니다. 그를 구해주고 도와주는 외딴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실과 거짓을 섞어 얘기하는 부분은 이야기 진행에 있어서 상당히 매력적이고 작가의 예리함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완전한 거짓이었다면 이야기 전개가 뒤틀어지고 개연성 없는 진행에 엉터리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반대로 모두 진실만을 얘기했다면 뻔한 진행이 되어 재미가 없었을 것 같았습니다.작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 주위에 있는 깊은 숲의 마을에 제르포의 도피처를 꽤 긴 글로 써냈습니다. 그는 부유층의 삶에서 가난한 불법체류자들의 소굴이라 할 수 있는 최 빈민층의 마을에 머무르게 되고 <라귀즈> 하사라는 노인이 죽음의 문턱에 있는 제르포를 기적적인 도움으로 살려냅니다. 벌목꾼들은 굉장히 무뚝뚝하면서도 그를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치료를 해줍니다.그곳에서의 시간 동안 제르포는 제르포가 아니였습니다. 그가 꿈꿔왔던 세상과는 다른 최악의 장소였었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요. <라귀즈> 하사와 함께 속세를 잊은 듯 새로운 일을 하게 되고 노인의 취미 생활인 수렵 활동을 통해 총을 쓰는 법을 익히게 되고 생명의 죽음 대한 두려움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이는 훗날의 복수극 연습 무대가 되었다고 봅니다.낯선 마을에서의 복수를 위한 치유의 시간을 보내며 파리에 있을 가족을 마음 속에 두고 제2의 제르포로 살아가며 <라귀즈> 하사의 손녀 <알퐁진>을 만나서 사랑 아닌 사랑을 하게 되는데 그녀는 함께 지내기를 원했지만 제르포는 거절을 하고 솔직하게 사랑하지 않는 다고 얘기를 합니다. 제르포는 자신의 가족을 잊지 않았으며 언젠가는 돌아갈 생각을 늘 해왔었습니다. 어쩌면 치정이나 불륜극으로 빠질 수 있었던 부분을 해결했던 것 같습니다.


<웨스트코스트 블루스>의 마지막.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이어서 독자의 궁금증에 대한 해결을 해주게 되는데 이야기의 시작에 등장하는 <알폰소> 그리고 미리 알려주는 죽음의 메시지. 그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욕심으로부터 시작되고 욕망을 채웠음에도 암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완벽한 방어를 위한 준비를 하고 강력한 집지킴이인 거대 맹견을 키우고 곳곳에 경보기를 설치해 놓았지만 늘 그는 죽음이 가까이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심리적인 관점에서 주인공 제르포의 행동에 대해 정의감을 실어주고 동질적인 마음을 갖게 해줍니다. 그가 이야기의 시작부터 걸어가는 인생을 관조하면서 더더욱 동의하게 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처단의 순간은 많이 잔혹했고 제르포에게서 광기 어린 시선을 느꼈습니다. 잔인함에 미학을 얹기는 싫었고 살인 자체에 동의하긴 싫었지만, 소설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 트라우마는 제르포에게 잊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이 소설은 비교적 짧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누아르 문학의 고전이며 명작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매력적인 이야기 진행도 끝내줬지만 웨스트코스트스타일 재즈 음악은 소설의 재미를 더했고 소설 속에 나오는 소품과 등장인물들의 스타일 또한 지금 시대에서 살펴도 괴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게 느껴졌습니다.


작가 <장파트리크 망셰트>는 시대를 앞서간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소설을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들면서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누아르 미스터리의 미학을 독자들에게 전하는지 알고 있는 천재적인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히 미스터리 문학의 예술가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의 명작 소설 <웨스트코스트 블루스> 를 시작으로 더 많은 작품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읽혔으면 좋겠습니다.그의 책을 읽으며 깊은 감동을 했고 아직도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가시질 않습니다.어쩌면 우리가 사는 시대의 쓸쓸함과 허무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장파트리크 망셰트> 그는 우리 시대 미스터리 소설계의 낭만주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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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탄생 -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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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탄생.


깊이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심리학의 깊이와 뇌과학의 신비로움 그리고 매력적인 스토리의 믹스셋.

그저 관객의 입장에서 느끼고 무의식적으로만 흘려 보냈던 이야기.그것을 뇌 과학적인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접근하면서 독자에게 긴장감을 갖게하고 왜 이 캐릭터가 매력적이며 스토리에 감동을 느끼게 되는지 예시를 들어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했습니다.중요한건 이책을 단순하게 읽고 덮을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다시 읽으면 또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을 하나의 와인 같은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작가적인 입장에서 진지하게 다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는 참 가치가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탄생>을 읽으면서 과연 작가들이 뇌과학을 이론적으로 알 고 글을 썼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이 책에서는 대작가 <세익스피어>의 <햄릿>이나 <리어왕> 등의 작품을 예를들어 그가 기존 정통적인 작법을 벗어나 천재성과 위대함이 있었다는 것을 작가의 과학적 해석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대사와 스토리를 다른 시각에서 심도있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지, 악역이지만 독자들로 부터 심리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태어나면서 겪는 유소년 시기를 거쳐 청년, 성인에 이르기까지 형성되는 자아와 그 뇌가 만들어내는 착오와 원시적인 욕망들이 무의식의 근본에 있다는 건 어찌보면 인간 본성의 치부를 들어내는 것 같아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제가 지금 느끼는 세상이 나의 뇌가 만들어낸 착각이며 그것이 진실인 것인양 믿을 수밖에 없고 남이 다르게 생각을 해도 나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뇌가 작용을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재미있는 건 그 남이라는 사람 조차도 자신의 뇌가 만들어 낸 착각의 세계에서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자신들의 뇌로부터 통제를 받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작법서적인 측면만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은 그 행복을 이루는 결과가 만족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헤쳐나가는 과정이 참 된 가치가 있고 뇌가 살아 숨쉬는 이유라는 것도 굉장히 와닿았습니다.

<P237 일각에서는 쾌락과 단기적 욕망의 충족으로 정의되는 '쾌락적' 행복을 전제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의미의 쾌락주의를 경멸하면서 "저들이 말하는 삶은 풀이나 뜯어 먹는 가축의 삶이다"라고 말했다.대신 그는 '에우다이모니아(행복)'의 개념을 소개했다.고전학자 앨런 모랄레스 교수는 에우다이모니아를 이렇게 정의한다"목적을 실현하면서 살아가는 것,번성하는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내일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마라.행복은 과정에 있다'란고 말했다.">

그리고 이야기의 매력에 대한
부분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P266, 이야기는 진실한 위안을 준다. -생략-
이야기의 마법은 현실의 사랑이 범접하지 못할
방식으로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준다. 이야기는 어두운 두개골 속에서 우리가 그렇게 외롭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선물한다.>

<P238,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도록
태어났다. 힘들지만 의미있는 목표를 추구하면서 번창한다. 뇌의 보상 기제는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이 아니라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상승한다. 무언가를 추구하는 과정들이 쌓여서 인생이 되고 플롯을 만드는 것이다.추구할 목표나 적어도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감각이 없다면 실망과 우울과 절망만 남는다.죽느니만 못한 삶이다.>

사실 글을 써도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누구를 위해 쓰는지, 내 위치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런 이유 조차도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은 저에게
나침반 같은 지침서이자 이야기를 쓰고 있는 이유를 알게 해주었고 그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많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제목부터 선입견을 가지고 안좋게 생각하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의 재해석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단순히 아동성애자의 그릇 된 이면을 그린 소설이 아니라 시작에서부터 독자가 느낄 것들을 하나 하나 심리적이고 뇌과학적인 측면에서 분석을 해주었습니다.
이는 <롤리타>라는 책 자체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 캐릭터의 매력과 소설 자체로서의 재미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결국 작가는 글을 통해서 독자들의 심리를 조정 하듯이 매혹적인 장치를 만들어 내야 지루하지 않게 독자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P210, 나보코프는 독자들이 처음 일곱 페이지를 읽고 정화의 불 속으로 책을 집어 던지지 않도록 아주 긴 지면을 할애해서 무의식 중에 우리의 부족적 정서를 조작해야 했다.-생략- 글을 서문 형식으로 넣어 본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험버트가 죽었다고 밝힌다.이 서문은 독자가 도덕적으로 분개하기 전에 김을 뺀다.그는 이미 부족적인 차원에서 응분의 벌을 받은 것이다.나보코프는 이야기의 첫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교묘히 독자가 소설을 즐기게 만든다.>

작가의 천재적인 탁월함과 매력적인 캐릭터, 스토리 전개가 이 소설이 얼마나 끌림이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결국은 행동을 해야 느끼 듯 책을 읽어야 제목만 보고 오해 할 상황들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작가는 우리가 이야기와 영화를 흥미있게 바라보는 이유가 인류의 기원이 원시시대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부족을 이루고 수렵 생활을 하며 사회 구성원의 하나로서 이미 마음 깊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맹수로 부터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에 노출이 되어있고 먹이를 사냥하기 위한 협업과 부족간의 전투를 통해 강한 것들만 살아남는 다는 것은 삶 자체가 이미 영화이고 이야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서양과 동양의 심리적인 시각적 차이를 오래된 시대적 역사를 예를들어서 보다 쉽게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서양은 좀더 공동체적이고 동양은 개인적인 성향이 깊다는 것이었습니다. 책의 말미에 있는 부록에서는 좀 더 작법의 이론적인 기술들을 나열해 놓아서 실제 글을 쓸 때에도 쓰일 수 있게 정리해 놨습니다.
이 책은 늘 곁에두고 보고 싶은 비밀스럽고 매혹적인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목 그대로 이야기 탄생의 이유를 과학과 심리학적인 접근으로 해석하여 좀 더 폭넓은 시각으로 소설과 영화를 바라 볼 수 있는 방법을 알게되었습니다. 작가로서 지루하고 매력없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근사하고 풍성하게 할 수 있는 해결점을 제시해 준 사이다 같은 책입니다.
물론 책을 한 번에 이해한다는 건 쉽지가 않겠지만 자주 찾아보며 진지하게 학습하면서 읽으면 작법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책을 읽은 순간부터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걸음 더 성숙하고 성장한 것에 대해 보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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