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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국가의 탄생 - 베트남 전쟁부터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고삐 풀린 미국의 전쟁사
레이첼 매도 지음, 박중서 옮김 / 갈라파고스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미국의 정치 평론가인 레이첼 매도(Rachel Maddow)가 쓴 ‘전쟁 국가의 탄생(Drift The Unmooring Of American Military Power)’을 읽었다. “베트남 전쟁부터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고삐 풀린 미국의 전쟁사”라고 책에 붙은 부제목은 필자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했고, 결과적으로 책을 읽도록 만들었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제국주의 국가 미국이 현대적인 전쟁 국가로 가는 과정을 다뤘다.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승승장구하던 미국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주었던 베트남 전쟁부터 시작하여 로널드 레이건의 집권과 미국의 반공화, 그레나다 침공, 이란 콘트라 스캔들, 걸프전쟁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오바마 정부의 빈 라덴 암살까지를 다뤘다. 미국 건국 이래 최초로 패배한 전쟁인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일으킨 침략 전쟁이었다. 1964년 통킹만 사건을 조작한 미국은 1965년 3월 8일 3500명의 해병대를 다낭에 상륙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대규모의 미군 병력을 남베트남을 돕기 위해 보냈고, 그 규모는 1968년이 되면 대략 54만 9천 명이 되었다. 베트남 전쟁에 개입한 미국은 구정 공세를 시점으로 대규모의 반전 운동에 시달렸고, 그동안 실행해오던 징병제에 문제가 생겼으며, 결국 1973년 베트남에서 철수하게 된다. 1968년부터 1972년 까지 베트남 주둔 미군 사령관을 지낸 크레이튼 에이브람스(M1 에이브람스 탱크의 그 에이브람스다.)는 닉슨 정부의 베트남화 정책에 따라 대규모의 병력을 철수시켰는데, 불과 4년 만에 대규모의 병력을 베트남에서 철수시키는 데 성공했다. 어쨌든 베트남 전쟁은 미군의 잔혹성과 미국 민중의 반전 운동에 휩싸여 1975년 호치민의 후계자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1975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한 이후 미국은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었고, 소위 패배주의가 만연했다. 그러던 중 1980년대 헐리우드 배우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등장했는데, 그가 대통령으로 집권하면서부터 미국은 다시 철저한 반공주의와 군사주의의 길로 들어섰다. 1975년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군은 주로 군의 복지와 혜택을 강조하며 홍보를 했던 것에 비해 레이건 정부에서의 군은 애국심과 남성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레이건 정부는 냉전이라는 진영적 대립을 이용하여 미국을 국가주의와 반공으로 무장시킬 수 있었다. 물론 베트남 전쟁에서 징병제의 폐해가 굉장히 심각했기에, 모병제를 통하여 군사력을 증강했다. 레이건 정부는 미국을 군사주의화 하기 위해 소련에 대한 악마화를 악의적으로 실행하고, 소련의 군사력을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여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놓았는데, 이는 미국이 군사주의 국가로 탄생하고 현대화하는 데 있어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마치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과의 대립이 있을 때, 한국의 부르주아 지배계급과 친일 제국주의 세력들이 북에 대한 악마화와 군사적인 공포심을 심어놓음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수법과 매우 유사하다. 레이건 정부 시기 소련에 대한 악마화는 대중매체에서도 드러났다. 1983년에 개봉한 반소 반공 영화 레드 던(Red Dawn)이나 톰 크루즈가 주연으로 출연하여 미국 전투기를 몰며 소련의 미그기를 멋있게 격추하는 영화 탑건(Top Gun)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레이건 정부는 남미에 친미 괴뢰 정권을 세우고, 군사적인 개입을 하는 데 있어서 매우 적극적이었다. 특히나 1983년의 그레나다 침공이 그러했다. 그레나다 침공에 대한 미국의 표면적인 명분은 “그레나다에 있는 자국민들을 보호 및 구출”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은 레닌주의를 왜곡하여 “레닌주의가 전 세계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라는 황당무계한 논리를 내세웠다. 반공주의자 로널드 레이건은 레닌주의를 왜곡함으로써 남미에 친미국가를 세우는 논리로 합리화시켰다. 1983년 12월 미군이 그레나다 전역을 장악함으로써 승리로 끝이 나자 로널드 레이건 정부는 이에 매우 기뻐했고, 승리를 자축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란-콘트라 스캔들을 겪으며 지지율을 잃었다.
미국이 다시 초강대국이라는 사실을 세계에 입증한 것은 1990년에 일어난 걸프 전쟁이었다. 걸프 전쟁에서 미국은 200명의 전사자로 대략 수만 명의 이라크군을 사살하고, 수십만의 이라크군대를 붕괴시켰다. 거기다 소련이 붕괴하면서 미국은 명실상부 세계 최강의 군사 강국이 되었다. 징병제가 사라진 지 20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모두 지원자로 이루어진 군대는 더 안정적이고, 더 전문적이고, 더 유능한 집단이 되었다. 미국 정부는 1990년대 대규모 민간 업체를 키웠는데, 이들은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2만 명의 미군을 발칸 반도에 주둔시켰는데, 이와 대략 비슷한 숫자의 민간 기업 직원들도 동행했다. 발칸 반도에 미군이 주둔할 당시, 미군과 민간 업체는 마피아들과 결탁하여 인신매매로 납치된 여성들을 사고파는 행위를 일삼았는데, 여기에 희생된 성노예 여성들이 얘기를 듣다 보면 정말 토가 나올 지경이다.
2001년 9.11 테러를 겪은 이후 미국은 빈 라덴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를 들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은 최신무기들을 투입하기도 했다. 미국의 최신무기인 드론이 가장 큰 효과를 본 것은 2011년 미국 정부가 진행했던 오사마 빈 라덴 암살 작전인 ‘넵튠 스피어 작전(Operation Neptune Spear)’이다. 이 작전을 승인한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전쟁지역이 아닌 파키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암살하는데, 사전에 파키스탄 정부에 어떠한 얘기나 허가 없이 진행되었다. 이 때문에 파키스탄 정부의 체면을 망가뜨렸고, 파키스탄 국민들에게 치욕을 안겨주었다. 아무리 테러리스트를 사살하는 작전이었지만, 엄연히 비교전 국가에서 진행된 일이었고, 타국의 주권과 체면을 짓밟는 짓이었다.
이렇듯 미국은 전쟁 국가로 거듭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기 미국은 소련과의 군비경쟁에서 수많은 핵무기를 개발했는데, 대략 수천개의 핵무기를 소유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2000년대까지 대략 60년간 미국은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대략 8조 달러를 지불했다. 현재 현역 상태인 핵무기 중엔 대략 50년째 현역인 핵무기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미국은 핵무기들을 옮기던 도중 수많은 사고를 일으켰는데, 대표적으로 스페인과 덴마크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있다. 실제로 대규모의 폭발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약간의 폭발로 인하여 스페인의 팔로마네스 지역의 시골이 방사능에 피폭되는 사고도 있었다. 저자는 핵무기를 언급하는 파트에서 2006년 김정일의 핵 개발은 언급하는데, 당시 북의 핵 개발에 맞서 “일본을 핵무장 시키자”라고 워싱턴 포스트에서 주장했던 크라우트해머의 논리를 강력히 비판한다.
이렇듯 래이첼 매도의 전쟁 국가의 탄생은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가 어떻게 군의 현대화를 거치며 제국주의 국가가 되는지를 잘 밝힌 책이다. 현학적이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우웩’, ‘뭐?’, ‘아니!’, ‘이런’, ‘어이쿠!’ 등이 위트 섞인 구절을 사용해가며 재밌게 진행해 나간다. 다만 부제목에 나와 있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해 깊게 다루지 않은 것과 북한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지 않은 것은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미국이 어떻게 전쟁 국가로 변모하는지를 알게 해준 좋은 책이다. 많은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