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얗게 눈이 내렸다. 
늘 그렇듯 눈이 오는 날이면 사람들은 어린애처럼 감상적인 모습으로 변한다.
직장 동료들은 대학 시절 내가 쓴 낙서장을 들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그리고 이 시에 이르러서는 다들 한마디씩 한다.  내가 조숙(?)했었나 보다고.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대학 2학년 무렵인 듯한데 나는 왜 이 글을 낙서처럼 적었을까?
그나마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감성이 살아있었나 보다.  글에 리듬이 살아있다.
비록 내용은 유치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그때의 리듬을 찾을 길이 없다. 

 나에게 하는 말

무례한 시련이 찾아와도
화내지 마세요.
미리 예정된 일이었는데
당신만 몰랐더군요.
’운명’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조금 편해질까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시련 뒤에는 감추어진
선물이 있다더군요.
시간의 빛에 하루쯤,
어쩌면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겠네요.
어둠의 고통을 그 빛에 쪼이면
마법처럼 선물이 보인답니다.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아요.
쉽게 가버릴 기쁨이라
달갑지 않은가요?
그래도 
슬픔보단 기쁨이 좋겠네요.
다들 그러니까요.

교만함은 천성이에요.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마세요.
겸손한 체 가장한들
의무로 기도한들
천성은 바뀌지 않아요.
어느 날 갑자기
눈물 뚝뚝 흘리며
제단 앞에 무릎을 꿇으면
그 순간에 바로
개벽하듯 달라지지 않을까요?

나를 알기 전의
행복은 소용없어요.
오히려
탐욕만 키울 뿐이죠.
봄이 오고 겨울이 오면
추위만 느끼겠지요?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행복에는 순서가 중요하죠.

사랑은 부족과 결핍의
합성어예요.
자선은 위선과 다르지 않죠.
반박은 사양할께요.
때가 되면 알아요.
더 높은 사랑이 있다구요?
그럴테지요.
하지만 나는 할 수 없으니
무슨 소용일까요?

내가 알아낸 것은
이것이 다예요.
좀 더 나이가 들면
내 글은 하얀 여백만 남지 않을까요?
지식은 사라지고
느낌만 남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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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속도를 늦추어라
에크낫 이스워런 지음, 박웅희 옮김 / 바움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머리 속으로만 알고 지내던 지식을 어느 날 갑자기, 마치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확연히 깨달을 때가 있다.  
좋은 책을 만나거나 누군가와 대화 도중에 듣게 된 우연한 말 한마디가 생명이 없이 묻혀 있던 지식을 한 귀절의 글, 또는 한마디의 말을 매개로 살아 숨쉬는 지식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시간과 대상의 절묘한 조화, 나와 언어의 알 수 없는 교감으로 가능한 것인데, 이른바 ’궁합이 맞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어쩌면 그 대상은 명저서나 명강사가 아니라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이 책은 내게 그런 대상이었다. 
늘 무엇엔가 쫓기는 듯 살아온 나는 온전히 한 곳에 머무를 수 없는 조급함,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허겁지겁 사는 것이 거의 습관으로 굳어졌었다.
이러한 습관은 나의 인간관계나 삶 전반에 있어 치명적인 악요소로 작용해 왔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음으로써 확실히 인지하게 되었다.  모든 면에서 속도전에 내몰리는 현대사회의 구조 속에서 어쩌면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그런 습관을 형성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어떤 피해를 입고, 어떤 장애를 경험하게 되는지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결국 ’바쁘다’는 사실에 대해 ’무엇때문에’ 또는 ’왜?’라는 질문은 현대사회의 틀 속에서 금기시되었고, 반박의 여지도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우리 사회는 중요하거나 하찮은 갖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더 빨리, 더 빠리, 더 빨리 가도록 압박합니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하루를 설계하고 정신을 집중해서 지나친 압력을 가하지 않는 느리고 고른 속도로 우리 일을 행함으로써 혜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속도를 높이라고 요구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 우리는 되도록 빨리 평소의 침착하고 신중한 속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P.78)

저자는 이 책에서 삶의 속도를 늦추는 방법, 더 중요한 일을 할 시간을 확보하는 방법, 현재에 사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
인도에서 태어나 미국에  ’블루마운틴 명상센터’를 설립했던 저자의 생각은 인도의 문화와 미국의 문화를 서로 비교하고 어느 것이 더 좋다는 단순 평가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컴퓨터나 그밖의 현대적 이기(利器)를 사용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비심, 친절, 호의, 용서 등이야말로 진정한 생활필수품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인간 존재로 사는 데 필수적인 것은 이런 미덕들입니다.  그리고 이 분야야말로 우리 시대가 크게 뒤쳐져 있는 부분입니다." (P.208)

저자가 제안하는 효율적인 삶을 위한 8단계 프로그램을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1.늦추기  
   하루를 일찍 시작할 것, 자신이 빨라지려는 것이 느껴질 때마다 만트람을 외울 것, TV 시청 시간을 줄이고 인간관계를 함양할 것, 느림을 나태와 혼동하지 말 것.
2.주의 집중 
   한 번에 둘 이상의 일을 하지 말 것. 어떤 활동이 사소해 보이더라도 마음을 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
3.감각 기르기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견해나 취향에서 벗어날 것.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히지 말고 몸에 좋은 먹거리를 선택하 듯 마음을 위해 읽고 보는 것을 신중하게 선택할 것.
4.남을 먼저 생각하기
   자기만의 욕구, 자기만의 바람, 자기만의 계획, 자기만의 생각에 골몰하지 말 것.서로 경쟁하지 말고 서로를 완성하는 길을 찾을 것.
5.영적 교제
   함께 있으면 자신이 향상되는 사람들과 항상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 것.
6.영적 독서
  
매일 30분 정도 할애해 성구(聖句)나 종교에 상관없이 위대한 신비가들의 글을 읽을 것.
7.만트람 외기
  
만트람, 즉 ’성스러운 이름’(예를 들면 ’라마 라마’나 ’아베 마리아’ 등)을 조용히 반복하여 외울 것.
8.명상
  
매일 아침 되도록 이른 시간에 30분 동안 명상할 것.

생애분석 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은 마음과 마음 사이의 거친 반목과 오해 그리고 공격의 근원을 그가 고안한 <그림자>라는 개념을 통해서 이해하며 설명하고 있다. 
그림자는 나의 어두운 면이다. 그래서 의식화 하기 어렵다. 그러나 엄연히 나의 의식 기저에
존재하며, 나를 사로잡는다. 나를 사로잡는 방식은 바로 상대방에 대한 그림자의 투사이다.
이것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이처럼 잘못된 습관을 바로잡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긴 시간을 두고 본다면 그림자를 표면에 내놓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특수한 상황에서 그림자는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친구를 시험해 보기를 원한다면 그와 함께 만취하도록 술을 마셔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한 마리의 짐승을 보게 될 것입니다."
  (칼 구스타프 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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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억을 잊고
딱 하루만 살아봤으면 좋겠다
저 순백의 눈발처럼
모든 집착을 버리고
그렇게 무심했으면 좋겠다

동짓달 시계 위로
눈은 내리는데...
12월의 하늘은
12월의 눈물
더하고 뺄 것도 없는
12월의 한숨

한발 다가서면
한발 물러서는
영원의 시간 속에
눈발처럼 하루가 부서진다
그 풍경 위에  또 한해(年)가 쌓일 때면

갓 태어난 아이처럼
침묵으로 빚은 그리움이
눈(雪)처럼 쌓였으면 좋겠다
숲으로 이어진
하얀 여백의 길을
처음인 양 자박자박 걸어봤으면 좋겠다
그 길을 따라 아스라히
시간의 시선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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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서 있게 하는 것은 다리가 아닌 영혼입니다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지음, 박찬이 옮김 / 열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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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죽음에 가까이 갔던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특징이 있다.
순탄한 삶에서는 결코 깨닫지 못할 자각이 그것이다.
혹자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깟 깨달음이 밥을 주는 것도 아닌데 무에 그리 대단하냐고.  그러나 하나의 깨달음은 당장의 끼니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죽음 직전에 회한 하나는 덜어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살아가면서의 실수는 생명이 지속되는 한 바로잡을 수 있지만 생을 마감하는 순간의 후회는 영원 속에 묻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경험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나도 초등학교 1학년 무렵에 죽음을 경험했고, 구사일생으로 그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경험이 나에게,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고 어떤 쓸모가 있는지 한동안 알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 선다는 것, 첫키스의 떨림처럼 강렬했던 그 경험은 온 세포에 화인을 찍어 놓은 듯 실체도 없는 기억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었다.
그러한 경험은 언제, 몇 살 때에 겪었는가와는 무관하게 어떤 깨달음(또는 분위기)을 던져주게 마련이고, 동일한 체험자들만이 감지할 수 있는 어떤 자력장에 이끌리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열네 살에 암 판정을 받고 10년간의 투병을 거치는 동안 다리와 폐, 간 일부까지 절단해야 했던 시간을 바탕으로 그가 느끼고 체험한 진실, 유머, 따스함, 생의 깨달음 등을 쓰고 있다.  1973년 스페인 출생인 저자는 현재 배우이자 영화감독으로서, 그리고 라디오 프로그램 기고자로서 <카탈루냐>신문의 칼럼을 쓰고 있다 한다.  저자는 자신의 투병생활에서 얻은 교훈을 통하여 이 세상이 '노란 세상'이며, 우리 개개인은 누군가의 '노랑'이며 나만의 '노랑'을 발견하는 방법에 대해 이 책에 기록하고 있다.
자신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자신을 믿는 방법, 그리고 저자가 발견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은 그 설계도와 같은 것이며, 자칭 공업기술자라 말하는 저자는 그 설계도의 밑그림을 그린 설계자이다.

"행복과 암, 일반적으로 이 두 단어는 공존할 수 없다.  암은 내게서 한쪽다리, 한쪽 폐, 일부의 간을 빼앗아갔지만 한편으로는 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결코 발견하지 못했을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다.  암이 내게 알려준 것이 무엇일까? 차례대로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암은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해주었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게 해주었다.  또한 나의 한계를 알게 해주었고, 무엇보다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었다."  (P.19)

저자가 말하는 '노란 세상'으로 바꾸기 위한 발견은 스물세 가지 목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병실에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로부터 얻은 교훈들이 바로 그것인데 '잃어버린다는 것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에서부터 '가장 깊숙이 숨겨진 내면을 알아야 그 본모습이 보인다', '행복을 위한 일곱 가지 조언',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음을 아는 방법'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들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다.  핵심을 알고 있을 때 글이나 말은 길지 않아도 결코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듣는 사람도 정확한 의미를 전달받는다.

스페인어로 사랑(amor), 우정(amistad), 노랑(amarillo)은 모두 첫머리가 'am'으로 시작한다.
저자가 정작 말하고 싶었던 노랑은 그렇게 발견되었다. 

"당신의 삶에서 특별한 사람들을 노랑이라고 한다.  노랑은 우정과 사랑 사이에 존재한다.  노랑과는 굳이 만나거나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도 된다.  노랑과 교제하는 방법은 스킨십, 애정 표현, 포옹 등이다.  배우자 외에는 인간관계에서 거의 오가지 않던 애정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다."  (P.156)

저자가 말하는 노랑은 자신을 반영하는 어떤 대상, 그 대상은 동성일 필요도 없고 얼마나 오래 사귀었는가도 중요하지 않지만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일생에서 만날 수 있는 노랑은 스물세 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의 배우자는 아니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대상인 '노랑'.  저자가 꿈꾸는 노란 세상은 온 인류가 다들 누군가의 '노랑'이 되는 그런 세상일 것이다.
책을 덮으며 질문 하나를 가슴에 담는다.
 "당신의 '노랑'은 몇 명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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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 - '굶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월드비전 희망의 기록
최민석 지음, 유별남 사진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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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무리 갈고 닦아도 향상되지 않는 것이 있다.
슬픔에 대한 저항이 바로 그것인데, 나는 지금도 슬픈 영화를 보거나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보노라면 시도때도 없이 눈물을 찔끔거리게 된다.
가끔씩 이런 슬픔에 의연히 또는 담담하게 대처했으면 싶을 때가 있지만 마음으로만 그럴 뿐 나는 금세 분별력을 잃고 만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보지 못한 것도 아닌데, 마치 처음 알게 된 사실인 양 슬픔이 가슴 한가득 몰려왔다.
퇴근 후에 가르치는 아이들 얼굴이 오버랩되어 짠한 마음이 더했나 보다. 

이 책은 작가가 월드비전 홍보팀에서 근무했던 3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글이다.
월드비전 창립 60주년을 맞아 월드비전 사업장이 있는 전 대륙(아프리카, 중남미, 동유럽, 아시아)을 두 달에 한 번씩 직접 가서 취재하고, 사진을 찍어 온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학생 때 시집을 출판했다가 보기 좋게 망했던 경험이 있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었다던 작가는 자신의 냉소적인 문체로는 독자에게 그 감동을 생생히 전할 수 없을 것같아 출판을 고심했었나 보다.
그러나 작가도 서문에서 밝히듯이 결국 책은 발간되었고 그 과정에서 작가 자신도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지구촌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예전보다 말을 조심스럽게 하게 되었고, 사람에게 질문을 할 때 좀 더 고민하게 되었으며,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좀 더 배려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내 생활 속으로 하나둘씩 가져왔다.  점점 그들과 내가 하나가 되어감을 느꼈고, 그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되어감을 느꼈다." (P.13)

때로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원죄설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이 내민 도움의 손길을 우리는 몇 번이나 뿌리쳤던가.  단지 용기가 없다는 이유로, 혹은 내가 더 잘살게 되면 그때는 돕겠다는 둥 이러저러한 핑계로 그들의 간절한 눈길을 얼마나 외면했던가.  나는 이제 그런 핑계를 대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함도 아니요, 존경이나 칭찬을 기대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 양심을 억누르고 있던 돌덩이를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었을 뿐이다.  나의 작은 숙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조금 가벼워졌다.  그리고 몸도 마음도 좀 더 자유로워졌다.  아이들 때문에 시간에 쫓기고, 구속당하면서도 전보다 더 자유롭다는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눈에 보이는 학교를 짓고 보건소를 짓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이렇게 많은 힘을 쏟는 이유는, 진짜 희망은 보이는 곳이 아닌, 바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 밭에서 일궈낸 보이지 않는 배움과 고민의 시간은 결국 어떠한 사고나 자연재해도 앗아갈 수 없는 희망을 키워낸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P.131)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용기는 내 양심의 돌덩이를 걷어내는 일이다.
나는 그것을 경험으로 배웠다.  그리고 서로간의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끈끈한 유대감은 세상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한다.
한줌의 사랑을 줌으로써 한아름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면 분명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 터, 우리는 줌으로써 받는다고 했던 성 프란체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2010년의 말미에야 비로소 이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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