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엔비엔푸 전투 승리 67주년을 생각하며.🇻🇳🇻🇳🇻🇳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 요새가 함락되었다. 프랑스군 사령부가 있던 베아트리스 기지가 베트민에 의해 함락됐다. 사령관 드 카스트리를 포함한 디엔비엔푸의 프랑스군 사령부 인사들이 전부다 포로로 붙잡혔다.

20세기 최고의 명장 보 응우옌 잡 장군의 천재적인 지략과 강철같은 불굴의 정신은 20세기 세계사를 다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전투에서 2,293명이 전사하고 11,721명의 최정예 부대 프랑스군이 포로로 붙잡혔는데, 아주 영광스러운 승리다.

100년간의 프랑스 식민지배를 끝낸 전투이자 위대한 승리가 바로 디엔비엔푸 전투다. 이 전투에서 베트남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부도덕한 식민주의를 지원한 미국도 무찔렀다. 민주주의라는 이름하에 부도덕한 개입을 한 미제국주의의 기만성을 아주 잘 보여줬다.

보 응우옌 잡 장군의 말대로 이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주의에 맞서던 전 세계 사회주의 진영에겐 환영할 일이었고, 식민주의를 유지하려던 이들에겐 불행한 일이었다. 디엔비엔푸 전투는 지금도 제국주의에 맞서는 진보진영에게 자부심을 갖게 하는 위대한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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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지하디스트 그리고 이슬람 -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는
곽영완 지음 / 애플미디어(곽영완)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2014년과 2015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단체가 있다. 그 단체가 바로 테러리즘의 상징인 ISIS. ISIS는 이라크와 시리아 그리고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사실상 국가 하나를 만들었었다. 또한 수많은 자원자를 전 세계로부터 끌어들였으며, 유럽과 서방지역에서도 ISIS에 가담하는 이들이 적잖게 있었다. 심지어 20151월 한국에 살던 김모군이 ISIS에 가담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한국 사회 또한 경악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거기다 이들은 청소년들이 즐겨하던(지금도 많은 이들이 즐겨하는) 게임인 GTA 5를 이용하여 청년들을 끌어들이는 시도도 했었다.

 

이들이 주도했던 사건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2015년에 일어났던 프랑스 파리의 총기 테러였는데, 544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중에서 최소 130명이 사망했다. 당시 이 소식을 접했던 나 또한 충격 받았었다. 왜냐하면 그 사건이 일어나기 1년 전에 프랑스 파리를 관광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요르단 조종사를 산채로 화형하거나 서방측 인질들을 참수하는 영상 등은 참으로 잔혹하고 충격적이었다. ISIS의 급부상과 더불어 이슬람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나 혐오도 급상승했던 것 같다. 그 예시로 2018년 예맨 난민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난민수용을 반대하는 측에선, “이슬람이 테러를 일으킬 거다.”라는 허무맹랑하고 인종혐오적인 모습을 보였었다. 물론 옳지 못한 관점이지만, 이것은 ISIS의 부정적 영향 때문이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모습들이 대중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ISIS는 왜 발생한 것이고, ISIS가 활동하는 지역 중동은 전투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슬람은 무엇일까? 이들의 역사는 어떠한 과정을 거쳤을까? 왜 이들은 자살폭탄테러를 포함한 각종 테러 그리고 무자비한 살상을 일삼는 것일까? 누군가는 ISIS를 생각하다보면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고 싶어 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하고, 실제로 그러한 답을 찾고자 할 때가 있었던 것 같다. 확실한 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사실이다.

 

‘IS 지하디스트 그리고 이슬람ISIS의 존재와 그들이 추구하는 사상,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 중동의 역사 그리고 이슬람에 대한 역사 및 종교에 대해 개략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책의 저자는 복잡 다다한 이 내용들을 일반인들이 알기 쉽도록 쓰기 위해 자신 나름의 노력을 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슬람교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도 없었다. 나는 이슬람교의 기본적인 교리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조차 몰랐다. 그저 돼지고기를 더럽게 여겨 먹지 않고, 여자들은 히잡을 강요당하며, 금식날이 있다는 단편적인 지식 정도였다. 이들이 금지된 행위라 여기는 하람에 이자 받기가 금지돼 있다는 것과 이슬람교도의 기본적인 의무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수입의 일정 부분 기부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은 중동사의 개략적인 역사를 담고 있는데 그 범위는 현재 유라시아와 중동 그리고 이집트 리비아를 포함한 아프리카까지 역사를 포괄시키고 있다. 중동의 역사도 서구 열강의 침탈과 미소냉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특히 중동의 현대사적인 측면에서 1948년 건국된 이스라엘은 아랍민중에게 여러 가지 해악을 끼쳤다. 이스라엘이 끼친 해악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이는 단순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전개한 인종청소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1차부터 4차까지 전개된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전 아랍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군사력을 토대로 아랍 연합군을 괴멸시키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였다. 6일 전쟁이라고 불리는 제3차 중동전쟁에선 이스라엘이 이집트 나세르 측의 항공기 수백 대를 한 번에 격파하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였다.

 

그 외에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특히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의 경우 ISIS를 등장하게 된 계기였다. 사실 ISIS는 오사마 빈라덴이 이끌었던 알카에다의 한 분파에 속했던 집단인데, 2011년 오사마 빈라덴이 사망하면서 급부상했다. 또한 2003년 미국이 일으켰던 이라크 전쟁은 아무런 성과 없이 4,500명의 미군 전사자와 최소 2조 달러 비용을 내고 끝났다. 거기다 이라크 전쟁 명분으로 내세웠던 신무기는 거짓말이었고, 시아파와 수니파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통치 또한 막장으로 해서 바트당 해체 이후 혼란과 분란만 만들어 놓았다. 즉 이라크 침공은 모든 면에서 실패한 전쟁이었으며, 매우 부도덕한 전쟁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무책임한 행위도 ISIS의 등장원인이었다.

 

정리해보자면 중동문제의 결정적인 원인에는 항상 미국과 이스라엘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평화와 안정을 망치는 제1의 요소이다. ISIS의 등장도 그러하다. 책에서 아주 짧게 언급되지만 2011년 민주화 시위를 가장한 친서방 폭동이었던 반카다피 운동도 결국 부유했던 리비아를 말 그대로 개판5분전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결과 현재 리비아 민중 70%는 카다피를 그리워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머지 중동 국가들도 서방의 농간과 개입으로 피해를 많이 보았다. 그리고 서방의 개입 이후 ISIS라는 문제도 그 나라에 같이 남게 되었다.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등이 그러하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책은 ISIS와 더불어 중동과 이슬람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현재상황과 앞으로의 전망을 설명한 책이다. ISIS가 급부상할 때 나온 책이라 근래의 중동 상황을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부족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동과 이슬람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분쟁의 기본적인 배경과 맥락을 쉽게 알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ISIS와 중동 그리고 이슬람에 대해 잘 모르지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입문서로서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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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이 국내에 공론화 된 것은 1990년대였다. 1990년대 이 민간인 학살을 공론화한 인물은 바로 베트남에서 유학하며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했던 구수정 박사를 통해서였다. 구수정 박사에 따르면 대략 9,000명 이상의 베트남 민간인이 학살당했고,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이 주둔했던 꽝남과 꽝응아이 그리고 빈딘성 일대에서 학살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서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은 한국과 베트남 양국간의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국내에 한국군 민간인 학살이 벌어졌던 마을에는 주민들이 세운 증오비나 위령비가 있고, 그 피해자들이 적잖게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국 내에는 우리도 가해자였다는 인식이 생겼고,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문제는 일본의 침략이나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같은 선상에서 이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 사회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한국군 민간인 학살이 끊임없이 문제제기가 되고, 국민들 사이에서 반성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지만, 인터넷 상에선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부정하는 인식이나 여론이 생겼다. 대표적인 예가 현재 위키 사이트들 중에서 가장 접속률이 많은 나무위키가 그러하다.

 

나무위키에 있는 '베트남 전쟁/한국군/논란' 문서에 들어가 보면 굉장히 긴 장문의 글이 적혀있다. 이 장편의 문서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증거가 없고, 대부분 거짓 증언이나 과장증언에 기반한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이들이 드는 예시 중 하나가 빈안 학살 중 일부인 '고자이 학살'이 그러하다. 이들이 고자이 학살에 대해 하는 이야기중 하나가 현재 고자이 학살 현장 벽화에 그려진 맹호부대 군인의 마크가 맹호부대 마크가 아닌 남베트남군 특수부대인 레인저 부대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고자이 학살이 한국군이 한 학살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출처를 찾아보면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들의 일부 주장에 기반한 것이다. 물론 마크를 자세히 보면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만, 고자이 학살 현장 근처에 살던 주민들이나 피해자 대다수가 한국군이 했다고 주장하기에, 남베트남군이 벌였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이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 주월한국군 총사령관인 채명신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즉 채명신이 "한국군은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한국군의 기본적인 구율로써 자리잡은 것은 아니었다. 한홍구 교수의 저서 <대한민국사>에 따르면 1966525일 주월한국군사령부가 발간한 전훈집에는 부락은 모든 적활동의 근거지이며, “게릴라의 보급, 인적자원 및 정보수집의 근원은 부락에 놓여 있으며 베트콩 하부구조의 기반은 부락과 주민이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당시 베트콩 포로를 무단으로 처형했던 참전용사 김영만은 "채명신의 주장은 병사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거기다 나무위키 측 자료들을 읽어보면 인용된 출처가 명확하지 못하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있는 퐁니퐁넛 학살이나 빈호아 학살 그리고 하미마을 학살 등을 살펴보면, 최소한 부정론자들이 비하하는 한겨레나 그외의 다수 서적들이 인용되어 있는 반면 나무위키 파일은 그런 수고조차 없다. 또한 가끔씩 '빨갱이'와 같이 자극적인 감성적 단어들도 자주 보인다. 이러한 매체의 영향을 받아 유튜브나 네이버 뉴스 등에서는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부정하는 댓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이 퍼오는 자료들 또한 나무위키에 있는 내용들이 대다수다. 쉽게 말해 나무위키에서 만들어진 반공주의적으로 각색된 가짜뉴스들이 재생산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위키피디아에서도 학살 부정론자들의 반달행위가 도를 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어 위키피디아에서 토론할때 가져오는 자료는 사실상 없는 수준이고 나무위키에서 하는 일반적 주장들을 그저 앵무새 처럼 반복하는 수준이다. 출처가 있는 자료를 퍼와봤자, 채명신의 언급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나무위키를 포함한 일부 인터넷 사이트의 내용들은 상당히 출처가 부족한 내용들이고, 일부 극우주의자들의 주장들을 사실인 것 처럼 포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이 문서상으로는 부족한 건 맞다. 그러나 미국의 미라이 학살도 공론화 되기 전에는 100명 이상의 베트콩 사살로 간주되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실제로 당시 베트남인들은 한국군에 대해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프랑스군의 용병으로 와서 잔혹한 짓을 했던 아프리카측 병사들을 보는 입장과 비슷했다. 응우옌 비엣 타인의 저서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에 나온 내용을 인용하겠다.

 

"미국인들보다 더 위험한 것은 미국인 관할을 순찰하던 한국인들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을 출신의 한 아이가 그들의 부대로 걸어 들어가 몸에 묶고 있던 베트콩 폭탄을 폭발시켰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마을 아이들에게 끔찍하게 보복했다. 그 사건 이후에, 한국인 병사들이 학교로 가서 소년 몇 명을 끌고 나와 우물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본보기로 삼기 위해 그 속에 수류탄을 던져 넣었다. 이런 짓을 하는 한국인들이 마을 사람들 눈에는 프랑스인들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따라다니면서 더 거칠고 비열하게 굴었던 모로코인들처럼 보였다. 2차 대전 때의 일본인들처럼, 한국인에게는 양심이 전혀 없어 보였고, 무자비한 살인기계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나라를 지저분한 거래를 할 수 있는 딱 알맞은 장소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출처: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p.198~199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부정론은 매우 비양심적이여 절대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이들의 태도나 주장은 박정희 시대 형성된 반공주의적인 입장과 똑같다. 이러한 태도를 가져선 안된다. 따라서 나무위키를 포함한 일부 인터넷에 있는 내용들은 사실이 아니며, 비판의 대상이 되야할 문제다. 따라서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부정론은 비판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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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가 대학에 들어가 1학년이 되었을 때에는 군부대 입소 훈련이라는 것을 받아야 했다. 마침 변화의 조짐이 드러나는 때였던지라 처음에는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결국 선배들은 더 큰 목적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입소 훈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주로 낮에는 군사 훈련을 받고 저녁에는 정신 교육을 받았는데, 어느 날 저녁 베트남의 이른바 보트피플과 관련된 이야기를 영상으로 틀어주었다. 보트피플이란 베트남 통일 이후 작은 배로 베트남을 탈출한 난민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강당 스크린에는 어떤 보트피플이 지나가던 큰 배에 구조를 애걸하던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아마 거기에, 봐라, 북베트남이 적화통일을 하고나니 저 사람들은 고국에서 쫓겨나왔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바다 한가운데서 오갈 데 없는 꼴이 되지 않았느냐, 하는 내레이션이 붙었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둔한 편이었던 옮긴이는 아무 생각 없이 그 화면에 상당히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그냥 감명만 받는 것으로 끝냈으면 좋았을 텐데, 둔할 뿐만 아니라 경솔하기까지 했던 옮긴이는 그런 느낌을 입 밖에 내어 말로 표현했던 것 같다. 그러자 근처에 앉아 있던 예리한 친구가, 아니, 어떻게 그런 무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있느냐, 여태 전환시대의 논리도 안 읽어보았느냐, 하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무안을 당한 꼴이라 그 자리에서는 무시하는 척했지만, 둔하고 경솔할 뿐만 아니라 귀까지 얇았던 옮긴이는 얼마 후에 그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을 구해 보았고, 물론 당시의 다른 많은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머릿속에 들었던 것들이 물구나무를 서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옮긴이가 경험한 것을 당시 유행하던 말로 의식화라고 부를 수 있다면, 정부와 전환시대의 논리-저자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는 한 젊은 대학생의 의식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했던 셈이다. 물론 공정한 경쟁은 아니어서, 정부는 저자를 가두고 책을 판매 금지하는 폭력을 불사했다. 뒤집어 생각하면 당시 정권은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베트남 전쟁에 대하여 정부의 해석과는 다른 해석이 들어설 여지를 남기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만큼 이 문제를 중시했던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베트남전을 둘러싼 정부의 선전은 엄청났던 것 같다. 지금이나 그때나 노래 가사 외우는 일에 결코 유능하달 수 없는 옮긴이가 가시는 곳 월남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같은 겨레 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하는 노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그 증거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겠다. 단지 말과 노래로 하는 선전뿐이었으랴. 아버지가 월남에 갔다온 친구네 살림은 뭔가 모르게 윤택하게 바뀌었고, 가전제품도 상표와 광택이 눈부셨다. 물질에 별 관심이 없었을 어린아이 눈에 그런 것이 보였을 정도이니, 당시 어른들에게 월남을 통해 유입되는 는 어떤 선전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해석이 중요했던 것은 월남 파병의 정당화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베트남 상황과 한반도 상황이 여러모로 비슷해 보인다는 점이 문제였는데-사실 한반도와 베트남은 근대 이전 중국과의 관계에서 겪었던 고통에서부터 근대의 분단과 전쟁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점들이 금방 눈에 들어온다.-이 닮은꼴에 주목한 사람들에게는 한쪽의 상황 해석을 다른 쪽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고 싶은 유혹, 또는 한쪽의 상황 전개를 다른 쪽에서 이후에 전개될 상황에 대한 예시로 받아들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사실 누구보다도 이 유혹에 깊이 빠져든 쪽, 또는 이 유혹을 반긴 쪽은 바로 당시의 정권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1975년에 남베트남 정부가 무너지자 이것을 구실로 민주적 권리들을 억압하는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한 것이 그 증거이다. 바다 건너 나라에 이데올로기 문제를 구실로 파병을 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 먼 나라에서 발생한 사건을 이유로 정변에 가까운 사태를 일으킨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아닌 만큼, 당시 정권의 남베트남과의 동일시는 상당한 수준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 정권만큼은 아니겠지만 옮긴이도 이 책을 번역하면서 베트남 역사와 우리 역사의 비슷한 점에 새삼 놀랐고, 또 그런 유사성을 배경으로 우리와 다른 점들이 더욱 도드라지게 부각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비교해 가며 이 책을 읽는 것이 상당히 자극적인 독서 경험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런 맥락 덕분에, 즉 이 책을 읽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우리나라의 역사가 계속 참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호치민이라는 인물 역시 좀더 생생하게, 강한 환기 효과를 발휘하며 다가온다. 이 점에서는 이 전기의 저자인 윌리엄 J. 듀이커에게 고마워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듀이커가 유물을 세심하게 붓으로 털어내어 발견된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 전기 작가라는 점이다. 바랜 부분을 채색하거나 떨어져 나간 부분을 땜질하는 대신 바랬으면 바랜 대로, 조각이 떨어져 나갔으면 떨어져 나간 대로 그대로 두기 때문에 그가 그린 초상에는 빈 곳이 많으며, 그 빈 곳은 읽는 사람이 상상력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이것은 특히 베트남이나 호치민처럼 우리와 각별한관계에 있는 대상의 경우에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는 것이 옮긴이의 판단이다.

 

옮긴이를 포함한 우리나라 독자들이 우리나라 상황을 배경에 깔고 읽는 것처럼, 저자인 듀이커 역시 학자로서 엄밀성중립성을 지킨다 하지만, 베트남과 나름대로 특별한 관계를 가진 미국의 학자로서 이 전기를 써나갔다는 점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책이 저자가 자신의 관점 또는 특정한 미국인 집단의 관점을 강요하려 한 삼류 전기가 아님은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따지고 들자면, 저자가 30년에 걸쳐 호치민이 한 식구로 느껴질 정도로그 인물과 베트남을 연구해온 동기 자체가 객관적이지는 않으며, 미국인의 입장을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 자체도 의식하는 한 방식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일급의 전기를 읽는 도중 가끔 으슥한 곳에서 안경을 쓴 미국인 노학자의 모습과 마주치게 될 텐데, 그것은 독자에 따라 반가운 만남이 될 수도 있고 불쾌한 만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만남의 종류가 어떠하든, 또 저자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민족과 계급의 관계 같은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이 무엇이든, 시대의 과제를 감당하며 정직하고 겸허하게 살다간 사람들의 긍지는 그 무엇으로도, 심지어 세월로도 훼손할 수 없다는 옮긴이의 독후감에 독자와 저자가 흔쾌이 동의할 것으로 믿는다.

 

번역 과정에서 베트남어와 베트남 문화에 대해 조언해주신 최귀묵 선생님에게 감사드린다.

 

호치민 평전 후기

역자 정영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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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방송들의 반북선전에 대한 단상

어용언론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텔레비전 채널인 TV조선과 채널A를 보면 탈북자들을 모아놓고, 진행하는 방송이 있다. 대표적으로 ‘모란봉 클럽‘과 ‘이제 만나러 갑시다‘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채널들은 과거 북한에 살다가 탈북한 이들을 대상으로 북한을 논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들을 대략 살펴보면, 북한에 대한 시사와 일상 그리고 정치 및 체제에 대한 비판을 담고있다. 그러나 이들이 하는 얘기들 99.9% 수준으로ㅈ악의적이거나, 반북주의를 자극하는 내용들이다. 예를들면 ˝한글을 김일성이 만든 것으로 북한사람들은 믿는다.˝던지, ˝김정일이 아는 사람에게 ˝너 나야 저년이야˝라고 하며 아내의 총살을 명령했다.˝든지, ˝심완용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말을 잘못해서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기전 북한 경찰들에게 폭행당하며 넌 이름부터가 잘못됐어 이 새키야˝라고 욕을 먹었다던지 뭐 이런 류의 내용들이 무수히 많이 나온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들이 하는 얘기들을 보면 출처와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내용들이 가득찼다. 마치 냉전시대 당시 이른바 미국의 어용언론들이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악의적인 선전을 일삼던 것이 생각날 정도다. 실제로 그랬었다. 《수용소 군도》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반공소설로 유명한 솔제니친은 소련의 굴라그와 일상생활에 대해 악의적인 왜곡과 새빨간 거짓말을 일삼았었다. 그러나 패래스트로이카로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그 거짓말의 진상이 폭로됐다.

즉 현재 어용언론이 하는 것들이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아무런 증거도 없는 거짓말들과 위조들을 일부 탈북자들을 이용하여, 사실인냥 포장하고 있다. ‘현송월 총살설‘을 포함하여 무수히 많은 거짓말들이 폭로가 되었지만, 이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거짓말들은 꾸준히 재생산 되고 남한 시민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또한 이 어용언론 방송들은 북한에 대해선 조금이라도 긍정적이어선 안된다. 예를 들면 북한의 항일투사 국가대우를 마치 왕족의 사치나 귀족정의 권력 남용으로 묘사하려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북한의 항일영웅 대우는 중국의 인민해방군 출신 참전용사나 베트남의 베트민 혹은 베트콩 참전용사들에 대한 국가의 영웅 대접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되야할 문제다. 즉 이들이 부르주아적 반공의 관점으로 볼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채널들을 보면 그냥 화가난다. 그리고 이런 새빨간 거짓말들이 주지의 사실로 받들여지는 사회가 스스로의 비판의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날조와 위조 그리고 왜곡에 맞서 북한에 대해 진실의 눈으로 보아야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이 거짓증언들을 사실로 재생산하는 채널들을 통해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반북주의는 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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