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시대의 논리 창비신서 4
리영희 지음 / 창비 / 199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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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박정희가 유신독재체제를 강화하던 1970년대 이성과 논리을 가지고 펜으로 군사독재에 저항하던 한 인물이 있었다. 그가 바로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리영희다. 해방 이후 월남하여 6.25 전쟁 당시 미군 통역장교로 참전한뒤 대한민국 군대에서 약7년간을 복무한 그는 당시의 미군 통역장교 출신들과는 다르게 미국의 팽창정책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그외의 보수정권에 맞서 싸운 몇 안되는 인물이다. 그는 언론사에 근무하는 언론인으로써,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써의 양심을 지킨 인물이다. 유신독재 시기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다 반공법 위반으로 2년간 감옥생활하기도 했다. 1974년 리영희 선생께서 쓴 책이 있었다. 그 책이 바로 그 유명한 '전환시대의 논리'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전환시대의 논리는 수많은 사회운동가와 민주화 운동가에게 사상적으로 영향을 준 책이다. 평론가 진중권도 유시민도 그리고 현 대통령 문재인도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었고 전환시대의 논리가 그들과 같은 수많은 민주화운동가와 사회운동가에게 준 사상적 충격과 지식은 참으로 엄청났다.

 

필자가 리영희를 알게 된 것은 2년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찾아보다 리영희라는 이름을 발견하면서 부터다. 리영희의 이력이 궁금하여 위키피디아에 있는 리영희에 대한 문서를 단편적으로 나마 읽어봤고 현대사 인물 평전을 굉장히 많이 쓰신 김삼웅 선생님께서 쓰신 리영희 평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리영희 평전을 읽으면서 필자는 책 전환시대의 논리를 알게되었고 그 책을 읽게되었다. 유시민이나 진중권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받았을 만큼의 충격(혹은 그들이 느꼈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까지는)은 아니더라도 책 전환시대의 논리는 필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것 같다.

 

1. 중국혁명

 

박정희가 통치하는 한국은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는 백색파쇼국가였다.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았기에 공산주의에 대해 조금이라도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국가는 언제든지 나치스식 반공법을 적용하여 소위 빨갱이로 간주된 사람을 마음대로 처벌할 수 있었다. 70년대 박정희 시대는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참전으로 1.4후퇴를 한지 30년도 안된 시점이었기에 6.25 컴플렉스가 지금보다 사회에 만연했었고 1920년부터 1949년까지의 중국 민중혁명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시대였다. 그런 암흑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저자 리영희는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중국혁명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서술했다. 리영희는 중국 혁명 당시 장개석의 국민당군에 맞서 싸웠던 마오쩌둥의 중국혁명을 있는 그대로 서술했다. 제1차 국공내전은 1920년대 장개석의 배신으로 시작되었다. 1931년 일본군의 만추침략에도 공산당 토벌에만 집착하여 중국의 영토를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넘긴 장개석의 행동을 이 책에선 규탄 한다. 그리고 국민당군의 토벌에 맞서 유격적을 전개하고 대장정에 성공한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의 혁명전쟁을 높게 평가했다. 1937년 시작 된 중일전쟁에서의 팔로군의 항일투쟁을 재조명 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시작된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군의 부패상을 책에 서술했다. 즉 이 책에선 1949년 중국공산당의 승리를 매우 높게 평가한 것이다. 마오쩌둥하면 "북괴를 도와 자유통일을 방해한 존재"로만 인식하던 시기 리영희가 평가한 중국혁명과 마오쩌둥은 책을 읽은 젊은이들에게 사상적 전환을 시켜주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2. 한,미 관계와 일본의 부상

 

저자 리영희는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한,미 관계와 일본의 부상에 대해 다뤘다. 저자 리영희는 단순히 한미관계에 있어서"혈맹"만을 강조하는 단순도식화적인 논리를 거부하고 국가 대 국가의 관점에서 한미관계를 전망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한반도 상황을 미,일,중,소 4개국을 빼놓고 볼 수 없다 결론내렸다. 리영희는 경제력을 토대로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일본의 상황을 경계했다. 당시 리영희가 걱정하고 경계했던 일본의 자위대 창설과 군국주의 부활 및 미일동맹등은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는 것들이다. 즉 리영희는 그 당시부터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논하고 걱정했으며 젊은이들에게 깨우쳐주고자 노력했다.

 

3. 기자 풍토

 

언론인으로써 양심을 지키며 군사독재와 보수정권에 싸워온 리영희는 기자 혹은 언론인이 가져야할 덕목과 의무에 대해 마지막 장에서 서술했다. 1960,70년대 반공주의가 극에달하던 한국의 언론은 군사정권의 나팔수였다. 국가가 원하는 내용만 보도 했고 그에 조금이라도 반대되는 내용만 있으면 검열하기 쉽상이었다. 그랬기에 과거 대한민국의 언론을 박정희를 매우 미화했고 그에 반대되는 내용을 쓰지 못하게 했으며 사실상 파시즘에 가까웠다. 과거 군사독재의 나팔수였던 대한민국 언론계의 실태를  저자 리영희는 전환시대의 논리 첫 장에서 대니얼 엘스버그의 베트남 전 폭로를 얘기하며 언론의 자유와 진실의 승리를 얘기했다. 즉 리영희는 기자(혹은 언론인)이라면 불의에 맞서 진실을 폭로하고 양심을 지켜야 하는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했고 책에서도 그렇게 서술했다. 과거 이명박근혜 정권시기 이명박근혜 정권에 빌붙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언론만을 보도하게 하던 사람들을 생각해봤을때 다음과 같은 리영희의 주장은 너무나도 공감이 갔다.

 

4. 베트남 전쟁

 

필자가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으며 가장 주의깊게 그리고 가장 집중해서 읽은 파트는 바로 베트남 전쟁 파트였다. 개인적으로 베트남 전쟁과 호치민에 대해 관심이 많은 필자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기전 리영희 선생이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단편적으로 나마 알고 있었고 1980년대 리영희 선생께서 쓴 <베트남 전쟁>이라는 책을 작년에 읽었었다. 박정희 정권시기 베트남 전쟁에 5만 이상의 군대를 파병했고 언론은 베트남 전쟁을 "북베트남의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 혹은 자유월남을 지키기 위한 전쟁"으로 미화했다. 저자 리영희는 베트남 전쟁을 단순히 자본주의vs공산주의의 전쟁이 아닌 민족해방세력vs민족반역세력의 전쟁으로 해석했다.

베트남 전쟁의 기원을 19세기 프랑스의 식민지시기부터 시작해서 태평양 전쟁,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까지의 흐름을 책에서 설명했다. 남베트남의 초대 대통령 응오딘지엠의 부패상과 독재정치와 그리고 남베트남 정권 출신들이 과거 프랑스 식민지시기 민족을 배반하고 사리사욕을 채운 친프랑스민족반역자였다는 사실또한 이 책에서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다. 리영희의 말대로 베트남 전쟁은 민족해방세력 대 민족반역세력의 전쟁이었고 미국과 한국은 민족반역자 정권을 도왔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리영희 선생의 관점은 현재기준으로 생각해봐도 명확한 사실에 근거한 관점이다. 베트남 전쟁을 자유월남을 지키기 위한 전쟁으로 선전하던 시기 깨어있는 지식인들이 이 책에서 진실을 알았을때 받았을 충격언 어마어마 했을 것이다.

 

5. 전환시대 논리의 한계

 

어느 책이든 간에 한계가 있다. 리영희 선생께서 쓴 전환시대의 논리 또한 마찬가지다. 필자는 책을 읽으면서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다룬 중국관련 부분에서 리영희 선생이 1960년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심각하게 미화환 부분을 적잖게 봤다. 마오의 문화대혁명 시기 중국은 말 그대로 광기에 휩싸였다. 문화대혁명 시기 수많은 중국의 문화재들의 파괴됐고 지식인들은 마오쩌둥을 광신적으로 추종하는 홍위병들에 의해 조리돌림을 당하고 구타탕하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그런식으로 총150만명 이상이 숙청됐다. 무엇보다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을 했던 이유는 1958년 추진했던 대약진 운동이라는 크나큰 과를 덮어버리기 위해 벌인 마오쩌둥의 학살극이었다. 그러나 리영희 선생께선 문화대혁명 시기 신세대를 자처한 뒤 숙청을 자행했던 홍위병들을 마치 구체제를 타파하고 위대한 사회를 건설하는 역군으로 묘사했고 문화대혁명을 굉장히 자유롭고 치열한 사상적 논쟁을 통하여 국가를 각성하는 위대한 사회적 변혁운동으로 묘사했다. 이부분은 명확히 리영희 선생의 과오다. 리영희 선생의 문화대혁명 미화에 대해 굳이 변론을 하자면 68혁명시기 새로운 사회를 추구했던 신좌파세력들은 모순론과 같은 마오쩌둥이 쓴 책을 읽고 문화대혁명과 마오쩌둥을 굉장히 미화했던 적이 있다. 거기다 마오쩌둥의 중국은 언론을 통제하고 굉장히 만흔 은폐했기 때문에 문화대혁명의 진실이 서방세계에 제대로 알려질 수가 없었다. 68혁명이라는 흐름을 탔던 리영희 선생 또한 마찬가지로 진실을 잘 몰랐기 때문에 문화대혁명을 미화했던 것일수도 있다. 물론 그런 시대적 상황이 그렇다 할지라도 흑역사는 흑역사다. 그래도 리영희 선생께선 후에 자신이 문화대혁명을 지나치게 미화했던 과오를 인정했다. 따라서 당시 문화대혁명을 지나치게 미화한 리영희 선생의 행적을 한가지 측면에서만 보면서 그를  맹목적으로 비난만 하는 것 또한 잘못된 관점이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6. 글을 마치며

 

전환시대의 논리는 꼭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정말 괜찮은 철학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필자는 리영희 선생의 쓴 전환시대의 논리를 군사독재에 저항한 위대한 철학책이라 정의하고 싶다. 지성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니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할 책이다. 사회의 변혁과 이상적인 사회를 원하고 갈망하는 진보라면 마르크스나 레닌 그외의 사회주의 서적을 읽는 것도 의미있지만 대한민국 운동권 세대에게 사상적 영향을 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또한 마찬가지로 읽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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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일기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호치민 지음, 안경환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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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유명한 여배우인 제인 폰다(Jane Fonda)가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에게 추천해줬던 책이 있다. 그 책이 바로 2차세계대전 당시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이 감옥에 있으면서 썻던 옥중일기이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 이후 미국은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했고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미국의 참전으로 태평양에서도 미,영,중을 중심으로 하는 반파시즘 연합전선이 형성되자 호치민은 중국의 도움을 받기 위해 중국으로 갔다. 그러나 호치민을 공산당 스파이로 오인한 중국 국민당 지지자들은 그를 체포했고 감옥에 가뒀다. 결국 호치민은 1942년 8월 29일 부터 1943년 9월 10일까지 아까운 1년을 감옥에서 생활했다.

 

호치민 주석의 감옥 생활은 참으로 처참했다. 시대가 2차세계대전 때인지라 감옥에서는 밥도 제대로 안나왔고 물도 제대로 안나왔으며 심지어 4달동안 씻지도 못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할정도로 열악했다. 그리고 그가 있던 감옥에선 결핵에 걸려 죽는 사람도 적잖게 있었다. 이런 처참했던 감옥생활을 약1년간 했던 호치민은 시의형태로 기록을 남겼다. 그게 결국 호치민이 쓴 옥중일기가 된다.

 

옥중일기를 읽으며 호치민 주석의 처참한 감옥생활과 그가 느꼈던 감정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아쉬운 점은 호치민이 감옥에 있을 당시 2차세계대전의 전황이 너무나도 빨리 전개되어 1943년 석방된 호치민은 2차세계대전이 사실상 끝나가던 1945년이 되서야 미국하고 접촉했고 그 접촉도 일본의 조기항복으로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이와같은 펙트를 놓고 봤을때 호치민의 감옥생활은 확실히 베트남 독립운동에 있어서 크나큰 손실이었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4행시니 읽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고 1시간 정도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호치민 주석이 쓴 옥중일기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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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us_fugit 2018-05-21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만지 책이군요 지만지 책은 홈페이지에서 99원에 책 본문 전체가 열람이 가능하더라고요 요새 베트남에 관한 관심도 늘었는데 주말에 시간내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추천 감사드립니다. :)

NamGiKim 2018-05-21 18:48   좋아요 1 | URL
이 책은 1시간이면 충분히 다 읽을 수 있습니다. 네 꼭 읽어보세요.ㅎㅎ
 
데모사이드
R. J. 러멜 지음, 이남규 옮김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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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대신 비판글로 대체합니다.)

1.공산주의는 생지옥?

데모사이드라는 말을 창조해낸 루돌프 럼멜이라는 사람이 있다. 집단학살을 주로 연구한 미국의 교수이다. 그는 20세기 당시 정부에 의해 살해된 사람이 2억6척만명이라 주장했고 그중 1억6천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가 만든 통계에 따르면 소련 중국에서 데모사이드로 죽은 사람이 가뿐히 1억명을 넘는다고 되어있다.)

그런 소리를 하는 인간이기에 럼멜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자 미국식 자유민주조의적 가치관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럼멜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본질적인 핵심과 평등사상을 이해하기 보다는 학살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여 공산주의 이론을 절대악으로 규정해 버리는 우를 범했다.

물론 스탈린이나 마오시기 사람이 많이 죽고 공산주의 국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던건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학살만을 뜻하는 아주 악랄한 사상일까? 그건 절대로 아니다. 미국 학자 럼멜은 마르크스가 왜 공산주의 이론을 창시했고 레닌은 왜 러시아 혁명을 주도했으며 그외의 수많은 혁명가들의 혁명적 대의를 위해 싸우다 죽었는지 그리고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국가는 얼마나 복지가 보장됐는지는 보지 않고 스탈린시기 숙청과 마오의 대기근 그리고 그외의 공산권 국가에서의 사망자만 가지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뒤틀린 미국식사상에 입각하여 공산주의=학살이라는 논리적인 우를 범한 것이다.

쉽게말해 뒤틀린 수구사상 소유자다.

2.민주평화론

럼멜은 민주평화론이라는 이론을 만들어낸 걸로도 유명하다. 그가 창시해낸 민주평화론의 핵심은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가급적 전쟁은 피한다. 그러나 비자유주의적 비민주적인 국가들과는 전쟁을 하는 건을 기피하지 않는다."다.

이 민주평화론의 핵심을 돌려얘기하자면 즉 미국식 민주주의에 부합하지 않는 국가는 무력으로 침공해도 되고 그런 국가의 사람은 가차없이 죽여도 된다는 논리가 된다. 한마디로 럼멜 이작자는 제국주의적인 이론을 아주 교묘하게 민주평화론이라는 말로 합리화 시킨 것이다.

이런 관점을 가진 럼멜은 부시정권시기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아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이 단행한 베트남 전쟁의 연장선상일 뿐이며 미국의 전쟁범죄일 뿐이다. 이런 전쟁을 적극지지하는 사람이 평화론을 얘기하는 것 부터가 모순됐다.

각잡고 따져보자면 럼멜말대로 미국은 평화를 위해 이라크와 아프간 그리고 중동문제에 개입했는데 중동에 민주국가가 탄생하고 평화가 왔나?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오사마 빈라덴의 죽음이후 ISIS라는 더 막장인 놈들이 등장하여 중동을 피바다로 그리고 테러의 현장으로 만들고 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럼멜의 민주평화론은 미국이 다른 나라를 침공하기 위해 혹은 자신들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이론 밖에 되지 않는다.

결론

루돌프 럼멜은 미국식 우익 논리를 대변하는 수꼴이다. 몇몇 사람들이 암것도 모른채 럼멜의 이론을 어느정도 긍정적으로 보는것 같은데 그러지 말자.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만들어낸 수꼴일 뿐이다.

럼멜이론의 영향을 받아 현재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이 조시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였던 라이스 국무장관이다. 그외에도 럼멜이 키운 미국의 네오콘들이 찾아보면 은근히 많다. 누구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렘멜의 한국인 제자중엔 현재 대한민국의 수꼴 교수도 있다.

이 사람이 쓴 책중에 소설 데모사이드도 있는데 정말 황당무계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고 그 책에는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을 막기 위해 한국 독립군에게 자금을 전달하여 암살을 막는다는 이상한 내용도 있다. 거기다 그 책 국내에서 번역하여 출판한 곳은 수꼴책들을 양산해내는 기파랑이다.

내가 럼멜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뒤 페북에다 럼멜을 검색했는데 내 페친에 페친(수꼴아니다)이 쓴 글중에 럼멜의 데모사이드를 인용하며 국가폭력을 규탄하는 글을 봤다. 순간 좀 어이가 없었다. 아무튼 데모사이드 이론을 창시해낸 럼멜은 수꼴이니 그를 찬양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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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us_fugit 2018-05-21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NamGiKim 2018-05-21 09:44   좋아요 1 | URL
그리고 럼멜은 베트남 전쟁 당시 수많은 사람의 반대했음에도 그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이라 했죠. 한 마디로 답없는 수꼴입니다.
 
굿모닝 베트남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배리 레빈슨 감독, 로빈 윌리암스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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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용평리조트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가 주인공으로 나온 굿모닝 베트남을 봤다. 영화 굿모닝 베트남은 베트남 전 당시 미군 방송국 그리스 지부에서 활동하다가 베트남 사이공 지부로 새로 부임한 DJ 에이드리언 크로나워(로빈 윌리엄스 역)가 사이공에서 일상생활과 방송을 하면서 겪는 일을 그린 영화다.

 

사이공에서 미군 방송을 하게 된 크로나워는 방송 자체를 매우 유쾌하게 진행하는 타고난 능력을 가진 DJ였기에 미군 병사들의 인기를 누렸다. 그의 방송은 다른 미군 병사들이 진행하는 방송들에 비해 굉장히 자유분방 적이고 사회적인 풍자 및 현실 비판도 어느 정도 들어갔기에 방송을 듣는 미군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누렸지만 정작 그런 자유분방한 진행방식 자체를 싫어하던 상관은 항상 경계하고 문제 삼았다. 방송을 진행하던 크로나워가 있던 베트남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자신이 자주 다니던 술집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고 병사들을 위로하러 기지로 가던 중 차가 지뢰를 밟고 터지는 둥 크로나워는 베트남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된다. 그는 방송일도 하면서 베트남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도 했는데 처음에는 자신을 의심했던 한 남자학생과 친해지면서 특별한 친구가 되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믿었던 친구는 베트콩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

 

영화 굿모닝 베트남은 이런 전개를 통해서 베트남 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베트남 전 당시 파병오는 미군들의 모습과. 습한 지역에서 진흙을 밟아가며 행군하는 미군의 모습. 베트남 농촌을 전투헬기로 폭격하는 장면 그리고 남베트남 독재정권에 대항하다 경찰들에게 강경진압 당하는 민중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를 같이 틀어주는 장면은 정말 영화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다. 영화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서 미국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의 현실은 시궁창이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크로나워의 친구가 자신의 정체를 들킨 뒤 자신이 왜 베트콩에 가담하게 됐는지를 얘기하는 장면 또한 기억에 남는다. 이와 같은 장면을 통해서 영화 굿모닝 베트남은 베트남 전의 현실을 아주 날카롭게 보여줬다.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로빈 윌리엄스가 우울증으로 인하여 자살로 생을 마감한지 이제 4년이 흘렀다. 영화 주만지와 박물관의 살아 있다.를 매우 재밌게 본 나로선 이 영화를 보면서 로빈 윌리엄스를 같이 보기 있으니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파지기까지 했다. 무튼 이 영화를 꼭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 점수는 10점 만점에 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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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리처드 오버리 지음, 류한수 옮김 / 지식의풍경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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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부터 73년전인 5월 9일 소련은 나치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소련이 치른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약 4년간의 전쟁동안 2500만명의 소련사람이 전쟁에서 죽었다. 거기다 독소전쟁시기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사자 비율을 보면 소련군 희생자가 독일군 희생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런 희생을 바탕으로 치른 전쟁이었기에 소련 사람들은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그 어떤국가들 보다 자신들이 승리한 날을 기념한다.

2차세계대전 종전 73주년을 맞아 오늘은 영국학자 리처드 오버리가 쓴 책인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에 대해 리뷰를 남겨볼까 한다.

 

2차세계대전은 지금까지 일어났던 전쟁중에 가장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 그리고 수많은 국가들이 참전한 전쟁이다. 그중 가장 많은 사람이 죽었고 가장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던 곳이 동부전선이었다. 독소전쟁은1941년 6월22일 독일의 침공으로 시작되었다. 개전 초반기 독일군은 러시아 전역에서 진격했고 그해 12월 독일군은 모스크바 외각까지 진입했다. 모스크바를 점령 할 수 있었음에도 독일군은 점령하지 않았고 1942년에는 스탈린그라드로 진격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수많은 독일군과 소련군이 죽었지만 독일군은 혹독한 겨울을 견디지 못했고 보급마저 끊기는 바람에 1943년 2월 파울루스 장군이 항복하면서 소련군의 승리로 끝이났다. 1943년 7월 독일군은 쿠르스크에서 대규모 전차를 동원해 반격했지만 소련군의 물량을 막지는 목했다.  1944년 1월에는 레닌그라드 포위전이 소련군의 승리로 끝났고 그해 6월부터 바그라티온 작전을 통해서 8월말까지 소련군은 수많은 동유럽국가로 진군해나갔다. 1945년 4월 소련군은 드디어 독일국경을 넘었고 4월 30일 베를린 국회의사당에 붉은 깃발을 꽂음으로서 파시즘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2차세계대전 당시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르고 가장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여 독일군을 몰아내는데 있어서 1등공신 역할을 했던 나라가 소련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의 경우 이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랜드리스 지원 때문이라 얘기하지만 기본적으로 소련군이 매우 잘싸웠던 점도 있다. 1944년 6월 서방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여 8월 말 프랑스 파리를 해방했을때 소련군은 그 두달동안 엄청난 동유럽 전역에서 진격했고 수많은 동유럽국가를 해방시켰다. 이점만 보더라도 소련군이 서방 연합군 보다 더 치열하게 싸웠다는 점을 알 수가 있다.

 

리처드 오버리의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은 국내에 출판된 책중에 독소전쟁을 주제로 하는 몇 안되는 서적이다. 그렇기에 전승기념일인 오늘따라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오늘따라 2년전 모스크바에 가서 참배했던 무명용사의 묘와 3일전 참가햇던 신도림역에서 열린 전승절 기념행사가 유난히 더 생각이 난다. 오늘만큼은 파시즘에 맞서 싸운 소련 병사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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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5-09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직접 찍으신 사진이세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기념 행사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NamGiKim 2018-05-09 22:05   좋아요 1 | URL
네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처음 두장은 모스크바 크렘린 근처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에서 찍은거고 나머지는 올해 5월6일 한국에 사는 러시아 사람들이 신도림역에서 했던 기념행사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5-09 22:09   좋아요 1 | URL
그들에게 그날이 얼마나 특별한지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저도 <레닌그라드 전투> 란 책 읽고 몸서리치던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