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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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작품을 평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는 더더욱 조심스럽다.
대개 이제 막 등단한 신인작가는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도 작품의 창의성이나 표현의 적확성, 또는 신선한 소재에 치중하게 되고, 부족한 자신의 경험을 메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전적 소설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과 연륜이 쌓여 대작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작가는 오직 창작열에 의지하여 외로운 사투를 벌여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어느 정도 돈과 명예를 얻게 되면 자신의 이름만 믿고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할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도 한다.  조금 편하게 작품활동을 하려는 것이다.  이런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작가는 세상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그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  작가는 작품을 위해 철저한 자기 절제와 금욕적인 삶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것을 지키지 못할 때 작가는 삼류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예술정신을 불태우는 작가는 그렇게 많지 않고, 독자의 입장에서 후대에 남을만한 그런 대작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한국문학의 거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황석영의 신작 '강남몽'을 읽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우리나라의 부의 상징이자 모든 물욕의 중심인 '강남'이라는 한정적 공간을 배경으로 해방 이후의 시대 흐름과 다양한 군상의 흥망성쇠를 담아내려 했던 작가의 의도는 여지없이 깨어지고 만다.  소설은 주제와 더불어 '재미'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많은 작품을 썼던 작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각각의 인물은 주제를 숨기고 작품 속에서 살아 움직이지 않으면 작품의 주제는 희석되게 마련이다.  주제를 전면에 드러내면 그것은 자칫 한낱 역사서로 전락할 위험에 빠진다.  그럼에도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이름만 바꾼 소설적 인물에 짊어 지운다.  작가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지 못한 주요 인물들은 로봇처럼 움직인다.  끔찍하다.  소설 속 인물에 동화되지 못한 독자는 얼마나 불행한가.

모두 다섯 개 장으로 이루어진 ’강남몽’을 각 장별로 나눠 살펴보면 그는 1장(백화점이 무너지다)에서 부동산 재벌인 김진의 첩이자 룸쌀롱 업주인 박선녀의 삶을 다루고 있다.  세상의 이목이나 체면을 무시하고 오직 돈만 향해 달려온 여자치고는 너무나 평범해서 독자는 맹물을 마시는듯 밋밋하게 느껴진다.   이어 2장(’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의 주인공 김진을 중심으로 한 생동하는 인물들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격변의 근 현대사를 주저리주저리 나열하여 지루하고 따분하다.  실리와 처신에 밝은 김진의 인물적 특색은 서사에 눌려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3장(길 가는 데 땅이 있다)은 부동산 업자 심남수를 위주로 전개되는데, 부동산 투기가 극성이던 당시의 상황을 작가는 치밀하게 그리지 못한다.  이상하리만치 이 장에서 작가는 스토리에 치중하고, 심남수라는 낭만적 인물을 구실로 두루뭉실 넘어간다.
이어 4장(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작가는 돌연 우리가 흔히 보았던 조폭의 이야기들을 흥미 위주로 다루고 있다.  현대의 긴박한 액션 영화를 낡은 무성영화로 보는 듯했다.  5장(여기 사람 있어요)에서는 백화점 점원인 임정아의 삶이 그려진다.  결국 백화점은 붕괴되고 죄 없는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등 그때의 상황이 무덤덤하게 그려지고 있다.

강남이라는 상징적 공간에 각 인물의 삶을 적절히 배치하고 그들 상호간의 연계성을 자연스레 묶는 것은 오로지 작가의 역량에 있었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은 그 인물들이 살아 움직일 때 가능하고, 그렇게 되었을 때 독자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인물은 서로 다르지만, 구별되지 않는 욕망의 스펙트럼을 서사에 담음으로써 작가는 소설을 소설답게 만드는 데 실패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이제 훨훨 타오르는 장작의 내음이 아닌, 옹색하기 그지없는 낙엽 태우는 냄새가 난다.  "토지"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도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고 박경리 작가에 비하면 황석영 작가는 얼마나 작고 초라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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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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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초부터 나는 아내와 함께 하는 쇼핑을 멀리했었다.
필요한 물건만 후다닥 사서 쫓기듯 그 자리를 뜨는 나의 성격과는 대조적으로 아내의 쇼핑 시간은 마냥 늘어져 기다리는 나를 늘 지치게 하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빨리 나가자고 몇 번이나 채근하는 나를 딱하다는듯 쳐다보다가도 어느새 별 필요도 없어 보이는 물건에 시선을 뺏기곤 했다.  마침내  내가 슬슬 부아가 치밀어 참지 못할 지경에 처할 즈음에서야 아내는 못 이기는 척 뭉그적뭉그적 따라 나서는 것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다시는 같이 나오지 않겠노라 다짐을 하면서도 지금껏 장롱면허를 갖고 다니는 아내를 생각하여 다시 쇼핑길에 따라 나서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남자들은 ’쓸모’를 따져 물건을 구입하지만, 여자들은 ’이야기’로 물건을 사는 듯했다.  하나의 물건을 손에 쥐고 그 물건이 놓인 장면을 상상하고, 그 물건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까지 하염없는 상상의 나래를 펴다가 옳다구나 싶으면 기어코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듯했다.  결국 여자들에게 쇼핑은 단순한 물건 구매가 아닌, 자신을 포함한 가족 모두의 가까운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며, 그 물건은 그들 사이에 놓인 작은 소품과 같은 것이다.
나는 아내를 보면서 그렇게 결론지었다.  여자들에게 쇼핑은 ’이야기’를 사는 것이라고.

최인호의 <인연>은 오래 전에 읽었던 피천득의 <인연>과는 또 다르다.
뭐랄까 조금 대중적이라고나 할까?   화려한 미사여구나 문학적 천재성이 돋보이는 그런 문장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의 글을 읽는다기보다 시간을 넘나들며 나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추억이란 묘한 것이어서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도, 어쩌면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도 술술 잘도 풀려 나온다.

"한 해도 저무는 세모의 저녁, 지금 이 순간에도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서 한 벌의 헌 옷도, 한 닢의 동정도 베풀지 못하면서 내가 감히 말씀드릴 것은, 여러분 가슴속에 자라고 있는 행복의 꿈나무를 발견하고 그 나무에 매달린 향기로운 과일을 따보라는 것이다." (P.39)

작가는 세월의 잔물결따라 골과 마루를 같이 넘어온 사람들과 그때의 빛바랜 잔상을 쓰고 있다.  커다란 풍파없이 살아온 것도 얼마나 감사할 일이겠는가.
자신의 곁을 지키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인생의 황혼에서 누군가에게 감사할 일이 많아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인가 보다.  겸손하고, 더 겸손하라는...

"가끔 한밤중 잠에서 깨어 멀건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아버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전히 내 손바닥에 남아 있는 체온에서 나는 두 분의 따뜻한 음성을 듣는다.  나는 안다.  그분들은 이미 세상에 안 계시지만 여전히 세상에 머물러 계심을.  내 손바닥이 기억하는 그 모든 시절의 추억들로 나는 안다." (P.275)

나는 어쩌면 '쓸모'라는 판단 기준에 따라 사람도, 물건도 쇼핑하듯 긁어 모았는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없으면 감동도 없는 법.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인연은 그렇게 만들 일이다.  아내는  어쨌든 성마름 대신 여유를, 다른 살이들을 탓하기 전에 나의 내적 성찰을 쇼핑을 통해 가르쳐주려 했었나 보다.  이야기가 없는 인연은 매마른 대지에 부는 한줌 먼지에 지나지 않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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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지난 주에는 네가 아데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온 가족을 가슴 철렁하게 만들었지.
너는 두 번이나 토하고, 결국 학교도 하루를 결석하며 이틀이나 앓았더구나.
아픈 너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곁에서 지켜주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엄마에 비하면 나는 마음으로만 걱정했을 뿐 달리 어찌할 방도가 없었단다.
전화를 하면 한달음에 달려와 반가운 목소리를 전해주던 네가 아파서 누워있다는 말을 엄마로부터 들었을 때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아들아

어제 아침에는 너와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고 아파트 공터에서 축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  깔깔거리며 웃는 너의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단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가 멀지 않았구나.  내가 어렸을 때는 크리스마스는 그저 그들만의 작은 기념일이었는데 요즘은 연말과 더불어 한껏 들뜬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겠더구나.
오후에 너와 함께 강남역 근처의 서점을 방문했을 때, 거리는 온통 성탄절 상징물들로 가득하여 너는 수시로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지.
네게 슈톨렌이나 파네토네를 사주고 싶었지만 너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더구나.

아들아

추억이란 언제나 사소한 것임을 네가 알았으면 좋겠구나.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여행지에서 네가 했던 말과 너의 표정, 너의 작은 몸짓이 기억에 남을 뿐이란다.
어쩌면 어떤 장소, 어떤 시간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이 추억이지만 유독 작고 사소한 것만 기억에 남게 되는 것인지 그 까닭을 나도 모르겠구나.
아마도 미래와 연결된 그리움의 통로는 아주 작아서 커다란 것은 현재에 머물고 미래에는 아주 작은 것들만 모이는 것은 아닐까?

아들아

나도 네 엄마와 통화할 적에 자주 지적을 받는 것이 있단다.
통화를 하면서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이지.  몇 차례 지적을 받은 듯한데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구나.  시간이 지나면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늘 나중에 기억되지도 않을 신기루에만 관심을 쏟고 있단다.  아마도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겠지.

아들아

바로 지금 어떤 것이 미래로 연결된 그리움의 통로를 통과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에는 작고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고르렴.
지금 비록 커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오래지 않아 기억에서 사라진다면 그것은 결코 소중한 것이 아니란다.  누군가의 말을 진심을 다해 들어주는 것, 순간순간의 작은 표정들, 그리고 마음으로 전해 오는 따뜻함은 네가 어른이 되어서도 언제든 기억되고, 소중한 추억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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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윈터홀릭 두 번째 이야기 

윤창호 글.사진 / 시공사 / 2010년 11월 

다시 또 겨울. 어렸을 적 처음으로 설경을 보았을 때의 경이로운 잔상효과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설국의 나라, 그 환상의 장소로 나를 데려간다.  <닥터 지바고>의 바리키노씬처럼 잊혀지지 않는 그리움의 장면들. 

 

 

 

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 

최일남 지음, 송영방 그림 / 문학의문학 / 2010년 11월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되고, 꽃 피워야 할 꽃은 반드시 피어나듯 어울렁 더울렁 살아가나 봅니다.  한 살 한 살 나이 들수록 사람의 아들은 자연을 닮아, 한줌의 흙으로 흩어지는 그날까지 그렇게 오래도록. 

 

 

 

  나는 아버지입니다 

딕 호이트.던 예거 지음, 정회성 옮김 / 황금물고기 / 2010년 11월  

세상이 두려울 때는 "아버지"를 찾는다. 삶이 힘들 때는 또 "아버지'를 찾는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세상릉 배우고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반성-되돌아 보고 나를 찾다 

김용택.박완서.이순원 외 지음 / 더숲 / 2010년 11월  

한 해의 마지막 달에 습관처럼 또 반성을 한다.  그래서 사람이다.  반성하는 내용도 그 방식도 작년과 비슷하건만 나는 명년 이맘때 똑같은 반성을 아니할 것이라 장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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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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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모르긴 몰라도 머리와 팔의 거리를 좁히는 일일 게다.
나의 글은 언제나 아귀가 맞지 않아 울퉁불퉁 거칠기 짝이 없어, 읽을 때마다 입 안에 흙모래가 씹히는듯 서걱거린다.
내가 작가의 글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작가 자신의 유년기와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성장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은 후였다.
그 전에도 작가의 작품을 더러 읽었었지만 작가의 글에서는 잘 벼린 칼의 시퍼런 날카로움도, 무릎을 칠만큼 독특함도 찾지 못했었다.  그저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한 밋밋함이, 옆집 아줌마의 긴 사설에서도 족히 들었음직한 이야기들이 작가를 오래 기억하지 못하게 했다.  그것이 자연스러움이란 걸 나중에야 알았고, 나는 그만큼 어렸었다.  
화선지에 번지는 푸른 잉크처럼 생각의 색깔이 원고지에 자연스레 배어 나오게 되기까지 작가는 오랜 세월을 침묵 속에 견뎌야 한다는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생각과 손이 한치의 틈도 없이 하나를 이루는 것, 작가의 생각이 독자의 머리에 부지불식간 살포시 얹힐 수 있다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이나 그 책을 읽는 사람이나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작가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글에서만은 나잇값을 떳떳하게 하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처럼 어느 것 하나 툭 불거져 뒤뚱거리는 것이 없다.
1부 내 생애의 밑줄, 2부 책들의 오솔길, 3부 그리움을 위하여의 총 3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에서는 교외 생활을 하는 작가의 소소한 일상과 지난 기억들이 주류를 이룬다.

"지금도 문학강연 같은 걸 하게 될 때는 소설이 지닌 이런 미덕, 쓰는 이와 읽는 이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위안과 치유의 능력에 대해 말하곤 한다.  나는 내가 소설을 통해 구원받았다는 걸 인정하고 소설가인 것에 자부심도 느끼고 있지만 그렇게 말하고 나면 마치 허세를 부린 것처럼 뒷맛이 허전해지곤 한다." (P.24)

작가는 당초에 되고 싶었던 건 소설가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것이 소설이든, 시이든 무엇인가 써야만 견딜 수 있는 순간이 있다.  꾹꾹 눌러 참았던 가슴 속 응어리가 한순간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려 할 때, 그렇게라도 외지치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때, 누군가 낯 모르는 사람의 멱살이라도 부여잡고 꺽꺽 울고 싶던 심정을 소심한 성격 탓에 그 맺힌 이야기를 원고지에 옮겨 적을 수 밖에 없을 때, 쓰는 이와 읽는 이는 시간과 공간을 떠나 같이 공감하게 되고,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서로의 아픔을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글이 구르고 굴러 세월의 풍화작용 속에 모난 구석 없이 둥글둥글 다듬어지면 비로소 독자의 머리에도 작가가 품었던 파란 물이 드는 것이 아닐까?

2부에서 작가는 자신이 읽고 기억에 남았던 책들을 기록하고 있다.
문태준의 시집<그늘의 발달>,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이청준의 <별을 보여드립니다> 박경리의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등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근조근 들려주고 있다. 작가는 이 글들을 소개하는 첫머리에서 자신의 글이 서평도 독후감도 아니라고 했다.

"책을 읽다가 오솔길로 새버린 이야기입니다.  나이 들면서 숨가쁘게 정상으로 끌고가는 책보다는 도중에 아기자기한 오솔길을 거느리고 있어 쉬엄쉬엄 쉬어갈 수 있는 책에 더 정이 갑니다." (P.183)

3부에서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이어진다.
김수환 추기경님과 박경리 여사님 그리고 박수근 화백, 세 분 모두 작가와는 이승에서 연을 맺은 각별한 관계인 듯하다.  80줄에 들어선 작가의 연세를 생각할 때 별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곁을 떠나는 그리운 이들에 대한 작가의 글은 밀어내고 싶은 거부감이 올라온다.
세월을 거슬러 오래도록 작가의 글을 읽고 싶은 나의 욕심이 헛된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생각해보니 선생님과는 한 번도 허튼 수작을 해본 적이 없네요.  농담 한 번 안 하고 이 풍진 세상 그 힘든 세월을 어떻게 살아내셨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선생님이 가여워졌습니다.  이런 걸 선생님의 표현을 빌려 연민이라 한다면 너무 외람될까요." (P.255)

박경리 여사의 추도문을 읽으며 나는 그분께 투영된 작가의 세월을 보았다.
산다는 것은, 먼지처럼 쌓이는 구질구질한 일상을 나만이라도 귀하고 소중한 것이라 기억하고 보듬는 일이다.  내가 진정  힘써야 하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이 지구별에 살다 갔다는 작은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기상청 일기예보는 오늘 요란스레 비가 내릴 것이라 했다.
그리고 생뚱맞게 겨울 황사가 몰려온단다.  거친 일기(日氣)에도 오늘을 살아내는 수많은 군상들은 또 얼마나 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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