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 오토 본 비스마르크의 독일 통일 이후 독일 제국의 권력은 사실상 비스마르크에게 있었다. 당시 명목상의 황제에 가까웠던 빌헬름 1세는 독일 사회에서 권력을 휘두르지 못했었다. 1888년 빌헬름 1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부친 프리드리히 3세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즉위한 지 100일도 안 되어 사망했다. 그렇게 해서 1888년 독일 제2제국의 황제가 된 사람이 바로 빌헬름 2세(Wilhelm II)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 빌헬름 2세는 당시 권력을 잡고 있었던 오토 본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하고 상반된 견해를 보였었다. 1878년 비스마르크가 제정한 ‘사회주의자 법’으로 인하여 독일에서는 노동자의 파업이 금지되었고,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이 금지되었으며 탄압받았다. 물론 비스마르크의 경우 노동자 복지 정책을 세계 최초로 국가에서 실행했지만 말이다. 당시 비스마르크가 노동자들이 파업을 진압하려 하자 빌헬름 2세는 이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1890년 그는 ‘사회주의자 법’을 폐지하고, 비스마르크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사회주의자 법은 1890년에 폐지되었지만, 빌헬름 2세는 다른한편으로 비스마르크가 우려하던 정책을 고수하기 시작했다. 그 이면엔 비스마르크하고는 다른 길을 보여주고 싶었던 빌헬름 2세의 욕심도 있었지만, 그로 인하여 독일 또한 영국 프랑스와 같은 제국주의 국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891년에는 사회주의자 법이 무의미해짐에 따라 ‘노동자들의 주말과 명절 휴식 보장’,‘13세 이하의 청소년 고용 금지’ 등과 같은 사회적 조치들이 이루어졌는데, 이 또한 근본적으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바꾸지는 못했고, 빌헬름 2세 또한 비스마르크와 마찬가지로 노동자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빌헬름 2세 시대에 들면서 독일 제국의 변화중 가장 컸던 것은 외교정책이었다. 소위 철혈제상(鐵血宰相) 이라는 별명을 가진 비스마르크는 별명과는 달리 독일 통일 이후에는 전쟁을 하지 않았고, 명목상 유럽 평화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었다. 당시 영국,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이 하던 식민지 팽창에도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빌헬름 2세는 그러한 정책을 벗어 던지고, 소위 독일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를 제한하지 않았으며, 식민지 팽창에 나섰다.

빌헬름 2세는 소위 3B 정책이라 하여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 제국에 대한 적대적인 정책을 고수했다. 그 과정에서 빌헬름 2세는 독일의 군대를 증강했고, 독일군 대포 보유 숫자도 늘렸으며, 특히나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군함과 잠수함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이 기간에 독일은 공업국가로 탈바꿈하게 되었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자본가들의 착취하에 더 놓이게 되었다. 이 시기 빌헬름 2세가 독일을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시킨 또 다른 증거가 있다. 그게 바로 1898~1900년 사이에 있었던, 8개 연합국의 의화단 운동 진압군 파견이었다. 당시 독일 제국 또한 영국, 프랑스, 일본, 미국, 이탈리아, 러시아 등과 함께 중국 청나라에서 일어난 의화단 운동을 무자비하게 총칼로 진압했다. 청나라 문제 개입 과정에서 독일은 칭다오에 조차지를 확보했다. 1900년에는 대략 55일 동안 8개 연합군과 함께 청나라의 수도 베이징을 점령했었다.

빌헬름 2세 시대 독일은 식민지 팽창과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를 통해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20세기 초 독일은 인류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전쟁에 휩쓸리게 되는데, 그게 바로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The First World War)이다. 당시 군사력을 증강시킨 빌헬름 2세는 소위 슐리펜 작전(Schlieffen-Plan)을 통하여 전쟁의 전세를 단기간에 압도시킬 수 있다 생각했지만, 보불전쟁에서의 패배를 잊지 않았던 프랑스와 라이벌 프랑스를 지원하는 영국 그리고 물량에서 밀리지 않는 러시아의 반격으로 실패했다. 세계전쟁은 3~4년간의 참호전으로 이어졌고, 1917년 미국이 참전함에 따라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 미국 연합국에게 항복하게 되었다. 1918년 11월 독일 제국은 미영프 연합국에 항복했고, 이로써 빌헬름 2세의 독일 제2 제국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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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troit: Become Human Game Guide: Walkthroughs, Charachers, Tips and Tricks and a Lot More (Paperback)
Robert MacK / Createspace Independent Publishing Platform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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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 둘째날 평소에 sns를 통해 알고 지내던 페친을 실제로 만났다. 그 페친은 필자와 마찬가지로 게임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필자에게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라는 게임을 플레이 스테이션방에서 해볼것을 추천했다. 그 덕분에 필자는 부산여행 2일째 되던날 이 게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대략 9시간에 걸쳐 오프닝과 엔딩을 다 볼 수 있었다.

이 게임을 다 클리어한 필자는 언젠가는 일어날수도 있는 불편한 진실과 대면해야 했다. 왜냐하면 이 게임이 현재 가속화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4차 산업혁명의 불편한 미래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게임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20년 뒤에 미국의 디트로이트 도시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 시대의 미국은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소위 인간이 하고 있는 노동 밑 직업의 대다수를 안드로이드라는 인간과 외면상 다를게 없는 기계들에게 대신 맡기고 있고, 기계는 사실상의 오작동 없이 자신들의 직업을 소화해낸다.

안드로이드라는 기계가 하는 일은 분야별로 다양한데, 은행원이나 경찰, 가정 도우미, 건설 노동자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매춘까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사용된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세계의 남성과 여성들은 대략 68%이상이 안드로이드와의 섹스를 선호할 정도다. 대부분의 일을 기계가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대량 해고되었고, 인간과 안드로이드 간의 갈등이 생겼으며, 인간들의 폭력에 자의식을 찾은 안드로이드들은 결국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고, 인간을 피해 숨어살게 되기도 한다. 심지어 인간적 감성과 사고를 하게 된 안드로이드 기계들의 인간과의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기도 한다.

또한 안드로이드의 편리함을 안 인류는 캐나다를 제외한 사실상의 모든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자원이 쌓여있는 북극을 놓고, 미국과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경쟁하며 사실상에 신냉전 체제를 구축했을 정도다.

게임의 전개는 주인공 3명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첫번째 주인공은 경찰 수사팀에서 활약하는 경찰 안드로이드 코너고, 두번째 주인공은 딸아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한 남성의 집안에 배치된 가사 도우미 안드로이드 카라며, 세번째 주인공은 억만장자 화가 밑에서 인간적으로 아주 좋은 대우를 받고 인정받으며 몸이 불편한 노화가를 도우며 사는 도우미 안드로이드 마커스다. 이 3며의 주인공을 통해 게임은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과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지도 모르는 문제점들을 보여준다.

이번에 이 게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클리어한 필자는 4차 산업혁명과 ˝만약 게임에서 나온 안드로이드와 같은 인간과 다를게 없는 기계들이 나오면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았었다. 게임을 하다보면 안드로이드에 대한 인간의 차별도 극심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부터 50, 60년 전 공공장소와 버스안에서 백인과 흑인을 분리시켰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임상에서 소위 불량품으로 규정된 안드로이드들이 폐기처분 되는 곳을 보면, 나치의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방불케 한다. 아무튼 이 게임은 여러가지의 모습을 통해 많은 걸 시사해준다.

이 게임의 또 다른 장점이라 하자면, 게임 엔딩이 플레이어가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 도중 주인공이 사망해버릴 수 있고, 인간과 협상도 할 수 있으며, 레닌이나 마오쩌둥 처럼 민중혁명을 일으킬수도 있다. 쉽게 말해 게임 엔딩이 무수히 많고, 플레이어의 고민과 선택에 따라 그 엔딩이 결정된다.

마지막으로 이 게임에 대해 더 얘기를 하자면, 만약 이 게임이 실체화 되는 과정에 접어들게 된다면 필자가 생각한 것은 딱 두가지다. 첫번째는 인류가 이런 위험성과 도덕성을 알고 안드로이드와 같은 기계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만약 만들었을 경우 우리와 똑같은 사고와 감정을 가진 이를 노예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전자의 경우가 되길 바란다.

몇년전 알파고의 등장으로 사회 곳곳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주제가 이슈화되었다. 필자는 그 분야에 대해 공부가 부족하여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는 아직 모른다. 분명한건, 물질적인 추구가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최근에 나온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생각하거나 걱정하는 이에게 각자의 결론과 해답을 도출하게 할 것이다. 그 점에서 이 게임은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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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12-25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NamGikim님 지난 한 해 의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NamGiKim 2019-12-25 22:22   좋아요 1 | URL
저도 호랑이님의 리뷰나 페이퍼 읽으며 많을 걸 배우고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 드립니다.^-^

NamGiKim 2019-12-25 22:22   좋아요 1 | URL
참고로 오늘 부산여행 마쳤습니다.

Comandante 2020-08-30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게임도 즐겨 하시는군요^^ 저도 플스나 엑스박스로 콜 오브 듀티나 위쳐3 등등 즐겨 했습니다. 요즘도 하고는 싶은데 시간이 잘 안나네요...^^

NamGiKim 2020-08-30 23:59   좋아요 0 | URL
요즘들어 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이렇게 스토리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왜? - 분쟁의 역사를 넘어선 평화로의 희망
권희석 지음 / 청아출판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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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역사에 있어 대략 40년간이나 전쟁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그 나라는 중동과 서남아시아에 위치한 국가인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오랜 세월 전쟁을 치러온 나라이고, 2019년인 현재도 미국과의 전쟁을 지속 중이다. 현재도 진행중인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주제로 다룬 대중 매체는 매우 적지만, 찾아보면 있긴 하다. 영화로는 2014년 당시 국내에도 개봉했던 ‘론 서바이버(Lone Survivor)’와 12명의 미국 그린베레(Green Beret)의 활약을 그린 ‘12 솔져스(12 Strong)’가 있다. 흥미롭게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배경으로 한 게임이 있는데, 메달오브아너 시리즈 중 하나인 ‘메달오브아너(Medal of Honor 2010)’이 있다. 또한 전세계인들에게 열광적인 인기를 독점하고 있는 마블 시리즈의 시작인 아이언맨(Iron Man2008)의 영화 도입부와 전반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물론 이런 매체들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미군의 활약을 대중매체화 한 것이기에 소위 미국식 애국주의가 강조되기에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말이다.

 

아직 끝나지도 않은 전쟁이다 보니 이 전쟁 관련한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나 아프가니스탄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한국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기존에 베트남 전쟁에 대해 꾸준히 공부해오던 필자로선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렇기에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한 자료들을 짧게나마 뉴스 기사 형식으로라도 접했다. 그러던 중 집 근처에 있는 롯데피트인 서점에서 책을 보던 중 한국 사람이 집필한 아프가니스탄 관련 책을 찾았다. 그 책이 바로 ‘아프가니스탄 왜?’다.

 

1. 아프가니스탄은 어떠한 나라인가?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이라는 나라는 중동과 서남아시아 그리고 중앙아시아 사이에 있는 국가다.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많이 받았던 아프가니스탄은 히말라야 산맥에 가로막혀 고대부터 문명의 중심지였던 중국과 인도하고 직접 소통하지 못했는데, 어떤점에선 처음부터 여러 문명의 교차로이자, 정복자의 침략 루트이기도 했다. 쉽게 말해 임진왜란 당시나 구한말의 조선 상황을 놓고 비교하면 대략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아프가니스탄은 영토가 꽤 큰 나라다. 대한민국 영토의 6배 이상이나 되는 영토를 자랑하는 아프가니스탄은 유럽에서는 러시아 다음으로 영토가 큰 우크라이나보다도 영토가 조금 더 넓다. 그런 영토를 가졌지만, 인구는 대략 3600만 명으로 대한민국보다 1400만 명이 적다. 아프가니스탄은 어떤 점에서 보면 여러 부족 내지는 소수민족들이 사는 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 전체 인구에 45% 정도를 차지하는 파슈툰 족이 주류다. 그 다음으로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타자크인, 하자라인, 튀르크인 그리고 우즈벡인 등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존재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지형은 고원과 황량한 사막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힌두쿠시 산맥이 아프가니스탄 국토의 중심부를 가로지르고 있고, 해발 1797m에 수도 카불이 있으며 인근 파르완주나 바미얀주는 산맥 속의 평탄한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파미르 고원 또한 아프가니스탄을 연결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하면 당연히 빼놓을 수 없는 얘기가 바로 종교인데, 국교 자체가 이슬람이며 많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무슬림이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은 전쟁 중이기에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 아프가니스탄의 역사

 

 

위에서 상술했듯이 아프가니스탄은 고대부터 근대까지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던 나라다. 아프가니스탄은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강대국이던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었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 대제 또한 인도를 침략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었으며, 기원전 2세기에는 파르티아인들이 유프라테스강 서쪽의 로마인을 물리치고 아프간을 침략하기도 했었다.

 

 

물론 이런 침략과 지배에 아프간인들은 저항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스키타이-파르티아 연합군을 물리치기도 했었다. 그리고 기원전 100년대에는 인도와 그리스 로마의 영향을 받았고, 불교와 인도의 간다라 미술이 꽃피었었다. 4세기 중엽 아프가니스탄은 북쪽에서 훈족의 침략을 받았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국교인 이슬람이 아프가니스탄에 퍼진 것은 7세기부터다. 이시기 중동에서 이슬람이 태동해 아랍의 팽창이 시작되면서 아랍군이 아프가니스탄이 점령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에는 이슬람교가 확산되었다.

 

 

그 이후에는 9세기와 10세기경에는 튀르크족의 침략을 받았었고, 투르크멘족은 흐와레즘 왕국으로 진화해 1205년 고르 왕국을 붕괴시키고 1215년 모하메드 2세 통치 시 아프간을 점령했다. 이 시기 동방에선 칭기스칸을 중심으로 하여 몽골족들이 영토를 확장해 나갔는데, 칭기스칸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이 지역을 통치하게 했었다.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몽골 군대에 저항했었다. 그 이후에는 이란의 사파비 왕조와 인도의 무굴 제국에게 점령받기도 했었다. 그나마 아프가니스탄이 외세의 지배를 들받고 국위를 떨치던 시기는 18세기 두라니 제국 때였다.

 

 

그러나 19세기부터 아프가니스탄 또한 러시아 제국의 남하를 경험했고,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을 치르기도 했었으며, 그 과정에서 19세기 산업혁명으로 부강해진 영국이 그 게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19세기부터 초중반부터 영국의 간섭과 지배를 받은 아프가니스탄은 3차에 걸쳐 영국과의 전쟁을 전개해 나갔고, 1901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19년까지 대략 18년간 3차 독립전쟁을 전개하여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3. 소련 아프가니스탄 전쟁

 

 

영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아프가니스탄은 1973년까지 대략 54년간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파키스탄과의 국경 충돌 그리고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1965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이 창설되었고,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들은 당연히 탄압받았다. 이러한 탄압이 공산주의자들을 목표로한 아프간 정부의 학살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1978년 4월 혁명을 통해 아프간의 공산주의자들은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그들은 당연히 남녀평등이나 토지 소유 제한 및 재분배와 같은 진보적인 정책들을 주장했고, 극보수적인 아프간 민중의 극심한 반발을 샀으며, 이게 결국 아프간 내부의 유혈사태로 번졌다가, 소련의 개입으로 이어졌다.

 

아무튼 공산주의 세력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들어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1979년에 침공하여 들어갔다. 소련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 아프가니스탄에 들어온 소련은 승승장구 했지만, 소위 무자헤딘이라는 저항 세력의 게릴라전에 고전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들은 1980년 3월 동부 쿠나르주에서 소련군과의 큰 전투를 벌였고, 6월 팍티야주에선 소련군 1개 대대를 섬멸하기도 했다. 아무튼 무자헤딘 들은 이런식으로 소련군에 맞서 시골과 산악을 주 무대로 게릴라전을 전개하며 싸웠다.

 

 

1980년대 등장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정권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에 맞서 싸우고 있는 무자헤딘들을 지원했고,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인 오사마 빈라덴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하여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소련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렀다. 당시 파키스탄 또한 소련군에 맞서 무자헤딘에게 정기적으로 무기 공급을 했다. 로널드 레이건 같은 반공주의자들에게 있어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반공정책을 강화할 수 있는 참으로 좋은 기회였고, 소련에 맞서 그들에게 무기를 지원할 수 있었다. 심지어 당시 개봉한 영화 람보3에는 무자헤딘을 기리기까지 했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소련군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고전했듯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고전했으며, 이 전쟁이 소련 붕괴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소련군은 MI-24와 같은 하인드 건십을 도입하여 산악 지형에 유용한 헬리콥터와 수많은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웠다. 그러나 1980년대 전쟁이 길어질수록 소련군의 사상자도 적잖게 나왔다. 1987년 한 해 동안 소련 항공기 270대가 격추되었다. 전쟁 과정에서 소련군은 15000명 이상의 전사자를 냈고, 항공기와 헬기, 탱크 그리고 장갑차 수백 대를 잃었으며, 1989년에 철수했다.

 

 

4. 미국 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군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던 공산주의자들이 적게나마 남아 있었고, 1990년부터 민족 갈등이 대두되었으며, 이는 결국 아프가니스탄 내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내전으로 1990년대의 아프가니스탄은 전쟁을 계속 해나갔다. 그러한 과정에서 무자헤딘은 탈레반으로 발전했고. 내전에서 싸우던 양측 모두 적잖은 학살이 있었다.

 

그러던 2001년 9월 11일 뉴욕에 있는 WTO 건물이 알카에다의 테러로 파괴되어 3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현장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9.11 테러가 일어나자 미국 사회는 분노했고, 당시 알카에다와 합세한 것으로 의심을 받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한때 소련에 맞서 같이 싸웠던 미국의 적대세력이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2001년 9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초기는 승승장구했다. 당시 반 탈레반 소수민족 연합인 북부동맹(Northern Alliance)은 미국의 아프간 침공에 협력했고, 그린베레와 같은 미국 특수부대들은 그들과 같이 작전을 전개해 나갔다. 2002년 1월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미국은 최초로 무인 항공기인 프레디터와 같은 신무기들을 마구잡이로 사용했다.

 

미군은 파키스탄 국경 지역의 호스트주에서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섬멸하는 작전을 펼쳤고,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지역에서 전투를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프가니스탄도 수렁에 빠지기 시작했고,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제대로 신경쓰지 못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미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그랬듯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숫자를 늘려나갔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NATO의 회원국들도 개별 국가 차원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고, 2007년에는 남부에서 다국적군의 공세를 지속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자살 공격은 2004년에 세 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되었는데 2005년에는 21건, 2006년에는 131건, 2007년에는 150건 2008년에는 142건이나 발생하며 점차 증가했다. 이 아프가니스탄 전쟁 문제는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계속 논쟁거리가 되었는데, 아프간 철수를 공략으로 내세웠던 오바마 정부는 궁극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심지어 2010년에는 대략 10만 명 이상이나 되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했고, 한 해에만 500명의 미군 전사자가 속출했다.

 

 

오바마 정부는 2011년과 2012년 단계적인 철수를 얘기했지만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지출한 전비는 오히려 과거 시작할 때 보다 더 높아졌다. 군대의 철수도 더 늦어져 예상보다 적은 숫자만 철수하게 되었고, 2016년 말에도 대략 8400명을 아프가니스탄에 주둔시킨 채, 그 문제를 트럼프에게 넘겼다. 2017년 6월 트럼프는 오히려 4천 명의 병력을 증원하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하고, 아프가니스탄의 수렁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5. 글을 마치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은 대략 2400명이 전사했고, 15000명 이상의 병사가 부상당했다. 최근 들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과의 협상이 시작되었다는 말이 나왔지만, 협상은 결렬되었고,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2019년 12월인 현재도 대략 8600명의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의 경험을 생각해 봤을 때, 미국이 쉽게 철수할 일은 없겠지만, 최근의 아프가니스탄에서 협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으니 “전쟁이 끝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대해 그리 주의 깊게 생각지 않아왔다는 개인적인 생각 및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에 읽게 된 책이 바로 권희석 씨가 집필한 ‘아프가니스탄 왜?’다. 사실 국내에 아프가니스탄 관련 서적이 사실상 없다시피 하니 필자가 아프가니스탄을 알 수 있는 통로는 이 책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서 아프가니스탄의 지리와 역사 그리고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지만,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파견되어 재건 사업을 도왔던 저자가 쓴 책이기에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은 불필요할 정도로 하지만, 반면 미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없다시피 하다. 책 저자가 소련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소련을 대하는 태도와 미국과 미국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것이 매우 느껴졌다.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미국의 일방적인 침략으로 일어났음에도 그것을 침략이라 표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미군의 범죄에 관한 내용은 전혀없다. 사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미군 전쟁 범죄가 상당히 심각한 문제지만 그것을 언급 안 한 것은 실망스럽다. 특히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공군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자들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면, 논외로 해서는 안되는 문제다. 심지어 책에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라는 황당무계한 발언까지 있다. 이 부분은 정말 불편했다.

 

하지만 이 책은 국내에 출판된 아프가니스탄 역사를 포괄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거기다 2017년도에 출판된 책이기에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상황까지 다루고 있다. 첫술에는 배가 부를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그러한 점을 고려하며 이 책을 읽었다. 아무튼 필자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아프가니스탄이 지금도 끝나지 않고 계속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확실한 건 아프가니스탄이 엄청난 저항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도 평화가 정착되길 간절히 기원하며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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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waker 2019-12-21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이 책은 국내에 출판된 아프가니스탄 관련한 유일무이한 책˝은 아닌데요. 알라딘 검색만 해도 27권이 뜹니다. 지나가다가 깜짝 놀라 댓글 남깁니다.

NamGiKim 2019-12-21 16:24   좋아요 0 | URL
아 그런 오해를 샀군요. 사실 아프간을 통괄적으로 다룬책은 많지 않죠. 그러면 근래에 나온 아프간 서적으로 바꾸죠.
 

오늘로써 한학기가 마무리 됐다. 이번 학기 필자는 총 6과목을 이수했고, 대부분 필자의 전공에 맞춰 들었다. 그 중 필자랑 가장 잘 맞는 수업이 있었는데, 그 수업이 바로 김귀옥 교수님의 ‘통일과 북한의 이해‘였다.

김 교수님의 수업은 한반도 분단 문제와 통일 문제, 북한 사람들의 일상, 북한의 과학 기술과 교육 시스템, 게임, 명절 등 말 그대로 북에 대해 아주 다양한 것을 배울 수 있는 수업이었다. 무엇보다 맹목적 반공주의와 반북주의 그리고 기존에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북에 대한 편견과 오만을 버린 수업이어서 정말 좋았다.

교수님께선 남과 북의 상호 교류와 경제협력의 중요성을 얘기하면서, 북이 남한보다 더 좋은 점도 얘기를 꼭 빼놓지 않고 했는데, 북의 무상교육 제도나 시스템 중 일부는 남한 사회가 배워야 할 점들도 꽤 있었다. 무엇보다 대학까지의 무상교육 시스템 만큼은 꼭 칭찬해주고 싶었다.

수업에서 알 수 있었던 또 다른 사실은 북도 굉장히 많은 변화를 거쳤고 현재도 거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북한에서는 교육이라는 분야에서의 전자화를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 또한 400만 이상에게 자신들의 자력갱생하여 만든 스마트폰을 보급했으며, 그 스마트폰 성능은 질적으로 나쁘지 않다.

북의 경우 의료가 무상이다. 의료기술이라는 점에서 남이나 다른나라와 크게 차이가 없지만, 문제는 기본적인 설비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즉 기술은 나쁘지 않은데 인프라가 딸린다.

남과 북이 차이를 얘기하자면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이다. 북은 집단과 공동체를 지향한다면 남은 개인을 중시한다. 이걸 가지고 북은 자유를 억압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서 남이 북보다 우월하다 보는 것도 잘못됐다. 오히려 사회의 분위기가 남보다 더 나은점도 있다. 얘를 들자면 남에서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직장 상사가 권위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의나 문제를 제기하기 힘든 반면 북의 공동체는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 있는 사람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를 가지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북을 너무 이상화 하는거 아니냐?˝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많은 탈북자 분들이 실제로 남에 와서 그런 사회 분위기에 놀라고 힘든 경험이 있다고 한다.

물론 북이라는 체제가 다 옳은 건 마냥 얘기하는건 당연히 피해야 겠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는건 많은 한국 사람들이 북을 악마화하고 타자화해서 본다는 사실이다. 이번 학기에 들은 북한 수업은 그걸 벗어던질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진정한 자유는 북을 자유롭게 보고, 금기시 되던걸 토론할 수 있는것 부터 시작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그러한 것들을 제도적으로 막고 있는 국가 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

그외에도 북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정말 많이 알았다. 말 그대로 북을 다양하게 알 수 있었다. 앞으로의 세상은 북에 대해 더 개방적으로 알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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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초반에 보기 시작한 미드 ‘높은 성의 사나이(The Man in the High Castle)’를 2015년에 나온 시즌1부터 지난달 11월에 나온 시즌4까지 연속으로 봤다. 드라마 높은 성의 사나이는 1960년대 집필된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드라마의 내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이 승리한 세상을 전제로 한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드라마 상에서의 세계를 보면 미국 동부는 나치 독일이 점령했고, 미국 서부는 일본 제국이 존재했으며 그 중간 사이에 중립 지역이 존재한다.


드라마는 미국 동부 지역에 사는 남자 주인공 조 블레이크와 미국 서부 지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여자 주인공 줄리아나 크레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일본의 합기도를 좋아한 백인 여성 줄리아나 크레인은 여동생인 트루디 워커가 준 한 필름을 받게 되고, 받게 된 필름을 시청하게 되는데, 그 영상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이 영상을 주인공 줄리아나가 보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일상적인 생활에서 점차 벗어나게 된다. 그 영상을 보게 되면서 주인공 줄리아나는 남자 주인공인 조 블레이크를 중립 지역에서 만나게 되고, 나중에서야 그가 나치 협력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 영상을 통해 확신했는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항운동을 전개해 나가게 된다.


이렇듯 드라마 높은 성의 사나이는 일반인이 레지스탕스가 되어가는 과정을 점진적으로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단순히 일반인이 저항운동가로 변모해 가는 과정만 보여주지만은 않고, 변절자가 권력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도 아주 세세히 보여주면서, 그 변절자의 인생을 아주 비참하게 만들어 놓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나치치하 미국에서 고위 관직을 거쳐 올라가는 드라마의 숨겨진 주인공인 존 스미스다.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나치가 워싱턴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걸 직접 보게 되면서 나치에 협력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나치 독일의 제2인자 하인리히 힘러에게 총애를 받게 되기까지 한다. 그렇게 고속승진을 하는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고,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가족에게 있어서 구 누구보다 엄청 따뜻하고 다정하게 대하고, 가부장적인 질서가 강조되는 사회속에서도 가족에게 화 한번 내지 않는 엄청난 참을성과 침착함을 보여준다. 물론 그런 점은 다른 정적을 제거할 때도 아주 잘 드러난다. 그로 인하여 그는 권력 정점에 서서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아들을 잃어야 하는 슬픔을 겪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의 아들은 불치병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치에게 있어서 제거돼야 할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드라마는 권력의 쟁점까지 오른 인물에게 인생무상을 느끼도록 만든다.


드라마는 숨겨진 주인공을 시점으로 전개되기도 하는데, 일본 제국의 무역부 장관인 타고미와 현병대 대령 키도 경감이다. 타고미의 경우 주인공인 줄리아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녀의 여동생 트루디가 사망한 것에 대해 추모와 사과까지 하는 등 나름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그는 온건주의자로써 나치 독일과의 평화를 추구하고, 힘의 균형을 맞추고 싶어 하며, 양국의 전쟁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인다. 현병대 대령인 키도의 경우 누군가를 잡아 고문하거나, 협박하고 총으로 처형하며 누군가를 폭력으로 탄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자비를 배풀고 누군가를 도와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더 나아가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그 외에도 이 드라마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을 뽑자면 줄리아나의 남친이자 유대인인 프랭크 프링크다. 그의 경우 태평양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이자 줄리아나의 남자친구다. 줄리아나가 중립 지역에 가있는 동안 그는 일본 헌병대와 키도 경감에게 잡혀 고문받고, 가족을 잃게 되는 비극을 겪게 되며, 일본 헌병대에게 총살당할 뻔했다가 운 좋게 살아났다. 그런 절망적인 과정에서 그는 저항운동에 투신하게 되고 여러 활약을 펼친다. 평범한 일개 소시민이 고난과 학대를 겪으면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를 아주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렇듯 드라마 높은 성의 사나이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가 가장 좋았던 점을 뽑자면, 필자가 10대 시절 하던 상상력과 호기심을 채워줬다는 것이다. 드라마 상에서 추축국이 이긴 사회는 어떨까 하며 보는 재미도 꽤 있었다. 드라마에 나온 나치 독일은 매우 인종주의적인 세계인 것에 반해, 일본 제국은 적어도 나치 독일 보다 인종적으로 다양함을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본 제국의 경우 과학 기술력이 좋지는 않지만, 나치 독일은 최첨단 항공 기술력을 보여준다. 드라마에서 흥미로웠던 것을 뽑자면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의 관계다. 그들의 경우 겉으로는 친한 척하지만, 양국의 강경파들은 전쟁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참으로 이 드라마에서 재밌는 것은 아돌프 히틀러가 오히려 일본과의 전쟁을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실제 히틀러의 모습을 생각하면 참 재밌을 따름이다.


그 외에도 드라마상에서 나치 독일 치하의 일상과 일본 제국 치하의 일상을 아주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아 나치 사회는 저랬겠구나 혹은 아 일본 제국 사회는 저랬겠구나” 하는 상상을 하게 된는 재미도 있고, 중간중간에 연합국이 승리한 세계와 비교해가며 보는 재미도 있었다. 이번 학기 동안 정말 흥미롭고 재밌는 드라마를 끝까지 감상했다. 특히나 10대 때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에 관심이 많았던 나로선 드라망 높은 성의 사나이가 흥미로운 상상 및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물론 일상을 위주로 전개되는 드라마이기에 전투 장면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그 점은 드라마를 볼 때 감안하고 봐야할 것이다. 아무튼 정말 재밌는 드라마를 끝까지 다 감상했다. 대체 역사물 좋아하는 사람들과 제2차 세계대전 마니아들에게 이 드라마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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