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국 교수의 자유론
민경국 지음 / 북코리아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_자유론_민경국_북코리아


진정한 자유라고 하는 것은 강제가 없는 상태다.
의회가 수단으로서의 민주주주의가 아니라 목적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되어버렸다.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국가의 권력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공동 사회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원시 사회에서 내세웠던 방식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도덕은 원시 사회의 도덕률이 아니다. 정직과 신념이다. 집단주의 공동체주의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가 아니다. 우리 나라는 시장의 도덕과 원시 사회의 도덕이 맞붙어 있는 상태라고 한다. 지역주의란 것은 원시적인 사회 패턴이었다.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 수단으로 삼은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국가의 권한도 작을수록 좋다고 한다. 정부 조직도 작을수록 좋은게 자유주의자들의 출발점이었다. 인위적으로 사회를 만들면 실패를 한다고 한다. 시장은 자생적 질서로 생성되어야 한다. 

공동선을 따지면 우리는 이 세상을 너무 성선적으로 보는 것이다. 인간이란 원래가 부족한 존재이다.인간이은 본능적으로 선한 존재라고 한다. 거대한 사회는 어울리는 도덕이 있었다.

자유라는 개념을 정립하는건 쉽지 않다. 
자유는 강제가 없는 상태이다. 특히 국가
의 강제가 없어야한다, 국가의 강제가 없어지면 자생적으로 질서가 생긴다. 강제가 없는 자유라는 것은 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방종이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자유는 탐욕을 조장하고 이기심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현 국가는 개인을 존중하는 것이 없다. 필요하면 세금이라는 것으로 뺏는다. 

'자유론'에서 국가가 개인의 재산을 세금으로 뺏는다는 표현은 굉장히 놀라웠다. 100프로면 다고, 20프로면 20이 공익의 이유로 강제 당한다는 것이었다. 개인 사이의 강제는 있다. 기업과 직원의 관계가 그 예였다. 그런 강제도 중요하지만 사회주의 계획 경제에서의 강제에서 우리는 탈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강제라하면 직장을 옮기면 되었다. 

반기업정서라는 것이 있다, 가진자에 대한 질투심 같은 것이었고 여러 가지 작용을 한다. 기업이라고 하는 것은 원래 생산적인 존재로 보지 않았었다, 그건 원시시대의 관점이었다고 했다. 기업과 자영업의 선택권을 주면 대부분 안정적인 기업으로 가는 것이 보통이다.

'프리덤'과 '리버티'라는 자유 개념이 다르다.
'프리덤'은 뭔가 내맘대로 되지 않은 무제한적인 자유이고. 리버티는 절제가 있는 자유를 뜻하는 건데 우리 말로 보면 하나여서 햇갈릴 수 있다, 우리는 자유라는 것이 무엇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강제가 없는 상태의 자유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유는 역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이고 그것이라면 심리적인 것이다. 세금으로 국민의 재산을 뺏어가는 행위가 남발이 되고 있는데 개인의 자유에서 중요한 것은 사적 소유의 자유였다, 민경국 교수님은 요즘에 양산되는 법을 보면 국민들의 돈을 뺏어가는 말도 안되는 자유를 내세우고 있다고 했다. 이 상황을 해결하려는 근본적인 방법은 우리 사회에서는 경제적인 자유라고 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시민적 자유가 중요했다. 언론의 자유, 정치적 자유. 정치적 자유와 개인적 자유를 햇갈려 하고 있다. 사적 소유의 자유는 근본적으로 중요시 하지 않았는데 경제적 자유를 없애버리면 민주적 자유가 없어질 수 있다. 그러한 자유를 누리려면 경제저 자유가 있어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 바꿔야 하는 패턴은 소유가 없으면 자유도 없고 경제도 없다, 라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소유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재산을 모을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 내가 얼마만큼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적 소유를 인정해야 한다. 그런게 없으면 자유 자체가 없어진다고 볼 수 있다. 경제적 자유는 그만큼 중요하다. 소비자 입장에서 하자가 있다거나 기능상 좋지 않은 것이 있으면 환불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민주주의와 시장의 원리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민주주의 체계는 그런게 없었다. 우리는 자유보다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더 인정하고 있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시장이라는 것은 소비자한테 봉사하지 않으면 무너지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해야 돈을 벌수 있는데 정치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없이 지배를 하려 든다고 한다. 
저자는 경고했다.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가 위태롭고 다시 독재주의로 가려고 한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려 한다.

현 체제를 다수결의 체계로 바꾸는 건 쉽지 않다. 그렇다고 혁명을 일으킬 수도 없는 시대다. 
현재 민주주의 체제라고 하는 것이 사회주의 체제에 적합해 있다, 많은 나라들이 사회주의로 기울어져가고 있다, 시스템적으로 하자가 있어서 이런 분위기를 야기하고 있다, 현재 정치제제는 개입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국가란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주머니를 강탈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체제가 면세 대상자가 40프로 가까이 되고 있다. 모든 걸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가져다 붙이고 있다.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것이 현 민주주의 였다. 끝없이 적을 양산하는게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우리 사회도 민주주의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민주주의 보다는 자유주의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다수의 지배냐 이고, 자유주의는 주권재민이다.

주권재민.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정치적으로 후진국이 이런 민주주의를 수용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이 나라의 주권이라는 것. 우리 나라 법에는 사회주의적인 것이 많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그런 것 조차도 의식하지 못했었다.. 급조된 헌법이 많다고 한다. 이는 개인의 자유를 무차별적으로 침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법은 윤리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 때 윤리는 정의로운 행동 규칙이다, 정의로운 것이라는 것은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특졍한 목적이 있어선 안된다, 우리 법은 차별적인 것이 많다, 누구를 위한 특혜를 위한 법은 있어선 안된다, 그건 법이 아니었다. 법을 지키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법이 갖춰야 될 합당한 점을 갖추고 있는게 진정한 법치다. 준법정신이 법은 아니다. 권력을 제도화하는 건 절대 법이 아니다 그렇게 간다면 나치 시대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법다운 법이 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이냐, 적법성이라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도덕성이 중요하다. 바이마르 헌법은 사회주의 법인데 그런 법을 우리 나라가 답습을 했다.

이 책은 절대로 어려운 책이 아니며 쉽고 흥미롭게 쓰여졌다고 한다. 어려운 책을 안읽으려 들면 안된고 생각한다, 그 핵심과 본질이 뭔지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공부를 하여 지식수준을 높게 할 필요가 있다. . 
현 국가에서 삼권 분립이라는 것은 틀린 것이었다. 입법, 사법! 행정만 있는게 아니라 진정한 한 삼권 분립은 의회의 입법권을 제한 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애덤스미스가 정의 규칙에 해당되는 법은 법이 아니다. 그런 법을 제정 할 수있도록 의회의 입법권을 제한 할 필요가 있다. 그냥 삼권 분립은 단순히 나누는 것이다. 법이 법 답게 갖춰야 하는 조건을 지키기 위한 것이 법다운 법이라고 한다. 적법성 이전에 중요한 건 법다운 것이다. 법이란 것은 차별 되서는 안된다. 

정의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건물이 붕괴되는 것이다. -애덤스미스-

민주주의 라는 것은 정말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지배인데 진정한 자유주의로가서 지도자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시스템으로 이행을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체제유지는 어렵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방어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체제가 유지가 된다, 그 체제가 헌법이라는 것이다. 현 국내의 헌법은 그것이 갖추어지지 않고 있다.

이상에서 민경국 교수님의 <자유론>저서와 강의를 토대로 써보았는데 사람은 보다 현명하게 살아야 할 것 같다. 나라가 시키는 대로 그저 하자는 대로 따라가다간 자유주의는 고사하고 다시 국가주의, 사회주의 국가로 돌아갈 것 같다. 이 책은 진정한 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학술책처럼 아주 어려운 책도 아니었다. 하지만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있는 현시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며 깨우칠 필요가 있었다. 
정치적인 얘기를 하는 건 개인적인 사안이기에 조심스럽지만 결국 자유주의는 현 정부의 정책과 정치와 연결되어 지는 것 같았다. 자유주의의 본질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것이 미래에 다가 올 우리 나라의 현실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범인 없는 살인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_범인없는 살인의 밤_히가시노 게이고.




등장 인물들이 여럿이라 처음부터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누가 누군지 햇갈릴 것 같아요. 사건은 안도 유키코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독특함이 있는 전개였어요. 재벌가 부부와 아들 둘, 그리고 교사가 사건을 덮으려고 합니다. 일단 독자에게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공개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죽인게 맞지만 일행 중 한명이 경찰에 알리자고 하자, 후환을 두려운지 덮자고 의견을 모읍니다. 일단 계획적 살인이 아니고 우발적 사고로 느껴집니다. 그들이 알리바이를 맞추는 모습은 곧 있으면 들통 날 것 같은 긴장감을 줍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긴장감, 갑작스레 닥친 안도 유키코의 오빠 안도 가즈오. 증거도 없이 심증만으로 유키코의 행방을 알아보려 하자 여유있게 상황을 피하는 소스케. 
단편이라 그런지 빠르고 경쾌한 진행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하는 몰입이 있네요. 다소 어설퍼 보이는 살해 용의자들의 대화들이 오히려 더 흥미를 주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어지는 형사들의 등장. 마치 사건의 핵심을 알 듯, 모르는 듯 하면서도 스무고개 게임을 하는 것처럼. 의심가는 자들을 끌어들이는 상황이 재미있습니다. 하나, 둘 퍼즐을 맞춰가 듯, 결국은 완성을 시키고야 마는. 그러나 생각지도 못 할 반전이 있었습니다. 기가막히게도 말이죠. 그런 것을 보면서 과연 히가시노 게이고구나, 했습니다. 진짜 그는 천재인 것 같아요,  짧은 단편 소설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고 탄탄하게 글을 쓰는지, 심리 스릴러의 매력과 정통 추리의 참 맛을 동시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건 마치 아주 맛있는 햄버거와 콜라와의 조화 같았어요. 한겹 한 겹 쌓이는 사건의 정황들 그리고 콜라를 마시 듯 청량감이 느껴지는 반전. 의외의 진행에 혀를 내두르는 탄식. 참 맛있게 읽은 소설이었습니다. 제가 작가가 되어 글을 쓴다고 해도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맛을 느끼게 쓰긴 힘들 것 같아요. 이 소설을 쓰기까지의 노고를 존중하고 싶습니다. 말해 뭐하나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히가시노 게이고였습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
이디스 워튼 지음, 성소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환상이야기의 소설이 작가 자신이 겪었던 아픔과 환각 증세의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니까 내용적으로 더 현실감 있었다. 소설은 곧 작가의 상상이자 체험이고 무의식과 의식의 조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독특함이 있었던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
이디스 워튼 지음, 성소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_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_이디스 워튼



아이보리 컬러의 책표지가 참 고전적이다. 옛 감성이 묻어나는 신문 기사들 같기도 하고, 뉴욕타임스지처럼도 보여지고. 이디스 워튼의 환상이야기, 제목 옆에 스페셜 이슈라는 로고가 또 눈에 들어 온다. 

'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를 읽고나면 스산한 바람이 휘이 하고 내 몸을 스쳐가는 것 같다. 오래된 이 고전 문학의 향기는 핸드 드립 아메리카노 커피처럼 깊고 진하며, 다크하고 시큼한 느낌과 달달함이 있다. 물론 요즘 공포 소설이라고 하면 자극적이고 빠른 전개에 교교하게 스며드는 잔인함과는 좀 달랐다. 고딕 소설 특유의 느낌. 그렇지만 그걸 좋고 나쁨의 차이라고 보는 건아니고 이디스 워튼 작가 특유의 색깔이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렇게 소설을 써내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러나지 않는 공포감 말이다. 유령은 분명 존재하는데 실제로 본 사람은 없고 나중에 그 존재를 알게 된다는 설정이 굉장이 독특했고 소설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긴장감을 주었다. 사실 처음부터 유령이 나와서 어쩌니 저쩌니 했다면 뻔했을 터였다. 어린이 소설도 아니고, 클리셰는 곧 읽고 싶은 마음을 반감시킨다. 솔직히 말해 결말의 예상을 맞춰보려고 꽤나 노력을 했지만 역시나 이디스 워튼 작가는 탁월했다. 인물과 인물간의 교묘한 심리 갈등은 진실을 여기 저기 감춰두고 드러낼 듯 말 듯 애타게 했다. 그렇다고 복잡하다는 것도 아니였다. 적당했다. 장황하게 배경 설명도 없고 당시 시대 상황을 적절히 드러내면서 정말로 그럴 법한 상황을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필자는 정통 추리나 현대 소설에 익숙하기도 해서 빈틈을 안찾을 순 없었다. 그랬다고 그걸 일일이 따지기에도 유치하기도 했다. 소설을 소설로서 이해해야하는 문학적 감각도 때론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매력은 등장 인물들이 겪는 섬세한 심리 표현이었다. 상황을 맞으며 고민하고 이유를 찾고 잔풍에 콧잔등을 스치 듯 불편한 감정으로 주인공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은근히 공포감이 밀려왔다. 갑작스런 상황 반전이 생겨서 긴장하게 되고 하나 하나씩 풀려가는 실마리 끝에 전해지는 진실. 그리고 해결점 또한 불편하게 했다. 아무래도 나는 미스터리나, 공포가 체질적으르로 맞는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북미식 개그의 극치를 보여줬다던 '난센스 노벨'은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다. 문화적 차이도 그랬고 취향에 안맞았다고 하고 싶다. 그래서 이디스 워튼의 환상이야기는 더 기대가 되었다. 모파상 같은 작품을 떠올리기도 했다. 어쩌면 환상이야기의 소설이 작가 자신이 겪었던 아픔과 환각 증세의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니까 내용적으로 더 현실감 있었다. 소설은 곧 작가의 상상이자 체험이고 무의식과 의식의 조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독특함이 있었던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장르소설#이디스워튼의환상이야기#서평_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_이디스 워튼



아이보리 컬러의 책표지가 참 고전적이다. 옛 감성이 묻어나는 신문 기사들 같기도 하고, 뉴욕타임스지처럼도 보여지고. 이디스 워튼의 환상이야기, 제목 옆에 스페셜 이슈라는 로고가 또 눈에 들어 온다. 

'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를 읽고나면 스산한 바람이 휘이 하고 내 몸을 스쳐가는 것 같다. 오래된 이 고전 문학의 향기는 핸드 드립 아메리카노 커피처럼 깊고 진하며, 다크하고 시큼한 느낌과 달달함이 있다. 물론 요즘 공포 소설이라고 하면 자극적이고 빠른 전개에 교교하게 스며드는 잔인함과는 좀 달랐다. 고딕 소설 특유의 느낌. 그렇지만 그걸 좋고 나쁨의 차이라고 보는 건아니고 이디스 워튼 작가 특유의 색깔이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렇게 소설을 써내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러나지 않는 공포감 말이다. 유령은 분명 존재하는데 실제로 본 사람은 없고 나중에 그 존재를 알게 된다는 설정이 굉장이 독특했고 소설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긴장감을 주었다. 사실 처음부터 유령이 나와서 어쩌니 저쩌니 했다면 뻔했을 터였다. 어린이 소설도 아니고, 클리셰는 곧 읽고 싶은 마음을 반감시킨다. 솔직히 말해 결말의 예상을 맞춰보려고 꽤나 노력을 했지만 역시나 이디스 워튼 작가는 탁월했다. 인물과 인물간의 교묘한 심리 갈등은 진실을 여기 저기 감춰두고 드러낼 듯 말 듯 애타게 했다. 그렇다고 복잡하다는 것도 아니였다. 적당했다. 장황하게 배경 설명도 없고 당시 시대 상황을 적절히 드러내면서 정말로 그럴 법한 상황을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필자는 정통 추리나 현대 소설에 익숙하기도 해서 빈틈을 안찾을 순 없었다. 그랬다고 그걸 일일이 따지기에도 유치하기도 했다. 소설을 소설로서 이해해야하는 문학적 감각도 때론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매력은 등장 인물들이 겪는 섬세한 심리 표현이었다. 상황을 맞으며 고민하고 이유를 찾고 잔풍에 콧잔등을 스치 듯 불편한 감정으로 주인공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은근히 공포감이 밀려왔다. 갑작스런 상황 반전이 생겨서 긴장하게 되고 하나 하나씩 풀려가는 실마리 끝에 전해지는 진실. 그리고 해결점 또한 불편하게 했다. 아무래도 나는 미스터리나, 공포가 체질적으르로 맞는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북미식 개그의 극치를 보여줬다던 '난센스 노벨'은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다. 문화적 차이도 그랬고 취향에 안맞았다고 하고 싶다. 그래서 이디스 워튼의 환상이야기는 더 기대가 되었다. 모파상 같은 작품을 떠올리기도 했다. 어쩌면 환상이야기의 소설이 작가 자신이 겪었던 아픔과 환각 증세의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니까 내용적으로 더 현실감 있었다. 소설은 곧 작가의 상상이자 체험이고 무의식과 의식의 조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독특함이 있었던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눈을 봐! 라임 청소년 문학 48
안드레우 마르틴 지음, 김지애 옮김 / 라임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서평_내 눈을 봐_안드레우 마르틴_라임



참 흥미로운 소재다. 어쩌면 스마트 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같기도 하다. 뭐랄까. 스마트폰 없이는 못사는 현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경고.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닥칠 세상 같기도 하다. 참 그럴 법하게 만든 세계다. 스마트 폰이 지배하는 세상. 정부는 스마트 폰 사용 방지법을 통과시켜서 국민들을 스마트 폰 중독에서부터 구제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고 기업은 그 법안이 통과되는 걸 막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을 스마트 폰 중독으로 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납치를 하는 세상이라. 사실 납치가 아니라 단순히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인데 '내 눈을 봐'의 세계에선 프로그램에서 벗어나면 납치가 되어 버리는 것 같다. 
요즘 ' 팬데믹 코르나19'로 온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 지금 유일한 소통의 도구가 스마트폰이 아니던가. 얼마나 사람들이 외로워하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받고 있을까. 소설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메신저에는 가상의 친구가 생성되어 사용자의 친구가 되어주는 인공지능 로봇이 존재하고 있었다. 메신저를 사용하면 가상의 친구가 여럿 만들어지고 로봇이 자동으로 사용자를 분석해서 성향에 맞춰 최적의 대화를 하게 끔 만든다는 것. 참 기발한 상상이었다. 근데 어쩌면 진짜 그런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스마트 폰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일종의 경고를 담고 있다. 어린이의 감성과 인간미 그리고 기계적 세상이 펼쳐지는 대립적인 상황이 볼만하다. 멀지 않은 미래에 닥칠 세상. 개인정보 마저도 기업에 통제가 되어 사생활이 분석된다. 스마트폰의 중독을 이끄는 기업의 무시무시한 전략이 기가막힐 노릇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소설 속의 세계라지만 작가가 진정으로 바라는 세상은 인간 중심의 탈스마트폰 세상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기술 혁신의 속도가 LTE보다 빠른 5G 인데, 곧 스마트폰의 세상이 가고 뇌파로 조종 할 수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며 개인적인 상상을 해본다. 기계를 만지는게 아닌 뇌파만으로도 통신을 할 수 있고 가상의 세계를 유영할 수 있는 그런 것 말이다. 얘기가 너무 다른 쪽으로 갔다. '내 눈을 봐' 는 미래에 다가 올 세상을 소설로 그린 흥미로운 책이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