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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스틸 영
박병진 지음 / 사계절 / 2025년 1월
평점 :
술도 못 마시는 내가 위스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아마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이지 싶다. 10년도 더 지난 시점에 내가 읽었던 한 권의 책. 그것은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이었다. 술이 좋아서라기보다 작가에 대한 편애 때문이었다. 하루키의 책이라면 주제를 가리지 않고 일단 읽고 보는 습성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이라고 해서 예외가 되지는 않았다. 하루키 저작이라는 이유로 무작정 읽게 되었던 책. 그러나 기대하지도 않았던 책은 예상보다 재미있었고, 위스키 특유의 달큰하고 나른한 향취가 책을 읽는 내내 입안에서 감도는 듯했다. 물론 하루키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가 독자들로 하여금 위스키에 대한 강렬한 끌림을 유도했는지도 모른다.
박병진의 <위스키, 스틸 영>을 읽게 된 건 순전히 10여 년 전 과거의 기억에서 출발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에 대한 하루키의 안내서가 박병진에게까지 이르도록 유도하였던 것은 하나의 우연이 또 다른 우연을 부르는, 이른바 줄리언 반스의 예언처럼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입증한 셈이다. 박병진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나와는 거리가 먼 위스키라는 술에 대해서도 나는 우연처럼 거리를 좁히고 있다.
"이 책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는 위스키 전문 정보나 위스키 로드를 안내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 어디에도 위스키의 제조 방법이나 시음하는 방법, 그리고 위스키의 연도별 특징 같은 내용은 없다. 다만 위스키를 중심으로 한 역사와 정치, 인문과 지리, 최소한의 문화적 배경에 관한 내용을 담았을 뿐이다. 다만 위스키를 중심으로 한 역사와 정치, 인문과 지리, 최소한의 문화적 배경에 관한 내용을 담았을 뿐이다. 독자들이 부담 없이 위스키에 접근하게끔 되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곁들여 꾸몄다. 위스키 마니아가 아니라도,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코즈모폴리턴으로서 왜 세계인이 위스키에 열광하는지, 위스키가 역사의 면면에 어떤 자취를 남겼는지, 그 숱한 이야기에 한번쯤 귀 기울여보기를 바란다." (p.5~p.6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내용이나 구성도 넓고 다채롭다. 1부 '아일라 위스키', 2부 '스페이사이드 위스키', 3부 '블렌디드 위스키', 4부 '일본 위스키', 5부 '미국 위스키'로 구성된 이 책은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와 같은 독자라 할지라도 단순히 술 자체로서 목적이 아닌, 위스키를 둘러싼 문화적 배경에 관심을 갖는다면 얼마든지 접근 가능한 기호 서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술자리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멀뚱히 앉아 있을 게 아니라 위스키를 중심으로 한 역사, 정치, 인문, 지리에 대한 문화적 배경을 동석한 사람들에게 안주 삼아 맛깔나게 풀어낼 수만 있다면 술자리에서 비록 무알콜 음료를 앞에 놓을지라도 언제든 참석을 권유받는 귀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술병에 적힌 음주 경고 문구는 우리나라와 미국과 영국이 서로 다르다. 여기서도 우리와 그들, 영국과 미국 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는 몇 가지 버전이 있지만,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키며 운전이나 작업 중 사고 발생률을 높입니다'처럼 의료 처방전 같은 느낌이다. 영국은 조금 우아하게 'Drink Responsibly(책임질 수 있을 만큼 마셔라)'인데 비해 미국은 직설적으로 'Know Your Limits(네 주량껏 마셔라)'이다. 우리의 문어체적 음주 경고보다는 좀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p.262~p.263)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은 2020년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이라는 제목을 달고 재출간되었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고 썼던 에세이 속 한 문장이 제목으로 변한 것이다. 내가 굳이 하루키의 책을 들먹이는 이유는 세계 각 지역의 위스키가 문화적 배경도 다르고, 그 맛도 제각각인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와 박병진이 쓴 위스키 탐방기 역시 그 색깔과 맛이 확연히 구별된다는 것이다.
"독특한 광고를 통해 우리 세대에 친숙한 양주 캡틴큐는 럼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럼 원액은 20퍼센트 미만이 들어갔을 뿐이다. 그나마 최근에 나온 제품은 아예 럼 원액이 한 방울도 들어 있지 않다. 캡틴큐는 그 독특한 광고에서 럼의 중요한 소비자가 해적이었음을 잘 보여주었다." (p.125)
한때 양주의 대명사였던 시바스 리갈은 권력자들의 전유물인 양 소비되던 시대가 있었다. 박정희로 대변되던 군사정권 시절, 자신의 부하들에게 충성을 강요하고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로 이따금 벌인 술판에는 단골 메뉴처럼 등장했던 게 시바스 리갈과 여성 접대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인들이 향유하지 못하는 술을 권력자로부터 하사 받는 기분, 술과 더불어 성적 욕망을 충족하는 동물적인 배설 행위 등은 독재 권력을 유지하는 주요한 수단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여 위스키는 이제 대중적인 술로 변화하고 있다. 군사 독재 시대가 민주화 시대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진정한 민주화는 경제 민주화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내가 혹은 당신이 거리낌 없이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