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폰다입니다. 저는 지난 두 주 동안 베트남민주공화국을 방문했습니다. 많은 곳을 보았고, 많은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노동자, 농민, 예술가, 학생, 무용가, 역사가, 저널리스트, 영화배우, 군인, 의용소녀, 여성동맹 단원 그리고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나는 누에고치가 길러지고 비단이 짜지는 협동농장, 그리고 하노이 방직공장과 유치원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문예궁전에서 베트남 전통무용을 감상했고, 저항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나는 거기서 남쪽 밀림의 게릴라들이 적군을 공격하기 위해 벌을 훈련시키는 것을 극화한, 잊을 수 없는 발레를 보았습니다. 벌들은 여자무희들이 춤을 추었는데 매우 아름답게 표현되었습니다.

 

나는 문예궁전에서 베트남 배우들이 아서 밀러의 나의 아들2막을 연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이 그들의 나라를 폭격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들은 적국인 미국의 희곡을 번역하여 연출하고 있었다는 이 사실! 그것은 너무도 감동적이었습니다. 나는 공장의 지붕 꼭대기에서 수줍음을 타고 얼굴을 붉히는 의용소녀 하나가 베트남의 푸른 하늘을 찬양하는 힘찬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인상적인 모습을 기억합니다. 이들은 부드럽고 시적이며 목소리고 꾀꼬리 같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폭격기가 그들의 도시를 쑥밭으로 만들어 버릴 때는 그들은 씩씩한 전사로 변모합니다.

 

나는 미국의 폭탄이 떨어질 때 적국의 여자인 나를 감싸안고 방공호로 뛰어들어갔던 한 농부의 따스한 손길을 소중하게 기억합니다. 우리들은 팔과 팔, 뺨과 뺨을 부비고 있었습니다. 나는 남 딘(Nam Dinh)의 길목에서 학교, 병원, , 공장, , 관개제방 등 모든 민간 시설이 모두 무참히 파괴되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내가 두 주전에 미국을 떠날 때, 닉슨은 미국인들에게 베트남전을 종료시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남 딘의 어지러운 폐허에서 나는 그의 말은 살인자의 음험한 감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팔을 꼭 붙잡고 매달리는 어린 한 베트남 소녀의 뺨을 부비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베트남과의 전쟁일지 모르지만, 이 모든 비극은 결국 미국의 것일 뿐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의심할 수 없는 자명한 진리로서 이 나라에 깨닫게 된 하나의 사실은 닉슨은 결코 이 땅의 사람들의 정신을 파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북베트남이든 남베트남이든 폭격과 침략 어떠한 방식의 공략으로도 미국의 식민지로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떨어진 폭탄 하나는 결국 이 땅의 사람들을 저항의 의지만 단호하게 만들 뿐입니다. 나는 녹둑의 농부들로부터 그런 의지를 확인했습니다.

 

내가 만난 농부들은 과거 그들의 삶은 지주에 소속된 노예일뿐이었으며, 교육과 의료의 혜택이 전혀 없었고, 그들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폭격에도 불구하고, 닉슨이 그들에게 저지르는 범죄 행위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국민은 자신의 토지와 학교를 갖고 있습니다. 문맹은 사라졌고 프랑스 식민지 시절 창녀 노릇했던 여성들이 용감한 전사로 변했습니다. 인민은 자신의 손에 스스로 권력을 쥐고 있으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습니다.

 

베트남 인민은 4천년 동안 자연과 외국 침략자들을 상대로 줄기차게 싸워왔습니다. 프랑스와 식민투쟁에서도 이겼습니다. 베트남의 완전한 자주 독립을 스스로 쟁취해나갈 것입니다. 리차드 닉슨이 베트남 역사와 베트남의 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호찌민이 쓴 시를 잘 읽어 음미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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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을 기점으로 한국에선 이른바 페미니즘(Feminism)이라는 주제가 국가적 혹은 사회적으로 이슈가되었던 것 같다. 2016년에 나온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상당히 많은 인기를 끌었고, 그 이후 미투운동과 더불어 페미니즘이라는 담론이 우리 사회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앞에서 언급한 ‘82년생 김지영2019년 영화화 되어 개봉했었다. 나 또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싫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보는 게 좀 거리감이 생겼었다. 뭐 그래도 몇몇 영화평론가들이 상당히 과학적 분석을 한 영화평들을 내놓다보니 나 또한 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늦긴 했지만, 어제 저녁에 이 영화를 혼자서 보게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 김지영이 살고 있는 사회는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고, 매우 풍요롭다. 적어도 김지영의 삶은 좁지 않은 아파트와 적잖은 급여를 받는 공무원 남편 그리고 그의 가족과 일가친척들도 자신들 나름의 풍요로운 삶은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는 풍부하지만 주인공 김지영은 불편한 진실에 항상 마주치게 된다. 이것은 여자로서 가지게 되는 사회적인차별과 주변에서 느끼게 되는 차별적인 인식이다. 즉 능력이 되더라도 여성이기 때문에 사회에서의 신분상승이 제동이 걸리는 현실과 육아라는 부담 때문에 일을 망설이게 되는 현실 말이다. 일각에서는 남자들 또한 고생하는데 왜 여성이 겪는 것만 강조하냐 혹은 편향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도 있지 모르겠다. 물론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남성들이 겪는 현실에서의 문제도 있지만, 여성들이 겪었던 이러한 사회적인 한계와 제도는 지금까지 등한시 되어온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러한 문제제기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본다.

 

영화상에서 김지영이 겪는 차별은 육아라는 측면에서도 많이 나타났던 것 같다. 육아 휴가를 쓰고자 했던 남편이 결국 김지영의 시어머니 때문에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는 상황은 결국 육아의 문제를 여성에게만 전가시켰던 사회의 문제라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문제제기를 했던 문제가 여기서도 겹친다. 즉 러시아 혁명 당시 혁명가들이 주장했던 그런 문제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는 82년생 김지영도 92년생 김지영도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위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김지영의 삶은 절대로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다.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김지영의 삶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여성 차별 때문일까?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인가? 가부장주의에 찌들어있는 남성들 때문일까? 많은 지점을 생각해보게 된다. 누군가는 젠더의 관점에서 김지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젠더 혹은 페미니즘적인 관점 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 즉 한 지배계급으로서 나타난 형태가 그러한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창조하고 재생산해냈다는 생각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과거 우리의 교육에선 가정에 대해 배울 때 남성은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어오고, 여성은 집에서 가정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을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으로 배워왔다. 하지만 그 예외의 사례에 대해선 알지 못하게 예외의 시선으로 보는 것 같고, 또 사회가 그렇게 조장하는 것 같다. 즉 이런 것이 바로 사회가 만들어낸 편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 김지영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인물이 있다. 바로 김지영의 엄마와 김지영의 남동생이다. 김지영의 엄마는 전형적인 박정희 시대 산업화의 피해자다. 어린시절 공부도 잘해서 교사가 되겠다던 꿈이 있었지만, 그 꿈은 현실이라는 장벽 앞에 무너져 내렸다. 왜냐하면 오빠들을 우선적으로 대학에 보내야 했기 때문에 그 학비를 젊은 시절 김지영의 엄마가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김지영의 엄마는 산업화 시기 가장 많은 핍박과 착취를 받던 여공으로 일을 해야 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산업화 시기 교육의 균등한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여 그래야만 했던 사람들이 생각이나 너무나도 안타깝고 슬펐다. 결국 그 시기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한 건 돈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런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시절은 더 심했다.

 

김지영의 동생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건 과거 혹은 현재의 내모습과 오버랩 되는 측면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할머니나 중년여성들에게 예쁨을 받는 모습이나, 엄마와 친누나가 하는 일을 도와주는 역할이 상당히 내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거기다 운전까지 해서 심부름으로 물건을 갖다 주기까지 하니 최근 들어 운전을 시작한 내 모습과 겹쳤다. 거기다 친누나한테 조금 대드는 장면도 뭔가 나를 보는 것 같아 조금 찔리기 까지 했다. 누군가는 이 장면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김지영의 동생으로부터도 자연스럽게 측은지심을 느꼈다. 아마도 이것은 나또한 그런 현실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김지영의 남편은 정말이지 걷잡을 부분이 없는 아주 완벽한 남편이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서로가 이해하려고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즉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걱정해주고, 보듬는 일말이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이 안타까움을 느끼겠지만, 그런 남성은 이 세상에 많지 않다. 아니 찾기 매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남성 여성을 떠나서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감정과 심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과거엔 그러지 못한 가정이 많았다면 이제는 바꿔야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적잖게 슬펐다. 비단 김지영 뿐만 아니라 너나 할 것 없이 불편하고 편협한 틀 속에서 사회를 살아가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는 것에 따라서 누구는 페미니즘에 입각한 관점으로 혹은 다른 관점으로도 볼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 그리고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문제라는 측면에서 많이 다가왔다. 결국 김지영이라는 인물도 자본주의 사회의 피해자였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 자체를 내가 다 동의한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나 또한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특성 및 한계를 못 벗어난 것일까?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떤 부분에선 조금의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큰틀에서 보았을 때 영화상에서 공감되는 부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아무튼 사회를 살아가며 고통을 받는 한 여성의 삶도, 남편의 삶도, 남편, 아내 그리고 남녀 회사원의 삶이 슬펐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일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오랜만에 정말 의미 있는 영화를 보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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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1-26 0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 제가 님이 쓰신 글에 대해서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하에 발생되는 계급에 대한 저항보다는, 한 사회에서 양산된 자본이 어떤 식으로 분배가 이루어지는 지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을 발생시키는 노동이나 서비스 형태가 남녀간의 차이가 있고, 그리고 그것들의가치를 부여하고 댓가로 수여받는 자본의 분배가 젠더간의 차이가 발생되어 진다는것입니다. 따라서 자본의 크기에 따른 지배계급을 형성하는 자본주의의 자체의 문제라고 지적하기 보다는 자본의 형성과 분배과정중에 발생되는 불균형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NamGiKim 2020-11-26 13:47   좋아요 1 | URL
뭐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죠. 결론적으로 문제는 분배의 문제인데, 분배의 문제에서 생기는 젠더의 갈등이니까요. 근데 그것은 남녀평등적이지 못하게 조성해온 사회의 문제도 크겠지요.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근래에 들어 한국에선 소위 페미니즘이라는 주제가 많이 주목받았던 것 같다. 물론 페미니즘이라는 담론이 비단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사회현상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공간에서의 남녀차별 및 여러 사회적 모순에 대한 반작용으로써 나타난 것도 분명히 있다. 아마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전사회적인 영역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15년 메갈리아의 등장이 컸던 것 같다. 물론 그 방법론에 있어서 시민들에게 충격과 혐오를 준것도 사실이지만, 이 계기를 통해서 페미니즘이라는 주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면서 연결되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페미니즘에 대해 좋고 싫고의 단순한 감정을 떠나서 페미니즘이라는 사회의 한 현상이 전 사회적 영역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은 분명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아닌게 아니라 페미니즘 진영에서 가장 많이 강조하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 해서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급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매우 강력하게 존재를 드러냈다. 그것이 바로 안티 페미니즘이라 할 수 있다.

안티 페미니즘은 원래부터도 일간베스트와 같이 차마 입으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저급한 반동조직에 항상 존재해 왔지만, 페미니즘의 부상과 더불어 일부 인사들의 주장에 살이 붙어 사상화 되었고, 조직화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올해 봄에 강남역에서 열렸던 안티 페미니스트들의 집회를 예로 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급부로 엄청나게 조직하고 세력을 부풀렸지만, 일간베스트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로부터 전혀 벗어나지 못했고, 오히려 더 타락의 길을 걸었다. 왜냐하면 반공주의라는 극단적 반혁명 사상이 머리에 주입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페미니즘=사회주의라는 이상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여성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심을 드러내고 있고, 좌파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며, 심지어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계승받아 이승만과 그의 반공사상을 내세우고 있는 중이다. 그들의 반북관 또한 마찬가지다. 아니 그냥 안티페미니즘=반공주의라는 공식이 대체로 성립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처럼 이번에 강남역에서 혐오집회를 벌였던 한국의 안티 페미니즘 진영은 본질적으로 반동이며, 사회적으로 청산해야할 암덩어리고 우리가 연대해야할 대상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현재 주류 페미니즘의 의견을 다 동의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다는 것은 절대 아니며, 그들이 범하는 일부 비과학적 접근은 상당히 경계해야 한다 생각한다. 그리고 나 또한 이쪽 분야에 대해선 학습이 부족하기에 어디까지나 개인의 생각을 적어놓는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말이다.

내 sns 친구들 중에는 페미니스트들도 있고, 안티 페미니즘의 주장에 상당부분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들의 주장을 양면 다 보려고 하는 쪽이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도 있겠으나, 이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로선 그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난 본질적으로 페미니즘의 진영보다 안티 페미니즘 진영에 반감이 더 강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나부터가 좌파를 자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치녀'나 '보슬아치' 등등의 단어들을 쓰는 이들 그리고 반공을 내세우는 그들을 지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슬슬 결론을 내리자면 반공을 중심으로 두고 있는 한국의 안티 페미니즘은 당연히 청산해야할 대상이다. 따라서 이들은 동맹세력이 아니라 사회주의에 있어서 적이고 반동이다! 이들을 분쇄하지 않는 이상 사회주의가 얘기하는 여성해방과 남녀평등은 실천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주류 페미니즘에 대한 이론적 그리고 과학적 비판과 더불어 이들에 맞선 투쟁도 당연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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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0-11-26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 페미니즘도 신-신보수주의로 볼수 있지요..

NamGiKim 2020-11-26 13:57   좋아요 1 | URL
그런 측면도 없지는 않겠죠. 어디가 되었든 문화 탈레반이 되서는 안되겠죠.
 
아옌데의 시간
카를로스 레예스.로드리고 엘게타 지음, 정승희 옮김 / 아모르문디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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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초로 국민투표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 체제는 칠레였다. 1970년 9월 5일 칠레를 강타한 투표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세계최초로 투표를 통해 사회주의자 대통령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당선된 이는 바로 칠레 사회당 소속의 지도자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였다. 그는 1952년과 1958년 그리고 1964년까지 총 네 번의 대통령 선거 출마 끝에 당선된 인물이었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아옌데는 국민들에게 점진적인 사회개혁과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과 같은 사회주의적인 복지를 약속했다.

아옌데의 사회주의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사회주의하고는 좀 달랐다. 우선적으로 그의 정권은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당선되었고, 의회민주주의를 유지했으며, 우익들의 활동을 아주 체계적으로 분쇄하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좌파내부의 갈등과 비판도 적잖게 있었지만, 한편으론 민중의 대대적인 지지를 얻기도 했다. 그의 인민연합은 각종 좌파세력들을 결집함으로써 사회주의 체제를 수호하고자 했고, 칠레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기업들에 대해 국유화를 단행했었다. 따라서 아옌데 정권은 개혁을 얘기하면서도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목표에 있어선 절대로 벗어나지 않았다.

아옌데의 이러한 노력은 초반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우선 지배계급으로 있던 우익과 기득권층은 민중의 삶을 악화시키기 위해 가뜩이나 부족한 물자 및 생필품들을 대대적으로 사재기하여 민중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자 했다. 이들은 당연히 라틴아메리카에 제2의 쿠바를 막고자 했던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거기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던 상황이라 남미에 대한 개입을 통해 사회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미국은 CIA를 통해 칠레의 극우세력과 파시즘 세력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을 이용함으로써 흑색선전도 일삼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옌데는 포기하지 않았고, 초기에 많은 성과를 내기도 했다. 아옌데 정부는 토지개혁을 실시했고, 칠레의 핵심자원인 구리를 국유화하여 외국기업의 착취로 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아옌데 정권은 대농장을 몰수하여 정부와 협동조합이 관리하도록 하거나 농민들에게 배분했다. 따라서 아옌데는 대농장을 포함한 4,400개가량의 토지를 몰수하고 보상, 분배 그리고 국유화하였다. 아옌데는 미국의 케네코트와 아나콘다 사의 재산을 몰수하는 절차를 거쳐 이런 기업들을 국유화했다.

따라서 미국은 칠레 문제에 개입하여 사회주의 정권을 타도하고자 했다. 미국이 개입하여 주도한 위장파업과 아옌데 암살 시도 등은 아옌데에 대한 민중의 지지율을 하락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지지율을 상승해갔다. 그것은 아옌데 정권이 민중에게 많은 신뢰를 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이 선택한 것이 바로 군사 쿠데타였다. 쿠데타를 일으킨 미국과 피노체트 세력은 수도 산티아고에 있는 아옌데의 대통령궁을 전투기로 폭격하고 탱크로 포위하여 신속히 군대를 포위했다. 결국 아옌데는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라는 말을 남기고 피델 카스트로가 준 AK-47 소총으로 자결은 선택했다. 이렇게 해서 아옌데의 사회주의는 끝이 났고, 칠레에는 피노체트가 주도하는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섰다.

이 책은 아옌데가 집권한 1,000일을 아주 생생히 다룬 그래픽 노블이다. 존 니치라는 미국인 기자의 눈을 통해 아옌데의 1,000일을 아주 생생히 기록하고 그렸다. 책의 시작은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가 보낸 전투기가 아옌데가 있는 대통령궁을 폭격하면서 시작한다. 그러면서 다시 1970년 칠레에서 있던 대통령 선거 시점으로 돌아와 얘기가 진행된다. 아옌데가 집권한 1,000일은 제국주의와 부조리에 맞선 민중들의 투쟁의 기억이다. 책을 읽다가 순간 울컥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진보의 꿈이 무너지는 순간에선 나의 눈물샘을 아주 격렬하게 자극했다.

2020년 10월 26일 칠레에선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 바로 피노체트 헌법을 국민의 힘으로 폐지한 것이다. 1973년 군사 쿠데타로 잡았던 피노체트는 17년간 군사독재를 해왔고, 반대파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 및 민간인 학살을 게시했다. 그의 집권기간 동안 수만 명이 학살당했다. 빅토르 하라 같이 칠레의 예술가들은 목숨을 잃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문당하고 고통 받았다. 이처럼 칠레의 현대사는 아옌데가 죽고 난 뒤 끊임없이 비극의 비가 내렸다. 2019년에 칠레에서 시작된 집회는 아옌데의 유산을 다시 부활시켰다. 그 결과 칠레 민중은 자신들의 힘으로 피노체트 헌법을 폐지했다. 참으로 기쁘고 감동적인 일이다.

대통령 선거 당시 아옌데를 지지하는 측에서 불렀던 노래가 있다. 그 노래가 바로 “우리는 승리하리라!”라는 이름을 가진 <벤세레모스>다. 진보의 꿈을 버리지 않은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며 마지막으로 벤세레모스의 가사를 공유하면서 서평을 마치도록 하겠다.

1절

Desde el hondo crisol de la patria
조국의 깊은 시련으로부터
se levanta el clamor popular,
민중의 외침이 일어나네
ya se anuncia la nueva alborada
이미 새로운 여명이 밝아와
todo Chile comience a cantar.
모든 칠레가 노래 부르기 시작하네
Recordando al soldado valiente
불멸케 하는 모범을 보여준
cuyo ejempla lo hiciera inmortal
한 용맹한 군인을 기억하며
enfrentemos primero la muerte,
우리는 죽음에 맞서
traicionar a la patria, jamás!
결코 조국을 저버리지 않으리!
Venceremos, venceremos,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mil cadenas habra que romper.
수많은 사슬은 끊어지고,
Venceremos, venceremos,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la miseria sabremos vencer.
우리는 비극을 이겨내리라.
Venceremos, venceremos,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mil cadenas habra que romper.
수많은 사슬은 끊어지고,
Venceremos, venceremos,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la miseria sabremos vencer.
우리는 비극을 이겨내리라.

2절

Campesinos, soldatos y mineros,
농부들, 군인들, 광부들
la mujer de la patria tambien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여성과
Estudiantes, empleados, obreros,
학생, 노동자들이여
cumpliremos con nuestro deber.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의무를 완수할 것이다
Sembraremos las tierras de gloria,
영광의 땅에 씨를 뿌리자
socialista sera el porvenir,
사회주의의 미래가 열린다
todos juntos seremos la historia;
모두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가자
a cumplir, a cumplir, a cumplir!
이룩하자, 이룩하자, 이룩하자!
Campesinos, soldatos y mineros,
농부들, 군인들, 광부들
la mujer de la patria tambien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여성과
Estudiantes, empleados, obreros,
학생, 노동자들이여
cumpliremos con nuestro deber.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의무를 완수할 것이다
Sembraremos las tierras de gloria,
영광의 땅에 씨를 뿌리자
socialista sera el porvenir,
사회주의의 미래가 열린다
todos juntos seremos la historia;
모두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가자
a cumplir, a cumplir, a cumplir!
이룩하자, 이룩하자, 이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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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화민족의 새로운 문화를 건설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문화란 도데체 어떠한 문화를 말하는 것인가? 일정한 문화(관념형태로서의 문화)는 일정한 사회의 정치와 경제의 반영이며 그것은 또 일정한 사회의 정치와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주며 크나큰 작용을 한다. 그리고 경제는 이러한 문화의 토대이며 정치는 경제의 집중적인 표현이 된다. 이것은 문화와 정치, 경제와의 관계 및 정치와 경제와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견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정한 형태의 정치와 경제가 먼저 그 일정한 형태의 문화를 결정하며 그런 다음에야 일정한 형태의 문화가 다시 일정한 형태의 정치와 경제에 영향을 주며 작용을 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의식이 인간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고 하였으며, 또 종래의 철학가들은 여러 가지로 세계를 설명하였을 따름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를 변혁시키는 데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의식과 존재와의 관계문제를 정확히 해명한 과학적 규정이며, 또 그 후 레닌에 의하여 심오하게 전개된 능동적이며 혁명적인 반영론의 기본적 견해이기도 하다. 중국의 문화문제를 토론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이 기본적인 견해를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문제는 아주 명확해진다. 우리가 제거하려는, 중화민족의 그 낡은 문화에 들어 있는 반동적 요소들은 중화민족의 낡은 정치, 낡은 경제와 분리될 수 없으며 우리가 건설하려는 중화민족의 이 새 문화도 역시 중화민족의 새 정치, 새 경제와 분리될 수 없다. 중화민족의 낡은 정치와 낡은 경제는 중화민족의 낡은 문화의 토대이며 중화민족의 새 정치와 새 경제는 중화민족의 새 문화의 토대이다. 그렇다면 중화민족의 낡은 정치와 낡은 경제란 무엇인가? 그리고 중화민족의 낡은 문화란 또 무엇인가? 주나라, 진나라 때부터 중국은 봉건사회였고, 그 정치는 봉건적 정치였으며 그 경제는 봉건적 경제였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와 경제의 반영으로서 지배적 지위에 있던 문화는 봉건적 문화였다.

 

외래 자본주의가 중국을 침략하여 중국사회 내부에서 자본주의적 요소가 점차 생장하게 되면서부터 중국은 식민지, 반봉건적 사회로 점차 전환하게 되었다. 오늘의 중국은 일본 점령구에 있어서는 식민지사회이고 국민당 통치지구하에 있어서는 아직 기본적으로 반식민지 사회이며, 일본 점령구거나 국민당 통치기구거나 할 것 없이 그것은 다 봉건적, 반봉건적 제도가 우세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다. 이것이 목하 중국사회의 성격이며 중국의 실정이다. 지배라는 측면에서 말한다면 이러한 사회의 정치는 식민지, 반식민지, 반봉건적 정치이고, 경제는 식민지, 반식민지, 반봉건적 경제며 이러한 정치 및 경제의 반영으로서 지배적인 지위에 있는 문화는 식민지, 반식민지, 반봉건적 문화다.

 

이러한 지배적인 정치, 경제 및 문화 형태가 바로 우리 혁명의 대상이다. 우리가 제거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식민지, 반식민지, 반봉건적인 낡은 정치와 낡은 경제이며, 또 이러한 낡은 정치, 낡은 경제에 복무하고 있는 낡은 문화다. 그리고 우리가 건설하려는 것은 이와 정반대되는 것으로서 그것은 중화민족의 새 정치, 새 경제, 새 문화다. 그러면 중화민족의 새 정치, 새 경제란 무엇이며 중화민족의 새 문화란 또 무엇인가?

 

중국혁명의 역사적 행적은 반드시 두 개의 행보로 나누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첫 번째 행보는 민주주의 혁명이며, 그 다음 행보는 사회주의 혁명이다. 그것은 성격이 다른 두 개의 혁명과정이다. 그리고 지금에 있어서 민주주의라는 것은 이미 낡은 범주에 속하는 민주주의, 구민주주의가 아니라 새 범주에 속하는 민주주의, 신민주주의다. 이로부터 중화민족의 새 정치라는 것은 신민주주의적 정치며 중화민족의 새 경제라는 것은 신민주주의적 경제며 중화민족의 새 문화라는 것은 신민주주의적 문화라는 것을 단언할 수 있다.

 

이것이 목하 중국혁명의 역사적 특성이다. 중국에서 혁명에 종사하는 모든 정당, 모든 사람들이 이 역사적 특성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이 혁명을 지도할 수 없고 이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그는 인민들에게 버림을 받아 한족 구석으로 가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가련한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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