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고양이 - 과학의 아포리즘이 세계를 바꾸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박규호 옮김 / 들녘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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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말이 있다.
"자전거 탈 줄 알지?  자전거 타는 걸 처음 배울 때 어땠니?  조금 두렵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그랬지?  수학 문제를 잘 푸는 것은 자전거 타는 요령을 배우는 것과 같아.  먼저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이 어떻게 그리 할 수 있는지 잘 보고 직접 타봐야 하지.  무엇보다 눈으로 요령을 익혔다면 직접 타봐야 한다는 것이 자전거를 잘 탈 수 있는 첫걸음이듯, 수학도 그 개념과 문제 푸는 요령을 눈으로 확인했으면 직접 풀어봐야 한다는 거야.  생각해 봐.  자전거 타는 사람을 10년 동안 지켜봤다고 본인이 잘 탈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똑 같아.  네가 수학 문제 푸는 것을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10여년을 지켜봤다고 잘 풀 수 있는 건 아니야.  처음 자전거를 배우자면 넘어지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때로는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그걸 두려워한다면 자전거는 영영 타지 못하지.  수학도 그래.  실수해도 괜찮아.  자신이 못푼다고 번번이 다른 사람에게 묻거나 의지하지 말고 직접 풀어봐.  너 자신을 믿어.  그러면 수학도 별 게 아니란 걸 알게 돼.  일단 문제가 풀리기 시작하면 자전거를 처음 탈 때처럼 상쾌한 기분을 맛볼 수 있어."

수학을 싫어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이 겪었던 아주 작은 실수의 경험과 그로 인한 자존감의 상실이 수학이라는 과목 자체를 싫어하는 것으로 확장되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으레 그렇듯 자신은 원래 수학을 잘 못한다고만 믿는 데 문제가 있다.
비단 이것이 아이들의 공부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우리네 삶에서도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때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 잘 하지 못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요즘 물리학과 양자역학에 푹 빠져 있다.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잠시의 짬을 틈타 책을 읽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마 늦게 배운 도둑질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과학의 아포리즘이 세계를 바꾸다>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케플러의 난제(Kepler's Problem : 대중에게 과학을 소개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의미의 경구)를 일시에 해소한다.  과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지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무지하다고 믿지만 과학의 경우에는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과학자에게 책임을 묻곤 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을 통해서 대중을 인식시키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한 물음이나 성찰에 대한 명제들을 그것을 최초로 던진 인물과 연결시켜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처음 생각해낸 과학자들 곁으로 보다 가까이 다가갈 때 과학적 지식을 쉽게 이해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의 구성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양자역학의 발전을 다룬 원자의 무대 위에서, 맥스웰의 악령 등을 다룬 고전적 수수께끼들, 만델브로트의 세트 및 오일러의 수 등이 등장하는 무한과의 만남, 다윈 핀치, 멘델의 법칙를 비롯한 생명의 복잡한 규칙, 코흐의 가설 및 밀그램의 실험 등의 인간의 본성, 프로이트의 모욕, 베이컨의 격언 등이 나오는 과학사의 흥미로운 사실들의 총 6개 챕터로 현대 과학의 흐름을 과학자의 일화와 함께 저자의 맛깔스런 비유로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자연의 책은 수학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설파한 바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하찮게 보아 넘겼던 수많은 자연 현상을 수학이라는 아름다운 언어를 알지 못하였기에 그 깊은 감동을 미처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밤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과 그 무한한 시간을 바라보며 가슴 벅찬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슈뢰딩거의 아름다운 방정식과 뉴턴의 상상력을 오늘 수학이라는 아름다운 언어로 기록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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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보그>의 에디터로 10년째 일하고 있는 저자의 인생 나들이. 

 "나는 삶이 여행처럼 느껴졌고, 내가 다니는 길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호기심이 차올랐다.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 길을 묻고,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나는 '타인의 도움과 친절'로 살아간다는 관계의 이치를 체득했다." 고 저자는 말한다. 

도시인 그녀가 말하는 도시의 재발견, 어쩌면 평생을 도시인으로 살아야 하는 대부분의 독자에게 그녀는 도시에서의 생존 전략을 들려줄지 모른다. 

 

 

 

우연히 들른 산속의 작은 사찰에서 고요 속에 듣던 풍경소리를 기억하는가?  종교가 달라도 한번쯤 겪었음직한 고즈넉한 경험. 

작가는 번잡한 도시인에게 사찰의 진한 솔내음을 전해주려나 보다.  그 속에서 과거로 향하듯 자신의 내면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통의 편지를 읽는 것으로 그 사람의 온 생애를 느낄 때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자라며 굳어지는 세계관과 인생관, 삶의 자세에 이르기까지 편지글은 그 사람의 내면을 속속들이 보여주기도 한다.  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도 이 시대의 문인과 예인의 편지가 궁금했나 보다. 작가 박완서, 유치환, 노천명, 이광수, 서정주, 전혜린을 비롯해 백남준, 장영주 등 예술가들의 육필 편지 49편과 그에 얽힌 배경지식과 뒷이야기들은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처럼 설레이게 한다. 

 

 

 

나이 마흔!   

삶에서 이보다 더 애매한 시절이 있을까?  전력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기도, 나이를 거슬러 돌아갈 수도 없는 나이.  작가도 그랬나보다. 문화일보 편집기자 유인창의 독서 에세이는 책 속에서 자신의 지나온 삶을 발견하고, 현재와 미래를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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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불멸의 편지
루드비히 판 베토벤 지음, 김주영 옮김 / 예담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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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 강렬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 이 책의 제목만 보고 덥석 손에 넣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책의 반이상을 읽으면서도 흥미보다는 그저 관성에 의해 책장만 무심히 넘겨지고 있었다.  편지에서 베토벤 본인이 밝히듯, 그는 서신 왕래에 있어 부지런하지도 않았고, 글을 쓰는 것을 즐기지도 않았던 듯하다.  궁정합창단의 음악감독에까지 올랐던 할아버지와 궁정합창단의 테너 가수였던 아버지 등 어려서부터 음악과 친숙한 분위기에서 자랐지만 할아버지의 사후 알콜 의존증 증세를 보였던 아버지를 대신하여 일찍부터 가정을 부양해야 했던 불운한 삶은 그의 평생을 쫓아다녔던 듯하다.  그런 탓인지 음악 외에는 한눈을 팔 시간도 관심을 두지도 않았던 듯 보인다.

그러나 1,000 여 곡이 넘는 작품을 작곡한 바흐나 600 여 곡이 넘는 작품을 남긴 모차르트에 비해 베토벤의 작품 수는 방대하지 않지만 그의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음악사의 커다란 유산으로 남겨지기에 충분하며, 베토벤 사후의 음악은 모두 베토벤의 아류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음 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던 악성 베토벤의 사적인 편지들은 위대한 예술가의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나는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다.  뜨거운 피는 나의 분노이고, 나의 비행은 젊음이다.  나쁜 건 내가 아니다.  진짜로 나쁘지 않다.  가끔 거친 분노를 일으키지만 그건 내 마음의 호소이지, 내 마음은 선하다.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자유를 사랑하고 왕 앞에서조차 절대로 진실을 속이지 않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P.24)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평생 동안 여러 명의 여자를 사귀었고, 괴테와 같은 당대의 유명 예술가들과 교류가 있었지만 그의 삶은 그닥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30세가 되던 해 귓병을 앓기 시작했던 베토벤은 귓병 치료 차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t)로 요양을 떠났지만 차도를 보이지 않는 병세로 인해 유서를 작성하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었다.

"내 안에 있는 것을 모두 표현해낼 때까진 세상을 떠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 비참한, 정말로 비참안 삶을 참아내고 있다.  내 육체는 아주 사소한 변화에도 나를 최상의 상태에서 최악의 상태로 전락시킬 만큼 예민하다.  인내.  그것을 내 지침으로 삼아야 했다.  그렇게 참아왔고, 운명의 여신이 내 생명의 밧줄을 끊을 때까지 저항의지를 간직하길 바라왔다.  스물여덟 살에 이미 모든 것을 달관한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예술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P.68)

1827년 3월 26일 베토벤은 천둥번개가 치는 가운데 간경변증으로 삶을 마감했다.
사흘 뒤 3월 29일에 치러진 장레식에는 조문객이 2만여 명이나 참석했으며,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극작가 프란츠 그랄파르처는 추도사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베토벤은 사랑이 넘치는 자신의 본성으로 세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하고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는 혼자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제2의 '자기'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나 생애의 끝까지 그의 가슴은 만인을 향해 뜨겁게 고동쳤습니다..." (P.238)

연꽃이 가장 더러운 곳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듯, 가장 절망적인 삶 속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이 탄생한다는 것은 삶의 아이러니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한줄기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거장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 진실을 밝히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예술작품은 그 자체로 빛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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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시키는 일 - 꿈과 행복을 완성시켜주는 마음의 명령 가슴이 시키는 일 1
김이율 지음 / 판테온하우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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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에 밀어닥친 강진으로 이웃나라 일본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로 변해버렸다.
속보로 전해지는 그 참담한 현실을 보며 자연의 위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실감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의 역사적 악연을 떠나, 가족을 잃은 일본 국민의 애통한 마음이 내 가슴 한켠을 저리게 했다.  더불어 드는 생각은 '저렇게 허망하게 간 사람들은 그동안 행복했을까? 혹시 행복하지 못했다면 그리 속절없이 갈 걸 뭐하러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나?' 하는 안타까움이었다.  거대한 자연의 위력 앞에 일순간 사라질지언정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지 못할 그 무엇이 있었던 걸까?

주변을 둘러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만약에'라는 가능성에 매달려서 제 나름대로 고통과 상처를 안은 채 하루하루를 아귀다툼하듯 살아간다.
그 평범한 일상에 길들여진 모습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가도 이런 책을 읽으면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곤 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일상에 매몰된 나 자신을 재차 확인하게 되고, 그 수렁에서 과감히 떨쳐 일어나 무지개를 찾아 떠나지 못하는 나의 용기없음에 실망하게 된다.
'남들은 잘들 하는데 나는...'하는 자괴감이 나른한 봄날의 오후처럼 나를 무력하게 한다.

"지금이 아니면 안되기 때문이에요.  언젠가는 해야지 수십 번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만 늘 그 자리에요.  그리고 지금 제 가슴이 그 일을 하라고 해요.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또 제자리가 될 것 같아요." (P.27)
남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아나운서의 자리를 버리고 자신만의 길을 선택한 전 KBS 아나운서 손미나.  저자는 그녀를 진짜 인생을 찾기 위해 자신만의 선택과 용기를 내린 자유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또 다른 선택에는 용기가 필요하듯 변화된 삶 속에서도 또 다른 일상이 계속됨을 사람들은 까맣게 잊는다.  여행지에 도착한 순간 또 다른 일상이 시작되고 있음을 인식하듯이.  그 새로운 일상을 동경하는 시간은 결정을 내리는 그 순간 이후에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신세계로의 동경이 끝나는 순간 자신에게 남겨진 것은 지독한 인내심 뿐임을 사람들은 간혹 계산에 넣지 않는다.

이 책은 유명 카피라이터인 저자가 차갑게 식은 독자 개개인의 열정을 되살리기 위해 쓴 책인 듯싶다.  미래가 보장된 의사의 길을 버리고, 신부가 되어 아프리카 오지 마을 톤즈로 떠난 '한국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아나운서라는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마음의 명령을 따라 스페인으로 떠난 손미나 前 KBS 아나운서, 휘황찬란하고 볼거리가 많은 유럽 대신 질병과 가난에 시달리는 아프리카로 가장 먼저 달려간 '바람의 딸' 한비야 씨 등등의 여러 롤 모델의 짤막한 에피소드를 제시하며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고 있다.  '지금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 '지금, 당장 시작하라'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 총 3개의 챕터로 나뉘어있다.

이 책을 읽고 "나도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몇 분쯤은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기획의도를 부정하거나 반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의 일에 회의감도 들고, 막상 내밀지 못할 사직서를 쓰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렸고 그 이후의 고난과 역경도 스스로 책임져야 하겠지만, 내 선택으로 촉발될 내 주변 사람들의 염려와 희생은 또 어찌할 것인가.  이렇게 말한다면 나 스스로 삶의 파고에 도전하지 못하는 비겁자임을 자인하는 꼴이고, 볼품없는 내 모습을 애써 포장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하면서 평생을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삶이 있으랴.  그러나 용기있는 선택에는 반드시 희생과 인내가 뒤따르는 법.  결코 가벼이 결정할 일은 아니다.

나는 내가 선택한 공간의 작은 틈바구니에 오늘도 행복의 씨앗을 심는다.
그리고 그 앞에 큼지막한 푯말을 붙인다.  용.기.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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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치더니 언제 그랬냐는듯 포근하다.
블로그에서도 뜸하던 사람들이 한 분 두 분 다시 돌아오고, 보지 못했던 이름들도 속속 올라오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봄은 꿈을 꾸는 계절이요, 알 수 없는 희망에 들뜨게 하는 계절인가 보다.  창밖으로는 노란 개나리를 닮은 유치원생들이 줄을 지어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얼마전 한 블로거님의 글을 읽으며 문득 옛추억이 떠올랐었다.
모르긴 몰라도 소설가를 꿈꾸는 분일텐데 자신이 쓴 소설을 블로그에 올리고 있었다.
나는 그저 독자의 입장에서 읽었던 탓에 뭐라 평을 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분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긴 글을 쓰는 동안에는 진정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
 
아마 내가 대입 수능을 마친 고등학교 졸업 무렵이었을 것이다.
부모님과 떨어져 형들과 자취를 하고 있던 나는 기차 여행이 잦은 편이었다.
왜 그런 결심이 섰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어느날 문득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낯 모르는 사람들과 서먹한 얼굴로 서너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낸다는 것도 지루하고, 멍하니 창밖의 풍경에만 시선을 두는 것도 참으로 따분한 일이었나 보다.  무엇보다 입시에서 벗어난 홀가분한 느낌이 나를 무언가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 수집’은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한동안 지속되었다.
나는 기차를 타기 전에 항상 작은 메모 수첩과 연필을 챙겼고, ’오늘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하는 기대감으로 설레었다.
기차에 오르면 옆좌석에 앉은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낯선 사람의 인사에 한동안 의아해 하다가 궁금해서 묻곤 했었다.
"저를 아세요?" 하고.
그때마다 나는 동행하게 되어 반갑다며 나의 신분을 밝히고는 가슴 주머니에 고이 지참했던 수첩과 연필을 꺼내 들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옆좌석에 우연히 앉게된 동행인이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청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사람들이 다들 순진했던지, 아니면 내 얼굴이 선량해 보였던 탓인지 싫다 않고 이야기 보따리를 선선히 풀어나갔다.
그 중 사오십대의 중년층은 내게 빼놓을 수 없는 고객(?)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하곤 했다.  
"내 얘기를 소설로 엮으면 모르긴 몰라도 한 트럭으로도 부족할거야."

나는 그들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깨알같이 수첩에 옮겨 적었다.
간혹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목적지를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얼마나 미안하고 죄송했는지...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단편소설로 옮겨 우편으로 보내주겠노라고 하면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주소를 손수 적어주며 꼭 부쳐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때로는 전화번호를 일러주며 자신의 집에 놀러오라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수첩에 적힌 이야기를 토대로 어떻게 글을 꾸밀까 하는 생각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이왕이면 그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내 자신의 역량으로 최대한 빛나게 해주고 싶었다.  나 스스로도 그분들의 삶을 같이 사는 느낌이었다.
한 작품이 완성되면 낡은 수동 타자기에 하얀 종이를 끼우고 혹시 오타라도 나지 않을까 조심조심 타이핑을 쳤다.  그렇게 정성을 들인 원고를 곱게 접어 편지봉투에 넣는 날 나는 무척이나 행복했었다.

여행 횟수에 비례하여 내가 모은 이야기와 주소도 하나 둘 늘어만 갔다. 
나의 ’이야기 수집’은 내가 군에 입대하면서 끝이 났다.
이제는 연락도 끊겨 영영 뵐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지만, 가끔씩 그들이 그리워지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그때 들었던 이야기 한토막을 들려주곤 한다.
나도 이제 ’이야기 수집가’가 아닌 ’이야기 전달자’로 누군가에게 ’그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남보다 튀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1등만 기억하는 치열한 경쟁사회.
내가 들었던 이야기들은 봄날에 피어나는 이름 모를 야생화처럼 튀지도, 별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 편지를 받았던 사람들은 왜 그렇게 기뻐했을까?
특별하지 않은 자신의 삶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던 것일까?  
밋밋하고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이야기가 하얀 종이 위에 활자로 살아난 모습을 보면 누군들 감동하지 않으랴.
튀지 않고, 기괴하지도 않은 그들의 잔잔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몇번의 이사로 그 이야기들은 대부분 기록에서 사라졌지만 내 가슴에는 여전히 진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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