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쓴 원고를 책으로 만든 책 - 새끼 고양이, 길 잃은 고양이, 집 없는 고양이를 위한 지침서
폴 갈리코 지음, 조동섭 옮김 / 윌북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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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대학을 다니던 시절,  내가 살던 신림동의 한 아파트에는 유난히 도둑 고양이가 많았다.
밤마다 들리는 고양이 울음 소리는 마치 갓난아기의 울음 소리와 너무나 흡사해서 `뉘집 아기가 이렇게 우나?’하고 문을 열어보면 배고픈 고양이가 쓰레기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목격하곤 하였다.
달빛에 반사된 고양이의 파란 눈빛은 섬뜩하였다.
그때마다 언제 적에 들었는지 알 수 없는 고양이에 얽힌 미신이 생각나곤 하였다.
나는 고양이를 잘 몰랐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이 책은 고양이가 쓴 암호를 해독하여 옮긴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사실일 리 없는 저자의 주장이지만, 스포츠 기자를 역임하고, 복싱 선수로도 뛰었던 저자의 경력에 비한다면 이런 귀엽고 앙증맞은 거짓말은 그럭저럭 봐줄만 하다.
생후 6주 만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엄마를 잃은 착하고, 똑똑하고, 영리한 고양이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새끼고양이, 길잃은 고양이, 집없는 고양이를 위한 인간 길들이기 지침서이자 고양이의 눈에 비친 인간의 본성과 심리를 꿰뚫어 보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는 그런 책이다.

"인간 여자를 절대 과소평가하지 마.  인간 여자는 아주 영리해.  남자를 사로잡아서 접수하는 게 여자니까.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영리하지.  인간 부부 중 남편을 쉬 접수했다 하더라도 조심해야 해.  그 아내는 우리 고양이가 자기 남편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다 알아낼테니까. "(P.41)

기록에 의하면 고양이가 애완동물로 길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BC 15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양이의 머리로 여신을 경배하였으며 따라서 고양이를 매우 신성시했다 한다.  이후 고양이는 다른 문화권에도 퍼져 BC 500년경에는 그리스와 중국에 흔하게 되었으며 인도에는 BC100년경에 알려졌다고 한다.이처럼 고양이는 이집트에서 신성한 동물로 귀한 대접을 받았던 영광의 역사서부터 마녀사냥이 횡행했을 때는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던 수난의 역사까지 두루 갖고 있다. 그리고 각 문화권마다 가장 희비가 많은 짐승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고양이를 부정한 짐승으로 보는 경향이 많았고, 이런 까닭에 나는 고양이와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이 책에 의하면 나는 무식한 인간 남자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이랑 말을 더 섞어서 좋을 일은 없어.  이건 인류학적 입장에서 관찰한 결과이고, 또 어느 고양이나 인간과 오래 산 뒤에는 깨닫겠지만, 인간이 곤란한 처지에 놓이는 경우의 대부분은 끝없는 말과 수다에서 비롯된 것이거든. "(P.130)

애묘가들 사이에서 `고양이책의 고전'으로 손꼽힌다는 이 책에는 고양이가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지침들을 기록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언어와 습성을 모르고 앞으로도 가까워질 것 같지 않지만,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혹은 고양이에게 접수당한 사람들)은 이 책의 내용이 많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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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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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책이다.
먼저 그것을 전제로 시작해보자.
작가는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기교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체로 말한다.
평범한 이야기를 전혀 평범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그의 칼럼은 독특하다.
재치와 위트를 적절히 구사하는 촌철살인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17C 프랑스 극계를 대표하는 고전주의 비극작가 장 라신느를 떠올렸다.
대표작 페드라(phaedra)로 유명한 그녀 말이다.
시니컬한 문체와 현실에서 한발 비켜선 작가.
독자는 저자를 잊고, 그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자신의 체험인 양 빠져들게 된다.

저자는 생활 속에서 그때그때 떠오른 단상과 직접 견문한 일화에서 미끄러져 나온  생각들을 掌篇이라는 형식을 통해 전달한다.   페터 빅셀은 그야말로 짧은 이야기(掌篇)의 마술사이다.
"그는 장편(掌篇)이라는 형식을 통해 얼마 안 되는 낱말들로 아주,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하는 위대한 이야기꾼이다."라고 말하는는 게오르그 파처의 평은 적절하다.
적절한 예화와 인용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깨어나게 하는 글이 많으며,  논리 전개가 날렵하고 행간은 깊다.  짤막한 일화를 통해 만나는 가르침은 때로 저도 몰래 무릎을 치게 하고 즉시 눈앞의 현실과 겹쳐 읽게 만든다.  하지만 화두는 항상 세상이 아닌 나에게로 향해 있다.  남을 탓하고 세상을 허물하기 전에 나 자신의 가늠이 어떠해야 할지가  늘 먼저다.  그러나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여유를 갖고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림을 기다리듯이.
그가 깨끗이 닦아둔 거울에 스스로를 비춰 본다면 중심을 잃고 휩쓸리기 쉬운 복잡한 현실에서 좌표를 점검하고 방향을 살피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아버지들도 팻말에서 팻말로 걸음을 옮기며, 지식의 신처럼 아이들에게 동물이름을 전달한다.  이름을 알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도 이미 동물들에게 감탄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건 그렇고,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온 동물들도 이름은 독일어로 쓰여 있다.  동물들 스스로는 자기 이름이 무엇인지 모른다.  세상은 자기 이름을 모른다.  우리가 이름을 붙여 부르면서 세상을 멀리하는 것이다.  알바니아인, 프랑스인, 터키인...... "(P.95) 


그의 글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얼마나 무뎌지고 무감각해졌는지 새삼 느끼게 한다.
아주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익숙함이란 무덤에 자라는  이름 없는 잡초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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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살다 보면 소형 승합차가 코너를 돌 때처럼 균형을 잡지 못하고 흔들릴 때가 있단다.
지금의 일상이 못 견딜만큼 힘든 것은 아니지만, 몸으로 견디는 것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견뎌야 한다는 의무감이란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양치를 강조하는 네 엄마의 원칙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한번쯤 그것을 어기고 잠자리에 들었던 어느날 아침, 불안한 마음으로 거울에 네 입 안을 구석구석 비춰 보아도 구멍이 크게 뚫린 이(齒)를 전혀 발견할 수 없을 때, 너는 양치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양치를 하는 그 순간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알았을거야.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산다는 것은 `의무감으로 가득한 별난 놀이터’에서 맘껏 놀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과 같다.
우리는 선뜻 어떤 놀이기구에도 손을 얹을 수가 없단다.
늘 언저리에서 맴돌며 주저하다가 누군가의 결정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아들아

지난 주말에는 엄마와 함께 `제23회서울국제유아교육전’에 다녀왔다지?
동행하지 못했던 나는 괜한 죄책감과 함께,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임무를 방기한 채 모든 것을 네 엄마에게만 떠맡기고 있다는 미안함으로 고개를 떨구었단다.
초등학교 1학년인 네게는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겠지만, 번잡함을 싫어하는 엄마는 그닥 유쾌한 시간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아들아

어제와 달리 오늘은 가을 햇살이 무척이나 좋았었단다.
네가 자라 어른이 되면 어쩔 수 없는 의무감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겠지만 그래도 너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빛나는 가을볕처럼 여유롭고 따뜻한 시선이면 더 좋을테고.
너는 가을을 향해 쏟아져 나오는 저 한 무리의 유치원생들 마음으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간절한 마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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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5일.  날씨 : 흐림(또는 우울함)

먹장구름이 낮게 내려앉은, 금방이라도 눈이 펑펑 내리고 나는 잠시 동안 가벼운 공포에 휩싸일 듯한 그런 날씨.
두 팔을 겨드랑이 밑에 깊이 묻고, 몸을 잔뜩 옹송그린 채, "날씨가 왜 이래?"하며 불평 섞인 말을 내뱉는 어느 여직원의 뒷모습.
이런 날씨는 커다란  창을 통하여 바라보던 우울한 기억 - 그것이 나의 아내와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와의 기억인지 모호한 - 과 어두운 배경,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는 미래형 시제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게 한다.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 복합시제에 현재는 없다.

명절 연휴를 오래 쉬었던 탓인지 밀린 업무가 짓누른다.
`많다'는 것은 `'하지 않음' 또는 `체념'과 같은 말이다.
지난 주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 그야말로 핑계일 뿐이다 - 아내와 아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였다.
9월에는 한 사이트에서 우수 블로거로 뽑혀 작은 선물을 받았고, 알라딘에서 신간 평가단이 되었고,  어느 서평 이벤트에 참가하여 책도 두어 권 받았다.
이런 소소한 변화가 내가 잊고 있는 현재를 자각하게 한다.

여전히 눈은 내리지 않고 - 눈이 오기에는 여전히 기온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 나는 촛점을 잃은 눈으로 과거와 미래를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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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자연 

저자 : 제인 구달, 세인 메이너드, 게일 허드슨 지음 / 김지선 옮김 

출판사 : 사이언스 북스 

 

 

얼마 전 제인 구달의 또 다른 작품 <희망의 이유>를 읽었었다. 

법정 스님의 추천 도서이기도 했던 그 책은 내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었다. 

26살의 젊은 나이에 아프리카 밀림으로 들어가 침팬지를 연구하며 평생을 보냈던 그녀의 삶과 자연과 생명체에 대한 따뜻한 시선, 환경파괴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직 희망은 있다고 말하는 제인 구달.  나는 여전히 그년의 광팬으로 남아 있다. 

제인 구달의 새 작품 <희망의 자연>, 정말 읽고 싶은 책이다.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김주영 외 지즘/지식 파수꾼(경향미디어)/ 

 

 

 

 

대한민국 대표 작가 15인의 거제 탐방기.  

김주영,구효서,성석제,박상우,백가흠,해이수, 하성란, 권지예, 전경린, 김별아 등 좋아하는 작가들이 가득하다.  때로는 내가 받은 감동을  다른 사람의 표현으로 읽을 때 그 감동이 배가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글 잘쓰는 작가라면 더욱 좋다. 
  또 최석운, 박병춘, 이인, 황주리, 서용선, 강경구, 김선두, 김정연, 박철환, 서시환 등 화가 19명의 그림도 같이 감상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지 않는가. 

 

 

나만 위로할 것 

김동영 지음/달/ 

 

 

 

 

참으로 오랫만에 만나는 김동영의 작품이다. 

<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 거야>이후 무려 3년만에 출간된 그의 여행기가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작가의 글에는 아련한 향수가 배어 있다.  가끔 울음이 터져나올 듯한. 

이번에는 아이슬란드를 여행했단다. 화산과 눈으로 뒤덮인 먼 북쪽 나라. 

지금은 잊혀진 한 편의 동화를 들려줄 것만 같은 그런 여행기가 아닐까? 

기다림에 나는 좌불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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