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Vietnam War: A Film By Ken Burns & Lynn Novick (더 베트남 워)(한글무자막)(Blu-ray)
PBS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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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길고도 긴 다큐멘터리 한편을 다 봤다. 미국의 EBS라고 할 수 있는 PBS에서 만든 베트남 전쟁 다큐다. 이 다큐는 2017년에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PBS에서 만든 이 다큐는 총 10부작짜리 다큐로써 1편당 1시간 40분정도의 긴 러닝 타임을 자랑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다큐멘터리의 첫 시작은 베트남에서 교전하고 있는 어느 미군들의 장면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참전용사의 인터뷰를 보여준 뒤, 19세기 프랑스가 다낭항을 점령했을 때의 얘기로 올라간다. 북남베트남을 아우르는 참전용사들과 베트남전쟁을 겪었던 베트남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베트남 근현대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호치민에 대한 얘기로 넘어간다. 그렇게 시작된 베트남 근현대사에 대한 설명은 1954년 베트민군이 프랑스 제국주의 군대를 대패시킨 디엔비엔푸에 대한 설명과 북남베트남 분단이후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1편이 끝난다. 그리고 2편에서는 본격적으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의 창설과 남베트남 내부의 반 고딘디엠(응오딘지엠) 투쟁을 다루고 3편부터는 통킹만 사건을 다루며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한 시점을 다룬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대한 설명은 10화에서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이 몰락되는 시점을 다루며 끝이 난다.

이 다큐는 남베트남군, 북베트남군, 베트콩, 베트민, 어린시절 미군의 무차별 폭격을 목격한 베트남인, 보트피플로 탈출한 베트남계 미국인, 일반적인 미군병사, 미군사고문단으로서 활동했던 미군장교, 반전운동가 그리고 그 시기 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까지 해서 그 시기를 경험했던 60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만들었다. 그 점에 있어서 이 다큐는 객관성이 보장된다.

1960년대 미국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은 미국 사회의 변혁을 가져왔다. 2차세계대전 이후 소련과의 경쟁으로 냉전 체제에 접어든 미국은 자신들을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세계를 구하는 자유진영’이라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당시 미국은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선 무력과 폭력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힘의 논리를 가지고 미국은 베트남 전에 개입했다. 그것도 1964년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가면서 까지 말이다. 그렇게 개입한 미국은 베트남 전에서의 상황이 진전되지 않았음에도 국민들을 기만했다. 그것이 기만이었다는 사실이 바로 1968년 1월 31일 북베트남군과 해방전선(베트콩)이 감행한 구정대공세로 들통 난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미국 내에서는 기존에 일어나던 반전운동이 아주 격화됐다. 반전운동을 통해서 미국인들은 미국 정부가 국민들 기만하고 속일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베트남전 반전운동은 흑인인권운동과 여성운동, 성소수자 운동 그리고 미국내의 수많은 사회운동과 맥을 같이했다. 베트남전 반전운동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서독,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같은 서방국가들에서도 일어났고, 심지어 일본에서도 일어났다. 이처럼 베트남 전쟁이 사회에 미친 영향은 막대했다.

그렇다면 미국내에서는 반전운동만 있었을까? 그것 또한 아니다. 미국 내에서 베트남 전 반전운동이 시작된 것은 1965년 부터였다. 이때는 대학에 다니던 학생들과 진보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전개 했다. 그들 중에는 베트남의 역사와 민족해방운동의 진실을 알고 미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던 해방전사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적잖게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학수의 대다수는 베트남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지지와 더불어 성소수자 운동, 여성인권운동, 흑인인권운동 또한 아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던 미국인들도 있었지만, 미국식 보수주의에 빠져 베트남 전쟁을 지지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주로 반공주의적이었고, 성소수자를 아주 경멸했다. 이들은 동시에 미국의 북베트남 폭격과 베트남 전 개입을 지지하며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을 옹호했다. 그러나 그들은 구정 공세 이후 반전운동을 지지하는 쪽보다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지난 2016,17년 촛불혁명때처럼 말이다. 이들에 대한 내용을 보면서 현재 틈만 나면 북폭이나 반공을 외치는 대한민국의 박사모들이랑 많이 오버랩됐다.

베트남 전쟁 다큐를 보면서 “베트남 전쟁은 반전운동으로 인하여 수많은 변혁운동을 촉발시킨 전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이 일으킨 최대의 실수라는 생각이 많이들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참전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3번이나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가 다시 베트남을 식민지화하려고 하자 호치민이 미국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 이후 제네바 협약에 따라 남북베트남이 분단되어 통일을 위한 총선을 거론했을 때 그리고 1963년 고딘디엠(응오딘지엠) 암살 이후 남베트남의 내부 총질(쿠데타)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을 때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3번다 주도적으로 개입했고,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패배했다.

PBS에서 만든 베트남 전재 다큐는 10부작인데다가 1편당 보통 1시간 4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지만 난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베트남 전쟁 관련 서적으로는 캐나다 종군기자 마이클 매클리어가 쓴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이라는 책이 있다면 베트남 전쟁 관련 다큐로써는 PBS 베트남 전쟁 10부작이 있다는 것을! 둘 다 객관성이 보장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만들어진 베트남 전쟁에 대한 자료니 자료로써 크나큰 가치가 있다.

정말 좋은 다큐를 받다. 이 다큐를 추천해준 페친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베트남 전을 다룬 이런 명작다큐가 국내에서도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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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들 - 마르크스에서 시진핑까지, 세계공산주의자들의 삶과 죽음
김학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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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관련 파트만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읽었는데, 저자의 수꼴반동적인 사상에 매우 실망스러웠다. 호치민을 까면서 응오딘지엠이 청렴하다고 주장하니 할말을 잃었다. 그렇군, 지가 가톨릭 믿는다고 남베트남 내각을 가톨릭으로만 구성하며 가족정치를 일삼은것이 청렴한것인줄은 이 책에서 처음 알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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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계열 인물 전기

지난 2년간 사회주의 계열 인물에 대한 책들을 여러권 읽었습니다. 14권중에 4권 빼고는 다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철학이나 정치 역사 사회과학 관련한 책들도 좋아하지만 인물 전기나 평전또한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 책들을 읽으며 제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 인물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제가 읽은 혁명가들 중엔 나중에 무소불위의 독재자가 된 인물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한국사회가 편향된 반공주의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만은 사실이라 봅니다. 앞으로의 사회는 이런 책들도 의심받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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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10-06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전을 읽으면 한 인물의 사상이나 작품에 대해 더 공감할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NamGiKim 2018-10-07 00:11   좋아요 1 | URL
한 인물의 사상을 잘 알 수 있죠. 그게 인물 평전의 장점^-^
 
걸즈 앤 판처 : 극장판
미즈시마 츠토무 감독, 후치가미 마이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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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굉장히 재밌게 본 애니매이션. 전차전을 전차도라고 하여 목숨을 건 전투가 아닌 일종의 스포츠화한다는 발상자체가 굉장히 신선하다. 주로 2차세계대전 당시 쓰이던 전차들 위주다. 일본에서 만든 애니다 보니 일본군 전차도 등장하고, 일본군 전차를 주로 이용하는 일본학원도 등장한다. 이 때문에 우익논란이 있었지만 괜한 걱정이다. 오히려 이 애니는 그것을 등장 시킴으로써 일본군의 무모한 돌격과 옥쇄정신을 풍자한다. 개인적으로 T-34전차를 쓰는 소련이 가장 맘에든다.ㅎㅎㅎ 내년에 나올 OVA아주 기대하고 있다. 걸즈 앤 판저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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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민중사 세트 (2권 세트)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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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7월 노동자 연대에서 개최한 맑시즘에 참가했었다.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맑시즘에선 항상 북카페를 여는데, 그 북카페에서 파는 책들 중에는 위대한 혁명가 마르크스나 엥겔스 레닌이 쓴 사회주의 관련 혁명 서적들도 있지만, 노엄 촘스키나 하워드 진 같은 미국의 진보학자들이 쓴 책들도 적잖게 팔았다. 난 그중에 하워드 진이 쓴 미국민중사를 샀고, 맑시즘이 끝난 뒤 이 책을 읽었다. 책은 총2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2권의 분량을 합치면 총 1200페이지나 된다. 올해 4월 하워드 진이 쓴 <만화로 보는 미국사>를 읽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나는 그가 쓴 <미국민중사> 또한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

일반인들이 인식하는 미국의 역사는 대체로 미국 주류사회의 시각을 반영하는 것 같다.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한 미국의 역사, 유럽에서 종교적 박해를 받던 사람들이 자유와 신앙적 권리를 찾아 아메리카라는 땅을 찾아갔던 역사, 영국의 식민지배에 맞서 독립을 쟁취한 역사, 흑인 노예제에 반발하여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선언한 역사, 새 삶을 찾아 서쪽으로 향했던 자랑스러운 서부 개척의 역사,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연합국을 승리로 이끈 자랑스러운 미국의 역사.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나치독일과 일본을 패망시키고 파시즘으로부터 세상을 구한 미국의 역사, 소련이라는 공산 세력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미국의 역사 그리고 이슬람 극단주의에 맞서 세계평화에 기여한 미국의 역사, 이게 바로 소위 미국사회와 한국의 자칭 보수주의자들과 미국의 주류역사학자들이 상상하는 미국의 역사일 것이다.

미국의 진보학자를 대표하는 하워드 진은 미국 주류사회와 주류학계가 주장하는 이와 같은 제국주의적인 시각과 “역사를 일부 정치인과 제국주의자들의 전유물”인냥 해석하는 시각을 단호히 배척하고 미국의 역사를 민중의 시각에서 해석하고자 했다. 즉 하워드 진은 미국의 역사를 일부 주류 정치인과 인물의 역사로 보지 않고, 신항로 개척시기 제국주의자들에게 억압받던 피지배계급과 노예들의 시각에서, 남자들에게 성적으로 사회적으로 차별받던 여성인민들의 시각에서, 백인사회로부터 노예화되어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던 흑인 노예들의 시각에서, 스페인 미국 전쟁 당시 지배받던 쿠바인들의 시각에서, 산업화 시기 대자본가들에게 무제한 착취 받던 노동자들의 시각에서. 1차 세계대전 당시 사회주의 이론에 따라 전쟁에 반대 했던 미국 사회주의자들의 시각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 반대했던 평화주의자들의 시각에서, 1950년대 사회적으로 차별 받던 흑인들의 시각에서, 베트남 전쟁 시기 베트남 반전운동에 나섰던 반전 운동가들의 시각에서 그리고 미국의 폭격으로 가족과 이웃을 잃은 베트남 인민들 의 시각에서, 1990년대 미국의 제제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 갔던 이라크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리고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의 무차별 폭격을 받아 수많은 민간인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던 중동 인민의 관점에서 미국사를 서술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했거나(혹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았거나)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의 내용을 얘기 해볼까 한다.

책의 첫 시작은 콜럼버스의 신항로 개척과 더불어 그 이면에 정복자 콜럼버스가 토착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추악한 만행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알던 개척자 콜럼버스는 개척자가 아닌 정복자였다. 콜럼버스는 그 지역 원주민들을 무자비하게 노예로 부려먹고, 학살했으며, 원주민 부녀자들을 마음대로 겁탈했다. 콜럼버스와 그 일행의 악행으로 수많은 원주민들이 도륙됐다. 토착 원주민을 본 콜럼버스는 항해일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내가 칼 한 자루 보여주자 아무 생각 없이 칼날을 쥐다가 손을 베이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철이 없다. 이들의 창은 막대기에 불과하다. 이들은 좋은 하인이 될 듯하다. 50명만 있으면 이들 모두 정복해서 마음껏 부릴 수 있을 것이다.”(미국민중사1 p.15)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17세기 들어서 유럽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건너 왔다. 미주대륙으로 이민 가게 된 이민자들은 노예를 대리고 왔고, 그 지역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리려고도 했었다. 17세기 중후반 현재 미국의 버지니아 지역은 옥수수와 수출용 담배를 재배하기 위해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따라서 자신들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노예를 필요로 했다. 여기서 엄청난 인권유린과 억압이 있었다.

“노예소유주들은 노동력 공급과 자기들의 생활방식을 유지하기 위해서 복잡하고 강력한 통제체제를 발전시켰다." "노예들은 규율을 배웠으며, '자신의 분수를 알고', 검은색을 종속의 징표로 보며, 주인의 힘을 경외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를 버리고 주인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이라 인식하도록 자신이 열등하다는 사고를 끊임없이 주입받았다. 법률의 힘과 감독의 직접적인 힘을 통해 태형, 단근질, 수족절단, 사형에 처하는 방법이 필요했다.”(미국민중사1 p.77)

1700년대 중후반이 되자 미국에서도 영국의 지배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게 결국 조지워싱턴을 비롯한 소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미국의 독립을 선포하고 영국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몇 년간의 전쟁을 통해 미국은 영국을 몰아냈다. 1776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선포한 미국 독립선언서의 시작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신은 그들에게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몇 가지 권리를 부여했다.”라는 멋진 말과 함께 시작하지만, 미국을 건국한 소위 건국의 아버지들이 인식하는 평등에 개념은 참으로 저급한 수준이었다. 저자 하워드 진은 책에서 다음과 같은 자신의 견해 밝힌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훌륭한 균형을 이루려고 노력한 현명하고 공명정대한 사람들이었을까? 실제로 그들은 현상을 유지하는 것 즉 당시 지배세력 간의 균형을 제외하고는 다른 균형을 원하지 않았다. 확실히 그들은 노예와 주인, 무산자와 유산자, 인디언과 백인 간의 평등한 균형을 원하지 않았다.”(미국민중사1, p.186)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독립선언서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신은 그들에게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몇 가지 권리를 부여했다.”라고 써놓고서 인디언들이나 흑인들 그리고 여성들에게는 평등한 인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19세기 들어서 미국 남부는 목화 산업으로 먹고 살았고, 따라서 미국 남부사회는 부를 축적하기 위해 흑인들을 노예로 부려 먹었다. 흑인들은 백인 지배계층에 의해 엄청난 착취와 억압(심지어 흑인 여성들은 백인 지배자들로부터 성적 노리개가 되기도 했다.)을 당했다. 남부의 비인권적인 흑인 착취에 맞서 흑인들을 해방시키고 구출하기 위한 흑인들의 투쟁도 전개됐지만 노예 제도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남북전쟁 시기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링컨이 “노예 제도를 반대하여 흑인 노예를 해방시킨 영웅”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대통령 링컨은 그런 인간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연방주의자였다. 따라서 링컨은 연방을 유지하기 위해선 노예제 따위는 남부 연방 꼴통들에게 양보할 인간이었다.

“링컨은 1861년 3월의 취임연설에서 남부와 탈퇴한 주들을 회유했다. "나는 남부 주들에 존재하는 노예제도에 대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섭할 의사가 없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내게는 그렇게 할 법적 권리가 없으며 또 그렇게 할 의향도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넉 달째 이어지면서 프레먼트 장군이 미주리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연방에 저항하는 노예주인들의 노예는 자유인이 될 것이라고 말하자, 링컨은 이 훈령을 철회했다. 링컨은 메릴랜드, 켄터키, 미주리, 델라웨어 등 4개 노예주를 연방에 묶어두려고 안달이 나 있었다. 전쟁이 점점 격화되면서 사상자가 급증하고, 승리에 대한 절망감이 고조되고, 노예폐지론자들의 비판이 링컨을 떠받치는 너덜너덜한 연합세력을 갈가리 찢어 버릴 태세를 보이자, 링컨은 그제야 비로소 노예제를 반대하는 행동에 착수했다”(미국민중사1 p.333)

남북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끝이 났다. 남북전쟁 이후 흑인들은 노예제도로 부터는 해방이 됐지만, 자본주의 치하에서의 “사실상 노예와 다를 게 없이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상황”에선 큰 개선이 없었다. 미국사회는 흑인뿐만 아니라 여성도 억압했다.(흑인이 투표권을 가진 것이 19세기인 데에 비해 여성은 1920년대 들어서 투표권이 생겼다.) 19세기 산업혁명의 여파에 따라 미국도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았다. 거기다 19세기 미국은 서부개척에 나섰고, 그 결과 엄청난 영토를 차지 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의 엄청난 착취와 억압을 토대로 하여 자라났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인권은 유보됐고,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대자본가들은 자신들의 부를 축척하기 위해서 더더욱 노동자들을 착취했다. 마치 19세기 산업혁명을 거친 유럽 국가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그와는 별개로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무장투쟁은 19세기 후반 까지 계속되었다. 1890년에는 운디드니라는 곳에서 백인들에 의해 수백 명의 원주민들이 무차별 학살당했다.

“인디언들은 서부의 평원에서 영원히 쫓겨났다. 1890년의 어느 추운 겨울날, 미 육군 병사들이 사우스다코타 주의 운디드니에 있는 인디언 막사를 습격해 300명의 남성과 여성, 어린이를 살해했다. 이 학살은 콜럼버스와 함께 시작된 400년간의 폭력 중에서 정점을 이루었고, 이로써 이 대륙은 백인들의 소유임이 굳어졌다.”(미국민중사1 p.504)

19세기 미국의 팽창은 서부개척으로 멈추지 않았다. 1867년 미국은 러시아가 소유하고 있던 알래스카를 저가에 매입했고, 1890년대에는 하와이 섬을 완벽히 합병했으며, 1898년에 터졌던 미국 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쿠바를 사실상 미국의 식민지 국가로 만들었고, 필리핀 또한 미국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19세기 수많은 유럽 국가들이 제국주의국가가 되었듯이 미국 또한 제국주의국가가 되었다. 이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전이 거세지고 20세기 초에 들어서자 전 세계에 크나큰 전쟁의 먹구름이 나타났다. 1914년 유럽에서 터진 제1차 세계대전이 바로 그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그 나라를 중심으로 한 동맹국들에게 물자와 무기를 지원하며 그저 지켜만 봤다. 그러던 1917년 전쟁에 참전했고, 1918년 승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미국은 강대국으로 성장할 확실한 발판을 마련했다.

“1914년 미국은 경제불황에 시달렸지만 1915년에 이르면 연합국(대부분 영국)의 군수품 주문이 경제를 자극하면서 1917년 4월까지 20억 달러 이상의 상품이 연합국에 팔려 나갔다. 호프스테터의 말처럼, "미국은 전쟁과 번영의 숙명적인 결합 속에서 연합국들과 이해를 같이하게 됐다.”(미국민중사2 p.16)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그저 경제적인 호황을 누렸다. 1920년대는 과잉과 풍요 그리고 흑자 연속의 경제였다. 그걸 바탕으로 미국 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이 활발했던 노동자들의 파업과 투쟁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파업 주동자들과 투쟁한 노동자들을 쉽게 연행하고 구속시킬 수 있었다. 그러던 1929년 미국에게 최악의 위기가 닥쳤다. 경제대공황이 바로 그것이다. 경제대공황으로 인하여 미국은 적자와 실업이 극에 달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경제적으로 궁핍해졌다. 1930년대 세계는 파시즘의 물결에 휩쓸렸다. 1931년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킨 뒤 국제연맹에서 탈퇴했고, 1933년 독일에선 히틀러가 등장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났고, 1939년에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1940년엔 제국주의국가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군사적인 동맹을 맺고, 여러 나라를 침략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었고, 나치독일과 일본을 패배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미국 또한 엄청난 인권유린과 억압이 존재했다.

“제2차 대전 기간 동안 제정된 미국의 여러 정책 가운데 하나는 파시즘의 복사판에 가까운 것이었다. "루즈벨트는 1942년 2월에 대통령령 9066호에 조용히 서명함으로써 영장이나 기소절차, 심문과정 없이도 태평양 연안지역의 모든 일본계 미국인─11만 명의 남자, 여자, 어린이─을 체포해 그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소개시키고 내륙의 수용소로 이송해 감옥과 동일한 조건 아래 구금할 수 있는 권한을 군에 부여했다.”(미국민중사2 p.112)

“애국심과 전쟁 승리에 대한 전면적인 헌신이라는 압도적인 분위기가 넘쳐났고 미국노동연맹과 산업별조직회의가 무파업서약no-strike pledge까지 했지만, 기업의 이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데 반해 임금은 동결되는 데 좌절한 이 나라의 많은 노동자들은 파업을 벌였다. 전쟁 기간에 1만 4,000회의 파업이 벌어져 총 677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했는데, 이것은 미국 역사상 어떤 시기보다도 더 많은 수치였다.”(미국민중사2 p.114)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소련과 경쟁하는 냉전체제에 돌입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자신들의 세력 유지를 위해 1947년 그리스 내전에 개입하여 진보정권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방해했고, 중국내전에선 국민당을 지원해줬다. 소련과의 경쟁이 시작됨에 따라 미국사회는 반공주의라는 광기에 휩싸였다. 거기다 1949년 중국의 국공내전이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의 승리로 끝이 나고,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미국 내의 반공주의는 극에 달했다. 자칭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반공이라는 명분아래 수많은 지식인들을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었고, 심지어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아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1950년에 공화당에서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이나 '공산주의 전선'임이 드러난 조직을 등록시키기 위한 국가보안법Internal Security Act을 발의했을 때, 자유주의적 상원의원들은 이에 정면으로 대항하지 않았다." "1947년에 트루먼은 충성에 관한 대통령령을 반포, 법무부로 하여금 "전체주의나 파시즘, 공산주의, 정부전복의 성격을 갖거나 ····· 위헌적인 수단으로 미국의 정부형태를 바꾸려 하는 것으로" 확인된 조직들의 명단을 작성하도록 했다." 국가적인 반공 분위기를 고조시킨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은 1950년 여름에 있었던 줄리어스 로젠버그와 이설 로젠버그 부부에 대한 기소였다.”(미국민중사2 p.138-9)

냉전시기 미국의 군사개입은 한국전쟁에서 그치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에 개입했던 미국은 그로부터 15년 뒤 아시아에서 일어난 또 다른 전쟁에 개입했다. 그게 바로 베트남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트남의 독립운동가 호치민은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베트남을 다시 식민지화하기 위해 들어왔고, 그 때문에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일어났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가 대패하면서 끝났다. 그러나 도미노 이론에 빠져있던 미국은 베트남 문제에 개입했고, 남베트남의 반민중적인 응오딘지엠 정권을 지속적으로 후원했다. 그래도 남베트남 정권이 무너질 기미가 보이자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다. 최신식 무기를 동원한 미국은 베트남에 엄청난 폭탄을 퍼붓고 고엽제를 투하해가며 베트남 민간인에게 테러를 가했지만, 결국 호치민이 이끄는 민족주의 세력에게 패배했다. 세계 최강의 제국주의 국가가 베트남의 혁명적 민족주의 운동을 파괴하는데 실패함으로써 패배한 것이다.

“1964~1972년까지, 세계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가 한 작은 농업국가의 혁명적 민족주의 운동을 파괴하기 위해 원자탄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군사적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패배했다. 이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에서는 일찍이 이 나라가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반전운동이 있었고 이 운동은 전쟁을 종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미국민중사2 p.207)

베트남 전쟁은 결국 1975년 북베트남과 베트콩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미국은 베트남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들어섰다. 레이건 정부는 다시 강력한 반공정책과 군비증강 하는데 있어서 온 노력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1970,80년대 미국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아래 남미에 있는 수많은 우익독재국가들을 지원했다. 1991년 걸프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이라크군을 박살내면서 베트남 트라우마를 사막에다 묻어버렸다. 미국은 이라크를 경제적으로 봉쇄하여 무려 100만이나 되는(이중 50만은 어린이와 유아) 이라크인 들을 아사시켰다.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나 무려 3000명이나 되는 무고한 민간인이 사망했다. 미국의 부시 정부는 이를 계기로 미제국을 또 한 번 발호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그래서 미국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리고 이런 중동분쟁은 현재진행형이 되어버렸다.

“2001년 9·11 사태가 벌어지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즉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테러리스트들과 그들을 숨겨주는 나라들을 똑같이 다룰 것입니다." "의회는 헌법이 요구하는 선전포고 없이 군사행동에 착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시에게 부여하는 결의안을 서둘러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은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하원에서는 단 한 명─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캘리포니아 출신 바버라 리─만이 반대표를 던졌다.”(미국민중사2 p.552-3)

“곧이어 "의회에서 통과된 '미국애국자법'은 단순한 혐의만으로도 기소 없이, 그리고 헌법에 규정된 정당한 법 절차에 따른 권리 없이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을 구금할 수 있는 권한을 법무부에 부여했다. 이 법에 따르면 국무장관은 어떤 집단이든 '테러리스트'로 지정할 수 있으며, 그런 조직의 성원이거나 자금을 제공한 사람을 체포하고 구금, 추방할 수 있었다.”(미국민중사2 p.557-8)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는 미국이라는 한 제국주의국가가 국내의 문제가 있을 때 마다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의 파업투쟁과 다른 나라의 자주적인 역량을 어떻게 짓밟고, 자신들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내세워 어떻게 그 이면에서 수많은 백색 독재국가들을 지원했는지를 아주 낱낱이 보여준다. 역사라는 학문을 한 인물과 정치집단 혹은 제국주의 국가의 전유물로만 생각하는 관점을 배척했고, 제국주의의 침략과 착취아래 고통 받고 억압받고 착취당하던 민중의 입장에서 재조명 했다.

지난 2015년 대한민국의 박근혜 정부는 “좌편향 교육은 잘못됐다.”는 시각을 가지고 국정교과서 사태를 초래했었다. 수많은 학자들이 반대했음에도 박근혜 정부는 이를 시행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사태를 지지하던 일부 뉴라이트 계열 교수들과 극우집단들이 내세우던 논리는 아주 심플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가 바로 그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역사라는 학문 자체를 국가주의라는 맹목적이고 전근대적인 사상에 그대로 대입해서 본 것이다. 역사는 정직하다. 정직하기 때문에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사실에 근거하여 기록해야지 그들이 얘기하는 대로 단순히 자랑스러운 국가의 역사 따위를 일부 정치인들 입맛에 맞게 만들기 위해서 역사를 집필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이다.

하워드진의 미국민중사를 읽으며 필자는 “역사라는 학문은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가.”를 이 책을 통해서 제대로 배웠다. 미국민중사는 미국이라는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일부에선 이 책의 편향성을 문제 삼을 것이다. 하워드 진도 이 책을 쓰면서 그리고 책 후기에서 밝히는 대로 이 책은 철저히 억압받던 민중의 입장에서 서술된 책이기에 중립성을 보장하기 매우 힘들뿐더러 애초에 보장 할 수가 없는 책이다. 중요한건 이러한 문제를 인식해야한다는 중요한 교훈이지 중립성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하워드 진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You 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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