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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복
리샤르 콜라스 지음, 이주영 옮김 / 예미 / 2024년 8월
평점 :



서평_할복_리샤르 콜라스_예미
사실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던 소설책이었다. 보통 작가의 이력을 중요시하는데 여러 문학상을 타진 않았다. 거기다 집필한 책도 별로 없었다. 그저 일본에 태어난 프랑스 인이면서 오랫동안 살았다. 거기다 전문적인 작가가 아니었고 명품 브랜드 샤넬 재팬의 사장을 20년 동안 역임하고 퇴임한 했다. 그럼에도 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일본 문화를 테마로 한 소설을 주로 썼다고 한다. 책에 나온 소개는 이 정도였고 더 궁금해서 찾아봤지만 해외 쪽 정보 말고는 정보가 없었다.
그래서 소설 ‘할복’은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정말 충격적었고 기대 이상이었다. 괜히 작가에게 실례했다. 첫인상에 대한 느낌을 삭제하고 싶었지만 솔직한 심정이었기에 그대로 쓴다.
일단 드라마틱한 장면 묘사를 잘 쓰는 작가였다. 마치 영화처럼 긴장감 있으며 그런 느낌이 들기까지 독자를 이끄는 힘이 대단했다. 소설의 첫 부분부터 ‘할복’하는 장면을 읽게 되는데 인상이 구겨지고 구역질이 날 정도로 읽기가 힘들었다. 주인공은 스스로 복부를 찔러서 피가 낭자했다. 내장이 뚫리면서 악취가 난다고 쓰였다. 충격적이다. 정말 읽는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후유증이 대단했다. 대체 작가는 어떤 이유에서 처음부터 이런 장면을 넣었는지 궁금했다.
배경은 주인공의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베트남 전쟁과 한국 전쟁으로 이어진다. 사실 역사적 전쟁 이야기가 가장 흔하면서도 공감을 얻을 순 있지만 지루함을 유발할 수 있다. 주인공의 옛 이름 모리스인데 부모님의 연애사를 읽어야 이후에 벌어지는 현실에 대해 알 수 있다. 개연성과 심리적 관점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마치 다큐멘터리 같은 이야기는 실제처럼 생생했다. 그래서 더 헷갈렸다. 허구라면 지어낸 소설이라는 걸 분명히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다. 실존했던 인물인 히틀러나 스탈린 등 나치 정권의 수장이 그대로 나오기 때문이다.
놀란 건 작가가 2차 세계 대전 이후 한국 6.25전쟁에 대해 비중 있게 썼다는 점이다. 어쨌든 주인공은 신분 세탁을 하게 되어 모리스라는 이름에서 에밀 몽루아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그리고 종군 기자가 되어 한국으로 가게 된다. 물론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었다. 다소 과장되거나 영화적인 부분에 대해 최대한 이해하며 읽었다. 그럼에도 일본의 비밀 원자 기지에 관한 이야기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 소설의 백미는 역시 전쟁에 대한 참상이었다. 그 시대를 겪은 여러 인물을 보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는 경우가 있었다. 기억이 갑자기 떠올라 소리를 지른다거나, 악몽을 꾼다거나, 그로 인해 나타나는 특이 행동이 나타난다.
사실 공감하긴 어려웠지만 이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 생생한 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잔혹함과 슬픔 속에서, 도덕은 상실되었다. 무수한 사람들이 이유 없이 죽어나갔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 실험, 일본의 마루타 생체 실험 등.
문학은 어떤 방식으로든 읽음으로써 깨달음을 준다. 소설에 나오는 음악인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아리오소’ 피아노 곡을 듣는다. 마치 주제를 축약한 듯한 아름다움과 비극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가 눈앞에서 끔찍하게 죽는 것을 본 자식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그리고 전쟁 속에서 자유와 안전을 위해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기분은 어떨까? 자신과 함께한 전우가 머리에 총알이 박혀 순식간에 죽는 걸 본다면 정상적일 수 있을까? 폭탄, 지뢰가 폭발해서 친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남아있는 사람은 어떤 심정일까? 전우의 시체 앞에서 과연 도의적인 판단이란 걸 할 수 있을까? 결국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버리고 도망친다면 그건 잘못된 것인가?
마지막으로 세계 전쟁 상황에서 의학 발전을 위해 포로로 생체실험을 하는 의사의 행동은 옳은 건가? 이 소설은 독자에게 많은 물음을 주고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할복은 주인공의 선택이자 독자에게도 강렬한 메시지를 준다. 그래서 읽고 나서도 여운이 오래 남았다. 작가의 고뇌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긴박했던 추격과 추적의 반복 속에서 독자는 영화적 재미와 전쟁이 낳은 충격을 읽게 된다. 세계 전쟁은 비극의 교향곡이었다. 그 장대한 대서사시가 끝나고 나면 고요하다. 여전히 역사는 흐른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