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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 개정판 ㅣ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최근 며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어떤 동영상도 보지 않은 채 오롯이 책에 묻혀 지냈다. 그러나 눈으로 읽었던 글자는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이해도 되지 않는 책을 읽는다는 건 어둠 속에 놓인 낯선 물체를 매만지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산다는 건 이따금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부조리를 맥없이 목도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무작정 살고자 했던 의지는 그와 같은 부조리와 조우할 때마다 한풀 꺾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란 수괴 혐의를 받고 어렵게 구속되었던 대통령이 까닭도 없이 석방되고, '나는 계몽되었습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17~18세기의 계몽주의 시대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몇몇 정신이상자의 망언을 듣고 있는다는 건 고문과 진배없었다.
전에도 몇 번 밝힌 바 있지만 마땅히 읽을 책이 없거나 싱숭생숭 책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에는 나는 언제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펼쳐 들곤 한다. 그럴 때 하루키의 소설보다는 그의 에세이가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작가의 감정은 독자의 감정이라는 기치 아래 '감정 동일시의 원칙'을 추구하는 우리나라 에세이와는 다르게 작가가 지나쳐 온 특정 시기의 문화, 예술, 사회 등을 마치 스케치하듯 덤덤하게 글로 옮기는 일본 작가의 에세이는 요 며칠 집중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 아닐 수 없었다. 책을 읽는 나 역시 '아하, 그 시절엔 그런 일이 있었던 게로군.' 하고 덤덤하게 넘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기운도 없는 내가 굳이 감정 소모를 할 필요도 없이.
"죽은 자를 칭송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젊은 나이에 죽은 자라면 더욱 그렇다. 죽은 자는 배신하지 않고, 반격도 하지 않는다. 나이도 먹지 않고, 머리도 벗어지지 않으며, 배도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조용하고도 완전하게 죽어 있을 뿐이다. 가령 그대가 그들의 죽음에 싫증이 나 잊어버린다 한들 별문제 될 것은 없다. 그냥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그것으로 끝이다. 잊혔다고 해서 그들이 그대의 집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일은 없다. 그들은 그저 암흑 속에서 침묵을 지킬 뿐이다. 그렇다, 죽은 자를 칭송하는 것은 너무도 손쉬운 일이다." (p.55)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7월에 초판이 발행된 하루키의 얇은 에세이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은 이처럼 시니컬하고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말하자면 요즘처럼 날씨 변덕이 심한 환절기의 오후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인근의 작은 공원에 옹기종기 모인 노인 몇몇의 열띤 시국 토론을 책에다 담아 놓은 것과 비슷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로서의 명성이나 지명도가 없었더라면 책으로서의 생명력은 진즉에 사라졌을 법한 책이지만, 그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고, 어떤 일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던 요 며칠의 나에게는 '그래도 뭔가 하고 있구나' 하는 위로를 던져주기에는 충분했던 책이었다.
"나는 파티라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초대받아도 가지 않는 게 보통인데, 만약 쌍둥이 자매를 에스코트할 수 있다면 생활 패턴을 적극적으로 바꿀 의향이 있다. 딱히 미인이 아니라도 좋다. 미인이 아니라도 별 상관없다. 아주 평범한 여자 쌍둥이로 족합니다. 꼬드기고 싶다거나, 같이 자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나는 그저 쌍둥이 자매와 파티에 가고 싶을 뿐이다. 왠지 아주 특별한 경험이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들 뿐이다." (p.62)
작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조하거나 작가가 느낀 감정에 나의 감정을 완전히 일치시켜야만 온전히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라면 "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런 책을 왜 읽는 거야?" 하는 질문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등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이 독서인의 유일한 자세는 아닐 터, 우리는 이따금 풀어지듯 침대에 누워 때로는 낄낄대기도 하고, 꾸벅꾸벅 졸기도 하면서 시간의 추이를 이따금 가늠하는 것도 독서의 한 형태가 아닐까.
"이 역시 자랑이 아니지만, 나는 한때 상당히 가난했었다. 막 결혼했을 무렵이다. 우리는 가구 하나 없는 방에서 소리 죽여 살았다. 스토브조차 없어서, 겨울밤에는 고양이를 껴안고 추위를 견뎌냈다. 고양이도 추우니까 사람에게 꼭 달라붙어 있었다. 거의 공생에 가까운 상황이다. 길을 걷다가 목이 말라도 찻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여행도 가지 않고 옷도 사지 않았다. 오직 일만 했다. 그렇다고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p.192)
대한민국은 지금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문득 꿈에서 깨고 나면 그제야 비로소 '아, 그때는 정말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암흑의 시간이었지.' 하고 서로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저마다의 기억을 털어놓겠지만, 국가의 모든 시스템이 무너진 지금 이 시간을 견디는 건 그 누구에게도 녹록지 않은 일. 멧돼지를 닮은 한 인간이 저지른 2년 반의 분탕질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말았다. 지금도 우리는 끝나지 않은 '내란의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