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이별 열린책들 세계문학 252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김진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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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기나긴 이별>_ 레이먼드 챈들러

 

이 책은 저에게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읽혔던 여러 소설의 아쉬운 면을 완벽에 가깝게 채워주었던 마법 같은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최애하는 소설 중 하나였으며 무려 12번도 넘게 읽었던 작품이라고 했죠. <기나긴 이별>은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이지만 그 안엔 많은 면을 담고 있는 소설적 선물 세트 같았습니다. 일단 문장이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자질구레한 꾸밈이 없지만 짧은 문장 속에 각 인물의 감정 상태와 겉표면을 섬세하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긴장감을 주면서 전개되는 내용은 속도감도 있습니다. 신기한 건 반세기도 더 된 시기에 나왔던 소설이지만 전혀 촌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뛰어난 작법과 훌륭한 번역가의 노고가 더해져서 읽는 이에겐 그저 행복하게 느껴지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필립 말로라는 인물은 단순한 탐정의 의미와 함께 다양한 캐릭터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테리 레녹스와의 첫 만남은 그저 술 취한 그를 필립 말로가 연민의 마음으로 도와주는 것에서 시작되게 됩니다. 그런 우연성이 나중에는 인간애적인 우정으로 보였습니다. 무뚝뚝하지만 말 한마디에는 진심이 느껴졌고 허물없는 마음으로 토니를 친구로서 대해줬던 모습은 따스함이 느껴졌습니다. 저도 그런 인간미를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현대 사회는 사람들이 함께 산다고 하지만 거주하는 공간 내에서 각 각의 독립적인 개체가 되어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서로의 사생활에 피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사회도덕적 규범이 있죠. 결국 혼자 인생을 살아가지만 마음 한편에선 인간애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저부터가 느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필립 말로와 토니의 우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면서도 사회의 지배계층과 그 아래 검찰과 경찰의 불합리한 탄압에 맞서서 용감하게 대처하며 그들을 농락하는 모습을 볼 때는 유머러스함에 통쾌하게 웃기도 했으며 현시대의 사회 부조리를 어쩌지 못하고 그저 언론 매체를 통해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 답답해하던 국민 개개인의 고초를 소설에서 나마 사이다를 마시 듯 청량하게 해소해 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신기했던 점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느껴졌던 것들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을 모방했다라기보다는 하루키도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정말 좋아했다는 것이 글에서 분명하게 느껴졌습니다. 필립 말로는 1인칭 시점에서 문장의 속도감이나 특별한 상황에 따라 그가 독자들에게 만담을 하듯 처해진 상황과 감정의 변화를 설명해 주며 심리적인 동질감을 이끌어 냅니다. 이는 곧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공감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작가의 문장에서 느껴지는 섬세함은 레이먼드의 성격을 어느 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영국 해군성에서 일을 했으며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언론사 기자로 일을 하다가 40대에 들어서 작가에 입봉하여 그 시기에 소설이 대성공을 거두어 뒤늦게 빛을 본 작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의 소설을 읽으며 꼭 어릴 때부터 태어나서 잘 한다고 천재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그는 완벽하고 매력적이며 작가입니다. 음악가로 보자면 베토벤 같다고 할까요. 진하고 깊었으며 터프한 문장과 함께 남자다움이 느껴졌습니다. 그의 소설은 제 필수 소설 목록에 들어가서 두고두고 읽히는 책으로 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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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이렇게 쓴다
나카무라 구니오 지음, 이현욱 옮김 / 밀리언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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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가 가장 최애하는 작가이며 그가 쓴 소설의 일부를 필사하며 배워보려고 꽤나 노력을 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알게 모르게 그의 스타일이 내 소설에도 녹아 있었다는 사실을 하나 하나 알게 되면서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구나하고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했던건 객관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소설의 일부를 예시하여 어떤 방식으로 쓰였던 것인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특히 소설의 제목을 설정하는 부분에서 그가 길게 썼던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내가 쓴 몇작품도 의식이 아닌 무의식적으로 그의 스타일을 따라했다는 건 재미있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장르적으로 나누면 수필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저는 소설쪽에 가까웠습니다. 뭔가 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가 있고 기묘했으며 어렵지 않은 단어와 문장은 그의 소설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소설이 읽는 이에겐 쉽게 쓰였다고 보여질 수 있겠으나 이 책을 통해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도 훨씬 계획적이고 체계성을 갖추어서 글을 썼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그의 부지런한 면과 얼마나 자기 관리를 잘 하는지 알 수 있었던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단계를 밟아가며 글을 써오지는 않았기에 그저 그의 작법을 따라하는 수준이지만 어쨌든 그것만으로도 하루키적 소설을 나도 어설프게 나마 쓸 수 있다는게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소설에는 특이성과 함께 읽고 나면 깊은 여운이 남고 다시 한 번 소설을 되돌아 보게 되는 마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규칙을 제대로 분석하고 서술해서 어떻게 훌륭한 글을 쓴 건지 분석해 놓은 작가 <니카무라 구니오>의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는 그를 좋아하는 작가 뿐만 아니라 작가지망생과 팬들에게도 유익한 내용들로 꽉 채워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하루키가 될 수는 없겠지만 매력적인 글을 쓰는 바탕이 되어 줄것이며 그의 글이 왜 재미가 있고 쉽게 읽히면서도 깊은 깨달음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전문가의 글을 읽으면서 이해하면 하루키의 소설을 알아 가는데 조금은 더 쉽게 다가설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물론 그의 작법을 바탕으로 저의 글을 쓰기 위해 노력을 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 책을 일회성으로 한 번 보고 말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참고하며 글을 쓰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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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환자
재스퍼 드윗 지음, 서은원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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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그 환자>_ 재스퍼 드윗

 

이 책은 첫 장부터 끌림이 강했던 책이었습니다. 저자도 필명으로 되어있고 정보조차 알 수가 없었으며 실제 겪었던 일을 기록한 것이라고 해서 긴장감을 가지게 했었죠. 거기다 이 글이 의사들의 포럼이었던 온라인 사이트에 올려졌던 글이라고 합니다. 물론 현재는 오프라인으로 전환되었다고 하며 마치 이 책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처럼 긴장감을 가지게 했죠. 작가는 책에 나오는 인물들과 지역, 병원 등의 이름을 가명으로 바꾸어서 정보들을 철저하게 가리는데, 본인 의사 경력에 대한 보호와 소송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합니다. 바로 사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그 환자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파커라고 하는 명문 의대 졸업생이 여차 친구를 위해 그녀가 거주하는 곳 가까이에서 취직자리를 찾던 중 코네티컷주 어느 정신 병원에 일하게 되면서 30년 동안이나 입원해 있던 극도로 위험한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을 그린 메디컬 스릴러라고 봤습니다. 대체 어떤 환자길래 그토록 오랫동안 정신 병원에 있었으며 의사와 간호사들조차도 접근을 극도로 꺼릴 정도로 위험한 인물이었는지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파커조차도 발설하면 위험할 것처럼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일단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소설은 작가가 직접 밝히진 않았지만 일종의 <페이크 다큐>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도와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글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그것 때문에 속았다는 유치한 기분에 휘말리는 것은 없었지만 적어도 이 책의 소개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끌림과 초중반까지는 병원의 모든 관계자들에게 극도의 두려움을 주었던 그 환자 조라는 인물은 소설 안에서 굉장한 매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정신과 치료 관련 소설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망상, 정신분열, 꿈, 다중인격, 정신적 조로증, 야경증 등의 소재는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습니다. 그러나 꿈과 현실의 이면에서 어느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소설을 읽어나갈수록 헷갈렸습니다. 특히 조가 꿈을 꾸면서 만들어내는 괴물의 모습은 마치 이 소설이 할리우드 영화 제작을 겨냥한 듯한 것처럼 보여서 스릴러 소설의 본질을 흐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소설 초반부터 이어지는 조와 관련된 인물들의 자살은 처음은 소설 전개상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 이해했지만 종반을 치닫을수록 굳이 이 인물이 조로 인해 이상한 정신병에 걸리게 되고, 자살해야 했나 싶을 정도로 이상했습니다. 그러기엔 그 동기와 인물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굳이 극단적으로 캐릭터를 희생할 필요가 없어 보였습니다. 사실 어떤 인물은 사건 해결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작가는 마치 벽을 만드는 것처럼 정보를 차단하며 희생시켰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조는 사람인지 괴물인지 모를 알 수 없는 능력으로 타인의 꿈에 드나들기도 하고 어떻게 알아냈는지 상대방의 정신적인 내면의 스폿을 건드려서 스스로 죽게 만드는 것 또한 개연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또한 생뚱 맞게도 조는 파커의 가장 소중한 여자 친구를 습격해서 심각한 부상을 입히고 이로 인해 그녀가 박사 과정을 포기하게 만드는 부분도 그를 망가트리려고 한 시도로 볼 수 있겠지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어 보였고 굳이 그렇게까지 캐릭터를 망가트릴 필요가 있었나 싶었습니다. 사실 <그 환자>에 대한 기대감이 컸기에 실망감도 컸던 것 같습니다. 명작<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박사의 오마주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과 설렘도 있었습니다. 이 소설이 영화화가 돼도 사실 기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소설 제작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개인적으로 매력적이지 못한 이 소설은 실망이었습니다. 물론 취향이란 것이 있기에 재미있게 본 사람도 있었겠지만 첫인상은 너무 괜찮았습니다. 그렇지만 내용을 알고 나서는 깔끔하지 못한 미완성의 작품으로 보였습니다. 그 때문인지 이 소설에 대한 분석을 깊게 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고 솔직한 심정을 적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이야기 전개 또한 최소화하여 스포일러는 가급적 안 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연출가의 능력과 유능한 감독으로 인해 재해석된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드물긴 하지만 소설보다 영화가 더 빛나 보이는 것이 될지 작은 기대를 다시 가져봅니다. 읽은 것을 후회는 안 하지만 적어도 이런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안목을 가진 것이 저에게 중요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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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간의 표류기, 헨드릭 하멜 다문화 인물시리즈 6
박현진 지음, 이은혜 그림 / 작가와비평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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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13년간의 표류기 헨드릭 하멜_ 박현진

 

 

 

다문화 시대에 살고 있는 현재. 국내에 이런 책이 있다는 게 참으로 독특하게 와닿았습니다. 저는 그저 고전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단순한 책은 아니었습니다. 한국 역사를 거슬러 외국인이 체류하며 겪었던 실제 이야기를 시리즈로 엮은 책이었어요. 그래서 선입견을 가지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네요. 물론 나열된 인물들이 나라를 크게 빛낸 위인이라고 할 순 없지만 헨드릭 하멜이 조선이라는 나라에 14년간 머물면서 기록한 것들은 한국과 네덜란드의 역사적 사료가 되기에, 그는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글을 쓸 줄 몰랐다면 하멜 보고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기록으로 남을 수 없었겠죠. 어찌 보면 기록을 남겨준 그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새로움을 알아 간다는 건 마음부터 설레는 것 같습니다. 특히 타국에 머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신비롭죠. 물론 하멜은 여행이 아니라 표류였습니다. 그 말인즉 자의적인 게 아니라 자연재해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기적같이 살아남은 인물이죠. 책을 읽으면서 당시 조선이 처했던 상황을 보면 안타까웠습니다. 병자호란으로 나라의 왕이 굴욕을 당하고 중국 청나라에 대한 복수를 준비하던 중이었고, 하멜 일행의 포제작 기술은 분명 조선 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군사적 기술을 받아들여서 발전시키고자 했으며 청에 대한 보복 전쟁 계획이 알려질까 봐 하멜 일행을 조선에 머물게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처우가 항상 좋지만은 못했습니다. 악덕 관리를 만나면 힘든 노역을 시켜서 괴롭혔죠. 반대로 이원진 목사, 이도빈 수사를 만났을 땐 호의적이게 대해 줘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도빈 수사는 당시 조선은 재해로 인해 나라 상황이 좋지 않아서 하멜 일행을 관리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은근히 돌려 말하며 탈출을 하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죠. 물론 그 부분은 왠지 픽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에 조선이 하멜 일행과 대화를 잘 해서 네덜란드와의 국제적 무역의 길이 트이고 서구의 앞선 문물과 우리 문화와 잘 융합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국제적 무역의 중심에 서서 미국이나 영국, 중동 국가들과의 교역이 성공적이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분명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며 한 맺힌 굴욕의 역사도 없었을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더 아팠던 건 하멜이 조선을 탈출하여 일본을 거쳐 본국으로 돌아간 후 보고를 했고 네덜란드는 조선과의 교역을 시도하려고 배를 보냈지만 일본이 그 무역을 독점하려고 방해 공작을 하여 실패되었다는 것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또 마음 아픈 일들이 생겨나는데 곧 경신 대기근으로 우리나라가 자연재해로 인해 끔찍한 피해를 당하는 역사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친근감을 주기 위해 승현이라는 어린이와 그의 할아버지가 하멜 전시관으로 여행을 떠나는 설정을 하고 있으며 아이들에게 교육을 하기 앞서 부모님들을 위한 참고 글도 앞에 먼저 나와 있어서 바른 교육을 위한 길잡이를 알려 주었습니다. 이는 곧 다문화 가족 시대에 들어선 지금, 올바른 역사적 인식과 타문화에 대한 바른 인성을 아이들에게 교육할 수 있는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귀엽고 재미있는 삽화들과 사진은 아이들에게 흥미를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생각보다도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머무른 역사가 있어서 놀라웠습니다. 다문화가 발달되어가는 시점에서 이 책을 접한 건 다행스러우면서도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책이지만 큰 뜻과 많은 의미를 담은 흥미로움이 있어서 앞으로도 아이들을 위해 어른이 먼저 읽어야 할 책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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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공장
엘리자베스 맥닐 지음, 박설영 옮김 / B612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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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공장>_ 엘리자베스 맥닐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한 아이리스의 비극적 탈출-

 

 

 

1850년대 산업혁명시기의 영국은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라는 책에 현실성있게 잘 나와 나와있으며 2005년에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어 전세계에 그 어두운 역사의 기록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초석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도시로 이주한 서민들의 피와 땀과 목숨이 서려있는 슬픔이 있었습니다. 비단 증기기관 뿐만 아니라 아기 분유의 탄생은 영양 실조로 인해 엄마의 젖이 나오지 않아서 굶는 아기들의 모습을 보며 우유를 건조시켜서 개발을 한 것이었고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설탕은 영양가는 없으면서 고열량이어서 굶주림으로 목숨이 오가던 산업 노동자들에겐 살기 위해 먹을 수 밖에 없었던 끔찍했던 과거를 담고 있는 식료품이 였습니다. 더군다나 상하수도 시설이 없었던 당시에는 길가에 사람들이 배설한 오물들이 그대로 있었으며 여성들의 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하이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오물들을 조금이나마 피하고자 발명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더해 땅에 비가 내리면 온 세상이 오물 천지였죠. 대규모 전염병이 창궐 했던 것도 어찌보면 그 이유에서 시작된 것이 라고 합니다. 작가 엘리자베스 맥닐 의 소설 <인형 공장> 은 산업 혁명의 시기에 있던 영국의 민낯을 여과 없이 표현했으며 상류층과 빈민층의 삶을 대조하여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인형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리스라는 빈민층의 여인과 상류층 화가 루이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시작된 로맨스를 그렸으며 동물 박제 수집가 사일러스는 아이리스에 대한 집착과 광기 어린 짐승같던 모습을 매우 자극적이며 소름끼치게 보여줬습니다. 그녀를 사랑하다 못해 망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죠.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요. 사랑은 신성하고 위대하며 아름답고 힘을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로이와 아이리스의 사랑은 분명 비현실적이고 비도덕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두 사람의 사랑도 어떻게 되었는지 소설은 끝을 보여주지 못한 채 끝나버렸구요. 작가 엘리자베스 맥닐을 감동하게 했던 작품 <오필리아> 의 그녀처럼 아이리스는 내용적으로는 비극적으로 끝맺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를 좋아해서 특유의 긴장감 있는 전개를 기대 했었지만 다소 약한 면이 있었고 로맨스라 보기에도 불완전했으며 결국은 작가의 소개글에 잘 나와있 듯이 아이리스라는 여인이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한 비극적 탈출을 그린 드라마라고 보는 것이 맞는것 같았습니다. 특이하고 진귀한 물품들의 대규모 전시회인 만국 박람회와 <라파엘전파형제회> 미술가들의 활동. 그들과 함께했던 그림 모델 아일리스는 고급스러웠지만 도시 곳곳에 자리잡은 영국 빈민층의 처절한 삶의 모습들은 마치 내가 그 시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이리스는 어떻게 보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나타내는 인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녀와 언니 로즈는 신체적인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었습니다. 아이리스는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지만 태어날 때 쇄골을 다쳐서 비이상적으로 한쪽 어깨가 내려가 있었고 걸음걸이도 어색했습니다. 언니 로즈는 어린 나이에 수두에 걸려서 예뻤던 얼굴에 곰보 자국이 생겼고 한 쪽눈은 하얗게 되어 실명이 되었습니다. 당시 영국 사회는 빈민층의 아기들은 질병없이 온전하게 자라는게 현실적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 병 때문에 로즈는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편지로 이별 통보를 받게 됩니다. 이처럼 겉모습까진 아니더라도 우리는 내면에 말못할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 합니다. 꿈이 있어도 내면의 상처 때문에 원치 않는 인생에 구속되어 어쩔 수 없이 수긍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실 참 많습니다. 현실이란 건 결국 먹고 살기 위한 금전적인 수입을 나타내는데 진정으로 꿈꾸던 길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타인을 위해, 그리고 가까이에는 가족들 때문에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형 공장에서의 아이리스는 메마른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단물을 짜내 듯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화가의 꿈을 품으며 살았습니다. 가족과 인형 공장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하는 모습은 통쾌함과 대리 만족을 경험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과감하게 현실에서 탈출하여 꿈을 향해 떠나는 모습은 대단히 용기가 있었으며 쉽지 않은 모험이었고 더 나아가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떠나면서도 언니 로즈에 대한 사랑은 변치 않았고 그림으로 큰 돈을 벌게되어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도 그리움에 편지를 하며 재회를 꿈꾸는 순수함도 있었습니다. 짜여진 틀과 익숙해진 삶을 깨고 나오는게 어렵다는 건 대부분의 독자가 공감 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녀가 집을 나서기 까지 부모가 협박을 하며 내친 건 정말 잔인했습니다. 질투와 무시와 경멸 속에서 그녀는 끝까지 버텨왔던 것입니다. 아이리스는 그 고정된 관념을 깨고 나와서 정말 열심히 화가의 꿈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일면 일식도 없었던 화가 루이가 그리고 있는 작품 <기주마르의 여왕>의 모델로서 선택되어 모종의 거래를 한 뒤에 협력적인 관계로 한 집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물론 그들의 만남에는 사일러스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루이와 아이리스의 만남이 그녀를 인형 공장에서 나오게 했고 나중에는 연인으로 발전 해서 이것이 로맨스 소설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루이는 결국 아내 실비아가 보낸 친아들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숨겨왔던 부부의 존재가 드러났고 그 때문에 믿음을 배신 당한 아이리스는 배신감에 도망치듯 떠나게 됩니다. 사실 유부남과의 불륜은 진부 할 수 있지만 로이와 아일리스가 육체적 관계로 승화되기까지의 심리적인 갈등과 사랑할 듯 말 듯 애매했던 감정선이 있었습니다. 두 인물의 긴장감 속에 채워지는 로이의 자상함과 배려는 상처받은 아이리스에겐 진정으로 꿈을 좇게 되는 촉매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둘의 관계가 흥미로웠습니다. 배신감을 느끼기 직전 아이리스와 루이가 깊은 밤 온 몸을 적시며 호수에서 나눴던 포옹은 마치 고요한 달빛 아래 오묘하고 기운이 넘치는 메밀밭 위에 있는 두 연인의 모습처럼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그 부분이 두 사람의 감춰진 진심이 드러났던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두 사람 위주의 전개가 적지 않게 실망이긴 했습니다. 기대를 했던 스릴러의 긴장감이 느껴지질 않아서 처음에는 다소 지루함이 있었고, 소설의 소개글에선 마치 사일러스와 아이리스의 스릴러적 전개가 주를 이룰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소설 중반에는 사일러스가 존재감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아이리스를 구속하게 되는 동기가 생각보다도 약하게 느껴져서 현실성이 떨어져 보였습니다. 사일러스는 그가 어린 시절 좋아했던 플릭과의 추억에서 아이리스를 동일시하여 사랑에 빠지게 되었던 건데 그것만으로는 좀 약했던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일러스의 인물 설정을 보면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을 다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엔 친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를 간절히 바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좋아했던 플릭은 사일러스를 무시해서 결국은 살인을 당하게 되죠. 소설의 절정으로 치닷게 되면서 사일러스는 아이리스를 납치하는데 성공을 합니다. 타이밍이 절묘하게 잘 맞았는데 루이가 아내 실비아의 임종 임박 편지를 그의 여동생으로부터 받고 떠나야 되는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여기에서는 아이리스의 광기 어린 질투와 루이에 대한 분노, 집착이 폭발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부분에서 아이리스는 분명 악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비아의 남편으로서의 인간적인 면모와 양심적인 모습과 대조되는 아이리스는 마치 사일러스를 보는 듯했습니다. 결국 루이는 아이리스와의 사랑을 약속하며 떠나지만 그녀는 분노합니다. 그리고 사일러스의 작전으로 그녀가 납치 되면서 전개는 납치극이 되지만 예상과는 달리 납치범답지 않은 선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를 죽이는게 목적이 아니라 자기 인생속에 완전하게 사육하고 싶어하는 광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에로스적인 사랑이 아닌 아가페적 사랑이였다는 것에서 의외성을 느꼈습니다. 그는 지하 밀실에 그녀를 의자에 묶어 가둬놓고 영원히 친구가 되어주기를 바랬습니다. 결국은 그런 그녀를 바뀌게 해서 내 여자로 만들겠다는 욕망 어린 꿈을 가지고 소설 쓰듯 망상에 빠지게 되지만 그의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지하 밀실은 1850년대의 영국이었고 아이리스는 사랑과 꿈을 포기하지 않는 서민이었으며 사일러스는 그런 그녀의 꿈을 짓밟고 자기 인생에 가둬 놓으려는 방해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로즈나 그녀의 가족처럼 보여지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여자로서, 인간적으로서 자존심이 짓밟히는 오물을 쏟아내는 장면은 너무나 처절했고 공포 그 이상의 그로테스크였습니다. 사일러스 조차도 아이리스의 그런 모습에 환상이 깨질 정도의 였으니까요. 축축하고 어두우며 더러움과 굶주림의 고통 속에서 그녀는 서서히 지쳐갔으며 죽음과 삶의 이면은 종이 한장 차이처럼 희미해져 갔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겐 루이의 사랑이 있었고 자신의 그림이 영국왕립미술관 전시회에 걸리는 꿈을 끊임없이 꾸며 희망을 져버리지 않았습니다. 여종업원의 죽음때문에 사일러스를 의심하는 술집 마담과 경감의 등장으로 구조의 손길이 미치고 루이와 그녀의 언니 로즈로 인해 구조 될 뻔하는 아슬함이 있었으나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꿈이란건 꺼져가는 목숨을 겨우 이끌어서도 혼자 해내할 것이며, 처절하고 외로운 인생 길이란 것을 느꼈습니다. 첫번째 탈출의 실패와 두번째 시도에서 사일러스는 의자에 고개를 숙이며 창백한 몰골로 있는그녀가 사망했음을 착각하며 굉장히 슬퍼했습니다. 아이리스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그를 공격하며 탈출을 하게 되고 끝까지 거머리처럼 들러 붙는 사일러스를 박제품 인생에 가둬놓으며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사실 그 이후의 삶이 당연히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작가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고 독자들에게 상상의 숙제를 맡긴 채 마무리를 지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의 행복한 끝이 아닌 미완성의 비극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것은 독자의 생각에 따라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흐린 영국의 하늘처럼 우울하며 처철한 느낌이 한동안 가시질 않았고 각 등장 인물의 모습을 하나 하나 떠올려 보면 모두 슬펐습니다. 과연 그들에게 행복이란게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작가는 결국 소설속에서 비극의 주인공을 그린 그림 <베아트리체>,<오필리아>를 만들어 냈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 황홀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죽음. 이 소설을 완성한 작가 엘리자베스 맥닐의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예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의 감동과는 다른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과연 이 이야기의 속편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소설이 드라마화 되어 나온다고 하던데 내심 기대를 하며 기다려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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