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4주년이 되었던 날. 나의 선친 역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6.25 참전 용사 중 한 사람으로서 현충원에 안장된 까닭에 이날만큼은 각별한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다소 풀어졌던 남북 관계는 현 정부 들어서면서 긴장의 강도가 최대치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내일 당장 전쟁이 터져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살아볼 만큼 살아본 우리와 같은 기성세대들이야 전쟁이 발발하여 내일 당장 죽는다 하더라도 크게 아쉬울 게 없겠으나, 우리의 자녀들에게 전쟁의 아픔을 유산으로 물려준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크나큰 비극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의 희생자가 60세 이상의 나이 든 사람으로 한정되지 않는 까닭에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일은 작금의 기성세대에게 주어진 가장 큰 책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며칠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화성의 리튬전지 공장에서 일을 하던 많은 노동자들이 화재로 아까운 목숨을 잃었고, 탈북인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보복으로 수백 개의 대남 오물 풍선이 날아들었습니다. 게다가 북한의 김정은과 러시아의 푸틴이 만나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과거의 냉전체제로 복귀한 듯한 느낌이 들게 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이와 같은 변화에 속수무책 먼 산만 바라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굵직굵직한 뉴스에도 불구하고 내 눈을 사로잡았던 건 지난 16일 전북의 한 제지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19살 노동자의 죽음이었습니다.


전북 전주의 한 제지공장에서 숨진 19세 노동자의 생전 메모장 내용. 민주노총 전북본부 제공전북 전주의 한 제지공장에서 숨진 19세 노동자의 생전 메모장 내용. 민주노총 전북본부 제공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현장실습을 거쳐 6개월 전 정직원으로 입사했다는 A군의 메모장에는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여러 계획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가 정한 2024년 목표는 '남에 대한 얘기 함부로 하지 않기', '하기 전에 겁먹지 않기', '기록하는 습관 들이기', '구체적인 목표 세우기', '친구들에게 돈 아끼지 않기' 등이었습니다. A군과 비슷한 또래의 아들을 키우고 있는 나로서는 메모지를 읽는 동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심성 곱고 아름다웠던 청년이 자신의 꿈도 펼쳐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뻘 되는 나이의 나 역시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와 같은 계획은 단 한 번도 세워보지 못했던 까닭에 슬픔과 함께 가슴 한편으론 부끄러운 마음이 밀려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박태균 교수가 쓴 <버치문서와 해방정국>을 읽고 있습니다. 미군정 시기에 한국에 배치되어 주로 한국의 정치인들을 담당하는 미군정 정치고문단 소속으로 활동했던 레너드 버치(Leonard Bertsch) 중위. 그가 남긴 자료에 의하면 그 당시의 어른이자 기성세대였던 정치인들은 참으로 어리석고, 오직 자신의 출세밖에 모르던 한심한 작자들이었습니다.


"이승만은 1945년 10월 귀국한 이래로 통합의 아이콘이라기보다는 분열의 상징이었다. "덮어놓고 뭉치자."라고 했지만, 실상 '자기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빼고' 덮어놓고 뭉치자고 말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로 비난했다."  (p.72)


통합을 주장하지만 실상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은 철저히 배격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그런 어리석은 정치인들이 있었던 까닭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어리석은 정치인들만 있는데 이 나라의 꼴이 어떻게 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천사가 날 대신해 소설, 잇다 5
김명순.박민정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뜬구름 잡기식의 정의를 걷어내면 소설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소설가에 대한 생각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소설가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상호 간의 관계를 설정하고 조율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관계를 설정하고 조율한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사람 사이의 관계란 그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하고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그 깊이가 결정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무리 자유분방한 연애관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리학적 예의식이 강했던 조선시대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더라면 예법을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과감히 행하기는 어려웠을 테고, 유교적 예법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작금의 유럽 사회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간다는 건 무리가 있을 터이다. 소설은 주로 시대에 반항하는 인물을 내세워 시대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시대와 동떨어진 허무맹랑한 인물을 창조하기는 어렵고 독자가 허용할 수 잇는 분명한 한계와 테두리가 주어지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물론 소설 속 인물 상호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조율하느냐에 따라 소설을 쓰는 작가의 인생관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소설에는 작가가 자연인으로서 듣고 보고 겪은 모든 것들이 각색되어 펼쳐지고 초점 화자는 아무래도 작가 자신을 가장 많이 닮는다. 초점 화자를 의도적으로 적역으로 설정한다고 해도 결국 평자는 가장 작가와 닮아 보이는 인물을 찾아낸다. 그가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어도 기어이 끌고 나온다. 나는 지금도 나와 가장 닮았다고 믿거나 내가 경멸하는 인간상을 뒤섞어 화자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내가 쓴 산문이나 작가 노트나 심지어 비공개 SNS에 올린 게시물까지 포함해서, 누군가가 어떤 소설이 얼마나 자전적인 이야기인지 재단한다고 해도 그 역시 사실은 평자의 자유다. 작가의 자존심을 걸고 이런 모든 과정에서 개인인 내가 받는 상처 따위는 당연히 무시한다는 전제에서다."  (p.305 '때가 이르면 굳은 바위도 가슴을 열어' 중에서)


1917년에 '의심의 소녀'로 문단에 데뷔하여 작품활동을 했던 김명순과 2009년 등단하여 지금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박민정 작가는 두 사람 모두 소설가라는 점에서, 여성 작가라는 점에서 서로 닮은 듯 보이지만 100여 년이라는 시대의 격차와 달라진 가치관과 상이한 성장 배경에 의해 그들이 쓴 소설은 사뭇 다른 양상이다.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소설을 한 권에 담아 함께 읽는 시리즈로 기획된 '소설, 잇다'의 다섯 번째 작품인 <천사가 날 대신해>에는 김명순의 소설 세 편과 박민정의 소설 한 편과 한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방탕한 남편으로 인해 고생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한 여인의 딸과 그녀의 할아버지가 남편과 첩의 눈을 피해 세상 사람들의 눈을 피해 떠도는 모습을 그린 <의심의 소녀>, 평양에 강연을 하러 온 젊은 이학자 효순을 사랑하게 된 소련은 미혼의 신여성이었으나 효순은 이미 은순이라는 처를 둔 유부남이었다. 둘 사이를 눈치챈 은순은 소련의 고모 류애덕 여사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고모는 최병서와의 결혼을 서두른다. 최병서의 학대와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로 소련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지만 소련은 꿋꿋이 결혼생활을 이어가며 효순과의 영적 연애를 그리게 된다는 내용의 <돌아다볼 때>, 최 씨 가문의 네 남매인 순희, 순철, 상철, 금희를 중심으로 그 시대의 도발적이거나 비극적인 연애사를 다룬 <외로운 사람들>이 김명순의 작품이고, 친구 세윤의 죽음을 '나'의 시선으로 훑어보는 <천사가 날 대신해>는 박민정의 작품이다. 그리고 박민정의 에세이 <때가 이르면 굳은 바위도 가슴을 열어>는 소설가로서 박민정 작가의 솔직한 시선이 담겨 있다.


"살아내려고 이혼을 선택한 세윤에게 더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줄, 자꾸만 불행이 갱신될 줄은 세윤도 나도 미처 몰랐다. 만약 내 충고대로 로사를 멀리했다거나, 그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 갔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는 일도 어느새 지겨워졌다. 세윤은 로사가 괴롭히기 시작한 후에도 자기는 더는 어떤 실패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은 가정법원에서 나오는 길에 다른 여자를 차에 태우고 가는 전남편을 보고 우두커니 섰던 자기가 이겨내지 못할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p.296 '천사가 날 대신해' 중에서)


김명순은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 소설가, 시인이자 평론가, 언론인, 번역가 등 다양한 재주를 지닌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인 조선 사회에서 '첩의 딸'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 했던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었다. 그녀의 소설에서는 언뜻언뜻 가부장적인 결혼 풍습의 폐해가 그려지지만 그녀 또한 아무런 잘못도 없이 공격을 당한 시대의 피해자였다. 그러나 약자에 대한 비겁한 조리돌림은 과거에만 존재했던 시대의 산물은 아니었던가 보다. 박민정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세윤 역시 약자라는 이유로 스스로 삶을 마감했으니 말이다. 이혼을 한 세윤은 이미 '약자'라는 핸디캡을 안고 로사와 그 무리 속에서 어떠한 수모도 견딜 각오로 뛰어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리 속의 인간은 누군가의 상처를 살뜰히 보살필 만큼 선한 본성의 동물은 아닌 모양이다. 어쩌면 세윤은 자신의 약점을 지우기 위해 더 철저히 비굴해지려 애썼는지도 모른다.


"필경 육신과 영혼을 양편으로 가진 사람들은 약함을 끝끝내 이기진 못하고 운명에게 틈을 엿보여서 나라를 깨트리기도 하고 경우를 잃기도 해서 동서에 울고 웃게 되며 남북에 헤매게 되는 것이다. 여기 이르러 소련의 운명은 그 갈 곳을 확실히 작정했다."  (p.75 '돌아다볼 때' 중에서)


낮고 우울했던 하늘이 점차 밝아지고 있다. 인생의 8할은 인간관계에 있는 것처럼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상호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조율하느냐에 따라 소설가로서의 성패가 결정되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잇다' 시리즈는 시대를 초월한 두 소설가의 만남인 동시에 한 세기를 비껴간 두 소설의 만남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100여 년 전 소설 속 주인공 소련과 현대의 주인공 세윤을 하나의 소설에서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혼재된 시간 속에서 옳고 그름이 뒤섞인 상상의 시공간 그 어디쯤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습도가 높아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기온이 높아지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고온에 더하여 습도마저 높아지는 대한민국의 여름은 아무리 반복해도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본격적인 여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장마도 다 끝나고 한 줄기 바람마저 없는 무더위가 연일 계속되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히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스팔트 포장 위로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 같은 공포심이 문득 드는 것이다. 무더위에 지쳐가는 건 사람뿐만이 아니어서 말매미는 목청을 높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일 울어대고, 털이 긴 반려견들도 에어컨 없이는 단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한 채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숨을 헐떡인다. 열대야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런 극한의 환경에서는 잠을 설치는 것도 예사, 퀭한 눈으로 출근을 하고 피곤에 절어 퇴근을 하는 일이 습관처럼 반복된다. 그렇게 힘겨운 여름을 보내다 보면 한 해가 다 지나간 느낌이 들게 마련이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매리언 울프의 대표작 <프루스트와 오징어(Proust and the Squid)>를 읽고 있다. 2009년 '책 읽는 뇌'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책이 원제를 살려 <프루스트와 오징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된 것이다. '읽기 연구 분야의 고전으로, 전 세계 언론과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은 책'이라는 소개글도 있지만 디지털 문화로의 전환기에 있는 작금의 시대에 인류의 문화를 가능하게 했던 읽기의 능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언제라도 비가 쏟아져도 하나 이상할 게 없는 날씨. 중동의 어느 나라에서는 성지순례에 나섰던 사람들 중 1000명 이상의 순례객이 폭염으로 숨졌다고 하는데, 올해 우리나라의 여름도 어떤 모습으로 지나갈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가까운 도서관에서 마음산책에서 출간한 <프루스트의 독서>를 빌렸다.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으로 피서를 나온 주민들이 빈 자리가 없이 도서관을 가득 메우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인간이 되다 - 인간의 코딩 오류, 경이로운 문명을 만들다
루이스 다트넬 지음, 이충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펼칠 때면 언제나 다른 어떤 것보다 먼저 책의 목차 부분을 꼼꼼히 읽는 편이다. 책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방식으로 책을 읽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책의 목차는 저자가 독자들을 향해 '내가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당신들을 설득하겠소'라고 하는 선언이자 책의 결론이나 주제를 향해 저자가 세운 일종의 이정표인 셈이다. 목차를 읽은 독자는 그것이 자신의 맘에 들지 않더라도 감수하고 읽어 내려가거나  애저녁에 포기하고 책을 덮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결론에 이르는 더 빠르고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왜 그렇게 빙빙 돌아가는 것이요?'라고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양방향 소통 매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책에서 나는 인류의 역사를 깊이 파고들면서 문화와 사회와 문명에서 기본적인 인간성이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탐구할 것이다. 우리 유전학과 생화학, 해부학, 생리학, 심리학의 여러 가지 변화가 어떻게 표출되고, 어떤 결과와 영향을 미쳤을까(단지 중요한 단일 사건들에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중요한 상수와 장기적 추세에)?"  (p.15)


웨스트민스터대학 과학 커뮤니케이션 교수이자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루이스 다트넬이 쓴 <인간이 되다(Being Human)>는 그가 다루는 주제나 논리의 전개 방식에서도 꽤나 매력적인 책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다트넬의 저서 <오리진>을 읽어본 독자라면 그의 이름만 듣고서도 책에 대한 호감도가 어느 정도 증가하겠지만 말이다. 책의 목차는 '머리말'에 이어 1장 '문명을 위한 소프트웨어', 2장 '가족', 3장 '풍토병', 4장 '유행병', 5장 '인구', 6장 '마음을 변화시키는 물질', 7장 '코딩 오류', 8장 '인지 편향', 그리고 '끝맺는 말'과 '도판 출처' 및 '주석' '참고 문헌'에 이어 '감사의 말'로 끝을 맺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구성이다.


"진화는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행동을 촉진하는 일련의 내면적 추동을 발전시켰다. 배고픈 느낌이 강해지면 우리는 먹을 것을 찾고, 성욕과 오르가즘에 대한 기대는 우리에게 생식을 하도록 촉진한다. 진화는 또한 우리에게 집단생활에서 이득을 가져다주는 행동을 촉진하는 경향성을 만들어냈다. 생물학적으로 부호화된 이 반응들(우리가 감정으로 지각하는)에는 가족과 친구를 향한 애정,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한 공감, 사기 행위에 대한 분노, 이타적 행동이나 정당한 처벌을 통해 얻는 만족감 등이 있다."  (p.55)


안타깝게도 나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샘플북만을 손에 쥐고 있다. 샘플북은 '머리말'과 1장 '문명을 위한 소프트웨어'에서 끝이 난다. 말하자면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고 있는 '머리말'과 인류가 문명을 형성할 수 있었던 내재적인 소프트웨어, 즉 인류 문명의 밑바탕이 되는 여러 가지 인간 본성을 설명하는 게 전부인 셈이다. 정작 내가 읽고 싶었던 부분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나는 사실 7장 '코딩 오류'와 8장 '인지 편향'의 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그 때문에 내가 읽었던 샘플북은 완결 편 <인간이 되다>를 읽고 싶은 마음을 더욱 감질나게 했을 뿐이다. 아쉬운 마음에 출판사에서 소개한 책의 '끝맺는 말' 중 한 대목을 옮겨 본다.


"인류의 역사는 종으로서 우리가 지닌 기능과 결함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며 펼쳐졌다. 하지만 우리는 타고난 생물학적 조건의 무력한 노예가 아니다. 인류가 이룬 기술 진보는 우리가 자신의 자연적 능력을 높이고 증대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의 많은 생물학적 약점을 보완하거나 극복하기 위해 펼친 노력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p.385 '끝맺는 말' 중에서)


어제는 국민들의 눈과 귀가 온통 국회 청문회장으로 쏠렸던 날이다. 채 해병의 죽음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람들과 이들을 처벌하지 못하도록 외압을 가한 권력자와 국가 시스템에 대한 비리와 작동 오류를 밝혀내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밝혀진 것은 없었다. 1장에서 저자는 우리의 본성이 평화적인가 폭력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토머스 홉스와 장 자크 루소를 등장시켜 설명하면서 '진실은 양자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짓는다. 청문회에서 보았던 것처럼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진실을 밝히고 정의의 편에 서려고 했던 사람들과 어떻게든 진실을 감추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 했던 사람들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었다. 인류의 진화는 무척이나 더디지만 언제나 공동체의 이익에 우선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나는 믿는다. 저자도 그리 생각하는 것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좀 극단적인 정의일 수도 있겠지만 장서가로도 유명한 이동진 평론가는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 자체를 일컬어 '돈을 내고 꼰대의 얘기를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 역시 일부 동의하는 바이다. 물론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젊은 직장인(혹은 취업 준비생)들이 읽는 책의 80~90%는 자기계발서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젊은이들(물론 개중에는 나이 든 사람들도 더러 있겠지만)은 왜 그렇게 자기계발서를 좋아할까?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자기계발서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책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일까? 나는 이도 저도 아니라고 본다.


내 주변에도 갓 입사했거나 입사한 지 채 5년이 되지 않는 젊은 직장인들이 여럿 있다. 다독가는 아니지만 다른 이가 읽는 책에는 관심이 많은, '독서 관음증' 환자랄 수도 있는 나는 그들이 읽는 책을 볼 때마다 그들의 독서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책의 제목이나 저자를 알고 싶어 한다. 내가 읽을 것도 아니면서 굳이. 그렇게 입수한 책에 대한 정보에 의하면 십중팔구 최근 유행하는 자기계발서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자기계발서에도 유행이 있어서 유행에 뒤떨어진 책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지도 못할 뿐 아니라 추천 도서 목록에도 오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한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시크릿>과 같은 도서도 지금은 전국의 어떤 헌책방에서도 구매를 꺼리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의 젊은 직장인들이 자기계발서에 열을 올리는 까닭은 목적 지향성 독서를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말하자면 월급보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남들 앞에서 절대 꿇리지 않는, 간지 쩌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자기계발서를 읽어댄다는 것이다. 결국은 간 때문이야가 아니라 결국은 돈 때문에 피곤에 지친 눈을 비벼가며 책을 읽는다는 것인데 올바른 지적이긴 하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조급함'이라는 슬픈 허방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내가 조급함을 '슬픈 허방'이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에도 한 번 비슷한 얘기를 쓴 적이 있지만 사실 대한민국의 현실은 보이지 않는 계급이 더욱 단단하게 고착화되었거나 그렇게 진행되는 과정 중에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이제 전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부정하지 않는다. 소위 '수저 계급론'은 그러한 비극적인 현실을 코믹하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허방 앞에 슬픈 이라는 관형사를 둔 이유는 바로 그와 같은 현실 때문이다. 사회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한다는 현실.


내가 생각하는 자기계발서는 자신이 처한 처참한 현실을 위로받거나 부정하는 데는 그럭저럭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무력감보다는 이것이라도 하고 있으니 앞으로 조금 나아질 수 있을 거야 하는 희망이 언제든 나를 위로하는 것이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크게 없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데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한다. 한 사람이 평생 동안 깨달은 바를 한 권의 책에 요약본으로 실었을 때 어떤 천재가 그것을 저자처럼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을 것인가. 말도 되지 않는다. 소설처럼 그렇게 두꺼운 책에 단 하나의 깨달음을 자세한 예시와 함께 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우리들이 아무런 삶의 예시도 없이 수없이 많은 깨달음을 한 줄 경구처럼 요약식으로 전달해도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애초부터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젊은 직장인 대부분이 그와 같은 자기계발서를 읽고 미친 듯이 뛰어드는 게 주식과 코인 투자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일컬어 도전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도전이 아니다. 도전이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있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러나 주식이나 코인 투자에서 꾸준한 수익을 낸다는 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반면에 금수저로 태어난 이들은 머리를 싸매가면서 그런 골치 아픈 일에 매달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상속을 받은 재산에서 월급 이외의 꾸준한 부수입이 유입된다. 말하자면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투자를 통한 손실을 보는 동안 그들은 오히려 원금이 꾸준히 불어나거나 적어도 투자를 통한 손실은 보지 않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격차를 줄여보겠다고 노력했던(잠을 줄여가면서 자기계발서를 읽었던) 부류와 상속을 받고 별 노력도 하지 않은 부류의 격차는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무리한 투자를 하는 젊은 직장인들에게 원금을 잃지 않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하곤 한다. 꼰대의 이야기로 들리지나 않을까 늘 걱정하면서 말이다. 자기계발서를 읽느라, 주식이나 코인 투자를 하느라 삶을 허비하느니 차라리 베짱이처럼 삶을 즐기는 게 낫다. 그것이 오히려 격차를 줄이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웃기는 말이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