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올리버 스톤과 피터 커즈닉의 저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1권에 나온 내용입니다. 생각보다 흥미롭게 읽은 구절이라 올려봅니다. 같이 올린 한 장의 사진은 “우리는 몸을 깨끗하게 지켜 독일군을 물리쳤다. 이제 기준을 높이자. 깨끗한 미국으로! 성병 근절”이라는 구호의 미군 포스터)
오랫동안 열망했던 변화를 실현할 기회를 잡은 사람들 중에는 도덕주의적 개혁가들도 있었다. 이들은 특히 전쟁을 성적 타락과 싸우는 기회로 삼았다. 이들은 병사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척하면서 매춘과 성병에 대해 공격적인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전국의 홍등가가 철퇴를 맞았다. 그 결과 창녀들은 지하로 들어가 포주를 비롯한 착취자들의 손에 장악됐다. 미춘 단속은 1918년 ‘체임벌린 칸 법(Chambelain-Kahn Act)’ 통과 이후 극심해졌다. 이 법에 따르면 군기지 주변을 혼자 돌아다니는 여성은 체포, 감금할 수 있고, 강제로 성병 검사를 시킬 수도 있었다. 강제 검사에 대해 개혁가들은 검사용 반사경을 강제로 들이댄다고 해서 “반사경 강간”이라고 비난했다. 성병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여성들은 연방 시설에 격리 수용됐다.
전쟁부도 산하 기관으로 병영활동감독위원회(Commission on Training Camp Activities)를 신설해 성병에 걸린 병사들의 애국심을 문제 삼는 방식의 절제 촉구 캠페인으로 성적 활동을 제어하려고 애썼다. 병영활동감독위원회(CTCA)는 훈련소에 “독일군의 총탄이 창녀보다 깨끗하다”, “성병 걸린 병사는 반역자다” 같은 문구를 적은 포스터를 붙였다. 위원회에서 발행한 한 팸플릿은 “임질에 걸린 더러운 몸으로 어떻게 국기를 마주볼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병사들의 성병 감염률은 일부 인사들이 우려한 것처럼 급속히 높아지지는 않은 반면, 군기지 인근 거주 여고생의 임신율은 급속히 높아졌다.
1차 대전 때 유럽원정군(American Expeditionary Forces/AEF) 사령관을 맡은 존퍼싱 장군은 프랑스에 도착하자 장병들에 대한 감시의 끈을 조였다. 이는 알고 보니 전쟁터에서 독일군을 무찌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병영활동감독위원장 레이먼드 포스딕은 프랑스와 미국의 성에 대한 태도 차이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가 보기에 프랑스는 “군대란 성적 쾌락이 없으면 잘 굴러가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성적 쾌락을 용인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것도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다. 자칫 사기와 건강 수준이 저하되거나 항명 사태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총리 클레망소는 미군에게 당국이 허가한 창녀촌을 세워주겠다고 제안했다. 프랑스군에는 이미 그런 시설이 있었다. 그런 제안을 담은 클레망소의 서한을 받은 전쟁장관 뉴턴 베이커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고 한다. “맙소사.····· 이거 대통령한테는 보여주지 말게. 안 그러면 참전을 중단하실 거야.”
성병에 걸리지 말라는 온갖 경고도 소용이 없었다. 병에 걸린 병사들은 격리됐다. 도덕적 개혁가들은 참전 군인들이 고향에 돌아와 미국 여성들에게 병을 퍼뜨리는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우려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개혁가들은 흔히 “프랑스식”이라고 하는 오럴섹스의 맛을 본 군인들이 순진한 미국 처녀들에게 그런 문화를 퍼뜨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전쟁부 소속 비뇨기과 군의관 조지 워커 대령은 당시의 고민을 이렇게 토로했다. “수만, 수십만 젊은이들이 퇴폐적인 사상에 물들어 미국에 돌아온다. 본인들의 자존감이 저하되는 것은 물론 도덕적 저항력조차 약해질 것은 뻔하다. 그런 상황은 당연히 걱정스럽다.”
출처 :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 p.6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