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파크스 나의 이야기 - 미국 흑인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
로자 파크스.짐 해스킨스 지음, 최성애 엮음 / 문예춘추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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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사소한 행동이 사회를 변혁하기도 한다.

1955년의 미국의 남부에선 그 악명높은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s)‘이 여전히 실행되고 있었다. 사회의 공공시설에서 흑백분리가 이어졌고, 식당, 화장실, 식수대, 도서관 등에선 흑인과 백인을 분리했다. 그 중에서 가장 문제가 심각했던 게 버스안에서의 흑백분리였다.

이런 흑백분리는 많은 흑인들로 하여금 반감을 가지게 했다. 그 반발은 1955년 몽고메리 지역에서 발생했던 한 여성의 사건에서 비롯됐다. 그 여성이 바로 ˝미국 흑인민권운동의 어머니˝라고도 불리는 로자 파크스(Rosa Parks)다.

로자 파크스는 1913년 미국 저남부인 엘라배마에서 태어났다. 로자 또한 다른 흑인인민들과 다를게 없이 어린 시절부터 미국사회의 극심한 인종차별을 겪었었다. 심지어 그의 할아버지는 KKK의 습격을 받을까 두려워 했고, 그 바람에 로자와 그의 가족들은 침대에서 잠을 잘 때도 평상시 옷을 입고 자는 일이 있을 정도였다. 로자 또한 남부에서 살면서 그 힘든 밭농사도 했었고, 흑인들이 어떠한 고생을 하며 사는지 몸소 체험했다.

당시 미국남부에선 흑인 투표권을 막기 위해 흑인들에게 도저히 맞출 수 없는 문제를 내어 투표권을 부여치 않게 했는데, 로자 또한 그 때문에 3번이나 유권자 등록을 신청했다.

로자의 말에 따르면 사실 1955년에 미국 경찰에게 체포당했을 때, 버스에서 일어나길 거부했던건 일부러 의도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저 일하고 난 뒤 몸이 피곤했고, 버스에서 자리를 비키는 것이 피로로 인하여 짜증이 났었던 것이고, 그 때문에 백인들에게 자리를 비키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로자가 체포되어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자 미국에 있는 흑인들은 이에 저항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렇게 해서 벌어진 것이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이다. 로자 파크스 사건을 계기로 미국 몽고메리주의 흑인들은 힘들더라도 버스를 이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투쟁했다. 그 결과 1956년 11월 미국의 연방 대법원은 버스안에서의 흑백 분리주의를 위법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이후 로자는 1957년 미국 디트로이트로 이사했고 흑인인권운동에도 참여했다. 1963년 마틴 루터 킹이 주도했던 워싱턴 대행진과 1965년 셀마 투표권 투쟁에도 참여했다.

로자 파크스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사소한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미국이라는 사회가 인종차별이 심한 사회였다는 사실을 로자의 자서전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우리는 20세기 흑인민권운동하면 그 운동을 이끌었던 분리주의자 말콤X와 통합주의자 마틴 룾더 킹을 생각하곤 한다. 물론 그들의 투쟁은 역사적인 측면과 인류애적인 측면에서 존경받고 본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로자 파크스와 같이 미국사회에서 직간접적으로 인종차별에 저항하며 투쟁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된다. 로자 파크스의 자서전은 암울했던 20세기 미국의 인종차별주의 역사와 그 민낯을 독자들로 하여금 얘기해줄 것이다. 많은 동지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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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맞짱뜬 나쁜 나라들 - 악의 뿌리 미국이 지목한‘악의 축’그들은 왜 나쁜 나라가 되었을까?
권태훈 외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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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정권을 잡은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귀가 따가워지도록 했던 발언이 있다. 그 발언 바로 소위 반미국가들에게 ‘악의 축(Axis of Evil)’이라는 단어를 시전하는 것이었다. 조지 부시는 반미국가인 북한, 이란, 이라크를 지목하여 악의 축이라 결론을 내림과 동시에 그 나라를 대상으로 하여 각종 경제 제재를 걸었고, 더 나아가 2003년에는 이라크를 침략했다. 그렇다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목했던 국가들은 과연 악의 축인 것일까?

책 ‘미국과 맞짱뜬 나쁜 나라들’은 “이것이 미제국주의와 지배계급이 미국 인민들과 전 세계 인민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해온 선전”이라고 반박한다. 사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것처럼 과거에도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고 경제적으로 제재를 걸었었고, 현재도 진행중에 있다. 적잖은 나라들이 미국에 맞서 나름의 방식으로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다. 대표적으로 책에서 다룬 쿠바,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베트남, 북조선, 이란, 리비아가 그러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저자로 유명한 임승수 선생을 포함하여 대략 7명이서 집필한 이 책은 7개 국가의 반제국주의 투쟁과 정치체제와 경제정책 그리고 그 투쟁이 전 세계적으로 미친 여파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서술했다. 미국이 경제적으로 고립시켰던 쿠바의 사례를 먼저 보자. 미국 남부의 플로리다주에서 보일 정도로 아주 가까이 존재하는 쿠바는 콜럼버스의 약탈로 시작된 스페인의 식민지배에 맞서 독립투쟁을 전개했었다. 그러나 미서전쟁을 통하여 쿠바를 식민지배로 만든 미제국은 쿠바를 경제적으로 식민지배 했다. 그래서 20세기의 쿠바는 풀헨시오 바티스타와 같은 친미 제국주의자들은 미제국의 기업들이 쿠바를 착취하도록 도왔고, 쿠바 인민들은 값싼 사탕수수를 미국에게 바쳤다.

 

그러던 1956년 그런 미제국의 착취와 제국주의 지배에 반대하여 의식있는 82명의 젊은이들이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그란마호를 타고 쿠바에 상륙했다. 상륙하자마자 항공기의 지원을 받은 바티스타군의 포위를 받았던 그들은 대략 12명만이 살아남아 쿠바의 밀림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해 나갔다. 그 게릴라전을 지휘했던 피델 카스트로와 체게바라는 민심을 잘 사로잡았다. 의대를 나온 체게바라는 마을에 사는 민간인들을 무료로 치료해줬고, 수많은 민주인사들과 정당인들 그리고 종교인과 학생운동가들까지 혁명적인 게릴라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결국 그렇게 민심을 잡은 피델 카스트로와 체게바라는 1959년 쿠바 혁명을 성공시켰다.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그들은 미제국이 쿠바에 퍼뜨려 놓았던 악덕 자본기업들을 국유화했고, 자본주의적 착취를 종결시켰으며 무상의료 무상복지에 입각한 정책들을 실행했다. 그러자 미국은 쿠바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피그스만 침공을 벌이기도 했고, 쿠바 미사일 위기를 시작으로 쿠바 전체를 포위하여 3차 대전의 위기까지 이끌어 갔었지만, 그들은 제국주의에 굴복하지 않았다. 심지어 피델 카스트로는 미제국주의의 고립속에서도 예산 절반을 의료에 투자하기도 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그 이후에도 제국주의의 고립속에서 무상의료를 중심으로한 국가를 탄생시켰고, 1990년대 구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붕괴속에서도 무상의료를 비롯한 복지제도를 고수했다. 또한 식량 생산도 자급자족 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매우 친환경적인 시스템적 생산을 유지하며 발전해나갔다. 이것은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의 고립속에서 쿠바가 해낸 것이다. 쿠바의 무상의료가 얼마나 대단한 시스템인지 알려주는 단편적인 예가 있다. 이는 9.11 테러 당시의 얘기인데, 9.11 테러 당시 미국의 소방관들을 치료한 것이 바로 쿠바였다. 책에 있는 내용을 인용하겠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라는 다큐멘터리에서 9.11 테러의 영웅들인 미국 소방관들이 유독물질에 따른 후유증으로 온갖 병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미국의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의료보험의 폐해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 미국의 의료는 국가가 아닌 기업에서 모든 것을 통제해 값 비싼 의료보험에 들지 않으면 치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치료받은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쿠바였다. 마이클 무어 감독이 이들을 직접 쿠바로 데리고 가 치료를 받게 해준 것이다.(쿠바는 외국인도 무료로 치료한다.) 병원에 입원하여 쿠바 의료인들의 정성어린 치료를 받으면서 소방관들은 눈물을 흘린다. 미국이 외면한 자신들의 병을 미국의 적국인 쿠바 의사들이 치료해준 것이다.”

 

출처: 미국과 맞짱뜬 나쁜 나라들 p.42~43

 

이렇듯 비록 미국이나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한국 같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도저히 해내지 못한 일이 쿠바에서는 가능하다. 이러한 쿠바의 사례를 따라 냉전의 종식 이후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맞서 21세기 사회주의를 선언했던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가 바로 트럼프가 전복시키고자 했던 베네수엘라다.

 

2019년 당시 미제국주의자 도널드 트럼프가 우익 반혁명 분자 후안 과이도를 내세워 전복시키고자 했던 베네수엘라는 각종 사회주의적 정책을 시도했던 나라였다. 비록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와 서방의 극심한 고립으로 인하여 현재의 경제 사정은 좋지 않지만, 베네수엘라 인민들은 신자유주의적 흐름을 거부했다.

 

니콜라스 마두로가 정권을 계승하기 이전 베네수엘라를 신자유주의로부터 방어했던 인물은 바로 우고 차베스였다. 우고 차베스는 2000년대 당시 미국과 서방으로부터 온갖 음해와 근거없는 비난을 받았던 인물이다. 심지어 미국의 제국주의 세력들은 그를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하는 망발을 일삼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그만큼 미국에게는 눈앳가시와도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남미 원주민 혈통을 가지고 있는 우고 차베스는 참으로 멋있는 인물이었다. 우고 차베스가 집권하기 이전 베네수엘라는 빈곤층이 총 인구의 80%에 달하는 나라였다. 우고 차베스는 노동자가 주인인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조합장과 조장을 직접 투표로 선출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민주적인 협동조합을 설립하였다. 그 결과 2006년 베네수엘라에는 10만 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생겨났다. 아무튼 이런 협동조합의 증가로 1999년에 16.6%였던 실업률이 2007년 1월에는 11.1%로 감소했다.

 

또한 우고 차베스는 무상교육과 무상의료에 기반한 복지정책을 실행했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에선 글을 배우지 못한 노인들이 무상으로 글을 배울 수 있었고, 많은 지역 학생들이 무상으로 대학에 진학하여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차베스의 무상의료 정책은 많은 부분에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무상의료 정책으로 인하여 암치료와 같은 수술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었고, MRI 치료와 같은 것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쿠바와 마찬가지로 외국인도 무상으로 치료받을 수 있게 되었다. 즉 이런 무상치료는 단순히 감기치료와 같은 간단한 치료만이 무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책에선 베네수엘라의 무상의료 혜택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무슨 무상의료, 무상교육이냐고? 혹시 감기주사 한 방 놔주고 무상의료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남한에서는 100만 원을 줘야 받을 수 있는 MRI 진료가 공짜다. 남한에서는 200만 원이 드는 임플란트가 공짜다. 한 번 걸리면 집안이 풍비박산 날만틈 엄청난 치료비가 드는 암 치료가 베네수엘라에서는 공짜다. 놀랍게도 외국인도 공짜로 치료해준다. 앞서 얘기했듯이 필자는 2007년 1월에 비행기를 타고 직접 베네수엘라를 방문해서 이러한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중에는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우리의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못 사는 베네수엘라에서 지금(2008년 기준)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베네수엘라가 가능하면 우리도 당연히 가능하지 않을까?”

출처: 미국과 맞짱뜬 나쁜 나라들 p.65~66

 

비록 이 책 자체가 11년 전에 나와서 그 이후의 상황을 어느정도 생각하고서 봐야할 수 있겠으나, 미국과 소위 자본밖에만 모르는 자유주의자들이 내세운 신자유주의에 맞서 그러한 시험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이 했다는 사실 만큼은 역사적인 재평가가 필요하다. 아무튼 이 책은 정말 감명깊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부분이 많은 책이다. 필자가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챕터가 쿠바와 베네수엘라였기에 대표적으로 쿠바와 베네수엘라이기에 이를 좀 더 중심적으로 얘기 했다. 그 외에도 미제국주의의 노골적인 콘트라 우익 반동 지원 맞선 니카라과 인민들의 투쟁, 미국의 침략에 맞선 베트남 전쟁에서의 민중들의 투쟁,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선 북조선의 저항, 미제국의 봉쇄에 맞선 이란 인민들의 저항 그리고 미국의 탄압에 맞선 리비아의 저항 등 필자는 아주 흥미롭게 잘 읽었다.

 

이 책을 통해 필자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소위 미국이 악의 축으로 간주하거나 침략하여 전복시키고자 했던 국가들은 절대 악의 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 마지막 파트로 다룬 리비아만 보더라도 카다피 정권 시기 많은 진보적인 성과물이 있었다. 즉 미국이나 서방에서 얘기하는 것만큼 인간쓰레기 정도의 통치를 보였던 지도자는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이런 국가들에게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 그리고 경제적 고립을 통해 고통을 주었던 미국의 행위가 더더욱 비판받을만 하다. 무슨 반미하면 오히려 더 못살기에 미국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역으로 친미를 강하게 해서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진 나라들도 많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그러한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있는 좌담회의 한 구절과 노엄 촘스키의 말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치도록 한다.

 

“제가 베네수엘라 쪽 연구하면서 들여다보면서 놀란 게 뭐냐면 이 나라가 옛날에 꽤나 잘 살았다는 거에요. 아르헨티나도 굉장히 잘살았잖아요. 세계 4대 부국 중 하나였다던데. 우리는 남미를 되게 무시하는데 옛날에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들 많아요. 그리고 민주주의 수준도 우리보다 훨씬 높았고요. 그런데 그런 나라들이 한순간에 망하더라고요, 한 순간에. 그놈의 신자유주의 때문에요……. 제가 우려스러운 건 뭐냐면 남미가 옛날에 우리보다 훨씬 잘 살았고, 민주주의 수준이 더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IMF, FTA 같은 거 통해서 신자유주의식, 미국식 사회경제 체제가 들어가면서 쫄딱 망했거든요.”


출처: 미국과 맞짱뜬 나쁜 나라들 p.288


“미국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불량국가’는 이라크나 리비아가 아니라 미국 자신이다.”


-노엄 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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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과 미국의 참전(WW1 and United States)

('국민 의무에 대한 호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 입대를 강요하던 대표적인 포스터다.)

 

19세기에 시작된 산업혁명을 통하여 기술의 발달과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유럽의 열강들은 시장확보라는 명분하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와 같은 나라에 식민지들을 건설했다. 이 당시 세계 열강으로 거듭났던 국가는 당연히 영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였고, 이들은 수많은 국가들을 식민지화했다. 따라서 나중에서야 식민지 경쟁에 뛰어든 독일과 같은 나라들은 이에 적잖은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1870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가 독일을 통일하면서, 독일 제국도 서구 열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고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같은 나라들이 점차 세력을 확대하면서 20세기 초 유럽은 상호 경쟁하는 두 개의 거대한 동맹으로 조직되었다. 하나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맺은 삼국협상(Triple Entente)고 다른 하나는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그리고 이탈리아가 맺은 삼국동맹(Triple Alliance)다. 이런 체제는 사실상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는 위협을 시초부터 가지고 있었다.

(사라예보 사건, 1914년 6월 28일에 일어난 이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Franz Ferdinand)이 한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자 청년에게 암살당했는데, 이 암살사건을 계기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자 세르비아의 동맹국 러시아 제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했고,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인 독일이 러시아와 영국 프랑스에게 선전포고를 감행했으며, 심지어 오스만 제국과 아시아의 일본까지 상대편에게 선전포고를 감행하게 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지도)

(독일의 슐리펜 계획)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시기 독일은 이른바 ‘슐리펜 계획(Schlieffen-Plan)’을 세워 영국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 연합국을 단기간에 굴복시키고자 하였다. 독일 제국이 벨기에를 침공하여 프랑스로 진군을 하긴 하였으나, 생각보다 준비를 철저히 했던 프랑스군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 사이 동부전선에서는 러시아 제국군이 독일군을 압박했고, 영국이 프랑스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으로 변모해갔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널리 사용된 기관총)

(탱크, 탱크는 제1차 세계대전때 최초로 등장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그전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전쟁보다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전쟁이었다. 4년간의 전쟁 기간 동안 대략 1000만 명 이상이 죽었고, 2000만 명이 부상당했다. 위에서 상술한 산업혁명은 비단 경제적 발전과 자본주의의 발달만 두고 왔던 것이 아니었다. 산업혁명으로 발달된 자본주의 시스템은 대량살상을 위한 무기 또한 마찬가지로 대량생산했다. 특히나 전투를 대학살극으로 만든 무기는 바로 기관총(Machine Gun)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분당 몇백 발을 발사하는 기관총은 참호에 배치되어 돌격해오는 보병들을 향해 발사되었고, 기존의 구식전술에 머물러 있던 전략가들은 상대편 진영을 접수하기 위해 기관총이 배치된 전선에 돌격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독일, 영국, 프랑스 할 거 없이 재앙에 가까운 전사자들이 수많은 전투에서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1916년 7월에서 11월까지 전개되어 양측 모두 수십만의 병사를 죽게 만든 ‘솜 전투(Battle of the Somme)’가 그러했다. 그런 참호화된 전선을 뚫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가 바로 장갑으로 덮인 탱크(Tank)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양측 모두 사용되었던 독가스도 대량의 인명 살상의 원인이었다. 그 외에도 비행기, 잠수함, 기계화된 대형 군함 등과 같은 무기들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되었다.

(솜 전투, 1916년에 있던 솜 전투는 양측 모두 극심한 사상자를 만들어 냈다.)

(루시타니아호 침몰 사건을 묘사한 그림)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당시 미국은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표면적으로 중립을 내세웠다. 당시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중립을 내세웠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보고 있었다. 중립국 미국은 영국 프랑스와 같은 연합국 측에 많은 물자를 팔았다. 이런 행동은 독일 제국 입장에선 당연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고, 독일은 잠수함 작전을 개시하여 적국과 교역하는 배들을 침몰시켰다. 그 결과 1915년 5월 7일 독일의 유보트(U-Boat)가 1200명의 승객을 수장시킨 ‘루시타니아호 침몰 사건(Sinking of the RMS Lusitania)’이 일어나기도 했다. 루시타니아호가 침몰되어 128명의 미국인이 사망하자, 미국내에선 참전여론이 형성되기도 했었다. 어쨌든 중립을 표방하던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독일에게 그런 불법 행위를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했다. 그러나 전쟁을 지속하던 독일의 잠수함 부대는 지속적으로 미국의 상선을 공격했고, 미국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치머만 전보,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국을 참전시키도록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했다.)

 

1917년 4월 6일 마침내 미국은 독일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감행했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표면적으로 중립주의를 내세우던 미국이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독일이 비밀리에 멕시코에 보냈던 ‘치머만 전보(Zimmermann Telegram)’에 있었다. 그 치머만 전보는 독일이 멕시코의 참전을 유도하기 위해 보낸 전보였다. 그 전보를 영국이 해독하여 미국에게 알렸는데, 거기에는 미국이 도저히 용납하지 못할 내용이 있었다. 그 전보를 보면 “미국에 대항하여 멕시코와 독일이 손을 잡자는 제안과 19세기 당시 멕시코가 미국에게 빼앗겼던 영토를 되찾게 해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거기다 그 시기부터 미국은 멕시코와 국경분쟁을 치르고 있었기에 그 전보는 자국의 팽창을 원하는 미국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 참전하게 된 본질적인 이유는 유보트의 상선 침몰보다 치머만 전보에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병대 포스터)

미국이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던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환점이 될 일이 일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 편에 서서 독일과 전쟁을 치르던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터졌고, 8개월 뒤 사회주의 혁명가 레닌이 주도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다. 볼셰비키 혁명으로 탄생한 사회주의 러시아는 제국주의 전쟁인 제1차 세계대전에서 빠지고자 했고, 1918년 3월 독일과 ‘브레스트 리토프스크 조약(Treaty of Brest-Litovsk)’을 맺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빠졌다. 이 과정에서 독일군은 영국과 프랑스 연합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동부전선에 있던 군대를 서부전선에 투입시켜 전세를 역전시키고자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퍼레이드)

 

1917년의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를 지원해줄만큼의 병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징병법을 통해 대략 200만에 달하는 병력을 확보했지만, 1918년 봄까지 미군 상당수는 전투에 투입되지 않았다. 그래도 적잖은 미군이 1918년에 유럽전선에 투입되었고, 1918년 6월 초 부터는 프랑스군을 도와 파리 근처의 샤토 티에리에서 독일군의 격렬한 공격을 격퇴시키기도 했다. 그 외에도 미군은 프랑스의 랭스 지역에서 독일군의 공격을 막아냈고, 1918년 9월 26일 아르곤 숲 전투에선 100만 명이 넘는 미군이 독일군에 맞서 싸웠다. 아무튼 1918년 중순부터 미군의 지원으로 영국 프랑스 측 연합국은 독일군을 몰아낼 수 있었고, 1918년 11월 11일 결국 독일은 연합국에게 항복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귀국한 병사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독일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자국민에 대한 탄압도 같이 했다. 이는 특히 전쟁에 반대했던 사회주의자들이나 아나키스트들 그리고 독일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1917년 6월 미국의 윌슨 정부는 ‘방첩법(Espionage Act)’ 통과시켜 “미국이 전쟁을 수행하는 와중에 의도적인 불복종에 항명, 미국 육군이나 해군에서 복무 거부를 야기 또는 시도하거나 미국의 신병모집이나 입대를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자”는 누구든지 최고 20년 징역형에 처하도록 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 방첩법 조항에는 “이 절의 어떤 내용도 정부의 행위나 정책에 대한 논의, 논평, 비판을 제한하거나 한정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까지 있었다.

 

이 법이 통과되고 나서 필라델피아에서 찰스 셴크(Charles Schenck)라는 사회주의자가 징병볍과 전쟁에 반대하는 전단을 배포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고, 미국 사회주의자의 아버지 유진 뎁스(Eugene Debs)도 방첩법 위반 죄로 체포됐다. 그 시기 미국에선 “반정부적인 길거리 연설을 막는다”는 목적을 가지고 미국자경순찰대(American Vigilante Patrol)이 생겨 소위 간첩과 정치범들을 만들어 내고, 신고했다.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간첩 혹은 폭도들로 간주받아야할 각오를 해야 했다. 그렇다면 당시 제1차 세계대전에 반대했던 사람들의 의견은 옳지 않은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이 그 전쟁에 반대한 것은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당시 혁명가 레닌이 그 전쟁을 ‘제국주의자들 간의 전쟁’으로 간주했듯이 미국의 사회주의자들도 그리 인식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참전을 반대했던 혁명가들도 그러한 관점을 가지고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했다. 따라서 그들이 반대했던 것은 사회주의자로서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저항의 목소리였다.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 그는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운 것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엄청난 인종차별주의자였고 백인우월주의자였으며 제국주의자였다. 또한 친미제국주의자 이승만의 지도교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미국과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당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미국의 참전이 “전쟁을 끝내기 위한 것 혹은 민주주의를 위해 세계를 안전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며 터무니없는 말들을 했다. 다음과 같은 윌슨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유럽에 국한된 것이었고, 아시아나 아프리카와 같은 나라들과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의 식민지에는 해당사항이 전혀 없는 얘기였다. 거기다 미국은 1918년 혁명 러시아에서 백군 반혁명 세력들이 전쟁을 일으키자 사회주의 러시아를 없애기 위해 침략을 자행했고, 기존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식민지배하는 제국주의 국가의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제1차 세계대전은 미국으로 하여금 제국주의 국가로 부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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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베레 - 베트남 전쟁과 그린베레의 전설 KODEF 안보총서 11
로빈 무어 지음, 양욱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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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국주의자가 미화한 역사 소설 그린베레(The Green Beret)

베트남 전쟁(Vietnam War)은 미국이 일으킨 침략전쟁이었다. 19648월 통킹만 사건(Gulf of Tonkin Incident)을 조작한 미제국주의자들은 본격적으로 침략전쟁을 일으켰고, 대략 8년간의 전쟁 기간 동안 수백만이나 되는 동남아시아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그러나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기 전에도 미국은 남베트남 문제에 개입하고 있었는데, 이는 바로 미군사고문단 이라는 형식으로 남베트남 정권을 돕는 방법이었다.

 

미국의 존F케네디 정권때부터 베트콩에 맞서 남베트남에서 군사활동을 전개했던 미군사고문단은 1963년이 되어 대략 11000명 이상으로 증가했고, 이들은 남베트남 정권을 지키기 위해 물적, 인적 지원을 아낌없이 했다. 미국의 존F케네디가 남베트남에 미군사고문단 형식으로 지원했던 부대들 중에는 특수부대가 존재했는데, 그 부대가 바로 초록색 베레모로 상징되는 그린베레(The Green Beret)’.

 

미국의 특수부대 그린베레의 기원을 따지자면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과 태평양 전선에서 많은 활약을 했던 미국의 첩보기관인 전략 사무국(OSS)은 미군 비정규전 전문가들을 추축국 후방에 침투시켜 저항세력을 양성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태평양 전쟁 시기 중경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와 협력했던 미국의 기관이 바로 OSS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OSS는 해체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미군은 또 다시 비정규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미군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 북한 침투를 위한 특수부대를 만들기도 했었다.

 

1952년 미국에서 창설된 제10 특수전단은 미 육군 특수 부대의 시대를 열었다. 이 특수전단은 주로 공수부대나 전직 전략사무국 파견요원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특수부대는 서독에서도 활동했었고, 그 외의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배치되었다. 1960년대 초 미국에서 존F케네디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특수부대는 급속도로 규모가 커졌고,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베레모 착용이 허용되면서 그 특수부대는 그린베레가 되었다.

 

케네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창설된 미국의 그린베레는 냉전 시기 여러 곳에 배치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베트남이었다. 남베트남에 군사고문단 형식으로 배치되었던 그린베레는 응오딘지엠 정권을 지키기 위해 부패하기 짝이 없는 남베트남군을 물적, 인적으로 지원했고, 라오스와 베트남 중부고원지대에 들어가 소수민족들을 가지고 군대를 조직했다. 라오스에서는 반공산주의 감정이 심했던 몽족(Hmong)을 이용했고, 베트남 중부고원지대에선 몽타냐르족(Montagnard)으로 대표되는 브루족(Bru)이나 에데족(Ede) 같은 산악소수민족들을 이용했다. 그들이 바로 그린비레가 계획한 CIDG 군대(비정규 민병대라고도 함)로 거듭났다. 물론 이 군대는 제국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할대로 이용당하다가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하면서 버려진다. 아무튼 그린베레는 베트남 전쟁 시기 남베트남군을 지원했던 미국의 특수부대였다.

 

베트남 전쟁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미국의 작가 로빈 무어(Robin Moore)가 집필한 그린베레를 읽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을 읽기 몇 달 전 인종차별주의자인 존 웨인(John Wayne)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반공영화 그린베레(The Green Beret Film)를 감상하였기에 이 책의 내용이 어떨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읽는 내내 반공주의자들의 저급함과 수준 낮은 역사관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그린베레의 무용담 뿐만 아니라 전쟁의 비극을 다룬 책이며, 베트남 전쟁 반전론자들이 책도 제대로 안 읽고 미화물이라 비판한다고 말하며 반전주의자들을 비웃었다.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필자가 한마디 하자면, 반전주의자들이 이 책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책의 내용이 시작부터 끝까지 제국주의 침략자인 그린베레의 미화로 덮여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남베트남에서 자생적으로 창설된 베트콩들이 왜 세계최강의 미국 군대에 맞서 싸웠는지는 생각지 못하는 역사적 몰이해를 보여준다. 저자는 자국의 민족해방과 독립을 위해 싸우는 해방 전사들을 마치 아무런 민간인들이나 마구잡이로 학살하고 다니는 존재로 묘사하는데, 영화 그린베레가 보여줬던 베트콩 악마화랑 다를 게 없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남베트남에 주둔한 미군이 무슨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처럼 나오는데, 역사 왜곡의 극치다. 저자 로빈 무어는 그린베레의 필요성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그린베레 부대원과 베트남 여성의 러브 스토리, 그린베레 부대원과 몽족 여성의 러브 스토리 그리고 그린베레 부대원과 몽타냐르족 여성의 러브 스토리 따위를 넣는데, 이런 가상의 러브 스토리는 단순히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국의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한 선동일 뿐이다.

 

가장 기가 막혔던 파트는 어떤 가톨릭 여성인 린의 스토리인데, 이 파트는 베트콩과 북베트남에 대한 심각한 악마화로 얼룩져 있다. 그 파트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베트콩에게 가족을 잃은 가톨릭 신자인 린이 베트콩 장교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영화 그린베레를 본 사람은 이 내용이 영화에서도 나온다는 걸 알 것이다. 저자 로빈 무어는 소설에서 무슨 베트콩을 마을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존재로 묘사했는데. 진실을 말하자면 실제 전쟁에서 그런 짓을 했던 것은 게릴라를 토벌했던 연합군 측의 모습이 그러했다.

 

저자 로빈 무어는 자신이 이 책에서 남베트남의 부정부패를 거리낌 없이 고발했다고 서문에 밝혔다. 물론 책에서도 남베트남군의 부패상이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로빈 무어는 그것만큼 더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정통성 문제와 분단 원인이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즉 로빈 무어는 남베트남군이 왜 부패할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의 뿌리가 누구인지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들이 프랑스군에 있었던 사실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으며, 베트남 인민들이 왜 호치민과 공산당을 지지했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우리는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베트남에서 열심히 싸웠다.”와 같은 무용담만 읊었다. 이것은 베트남 전쟁에서 왜 베트콩들이 그린베레와 같은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맞서 싸웠는지를 가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듯 로빈 무어의 역사 소설 그린베레는 미군에 대한 무한한 미화와 베트콩에 대한 악마화로 가득차 있다. 쉽게 말해 반공주의자가 저지르는 역사 왜곡의 전형적인 사례다. 책의 마지막을 보면 이제 우리는 계속해서 공산군을 압박해야 한다. 이제 공산군은 하노이 주변에 A팀들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 것이고, 호치민은 새로운 평화 협정을 요구해올 거다. 우리는 힘으로만 대화할 거다. 지금 우리가 싸우는 것은 새루운 형태의 전쟁이다. 승리와 패배 같은 건 없다. 협상이 시작되면 어느 쪽이 상대를 굴복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라는 대사로 끝을 맺는데, 전형적인 반공주의자의 생각을 반영해준다.

 

베트남 전쟁을 지극히 미국의 시각으로만 바라본 책을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중에 이 책의 저자 로빈 무어에 대해 좀 찾아보았다. 그는 하버드 대학 출신에 아버지 밑에서 호텔 경영을 했던 전형적인 미국 부르주아였다. 1960년대 그가 쓴 피델 카스트로 관련 책이 있는데, 그 책 제목이 바로 대가를 치러야 할 악마(The Devil To Pay)’. 정말이지 반공주의가 극에 달한 인물이다. 이런 뒤틀린 역사관을 소유한 인물이니 미국의 침략전쟁인 베트남 전쟁을 미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베트남 전쟁을 공부해본 필자로선 로빈 무어의 저급한 역사관이 한심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그린베레에 대해 얘기하겠다. 로빈 무어 책에서 나온 그린베레는 매우 정의로운 존재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베트남 전쟁 시기 그린베레는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을 벌였는데, 그게 바로 피닉스 작전(Phoenix Program)’이다. 피닉스 작전을 통하여 그린베레를 비롯한 미국 특수부대는 무고한 민간인 27000명을 아무런 증거도 없이 베트콩으로 몰아 학살했다. 따라서 그린베레는 베트남 전쟁에서 잔인하기 짝이 없는 제국주의 침략자들이었다. 이런 그린베레의 침략은 베트남에서 멈추지 않았다. 저자 로빈 무어는 맺음말에서 우리는 인류가 대참사를 당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아프리카의 폭군이든 발칸의 독재자든 중국의 인권 침해자든 누구를 상대하든 간에 단호한 국가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는 루돌프 럼멜과 같은 네오콘들이 가진 극단적인 제국주의 사상과 하등 다를 게 없는 관점이다. 그린베레가 참전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은 엄연한 미제국의 침략전쟁이다. 그런 침략전쟁은 벌인 미국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책 저자 무어가 미화한 베트남 전쟁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가 베트남 전쟁을 통해 알아야할 것은 제국주의 침략자 그린베레의 무용담이 아닌, 그들에 맞서 투쟁했던 베트콩과 같은 민족해방투사들의 이야기와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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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E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 스토리북 미포함
앤드류 스탠튼 감독 / 월트디즈니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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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 이 리뷰는 영화 Wall-E에 대한 스포일러를 아주 가득히 담고 있습니다.)

 

1. 들어가며

(영화 Wall-E)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8년 필자는 아주 재밌는 영화 하나를 봤다. 그 영화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만화로, 지금으로부터 800년 뒤인 미래를 다룬 영화였고, 필자는 아주 감명 깊게 보았다. 그 영화가 바로 Wall-E. 지난 목요일 필자는 학교에서 그 영화를 보게 되었고, 그 영화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은 필자가 보고 해석한 Wall-E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2. Wall-E의 스토리

(지금으로 부터 800년 뒤인 지구는 인류가 남긴 쓰레기들로 덮여 황폐해졌다.)  

  

영화 Wall-E는 지금으로부터 800년 뒤인 지구에서 인간이 남기고 떠난 버린 쓰레기들을 정리하며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살고있는 한 로봇의 일생을 다뤘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뒤인 22세기 인류는 지구의 대기오염과 넘처나는 쓰레기를 해결하기 만든 쓰레기 정리용 기계를 대량생산 하고 우주로 떠났다. 주인공인 Wall-E도 그 로봇들 중 하나였고,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대략 700년간 지구에 남은 쓰레기들을 정리해가며 살아갔다. 우주로 떠나기 전 인간은 지구를 완벽히 망가뜨려 놓았다고 볼 수 있는데, 정말이지 식물이라곤 하나도 안보일 정도로 지구는 황폐해져 있었다. 그런 환경속에서 주인공인 Wall-E는 애완용인 바퀴벌레 1마리랑 쓰레기를 치워가며 살고 있었다

(그런 지구에서 쓰레기를 수거하여 탑을 쌓고 있는 월-E)   

 

그러던 어느날 Wall-E가 청소를 하던 중 우주 탐사선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우주선 안에는 여자 로봇인 이브(eve)가 타고 있었다. 지구를 탐사하러 온 이브는 이곳저곳을 탐색하며 무엇인가를 찾아 나선다. E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 이브는 처음에는 대량 파괴력을 소유한 총을 쏘며 월E를 경계했지만, 자신을 짝사랑하게 된 월E에게 점차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E의 집으로 가게 된 이브는 월E가 가지고 있던 식물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브는 월E가 가지고 있던 식물을 자신의 몸속으로 넣고 깊이 잠들어 버린다.

(지구에 도착한 이브의 탐사선)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된 월-E와 이브) 

 

이브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이브를 사랑한 월E는 이브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이브를 보살피던 어느날 새로운 우주선이 도착하여 이브를 대려갔고, 이브를 걱정한 월E는 그 우주선에 탑승하여 우주로 날아갔다. 우주로 날아가게 된 월E는 대형 우주선인 액시엄(Axiom)에 탑승했고, 그 액시엄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인간들은 의자에 앉아서 길을 다니고, 과거에 인간이 하던 일들은 월E와 같은 로봇이 대신하고 있었다. 이브가 향하는 방향대로 따라가게 된 월E는 액시엄의 선장실에 들리게 되었고, 자신의 임무를 선장에게 보고하는 이브를 목격하게 된다. 사실 이브는 액시엄의 선장이 지구에 과연 생명이 사는지 확인하기 위해보낸 로봇이었고, 식물을 발견하게 된 이브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대형 우주선 액시엄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액시엄 선장) 

 

사실 대형 우주선인 액시엄도 지구를 청소하는 동안 인류를 우주에서 보내게 하기 위해 만든 대형 우주선이었고, 이것을 만든 미국 대통령은 지구에서 살아남은 식물이 발견되면, 지구로 돌아가도 된다고 액시엄 선장에게 얘기했었다. 식물을 가지고 온 줄 알고 있던 이브의 몸속에는 안타깝게도 식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 그 식물은 쓰레기장으로 버려졌는데, 그 이유는 액시엄 선실을 통제하고 있던 로봇이 일부러 식물을 쓰레기장에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월E와 이브를 통해 알게 된 선장은 선실 조종대에게 왜 버렸냐고 묻고, 선실 조종대는 극비 기밀을 선장에게 알려준다. 극비 기밀에 따르면 인류가 계획했던 지구 대청소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고, 결국 액시엄에서 살기로 미국 대통령이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렇게 프로그램이 입력된 선실 조종대 로봇은 이브가 발견한 식물을 버렸던 것이고, 이를 알아채지 못하게 선장을 속였던 것이었다.

(선실을 자기 멋대로 통제하던 액시엄 조종대)

  

이를 알게 된 선장은 식물이 발견되었으니 돌아가야 한다고 선실 조종대에게 항의했고,“자신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선실 조종대는 선장을 선실 근처에 잡아 가둬버린다. E와 이브의 활약으로 선장은 선실 조종대를 속이는 데 성공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선실 조종대의 자동화 프로그램을 종료시켰으며, 액시엄은 선장의 의지에 따라 결국 지구로 돌아가게 된다. 지구로 돌아온 인류는 다시 지구에서 새 삶의 시작을 얘기하며 영화는 끝이난다.

 

3. E에서 나오는 환경파괴 문제와 4차 산업혁명

(700년 만에 지구로 귀환한 액시엄)

 

위에서 상술했듯이 픽사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만화영화 월E2008년에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나오기 7년 전에 제작된 것이지만, 현재 인류가 걱정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문제점을 아주 정확히 파악했고, 환경 문제도 아주 잘 비판했다.

 

우선 환경파괴 문제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환경파괴문제는 제1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19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때부터 시작된 환경파괴는 20세기 중후반과 21세기 와서 더욱 극심해졌고, 해결되지 않은 채 현재진행형으로 남았다. 대표적으로 북극해 빙하의 증발 현상과 인류가 만든 플라스틱과 같은 환경파괴의 주요 원인인 물건들은 현재도 처리되지 못한 채 태평양과 대서양을 돌고 있는 현상을 얘로 들 수 있다. 특히나 플라스틱 생산과 같은 환경 파괴의 주요원인이 되는 생산품들은 자본주의 생산체제를 통해 지속해서 과잉생산되고 있다.

 

그 덕분에 인류는 과잉된 상품을 원하는 시간에 소비할 수 있고, 과거에 비해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는 혜택을 누리지만, 그 대가를 지구가 대신 치르고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영화 월E에선 앞으로 100년 후의 인류가 이런식으로 지구를 망쳐놓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영화 월E에서 나온 미국의 모습은 그저 맑은 하늘은 존재하지도 않고, 쓰레기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높이 만큼이나 여러군데 쌓여있으며, 생명이라곤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800년이 지나서의 지구 모습은 더 처참하여 주인공인 월E 혼자 쓰레기를 치우고 있을 정도다.

 

위에서 상술했듯이, 영화에 따르면 22세기 인류가 시도했던 지구 대청소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다. 영화 초반부에 보면 어느 미국 대통령이 지구는 이 쓰레기 청소용 로봇에게 맡기고, 초호화 우주선 액시엄으로 놀러가세요라고 선전하는 영상이 나온다. 이는 말그대로 선전이었다. 22세기 인류가 제작한 월E와 같은 쓰레기 청소용 로봇은 쓰레기들을 수거하여 정육면체로 만들어 쌓아두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극중에선 22세기의 발달된 과학 기술을 가지고도 이를 해결치 못했다. 심지어 액시엄에서 만들어지는 쓰레기도 월E와 비슷하게 생긴 로봇들이 한꺼번에 수거하여 우주 밖으로 버리는 것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생각이지만 영화의 이 장면이 시사해주는 것은 그만큼 인류가 창조해낸 환경파괴가 재앙적이다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영화 월E의 또 다른 특징이자 큰 장점은 현재 가속 중인(혹은 가속 중인지 알 수 없는) 기술의 발달로 인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문제점을 아주 잘 보여준다는 점이다. E가 들어와서 보게 된 액시엄에서의 인간 생활상은 말 그대로 기계에 의한 돼지사육이나 다를게 없었다. 대형 우주선 액시엄에선 과거 인간이 했던 경찰, 보육, 교육, 운전, 출산, 식량 확보, 쓰레기 수거, 행정, 활동 등을 인간이 아닌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즉 과거에는 인간의 일자리였을지도 모르는 직종이나 활동들을 기계가 대신하고 있고, 오히려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액시엄에 사는 인간들은 의자에 않아 그저 기계가 주는 음식맛 나는 음료수를 마신다. 인간들은 그 음료수 음식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전혀 의심하지 않은 채 환경파괴의 주범중 하나인 빨대를 통해 음식을 흡입한다. 인간들은 그저 기계가 얘기해주는 유행 트렌드를 아무런 비판의식없이 따라하고, 기계가 말하고 추천하는 대로 소비한다. 쉽게 말해 주체적인 자아의식을 잃은 것이다.

 

액시엄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보육을 담당한 기계에게 가르침을 받는데, 참으로 소름끼치고 무서운 것은 그 기계들은 알파벳을 가르칠 때, 인간에 대해 절대 가르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들끼리 오락을 즐기는 것도 온라인에서 회상을 통해 하지 오프라인을 통해 하지는 않는다. 만난다고 하더라도 얼굴을 보고서 만나는 것이 아닌, 기계가 비추어 주는 회상을 통해서만 얘기할 뿐이다.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며 놓쳤을지는 모르겠지만, 액시엄 선장이 과거의 액시엄 선장들의 이력을 보는 장면에서 그들의 재임기간이 어느정도였는지가 밝혀졌다. 대부분 최소 100년 이상은 했다. 이걸 보았을 때, 비록 의자에 앉아 살더라도 과학기술에 힘입어 사람들이 오래살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오래 산다는 것이 진정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닌 기계로부터 통제받는 삶이니 말이다. 즉 선장이 나는 인간처럼 살고 싶다고 말한 것은 괜히 그런게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월E에서 보여준 4차 산업혁명의 또 다른 문제점은 감정을 가진 기계들 중에 인간을 완벽히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통제하려고 하는 장면들이다. 영화상에서 월E와 이브가 선장실 조종대로부터 유해한 로봇으로 판정되었을 때, 로봇 경찰들이 출동하는데 이 때 의자에 앉아서 갈 길 가던 한 남성을 치고 그냥 가버린다. 솔직히 필자는 이 장면에서 아 기계가 사람을 무시하고 있그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기계가 자신들이 통제하는 인간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장면들이 꽤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들자면, 액시엄의 최고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선장을 선실 조종대가 통제하고, 구금하는 장면이었다. 이를 통해 영화 월E4차 산업 혁명이 가속화된 사회는 기계가 인간을 통제하는 사회일 수도 있다는 섬뜩한 사실을 알려줬다.

 

따라서 이런 여러 가지 맥락을 보았을 때 영화 월E4차 산업혁명의 가지고 올 결과를 비판적으로 보여주었다 할 수 있다. 현재 많은 부분에서 전산화와 기계화가 되어가고 있는 사회에서 살다 보니 영화의 이런 장면들이 매우 눈에 들어왔고, 4차 산업혁명이 걱정되기 까지 했다.

 

4. 영화가 내리는 나름 신선한 결론

(영화 월E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온 풀들)

 

영화 월E가 그냥 훌륭한 영화가 아닌 것은 그 영화가 보여주는 마지막 결론에 있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지구로 돌아온 인간들은 폐허가 된 땅에서 식물을 심는 장면과 그 이후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는 땅을 보여준다. 이 마지막 장면도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필자가 더 의미를 둔 장면은 마지막 장면 보단 영화가 끝난 이후에 나오는 엔딩 크레딧이다.

 

E의 엔딩 크레딧에선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온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그림을 통해 아주 상세히 보여준다. 사람들은 다시 원래 상태의 몸으로 돌아가게 되고, 지구로 돌아온 인간들은 기계와 함께 자연환경을 보존해가며 살아간다. 이점이야 말로 영화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즉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며 서로 돕고 지구와 자연을 보호해가며 살아가는 그런 삶 말이다. 그 점이야말로 영화가 진정으로 얘기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월E 엔딩 크레딧에서 나온 장면. 결국 인간은 다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된다.)  

  

필자도 이 엔딩크레딧을 통해 앞으로의 사회는 그런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에는 인간과 기계가 어떻게 공존하며 지구의 자연환경을 어떻게 보호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영화 월E는 필자에게 많은 점을 알려주었고,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러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영화를 안보고 이 리뷰를 읽게 된 분은 이 영화를 엔딩 크레딧까지 꼭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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