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공지영의 글은 다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져서 좋다.  때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만 쿵쾅거리며 뛰던 가슴도 착 가라앉고, 한동안 차분해지는 느낌.  아픔이 많은 사람은 그 아픔으로 인해 다른 사람도 보듬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나 보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이자 예의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순간순간 그것을 잊고 지낸다.

 

 

 

 

 

 

 

 

 

대한민국의 국민 대다수가 갖고 있는 정치 혐오증은 어쩌면 대통령 한 사람으로 인해 생겨나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건국도 이제 반세기가 훌쩍 지났건만 역대 대통령 중에 모든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는 대통령이 없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그가 출마를 할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국민들의 염원은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이념과 마음이 똘똘 뭉쳐진 하나의 국가,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지도자를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소설과 같은 현실이 있다.  아니 소설보다 극적인 현실이라고 말해야 한다.  일상에 지치고,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하루가 기계처럼 흘러간다고 느낄 때, 나 스스로가 거대한 기계의 작은 톱니바쿠처럼 느껴질 때, 세상을 보는 시각을 조금만 바꾸어도 새로운 세상이 열릴지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믿어야 한다.

 

 

 

 

 

 

 

 

얼마 전 화가였던 내 친구가 죽었다.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가끔 안부를 묻고, 소원하다 느끼면 작은 식당에서 만나 된장찌개를 사이에 두고 말없이 밥을 먹던 친구.  그는 자식과 아내를 두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돈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입방아를 찧지만 나는 그게 다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내 방에 걸린 그의 그림은 여전히 슬픈 미소를 짓고 있지만 이제 그 친구는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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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해야 한다는 어떤 당위성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때면 많이 지쳤다는 의미다.

삶에 그닥 신중하지도,

그렇다고 무한정 건방지지도 않은 나는

적당한 주기마다 일탈을 꿈꾸고,

싫증을 내고,

누군가 듣지 못할 낮은 소리로 육두문자를 읊조려 보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나름대로 상상하곤 한다.

 

물론 그것도 잠시 동안이다.

나는 금세 시들해져

풀 죽은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지만

오늘처럼 더위에 지쳐

숙소로 돌아온 날

무엇인가 먹어야한다는 당위성은

소심함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들과 아내는 지금

속초의 어느 펜션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친정식구들과의 긴긴 이야기들을 풀어 놓겠지만

이 세상 누군들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는

케케묵은 소리를 혼잣말처럼 하는 나는

무심한 더위에 괜한 시비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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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공연히 내세우는 구실' 또는 '잘못한 일에 대하여 구차스럽게 말하는 변명'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핑계는 결국 '정당하지 못한 일을 획책하는 사람의 자기합리화' 또는 '안 좋은 결과에 대한 책임 회피'임이 분명해진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 유난히 화를 잘 내는 아이가 있다.

어느 날 나는 그 학생만 따로 불러 진지하게 물었다.  그렇게 화를 잘 내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그러나 내게 돌아온 답변은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말이었다.  그 학생은 자신이 그동안 화를 자주 낸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학생처럼 행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경중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그 학생과 비교하여 크게 낫다거나 모자르다고 말할 수 없는 처지에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때 학생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사람들은 어떤 일의 결과(주로 나쁜 결과가 해당되겠지만)에 대하여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안 좋은 일인 줄 알면서 행동할 때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핑계를 대곤 하지.  우리가 핑계나 변명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단다.  왜냐하면 핑계가 습관처럼 굳어지면 어떤 일의 결과를 초래했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지.  즉, 자신이 말한 핑계가 그 일의 원인이라고 자기 자신도 굳게 믿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야.  언제부턴가 자신의 말에 자신도 속게 된다는 뜻이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실패나 좌절을 겪을지라도 그 원인만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언제든 다시 일어 설 수 있지만 실패의 원인을 찾지 못하면 지난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 언제든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단다.  이런 의미에서, 즉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는 핑계가 나의 판단력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야.

더구나 우리가 하는 핑계의 대상이 늘면 늘수록 내가 화를 내야만 하는 대상도 비례하여 늘어나는 것도 문제란다.  혹시 아빠도 운전하시면서 화를 자주 내는 편이니?" 

 

아이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렇다고 답했다.

"사실 나도 가끔은 불같이 화를 내는 경우가 있어.  내 앞으로 갑자기 끼어든 차로 인해 큰 사고가 날 뻔한 경우가 더러 있었거든.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내가 서행운전을 했었거나 방어운전을 했었더라면 그 운전자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우고 화를 낼 이유는 없었던 듯해.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우지.  자, 그러면 보자.  만일 내가 문제의 원인을 '나의 실수'로 파악했더라면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화를 냈었을까?  주먹질 일보직전까지 말이야.  아마 그런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거야.  이런 것처럼 책임을 다른 대상에게 돌리면 나는 그 대상에게 화가 나는 법이지.  날씨가 덥다고 화를 냈다면 그 대상은 '하느님'이 되어야 하나?  문제의 원인은 내가 체력적으로 약해서 더위를 잘 견디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일에 있어 결과가 안 좋은 이유는 대부분 그 원인이 내게 있단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한 편이니 그 원인이 내게 있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화를 내지는 않을 거야.  너가 그 동안 자주 화를 내었던 것도 사실 네가 그 원인을 잘못 파악했던 것이고, 네가 원인이라고 지목한 여러 대상들에게 한낱 분풀이를 한 것에 불과하단다.  실수나 실패를 통하여 배운다는 것은 일의 결과와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에 있는 법이지.  나는 너의 능력을 믿고, 앞으로는 네가 어떤 나쁜 결과에 직면하더라도 그 원인을 정확히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아이는 요즘 화를 내지 않는다.

내 앞이라서 조심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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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는 아니고 아주 가끔 미안할 때가 있다.

혼자 엘리베이터를 탈 때,

홀로 있는 빈 집에서 에어콘을 켤 때,

제 손으로 키우는 곡식도 없으면서 과한 밥상을 받을 때,

제 한 몸 건강하자고 온 산을 황폐하게 할 때, 또는 내 발 밑에서

의식하지 못한 순간 죽어가는 많은 생물들을 생각할 때,

순간순간 쓰레기를 만들 때,

 

적은 액수의 월급봉투를 아내에게 내밀며 힘들다고

엄살을 떨 때,

멀쩡한 옷도 많은데 유행만 좇아 눈이 멀 때,

기아에 허덕이는 지구인들을 보면서 모닝커피를 마실 때,

 

또는

약자의 억울함을 못 본 척 눈 감을 때, 혹은 분노하지 않고 외면할 때,

사랑이 중하다면서 냉정하게 돌아설 때,

과한 욕심으로 시간만 허비할 때,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나는 이럴 때,

생각할수록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을 때,

마이크를 잡고 머리 숙여 대 우주인 사과라도 해야 할까?

 

따지고 보면

사는 게 말할 수 없이 죄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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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한 더위가 목젖 근처에서 깔딱거렸다.

열에너지가 더해지면

분자 알갱이들은 더 분주하고

빠르게 움직인다는데

내 발걸음은 마냥 안단테 칸타빌레.

 

측근 비리로 대국민 사과를 하는 대통령

이번에는 청와대 뒷산을 오르지는 않은 듯.

하기야

한 푼의 병원비라도 아껴야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 삼복의 더위애 일삼아 산을 오를까.

나는 오늘도 아침에 산을 올랐다, 병원비라도 아껴보려고.

 

퇴근길에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도서관으로 향했다.

염천을 피해 서늘한 고요 한점 그리워서.

 

오늘처럼 더위가 등줄기를 타고

뻗쳐 오를 때는

어느 한 맺힌 사랑이 이다지도

뜨거운 것이냐?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사랑밖에 몰랐던 순진한 백성들이

꾸역꾸역 또 하루를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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