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CHANHYUK - 1st SOLO ALBUM [ERROR][LP] - 게이트폴드+북클릿+양면 가사지+접지 포스터+스티커+포토카드 봉투+포토카드 세트(2종)
이찬혁 (LEE CHANHYUK) 노래 / YG 플러스 / 2023년 1월
평점 :
절판


이찬혁 (LEE CHANHYUK) - ‘장례희망’ LIVE CLIPㅣ2024 경기인디뮤직페스티벌
https://youtube.com/watch?v=iIn_1_XDuBM&si=rS1_HSpYgaXzMsMK

아는 얼굴 다 모였네 여기에
한 공간에 다 있는 게 신기해
모르는 사람이 계속 우는데
누군지 기억이 안 나 미안해

종종 상상했던 내 장례식엔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됐으면 했네
왜냐면 난 천국에 있기 때문에

오자마자 내 몸집에 서너 배
커다란 사자와 친구를 먹었네
땅 위에 단어들로는 표현 못해
사진을 못 보내는 게 아쉽네

모두 여기서
다시 볼 거라는
확신이 있네
내 맘을 다 전하지
못한 게 아쉽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에게 주는 깊은 위로

사자와 어린이가 뛰어놀고 걸음마하는 아이가 독사 굴에 손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그런 나라

‘장례희망‘ 을 들으며 죽는다는 것이 어쩌면
두렵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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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어떤 여자가 술 한병을 주었는데
술이름이 취생몽사라는군.
마시면 지난 일은 모두 잊는다고
하는데 믿어지질 않았어.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이
기억력 때문이라는 말도 있어.
잊을 수만 있다면,

매일매일이 새로울 거라고 말이야.
정말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어.
황약사,
양가휘는 그렇게 말하면서
‘취생몽사‘라는 그 술을 마십니다.

영화 <동사서독>의 한 장면이죠?

취생몽사를 마신 후에
양가휘는 어떤 사람을 만나도,
그가 자신의 친구인지 적인지
기억을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걸 완전히 잊지는 못했습니다. 어쩐지, 무언가, 누군가가
낯이 익었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잊어버렸지만,
그 사람을 바라볼 때마다 느꼈던
그 감정의 흔적만이 남아있다면
그건 어떨까요.

머릿속의 기억은 지웠지만
가슴속은, 내 심장은, 내 손끝은 그 사람을 알고 있다면 그건 어떨까요?

혹시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괴로워한 적 있으세요?

2003년 12월 16일
정은임의 영화음악


십 여년 전 오프닝 멘트를 출력해서 책으로 제본해서 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 청춘과 함께 했던 정은임 아나운서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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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 오늘,
서울의 봄을 보면서 이 땅에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길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생각할수록 어이없고 분하다


2024년의 실패한 계엄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1980년 광주는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 김승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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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가 하나의 겹으로 들어가는 소설을 상상했다. 그러다 망월동 묘지에 찾아 간 것은 같은 해 12월, 눈이 몹시 내리고 난 다음날 오후였다. 어두워질 무렵 심장에 손을 얹고 얼어붙은 묘지를 걸어나오면서 생각했다. 광주가 하나의 겹이 되는 소설이 아니라, 정면 으로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9백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이후 광 뿐 아니라 국가폭력의 다른 사례들을 다룬 자료들을, 장소와 시간대를 넓혀 인간들이 전 세계에 걸쳐, 긴 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들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그렇게 자료 작업을 하던 시기에 내가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페이지에 적었던 문장들이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 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 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

- 한강 작가의 스웨덴 한림원에서 있었던
2024년 노벨상수상 기념강연 중에서


동호는 1980년 5월 광주 역사에 남겨져 있지 않고 현재의 우리에게 다가온다

5.18등 민주화 운동의 역사가 2024년 12월 3일 이후 대한민국을 구하고 돕는 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난데없는 계엄령에 번개처럼 빠르게, 몸을 돌보지 않고 나서는 시민들의 반응을 보니 과거가 현재를 도왔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게 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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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고공크레인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 일을 고공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혼자 고공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2003년 10월 22일 MBC 라디오 <FM 영화음악> 진행자 정은임의 오프닝 멘트다 그해 10월 17일 한진중공업의 노동조합 지부장이었던 김주익이 35미터 고공크레인 위에서 목을 매 숨졌다
닷새 후 정은임이 한 노동자의 죽음을 공중파 라디오 방송에서 호출했다. 켄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의 배경음악을 들려주면서

이어 정은임 아나운서는 한달여 뒤 다시 더욱 칼날같은 오프닝을 했다



2003년 11월 18일 노동귀족

193,000원
한 정치인에게는 한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막걸리 한 사발에 김치 한보시기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에게는
며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 큰 돈입니다.
그리고 한 아버지에게는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한, 짐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아이들에게 휠리스를 사주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일하는 아버지, 故 김주익씨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이 193,000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193,000원. 인라인스케이트 세 켤레 값입니다. 35m 상공에서 100여 일도 혼자 꿋꿋하게 버텼지만 세아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아픈 마음을 숨기지 못한 아버지
그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준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도, 정치인도 아니구요
그저 평범한, 한 일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유서속에 그 휠리스 대목에 목이 메인 이분은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그리고 휠리스 보다 덜 위험한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서, 아버지를 잃은,
이 위험한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건넸습니다

2003년 늦가을.
대한민국의 노동귀족들이 사는 모습입니다

노동귀족이라고 지탄받는 대기업 한진중공업의 노조지부장이었죠?
고 김주익씨. 고 김주익씨가 남긴 지갑 한 번 볼까요? 파업으로 회사에 손실을 입혔다고 재산을 다 가압류 당하구요. 그에게 남은 돈은요. 세 아이들의 인라인스케이트도 사줄 수 없는 돈. 13만5천80원이었습니다. 어떤가요? 귀족다운가요?



안테나를 뽑아 올려 라디오를 듣던 때가 있었다. 미지의 목소리가 그 가느다란 쇠기둥을 따라 흘러 내 안에 고이던 밤.
때론 피뢰침이었다. 섬광처럼 빛나는 말과 음악이 안테나를 타고 내려와 외로운 청춘을 감전시켰다. 누군가에겐 전영혁이, 누군가에겐 신해철이, 또 누군가에겐 이소라와 정지영이 밤의 섬광이었다. 그 가운데 정은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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