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 - 절망의 한복판에서 부르는 차동엽 신부의 생의 찬가
차동엽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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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단 한 권의 책을 읽고 작가의 글 전체를 좋다, 나쁘다 평하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렇게 말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독자들의 정확한 평가(그것이 비록 악평일지라도)야말로 우리 사회 전체의 문화를 선도하는 작가로 하여금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도록 각성하고 정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내가 차동엽 신부님의 글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스트 셀러 작가인 동시에 유명 강사라는데 말이다.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지 몇 년 되지 않은 나로서는 차동엽 작가가 신부라는 또 다른 직책을 맡고 있음에도 그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종교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내 무지의 소치에서 비롯된 일이다.  오히려 외국 신부님들 저서는 그럭저럭 많이 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얼핏 생각나는 이름만으로도 폴 신부님, 안젤름 그륀 신부님, 피에르 신부님, 앤드류 그릴리 신부님, 헨리 나웬 신부님 등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그분들의 작품을 읽고 가끔 리뷰를 올리기도 했지만 '괜히 시간만 버렸다'싶을 정도로 비판적인 글을 쓴 적은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  오히려 그 진한 감동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은 적은 많았지만.  평생 글을 쓰는 작가의 입장에서 세상에 내놓는 모든 작품이 다 독자의 구미에 맞을 리가 없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작가라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차동엽 작가의 이번 작품이 왜 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지적하고자 한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기에 이것은 전혀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1. 시간에 쫓겼거나 사색이 부족했거나

 

처음부터 이 책이 맘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이 책을 어떤 범주에 넣어야 하나 하는 문제였다.  작가 자신의 경험과 사색을 기록한 책이라면 당연히 수필에 속하겠지만 인용글이 80%가 넘어 보이는 이 책을 수필이나 산문집으로 보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그렇다고 주제에 어울리는 글들만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잠언집으로 보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작가의 견해나 경험을 완전히 배제했더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니 잠언집이라고 단언할 수만도 없다.  그렇다고 짜깁기로 일관한 학부생의 리포트라고 할 수도 없고...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 나는 가끔 시간이 나면 근처에 있던 특수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곤 했다.  그곳에 모인 학생들은 주로 다운 증후근을 앓고 있었는데, 그들과 어울려 생활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나 스치듯 지나쳤던 사람들은 학생들 각자의 외모로 서로를 구분하는 것이 결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일반인의 경우에는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일텐데 말이다.  비슷비슷한 외모 탓인지, 아니면 그곳을 찾는 외부인에게 많은 실망을 경험한 탓인지 자기네들끼리의 유대감은 강하지만 처음 찾는 외부인에게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시간 날 때마다 몇 번인가 방문하면서 낯을 익히던 어느 날, 한 학생이 내게 수줍게 내밀었던 사탕 한 알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자신의 주머니에 몰래 남겨두었던 사탕을 내게 건네며 환하게 웃던 얼굴.  그때의 감동을 후에 나는 이렇게 적었었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은 손끝이 무디다라고.

 

내가 이 경험을 적은 이유는 작가를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다.  작가라는 직업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시간이 무한정으로 남아 그 무료함을 달래려 글이나 쓰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누구보다도 늘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임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글솜씨만 믿고 시간에 쫓겨 감동이 없는 글을 쓰는 이가 있다면 나는 그를 일컬어 가슴이 차고 손끝이 잰 사람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2. 문체에 대하여

 

책의 구성은 크게 네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생명의 몸살'이란 제목이 달린 현실 세계의 문제 극복에 대한 조언, '고독한 영혼의 초월 본능'이라는 제목의 종교와 기도에 대하여, '내 인생의 비밀코드'에서는 신의 존재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피할 수 없는 물음'에서는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기본 얼개로 하고 있다.  서문에서 밝히 듯이 고인이 된 이병철 삼성 회장이 죽기 전에 남긴 24가지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출발한 것이 이 책이 나온 배경이다.

 

천주교의 주일 미사나 개신교의 주일 예배를 참석한 경험이 한번쯤이라도 있는 분이라면 다들 공감하겠지만 목사나 신부는 일반인과 다른 독특한 억양과 어투로 설교를 한다.  그 어투도 어투려니와 말을 전달하는 자세에서도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마치 초등학생과 선생님의 관계처럼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사석에서도 고쳐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런 어투와 자세, 누군가에게 교훈을 주어야 할 의무감에 부푼 듯한 일방적 욕심은 오히려 성직자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비록 그 의도가 선할지라도.

 

이 책에서도 그런 모습이 군데군데 비친다.  어려운 내용을 쉬운 말로 풀어 쓰거나, 더 나아가 적절한 경험을 버무려 읽는 재미까지 더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도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에서는 여지없이 적절한 예시가 등장한다.  작가가 어떤 글을 인용하느냐 아니면 자신의 사색과 경험에 의존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작가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인용글조차 독자가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작가 자신이 글을 풀어 가는 역량의 문제라고 보아도 좋다.  그리고 작가만 알고 독자는 모른다면 그런 책은 더더욱 읽을 가치가 없다.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누군가와 공감하려는 자세가 작가의 기본적 책무가 아닐까 싶다.

     

3. 이 민감한 시기에 왜 이병철인가?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회적 양극화가 커다란 문제로 대두되었다.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닌데 왜 일반 국민들은 그토록 심각하게 인식하는 것일까?  내 생각으론 국민들이 인내할 수 있는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책의 출발은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무엇에서 글의 아이디어를 취하든, 글의 주제를 무엇으로 정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자유다.  그리고 이병철 회장의 질문은 죽음에 임박한 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소박하고 진솔한 것이었다.  작가는 책에서 그 질문과 크게 관련이 없는 글도 실었고, 일정 부분 그 질문에 충실한 것도 있다.  인간이기에 품을 수 있는 인류 공통의 근원적 질문만을 골라 답을 하고자 했다면 굳이 이병철 회장을 언급할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4월에는 총선이 있고, 사회 양극화의 문제로 재벌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이 시점에 작가는 왜 우리나라 재벌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 이병철 회장을 책의 전면에 거론한 것일까?  사회 분위기를 몰랐었거나 아니면 숨겨진 다른 의도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전자든 후자든 책의 판매나 일반 독자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작가적 욕심에서나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임이 분명한데 왜 작가는 뜬금없이 고인이 된 이병철 회장을 언급했던 것일까?

 

블로그에서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을 유희 삼아 하고 있는 대다수의 블로거들과 내가 다를 것도 없고, 지식도 일천하다.  책에 대한 이런 일방적인 비판이 작가로서는 일견 당혹스럽고 화가 날 만도 하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쌍방간의 대화가 아닌 일방적 견해이니 항변할 것도 많을 것이다.  나는 독자로서 '다 읽지도 않고 무슨 서평을 쓰며, 더구나 비판을 가할 수 있느냐'하는 비판을 면키 위해 인내심을 갖고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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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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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소년이 있었다.

500년 이상의 장구한 세월 동안 한 왕조에 의해 통치된 조선왕조를, 수천 년 단일민족을 유지한 한민족을 왜 자랑스러워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한 소년.  자신의 조상은 단 한 번도 조선의 통치자가 된 적 없고, 그 권력층에 빌붙어 국정을 논한 적도 없는데 왜 그것이 위대하고 자랑스러운지 소년은 도통 그 까닭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맹목적 충성을 가르치던 획일적 교육에 묵묵히 순응하며 용기 없음의 대명사 딱지를 덕지덕지 붙인, 치욕적인 조상들이 소년에게 유산으로 물려준 굴욕감의 상징일런지도 몰랐다.

 

우리가 갖고 있는 감정의 주머니에서 가장 제멋대로인 '분노'라는 놈은 예측할 수 없는 부지불식의 순간에 불쑥불쑥 나타나곤 하는데, 그런 연유로 나는 감정의 집합에서 '분노'는 예외적인 원소로 치부하곤 한다.  그런 면에서 소년과 나는 하나이며 시간의 벽을 걷어 치운다면 서로를 구분할 수 없는 하나의 몸일 수도 있겠다.

 

조상들로부터 '용기 없음과 신념의 부재'라는 심드렁한 DNA를 물려 받은 소년도 조상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변한 것이라곤 '암클'이 '국어'로, '중국어'가 '영어'로, 유교 이데올로기가 반공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 바뀌었을 뿐, 학교 앞 문방구에서 수없이 보았던 형형색색의 것들을 세세히 보여준 후 학생 스스로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그런 교육은 단 하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획일적 교육에서는 좋고, 나쁨이 존재할 수 없었다.  좋고, 나쁨의 선택적 기준이 없다보니 신념은 고사하고 시류에 편승하여 안일무사를 추구하는 잔재간만 늘었다.

 

80년대 초부터 노벨 문학상 수상작을 빼놓지 않고 읽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윌리엄 골딩, 야로슬라프 세이페르트, 클로드 시몽, 올레 소잉카, 조지프 브로드스키, 나기브 마푸즈 등등.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신념과 상상력이 없는 사람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을 읽기 어렵다.  읽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글자와 행간의 무질서를 조화롭게 바로잡을 수도 없었다.  소년은 자신이 그야말로 글자를 읽을 수 있으되, 이해하지 못하는 제2의 문맹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군부 독재가 무너지던 어느 날, 사람들은 서울 시청앞 광장에 앉아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고 외쳤다.  소년도 노벨 문학상 작품들을 다시 이해할 수 있겠거니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민 정부는 "선착순 다섯 명!"을 외치며 '뺑뺑이'를 돌리듯, '경쟁'이라는 또 다른 무기로 감정의 보따리를 앗아갔다.  소년은 이제 생각의 기능도 거세당한 무기력자가 되었다.

 

다양성을 경험하지 못하면 신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념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변화를 낳고, 변화는 상상력을 낳고, 상상력은 용기를 낳고, 용기는 다시 무한대의 영역으로 도전하게 한다.  그것이 인류를 발전케한 원동력이며 부패한 삶에 생기를 불어 넣는 창조자의 숨결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연쇄고리를 끊고, 그렇게 길들여진 사람을 '착하다'고 말한다.

 

소년도 자라서 어른이 되었고, 그도 이제 도무지 그의 삶에서는 신념도 용기도 찾아볼 수 없는 '착한' 사람으로 불린다.

킴 만레사가 사진을 찍고 사비 아옌이 기록한 <16인의 반란자들>.  노벨문학상 수상자 16인을 만나기 위한 3년여의 대장정.  나는 이 책을 읽고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다시 읽게 되었다.  하나의 대안을 놓고 찬,반을 결정하는 그런 사회가 아닌, 누구나 다양함 속에서 스스로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존재하는 사회를 꿈꾸게 되었다.

 

귄터 그라스는 말한다.

"<양파껍질을 벗기며>만큼 독자들의 편지를 많이 받아본 적이 없어요.  독자들이 뭐라고 한 줄 아시오?  드디어 손자들과 혹은 조부들과 전쟁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합디다.  결국 우리는 모든 논쟁을 견뎌냈어요.  우리는 반드시 얘기해야 해요.  치명적인 트라우마까지, 그 모든 것을.  지금까지 나로서는 할 수도 없었고 알 수도 없었지만, 기왕에 이렇게 된 것에 대해 무척 만족하고 있소.  내가 겪었던 젊은 시절은 얘기하는 게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어요.  우리 세대는 이 문제를 결코 뛰어넘을 수 없고, 어떤 종지부도 찍을 수 없을 거요.  그러나 나는 그것에 관해 계속해서 쓸 거라고 약속할 거요.  나는 계속해서 입을 열 것이고, 나의 적들은 참을 수밖에 없을 거요."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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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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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관 시인의 시집을 주문하며

 

평생 단 한 권의 시집을 낸

한 시인의 이야기에 나는 울었다

그 시인의 유고시집을 주문하며

나는 또 울었다

시집의 가격은 단돈 칠천 원

그마저도 박박 지우고

할인하여 달랑 오천구백오십 원

 

아! 한 시인은 삶은,

죽어서 유골이 된 그의 한평생은

단돈 오천 원

 

피로, 눈물로, 한숨으로 짓고

한편생을 한(恨)으로 고쳤을

그의 시가

 

제 손으로 쓰고

제 손으로 거둘 그의 시는

이제는 누구 한 사람 돌보지 않는

추도시로 남아

독자리뷰 한 줄 없는

제문(祭文)이 되었구나

 

시인은 알았을까?

단돈 칠천 원

그마저도 할인하여

달랑 오천구백오십 원

 

덤을 주어도 시원찮을

그의 한평생에

누군가가 매겨놓은 판매가 칠천 원

산 자들은 그마저도 아까워 오천구백오십 원

 

구만 리 황천길에

노잣돈이 되어버린

그의 삶은

산 자의 눈물을 더하여

오천구백오십 원

 

아무도 찾지 않는 그의 시집을

'옛소, 잘 가시오' 주문하며

나는 울었다. 

 

생가 앞에 노제를 차리고 그 앞에 영정을 가져다 두는데, 한 사람의 삶이란 뭔가 하는 슬픔이 몰려왔다.  "엄마"하며, 이 길을 뛰어왔을 배고픈 아이 하나가, 엄마는 들에 나가고 없는 집에서 두려움에 떨었을 아이 하나가 저 들녘을 넘어 서울로 가고,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고, 이젠 외로운 유골 한 상자가 되어 맨 처음 출발했던 그 시골집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게 뭘까 하는 생각에 사무쳤다.  (P.84)

 

이제는 '희망버스'로 더 잘 알려진 송경동 시인의 산문집을 읽었다.  비슷한 시대를 살아 온, 군부 독재의 서슬이 퍼렇게 살아 있던 그 시절의 칼날 앞에 베이고 찢기고 상처 입으면서도 영혼만은, 양심의 가치만은 꼭 지키려 했던 작가의 몸짓이 아프다.  나는 어쩌면 내 삶의 이면과 그 속에 감추어진 비겁의 고백들을 한 줄 한 줄 끄집어 내며 내 가슴에 아픈 생채기를 남기려 했는지도 모른다.  동시대의 사람이, 동시대의 다른 누군가를 향해, 단지 소수라는 그 이유만으로, 또는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변명으로 그들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살았던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냉정함이 유난히 시린 2012년 2월의 겨울 끝자락에 고드름으로 맺힌다.

 

넥타이에 걸린 나의 양심이 자꾸 목에 걸려 책을 읽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도 아닌 21세기에, 군부 독재도 아닌 민주 시대에 '운동','저항', '인권',' 노동' 등의 옛 단어들이 닫혀진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드는 오후.  바람이 몹시 불었다.  시인의 아픈 추억이 하나 둘 바람에 흩날리고 책장을 넘기는 나는 몸서리를 치며 추위를 견뎠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라는데, 나는 먼(또는 가까운) 미래에 가해자의 편에 서서(또는 가해자보다 더 무서운 방조자의 입장으로) 시대의 양심을 위해 투쟁했던 그들의 매서운 시선을 피하며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을지도 모르겠다.

 

그날이 오면 나도 85호 크레인 사람들과 함께 맨 먼저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뵙고, 어머니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소주 한 잔과 담배 한 개비 올리고 싶다.  부끄러운 눈물 한 자락 올리고 싶다.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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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참석했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던 많지 않은 친구들이 모두 모였던 것이 이제는 그마저도 나뉘어 열네 명의 친구들만 만난다.  그것도 많은지 열네 명 모두가 한 자리에서 얼굴을 보는 경우는 극히 드문 예외적인 일이고 보면 고교시절 주말마다 만나 오전 한나절을 놀다가 땀냄새 풀풀 풍기며 한 친구의 집으로 우르르 들이닥쳐 라면을 끓여내라던 그 때가 마냥 그리워진다.

 

저녁을 막고 정치인을 안주삼아 술잔이 몇 순배 돌자 대화는 자연스레 아이들 교육 문제로 옮겨졌다.  그날 나왔던 친구들 중 외벌이는 나와 친구 한 명이 고작이었고 다들 맞벌이인지라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길러진 아이들의 문제가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나와 친구는 그저 듣기만 할 뿐 반박하거나 주도할 입장은 아니었다.  술잔이 도는 횟수가 더할수록 그동안 꽁꼼 싸매고 숨겨놓았던 이야기들이 봇물처럼 터져 신세한탄으로 이어질 때까지 우리는 멍하니 듣기만 했다.

   

지방에서 상경해 대학을 마치고, 취직을 하고, 짝을 찾아 결혼을 하고, 하나 둘 아이를 낳고, 이제는 그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에서 삶의 낙을 찾는 나이가 되었건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던지 신입사원 시절의 단정한 모습도, 야망과 오기로 똘똘 뭉쳐 빈 틈이 없어 보였던 그들의 삶도  술기운에 게게 풀린 몸뚱이처럼 세월의 흐름에 흐트러지고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부자의 대열엔 들어서지 못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아이를 교육시키고, 자신들의 체면을 유지할 정도로 먹이고 입힐 수 있는 정도의 경제적 여건을 갖추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건만 부모의 사랑스런 눈길을 받으며 자라지 못했던 아이들은 게임 중독과 나태함, 방종, 반항 등 부모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고민이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갖은 방법을 다 써보고, 어르고 달래도 보았으나 백방이 무효였다는 것이다.  무작정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아이를 데리고 정신과를 찾기도 했었단다.  그러나 육체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는 어떤 방법으로도 고쳐지지 않더라고 하소연했다.

  

부모의 체면, 경제적 편의, 또는 경쟁 의식에서 비롯된(맞벌이 부부 대다수가 부정하겠지만) 양육의 포기 또는 방치는 자녀의 미래를 그 댓가로 지불하곤 한다.  나는 아이들의 영혼이 부모의 시선을 먹고 자란다고 믿는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시선을 자양분으로 주지 못하는 처지라면 약간의 경제적 풍요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하는 것을 주변에서 종종 보곤 한다.  그런가 하면 배를 곯을 정도로 가난한 집 아이들은 부모의 방치에도 불구하고 일찍 철이 들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동생들을 돌보며 잘 자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아이들의 영혼은 부모와의 사랑스런 눈맞춤, 또는 극한의 상황에서 얻어지는 생존 본능의 발현으로 이루어지는 듯하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동의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경제적 편의나 자신들의 체면을 위해 맞벌이를 선택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잘못 성장했을 때 그 모든 책임을 아이들에게 돌린다.  "내가 너에게 못해준 것이 뭔데?"라며 항변하듯 외친다.  아이들도 과연 부모의 사랑과 경제적 편의 중에 경제적 편의를 선택하겠노라고 동의했던 것일까?

 

술을 먹지 못하는 나는 취하여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친구 한 명과 함께 지하철을 탔다.

주말의 고단한 피곤이 덜컹거리며 승객들을 비웃고 있었다.  그렇게 한 주가 저물고 습관처럼 출근을 하면 자울거리는 시간과 또 어찌어찌 하루해가 저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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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2-15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꼼쥐님의 생각과 같은 사람 중 한 사람이고 그것을 실천하며 살려고 하는데, 별것 아닌 이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데 '소신'이 필요하더라고요. 그 소신 지키며 살기가 참 쉽지 않다 싶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시선을 먹고 자란다는 말씀, 참 마음에 듭니다.

꼼쥐 2012-02-16 22:46   좋아요 0 | URL
아이의 미래와 부모의 체면이나 경제적 편의, 무엇을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는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지요. 저는 물론 아이의 미래를 선택하자는 쪽이지만 쉽지 않은 문제인 것만은 확실한 듯싶어요.
 

하나의 현실에 푹 빠져, 내 주변에는 오직 하나의 현실만이 존재한다고 믿게 될 때, 나의 관심에서 밀려난 또 다른 현실은 마치 부모의 관심에서 멀어진 어린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는 부모에게 토라져 이를 앙다문 채 복수를 다짐하는 것처럼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등장할지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현실과의 끊임없는 의사소통 과정인지도 모른다.  나를 가운데 두고 각기 다른 현실들이 나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뺏어내려고 다투는 그 치열한 현장에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  조직내에서도 어떤 자리에 오르기 전에는 내가 관심을 두어야 하는 여러 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듯이, 내 주변에는 나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무수히 많은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려면 어는 정도의 나이를 먹었을 때에나 가능하다.  그리고 내가 잠시 등한시 했던 여러 일들이 마치 복수를 하듯 무대 뒤에서 등장할 수 있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만한 나이도 분명 존재하는 듯하다.

 

며칠 전 작년에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 중 한 명의 졸업식이 있었다.

그날도 나는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새벽 칼바람을 뚫고 아침 운동에 나섰다.  부쩍 떨어진 기온과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새벽 거리에서 내가 그 아이의 졸업식에 참석해야 하나 하는 문제를 곰곰 생각했다.  나는 그 전 날 그 아이를 축하하기 위해 졸업식에 참석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소식을 그 아이의 친구에게서 들었다.  무릎 관절이 안 좋으신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한 상태이고, 동생들은 학교에 가고, 늘 술에 취한 채 사는 그 아이의 아버지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음에도 보란 듯이 서울의 모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던 그 아이.  마음 같아서는 하루 휴가를 내서라도 맘껏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게도 고민이 있었다.  여학생인 그 아이가 남남이나 다름 없는 나의 축하를 선선히 받아줄 것인지, 가뜩이나 여러 친구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학교에서, 게다가 휴대폰이 없는 그 아이와 만나려면 등교하기 전에 약속 시간과 장소를 미리 잡아야 한다. 

 

출근하기 전에 그 아이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아이는 내 예상과는 달리 밝은 목소리로 와주시면 고맙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을 하여 사무실에는 점심시간 전에 잠시 외출을 하였다가 오후에 들어오겠노라고 전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뽀얗게 먼지만 뒤집어 쓴 차를 몰고 그 아이의 학교로 향했다.  이상 한파 때문인지 꽃값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비쌌다.  부모의 축하를 받으며 나오는 졸업생들.  그 왁자한 소음을 뒤로 하고 아이와의 약속 장소로 갔다.  약속 시간까지는 10여 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아이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교정 곳곳에는 사진을 찍는 인파로 가득했다.

 

잠시 딴생각에 젖어 있던 나는 아이의 외침도 듣지 못했다.  준비해 온 꽃다발을 전하며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낮인데도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몰아쳤다.  근사한 '꽃돌이'를 준비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아이가 웃었다.  근처의 식당은 발 디딜 틈이 없을 듯하여 차를 몰아 시내를 벗어났다.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말하라고 하는데도 아이는 요지부동  아무거나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부담감 때문이었겠지.

 

식당에서 아이는 조금 심각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자신이 오늘 나와의 만남을 선뜻 응했던 것은 내게 부탁이 있어서라며 그 속내를 털어 놓았다.  생각해 보면 자신이 고 3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이 다 나의 격려와 조언 덕분이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자신처럼 힘들게 공부하는 후배들을 위해 시간이 되면 다시 공부방을 열어달라는 부탁도 했다.  수업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나의 경험담도 들려주고 공부에 조금 나태해진 학생에게는 따끔한 질책도 해달라는 것이었다.

 

아이를 집에 데려다 주고 회사로 들어가는 내내 아이의 말이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를 둘러싼 여러 현실들이 나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듯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바람이 윙윙 차유리를 때리고 방관자처럼 멀찍이 달아나는 시간이 야속한 하루.  세월아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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