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이 풀려서인지 퇴근 후에는 잠만 쏟아진다.
분명 계절의 탓은 아니거늘 추곤증(秋困症)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자도 자도 끝없는 졸음이 밀려온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직장 동료들은 지난 1년 동안 내가 칼퇴근하는 바람에 저녁 한 끼도 같이 먹기 힘들었다며 퇴근 후에 식사라도 같이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심심찮게 듣곤 하지만 저녁이면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져 다음에 하자는 말만 남기고는 서둘러 숙소로 향하게 된다.

어제는 점심 나절에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내용인즉슨, "쌤, 저 XX인데요.  못 본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벌써 보고 싶어요.  모르는 문제가 있어서 야자 끝나고 XX랑 잠깐 들를려고 하는데 괜찮나요?  답장 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올해 수능을 치르는  XX는 성적은 그닥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언제나 밝고 명랑한 학생이었다.  같이 공부를 할 때만 해도 아이들의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다운되었다 싶으면 기발한 언변으로 우리를 즐겁게 했었다.  그렇다고 공부는 뒷전인 그런 아이는 물론 아니었다.  가끔 농담삼아 내게 비난의 화살을 날리곤 했지만 말이다.  쌤은 언제나 공부 잘하는 아이만 편애한다고.

오락가락 하던 비가 그치자 바람이 심해졌다.
퇴근길에 동네의 치킨집에 들러 통닭을 한 마리 예약하고는 아이들이 올 시간에 배달을 부탁했다.  야식을 먹으면 살찔텐데 하면서도 허겁지겁 먹어 치울 모습이 눈에 선했다.  올해 들어 한 번도 난방을 하지 않았던 숙소는 냉골이었다.  저녁을 대충 해결하고 잠시 책을 읽자던 것이 책 위에 쓰러져 깜박 잠이 들었다.  어느 정도 알맞게 훈훈해진 방 안의 공기 탓이었는가 보다.

초인종 소리에 놀라 잠이 깨었다.
소란스럽게 인사를 하며 들어서던 아이들은 내 이마에 선명하게 새겨진 잠의 흔적을 보고는 깔깔대며 놀렸다.  엎드려 잔 탓에 목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다.  곧 치킨이 배달되었고 내가 예상한 대로 아이들은 닭다리 하나씩을 잡고는 밀어넣다시피 게걸스럽게 먹었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들의 방문 목적을 떠올렸는지 주섬주섬 책을 펼쳤다.  초딩도 풀 수 있는 문제인데 고3이 이것도 못 푸냐고 놀리자 유치원을 다니지 못한 후유증이 고등학교에 나타나는 것이라며 역시 농으로 되받아친다.

문제를 풀어주고 돌아갈 시간이 되자 아이들 얼굴이 굳어졌다.  불안하단다.  그러고 보니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아이들에게 있어 수능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자신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아닐까?    불안은 인간의 선천적 본성이라지만 며칠 남지 않은 수능과 그것을 걱정하는 아이들의 굳은 표정이 짠하게 느껴졌다. 

밤이 늦었다.
아이들은 지금쯤 졸린 눈을 비비며 불안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지나고 나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약간의 후회만 남는다는 사실을 그 나이에는 알지 못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10-25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7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황무지에서 사랑하다
쓰지 히토나리 외 지음, 양억관 외 옮김 / 동방미디어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고속도로 휴게소나 기타의 공공장소에서 공중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체험은 낙서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원시인에 의해 그려진 동굴벽화도 낙서의 일종이고 화장실 뿐만 아니라 유명 관광지의 곳곳에도 낙서의 흔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화장실의 낙서는 유독 눈길을 끈다.  통계에 의하면 여자들의 경우 감정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룬 반면, 남자들은 성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가령 여자화장실의 경우,
A: 여자친구 있는 남자를 뺏어서 사귀고 있어요. 저 나쁜 사람인가요? 그렇지만, 정말 너무 사랑한걸요…
B: 응, 너 나쁜 애야.
이와 같은 화장실 낙서로만 인간의 본성을 파악한다면 '성욕'과 '분노'라 말할 수도 있겠다.  세상의 모든 갈등은 어쩌면 이것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화장실은 가정집이 되었든, 공중화장실이 되었든 개인의 생리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동시에 가장 솔직한 자아를 만나는 은밀한 공간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익명성'과 '해방성'을 만끽할 수 있는 제한된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까닭에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화장실 낙서'는 지극히 보편적인 현상일 뿐만 아니라 내밀한 공간에서의 낙서이다 보니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세계 각국의 낙서는 유사한 공통점을 보인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발표한 화장실 낙서에 관한 논문에 따르면 여성의 경우 가장 많은 화장실 낙서는 섹스,피임,임신중절,여성권리가 주를 이루는 반면 남성의 경우는 55%가 정치문제이며 파괴적이고 증오에 가득 찬 낙서들이었다고 한다.

이 책의 내용과는 하등 관련도 없는 화장실 낙서 얘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펼쳐놓는 이유는 이 책에서 다루는 '연애'는 그 표출하는 방식만 다를 뿐, 개인의 내밀한 욕구를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화장실 낙서와 연애는 그 밑바탕에 깔린 기저심리가 유사하다고 보는 까닭이다.

이 책은 <냉정과 열정 사이>의 저자인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연애 담론이다.  동일한 주제에 대해 츠지 히토나리가 운을 떼면 에쿠니 가오리가 자신의 의견을 더하고 새로운 주장을 내세우기도 하는 보기 드문 형식의 산문집이다.  글의 처음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절대적인 형태가 존재할 수 없는 사랑과 연애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남의 집 정원을 엿보는 듯한 가벼운 기분으로 읽어줄 것을 저자는 주문하고 있다.

내가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여 다시 복학을 하였을 때 가깝게 지내던 초등학교 여자 친구가 결혼을 했었다.  서로가 이성적으로 가까웠던 관계는 아니고 심심할 때면 부담없이 전화하고 차 한 잔을 나누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그런 동성과 같은 친구였다.  그 친구가 결혼하고 몇 개월이 흘렀을 무렵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신혼의 단꿈에 흠뻑 취해있을 시기인데 만나자는 전갈은 의외였다.  어찌어찌 약속을 잡고 어느 커피숍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나는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섰던 듯하다.

그녀가 내게 들려준 이야긴즉슨, 자신의 남편이 얼마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는지라 다른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남는 시간에 운전면허나 따라고 학원에 등록을 시켰었단다.  남편도 흔쾌히 동의했고 다음날부터 남편은 교통비와 약간의 용돈을 받아 매일 학원으로 출근했고, 그렇게 하기를 여러 날이 지났을 무렵 남편의 귀가 시간이 점점 늦어지기 시작했단다.  그녀가 주는 용돈으로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보낼 수 있는 넉넉한 금액이 아니었기에 그 궁금증은 더해갔다고 했다.  가뜩이나 신혼이 아니었던가!  남편이 그 학원에 다니는 여자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고 했다.  그녀는 당시 결혼도 하지 않았던 내게 어찌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감정적 끌림'과 '사랑'은 분명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길을 가다가 멋진 이성을 만났을 때 자기도 모르게 눈길이 머물렀던 경험, 결혼식 이후의 피로연 자리에서 만났던 이성과의 짧은 만남 등등을 모두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너도 그런 경험이 한번쯤은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다만 지속되는 시간이 상당 기간 지속된다면 그때는 사랑으로 깊어질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설령 가벼운 만남이 사랑으로 발전한다고 해도 그저 기다리는 것 말고는 그것을 인위적으로 막을 방법은 딱히 없지 않겠냐며 섯부른 판단으로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연애시절 친구의 결혼식 뒷풀이에서 만났던 한 남자로 인해 1주일여를 가슴앓이 했던 경험을 내게 들려주며 남편을 믿고 조금 더 기다려 보겠노라고 하였다.  그녀는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사랑을 하고 불꽃같은 연애를 경험하게 된다.  사람을 잘 믿지 않아 소설가가 될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하는 츠지 히토나리와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이기도 한 에쿠니 가오리의 솔직 담백한 연애 담론은 도덕적 정당성을 다루는 정통 사랑학이 아닌 누구나 겪는 현재 진행형의 연애를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건설적이지 않은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죠.  연애는 개념의 파괴니까.  인생을 건설적으로 뒷받침하는 사랑과는 다른 것이죠.  그 점이 재미있지 않나요.  연애에 빠지면 옷깃을 여미고 끝까지 빠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랑을 지나 죽고 싶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P.2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간고사를 무사히 넘겼다.
내게 2011년의 9월은 참으로 힘겨운 한 달이었고 또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나는 열정이 식은 연애처럼 심드렁한 의무감으로 하루하루를 버텼고, 아이들도 저마다 시험준비로 바빴었다.  의욕만 앞섰던 지난 1년이 길고 길었던 지난 여름의 장마처럼 계절의 뒤편으로 사라져 간다.  한동안 고민만 거듭하다 이제야 굳어진 결정을 아쉬움과 미안함이 쓸어가기 전에 나는 서둘러야만 했다.  나는 언제쯤이면 만남과 헤어짐에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담담할 수 있을까? 

퇴근 후, 나의 숙소에는 늘 그렇듯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의 수다가 끝없이 이어지고 나는 아이들의 왁자한 소란 속으로 내 말을 들여놓지 못했다.  아이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넋 나간 사람처럼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자신들의 소란을 제지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궁금증이 일었는지 오래지 않아 수다는 제 풀에 스러졌다.  누구라도 먼저 말을 꺼내기 어려웠던 어색한 침묵이 한동안 이어졌다.  나의 결심을 말해야 하는데 목구멍에 걸려 넘어오지 않았다.

구구한 변명만 이어졌다.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것과, 수업준비로 회사일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과, 피곤에 지쳐 주말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어렵다는 것과 이런 저런 변명들이 미리 준비한 것도 아닌데 끝없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꼭 해야 하는 말에 이르러서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눈치가 빤한 아이들이 이제 그만 둘 것이냐며 따지듯 물었다.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잠시 쉬고 싶다며 변명처럼 에둘러 표현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서둘러 자신의 가방을 챙겼다.  살면서 한번쯤의 배신을 경험한 아이들은 어른보다 체념이 빠르다.  그들은 울지 않았다.  굳은 얼굴로 숙소를 빠져나가는 사내 녀석들과는 달리 여학생 몇은 뒤에 남아 눈시울을 붉혔다.    척박한 땅에서도 사람은 자랄테지만 대지의 강한 생명력이 그들을 지켜주기를...  나는 중학생 녀석들을 그렇게 보냈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고등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자 숙소는 금세 소란해졌다.
어제와 다른 분위기를 감지한 탓인지 아이들은 내 표정부터 살폈다.  나는 그들에게 변명을 하지 않았다.  조금 힘들어서 잠시 쉬었으면 한다는 한마디 말을 꺼냈을 뿐이다.  이어지는 침묵.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많은 고등부는 처음부터 자신들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었다.  혹여라도 내가 밥을 굶을세라 김치며 밑반찬들을 바리바리 퍼 날랐었다.  간혹 침 넘기는 소리가 들렸을 뿐 아이들은 시선을 내리깔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게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여학생들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나는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며 다독였다.  숙소를 빠져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노라니 허우룩해지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나는 오늘부터 휴가다.
직장에서 퇴근하면 자정까지 꼬박 긴장된 시간을 보냈었는데 나는 오늘부로 그런 긴장감에서 해방되었다.  그럼에도 퇴근 후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오히려 어제의 일을 까맣게 잊은 학생 몇몇이 숙소의 문앞에서 나를 기다려주지나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기대를 품기도 했다. 
구름 낀 하늘에는 희끄무레한 달빛이 비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단절된 일상이 그리워지면 내 휴대폰에 저장된 그들의 단축 번호를 나는 습관처럼 누르게 될지도 모른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듯.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1-10-12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아이들도 당장은 서운함때문에 다른 생각이 안들겠지만 차차 이해해가지 않을까요?
꼼쥐님보다 시간 여유 많은 제가 부끄러워지네요. 어딘가 부족하나마 제가 도움이 될만한 자리가 분명히 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꼼쥐 2011-10-14 10:13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면 제가 너무 무모하게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쉬면서 나를 돌이켜 볼 시간이 필요했었구요. 아이들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죠. 곧 수능도 있는데... 욕심부리지 않고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일을 벌였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듭니다.

다독다독 2011-10-12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작할 때의 마음도,
힘들어도 밀고 나갈 때의 마음도,
잠시 쉬겠다 말할 때의 마음도,
다 진심임을 느낍니다.


꼼쥐 2011-10-14 10:1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제 마음 속에는 뭔가 털어내지 못한 듯한 미련과 아쉬움이 남아있어요. 어쩌면 제가 다시 시작한다면 이런 경험이 큰 힘이 되겠지요.

2011-10-14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5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세이>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에세이 분야의 신간 평가단으로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책을 선택하고, 혹시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이 선정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 결과를 기다리고, 또는 언제쯤 책이 오려나 하는 기다림을 생각할 때, 이런 소소한 일상들이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마치 처음으로 사랑에 눈 뜬 소년의 마음처럼. 

 

너무나 유명한 작가 알랭 드 보통.  그러나 유명세에는 항상 숨겨진 가시가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오래된 속담처럼 혹시 실망스럽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  그럼에도 이 책을 선택하는 것은 평소 좋아하던 에릭 호퍼의 저서 <맹신자들>이 번역되어 출간된 것과도 무관치 않다.  종교를 인식하는 그들의 시각이 자못 궁금하다. 

 

 

 

 

일전에 현각스님의 저서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읽었었다.  어쩌면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도 현각스님의 추천사를 읽게 된 것과 그분과의 미약한 인연이 나의 마음을 동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을 다녀간 많은 외국인들이 가장 안타까워 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와 전통이 점차 사라져간다는 점이다.  그들의 공통된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사는 우리만 모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라면 서정윤 시인의 시 <홀로서기>에 대한 추억과 아련한 향수가 있을 것이다.  암울했던 시대상황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던 시인의 감성은 그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의 가슴을 적셨다.  이제는 시인도 많이 늙었겠지만 그때의 추억은 어제의 일처럼 또렷하다.  시인의 산문집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이 가을과 닮아있지 않을까? 

 

 

  

잡지 보그의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는 저자의 이력과 책의 제목은 일견 불협화음처럼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시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삶이 바쁘고 고단할수록 시의 행간에 펼쳐진 무한의 여백에서 한껏 자유를 누려보고 싶다는 소망은 깊어만 간다.  내게 허락된 이 짧은 사색의 계절은 저자의 가난한 사치에 어서 빨리 동참하라고 부추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지음 / 달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명인의 지난 시절을 제멋대로 상상하고 마치 그게 사실인 양 믿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연예인의 경우가 그렇고, 정치인도 그렇고...  물론 작가라고 예외일 리가 없다.  그런 상상이 오래도록 지속되면 자신은 그게 사실이라고 굳게 믿곤 한다.  이러한 주관적 추리, 또는 허무맹랑한 상상은 막을 방법도 없고, 당사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어느 날 자신의 생각과는 완전 딴판인 사실과 직면할 때 그 당혹스러움이란...  

은희경 작가가 그런 경우이다.
소설로 데뷔하여 줄곧 소설만 써왔던 작가의 이름이 독자들 뇌리에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도 족히 15년 이상은 되었음직한데 그녀의 사생활이 공개된 것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언젠가 어떤 수필집에서 읽었던 <아버지의 추억>과 동네 병원의 대기실에 비치된 잡지에서 우연히 읽었던 인터뷰 기사가 전부였으니 작가의 사생활에 대한 궁금증은 수많은 독자의 상상으로 변질되었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어쩌면 작가가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할 것인가 아니면 철저히 숨길 것인가 하는 문제는 건물 3층의 높이만큼이나 애매한 것인지도 모른다.  1층으로 내려가고자 할 때 1층에 멈춰져 있는 엘리베이터를 보며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것인가 하는 고민처럼 말이다.

  은희경의 소설에 대한 평론 중 2002년 작고한 문학평론가 이성욱의 글은 인간 은희경이 아닌 소설가 은희경의 평으로 적당하다.  2001년 발표한 장편 『마이너리그』에 붙은 해설을 요약하면 이렇다.

‘날씬한 여검객을 연상시키는 은희경의 냉소적인 시선은 얼핏 농담이나 유연한 풋워크처럼 보이지만 시종 급소를 찍어 누른다. 급소는 인물들의 허위의식, 자기합리화, 통념, 편안함에의 들척지근한 욕망 같은 것들이다. 그의 검은 찌르되 깊게 찌르지는 않는다. 핏방울이 돋아나는 정도. 여기저기 돋아난 핏방울이 만드는 문양은 허위의식의 지도 같은 것이다. 지도의 독법을 익힐 때쯤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바로 우리의 허위의식의 지도이기에.’

소설가 은희경은 빈틈이 없고, 다소 냉소적이며 시니컬하다.  그런 모습으로만 본다면 그녀는 사회에 대한 저항처럼 이혼을 한두 번쯤 하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제물로 바칠 수도 있겠다는 결심을 굳힌 여전사의 모습이어야 옳았다.  언제든 전투모드로 전환할 수 있도록 날카로운 손톱을 숨긴 채 말이다.  그러나 두 아이의 어머니로, "시사저널"의 기자인 남편과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산다는 사실을 접한 독자들은 알 수 없는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상상이 무참히 짓밟힌 듯한 허무감.

이 책은 <소년을 위로해줘>를 연재하면서 짧게짧게 남긴 메모나 트윗 글을 엮어서 만든 책이다.  인터넷 연재하며 팬들과 댓글 놀이 하며 나눴던 얘기, 뒤늦게 트위터의 매력에 홀딱 빠져 거기서 주고받았던 길지 않은 말들, 장편을 탈고한 뒤 나른한 몸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적은 글 등 대부분 서울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시작해 경기 일산의 작업실, 강원 원주 토지문학관, 미국 시애틀을 전전하며 쓴 것들이라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은희경이 영혼을 자유롭게 놀렸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긴 시간 창작의 산고에 시달리는 소설가의 마음을 슬쩍 엿볼 수 있는 경험 또한 재미난 덤이다.

"오래전 썼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화려한 비탄이라도 남지만 이루어진 사랑은 남루한 일상을 남길 뿐이라고.  나,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여전히 간절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여전히 새들은 노래하고 빛난다는 걸 안다.  <The End of the World>란 그런 것."  (P.289)

문득 '사랑'이 간절해질 때면, 우리는 지나온 세월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맘 먹곤 한다.
소설가는 소설을 씀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듯, 독자는 작가가 남긴 작품으로 행복을 맛본다.  작가와 독자의 간극이 너무나 멀어 설혹 닿을 수 없는 거리라 하더라도 작품을 잉태하는 산고의 고통까지 독자가 공감할 필요가 있을까?  작가는 조금은 신비로운 채, 독자는 작가의 사생활을 오직 자신의 상상의 세계에만 가둬두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은희경의 작품은 그런 면에서 실패작이다.  소설가는 소설가로 남았을 때 가장 찬란하다.  비록 그것이 내가 꾸며낸 상상이라고 할지라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10-05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8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