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5일 대한민국 해병대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대한민국 해병대 73주년 기념 게시물이 포스팅 됐다. 이 포스팅은 “73년 전 오늘! 초대사령관 신현준 중령을 비롯한 380명의 정예병력으로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대한민국 해병대가 창설되었습니다.”라고 쓰여 있으며, 해병대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했고, 북한의 불법공격인 연평도 포격전에서 활약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해병대가 자신들의 아버지라며 내세우는 인물은 신현준은 어떠한 인물일까? 오늘은 대한민국 자칭 해병대의 아버지 신현준이 누구인지 얘기해보고자 한다.

(대힌민국 해병대를 창설한 신현준이 정복 사진)
대한민국 해병대가 그리도 자랑스럽게 칭송하는 신현준은 일제시대 당시 창설된 간도특설대의 창설 요원이었다. 그는 1938년 12월부터 1940년 12월까지, 1943년 4월부터 1944년 8월까지 두 차례에 걸쳐 3년 4개월간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다. 간도특설대란 무엇인가? 간도특설대는 1938년 9월 15일 일본이 세운 만주국 치안부 산하 부대의 하나로 창설이 결정돼 그해 12월에 탄생한 부대로, 1939년 3월에 정식으로 발족된 부대다. 만주군 산하의 특수부대로는 아사노 부대와 이소노 부대, 회교부대, 오로촌 부대 등이 있었는데, 간도특설대도 이 중 하나다.

(신현준의 행적을 추적한 오마이뉴스 동영상 스크린샷)
간도특설대의 창설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항일무장투쟁을 하는 집단을 토벌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당시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는 독립군을 토벌하는 것이 간도특설대의 존재 목적이었던 것이다. 간도특설대는 1939년 3월 1기 지원병 훈련이 끝난 후부터 본격적인 토벌에 나섰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는 시점까지 이들은 항일무장세력들을 토벌했다. 당시 만주에는 김일성이 복무했던 동북항일연군 잔존 세력들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 휘하의 팔로군들이 많았다. 당연하게도 팔로군에는 수많은 조선인들이 있었고, 이들은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에서 중국공산당을 도와 활약한 독립군이었다.

(2022년 대한민국 해병대 페이스북 페이지가 올린 홍보물, 놀랍게도 대한민국 해병대는 친일 매국노를 자신들의 아버지라고 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했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했다.)
대한민국 해병대의 아버지 신현준같은 이들이 간도특설대에 복무하여 친일 매국행위를 하고 있을 당시, 조선과 만주에 있던 뜻있는 젊은이들은 중국 공산당 휘하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다. 대한민국 해병대의 아버지 신현준은 1915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1928년 하얼빈 보통학교에 편입한 그는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다음해인 1932년 2월 하얼빈 난강에 주둔한 일본군 부대를 찾아가 구두시험을 치르고 입대했다. 17살 때 일본군에 자진입대한 것이다. 신현준은 자신의 회고록인 <노 해병의 회고록>에서 “어릴 때부터 중국어를 배워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면서 “이를 무기로 일본군에 종군하면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1932년 2월, 열일곱 살의 어린 나이였던 나는 학교 공부를 중단하고 일본군에 종군할 것을 결심했다. 당시 하얼빈시 남강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부대에 찾아가 구두시험을 치른 다음 그 자리에서 합격통지를 받았다.”
신현준이 복무했던 14사단은 북만주 지역을 전전하며 항일 세력과 전투를 벌였으며, 1934년 1월까지 일본군에서 통역병으로 복무했다. 이후 신현준은 1935년 3월까지 1년간 만주군 5관구 고문부에서 근무했으며, 1936년엔 펑톈 군관학교에 지원해 5기생으로 들어가 1937년 12월 말 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이후 박격포 중대, 교도대 등에서 복무하다가 1938년 간도특설대 창설에 관여했다. 1945년 해방 이후 신현준은 박정희와 더불어 광복군에 잠시 편입되었다가 1946년 5월 10일 미군 LST 함정을 타고 부산으로 귀국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은 창군 작업을 급속도로 진행했는데, 신현준은 이 과정에서 남조선해안경비대로 들어가 손원일 소령의 도움으로 해군 장교로 변신했고, 이후 해병대 창설 임무에 관여했다.

(미군과 백선엽, 신현준 또한 백선엽과 마찬가지로 미국이라는 존재 덕분에 대한민국 군에서 해병대 사령관까지 될 수 있었다.)
1948년 여순항쟁이 일어나자 신현준은 해군함정 4척을 이끌고 여수항 일대를 점령한 뒤 해상에서 작전을 전개해 저항세력을 진압했으며, 신현준은 여순사건을 계기로 “상륙작전을 전담하는 부대가 필요하다”면서 해병대 창설을 국군에 제안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1949년 5월 5일 대통령령으로 해병대 창설을 정식 공포했으며, 신현준은 대한민국 해병대 초대 사령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신현준은 1949년 제주 4.3항쟁 시기 해병대 전 병력을 제주에 배치해 토벌 작전을 전개했으며, 한국전쟁 후 신현준은 해병대 사령관 자리를 간도특설대 출신 김석범에게 인계했다.

(신현준 추모제, 아직도 대한민국 사회는 그를 추모하는 이들이 꽤나 있는 듯 하다.)
이처럼 대한민국 해병대의 아버지로 불리는 신현준은 일제시절 간도특설대에서 친일매국행위를 한 인물이며, 해방 이후에는 제주와 여순에서 미제국주의에 맞선 독립운동가들의 투쟁을 빨갱이 소탕이라는 명목아래 진압했고, 한국전쟁 시기에는 독립운동가 이현상 사령관이 이끄는 빨치산을 토벌했다. 즉 2022년 4월 15일 대한민국 해병대는 이러한 인물을 자신들의 아버지라며 칭송한 셈이다. 참으로 비극적인 한반도 이남의 역사와 현실이다. 과거 적극적으로 친일을 하며 무수히 많은 독립군을 토벌한 이를 대한민국 해병대의 아버지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통해, 한국전쟁의 제국주의적 모순성은 너무나 자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며, 신현준의 존재는 백선엽과 더불어 이를 입증한다.
참고자료
김효순, 『간도특설대』, 서해문집, 2014
김종훈, <'광복군'으로 신분 바꿔 박정희와 함께 돌아온 만주군 장교>, 오마이뉴스, 2020.04.06
http://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621448
대한민국 해병대, <페이스북 글>, 2022.04.15.
https://www.facebook.com/rokmc.mil/posts/pfbid02KYFe9tErArh42b2KFHkS2wHcMKd6roUyZmPgrqqZyQPxZw2rsPsdQkkC2aB5dd2p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