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면 아들과 아내를 대동하고 가까운 서점으로 간다.
어제도 다르지 않아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는 분당의 교보문고로 향했다. 
초등학교 일학년의 아들은 요즘 <신기한 스쿨버스>와 <너도 보이니>에 푹 빠져 있다.
다른 책을 권해도 요지부동 고집을 부린다.
읽은 횟수만 세어도 책을 외울 정도로 많을텐데 여전히 그 책이 좋단다.
봄바람이 세차게 부는데 아들은 기분이 좋았나 보다.  숨을 못 쉴 정도로 바람이 거센 날씨를 좋아하는 것도 아들녀석만의 특별한 면모이다. 
아내는 요즘 명상에 관련된 책을 읽고 있다.
여러 이유로 말미암은 마음 속의 스트레스를 다루기 어려웠나 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녀석의 보살핌도 그러려니와 나의 문제도 아내에게는 적잖은 스트레스의 요인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내에게 늘 죄스럽다.
서점은 신학기 학용품 세일을 하는 관계로 몹시 복잡하였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도 앉을만한 자리 곳곳에는 책을 든 사람들로 넘쳐난다.
혼잡한 자리를 비집고 한동안 책을 읽다가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불과 십수 년 전만해도 건물보다는 공터가 많아 겨울이면 불어오는 찬바람에 마음까지 을씨년스러웠던 분당의 거리는 이제 더 이상 건물이 들어설 수 없는 환락의 도시로 점차 변하고 있다.  저녁을 먹으며 아내는 아들에게 몇 번씩 다짐을 한다.
  "아빠 또 올라오시니까 가실 때 울지 마"
아들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영 자신이 없는 표정.  맛을 느끼지 못하는 저녁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아들도 나도.
웬만하면 버스로 이동하는 나는 이 시간이면 매번 차를 갖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아들과 어려운 이별을 했다.  고개를 숙인 얼굴에 눈물이 맺히고 있다.
오늘도 아들은 울고 있었다.  아내는 자신의 옆으로 아들을 불러 가슴에 안으며 내게 손짓을 한다.  아내의 재촉에도 여전히 내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았을 때 아내로부터 걸려온 전화.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며 아들에게 전화를 건넨다.  아들과의 통화는 여전히 힘겹다.
어른들은 가끔 사내녀석이 눈물이 너무 많다고 걱정을 하시지만 나는 그런 아들의 모습이 좋기만 하다.  웃을 때는 세상 걱정 하나도 없이 티없이 깔깔 웃고, 슬플 때는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세상의 그 누구로부터 눈물의 배웅을 받을 수 있겠는가.
나는 그렇게 아들이 쏟는 눈물의 빚, 사랑의 빚을 지고 이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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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고약한 날씨다.
기상청 예보대로 황사가 있는지 코도 매케하고, 봄바람도 드세다. 
더구나 비도 추적추적 내리니 외출도 여의치 않아 독서나 할 요량으로 집어든 책이 <사유하는 도덕경>이다.   한마디로 어려운 책이다.  노자의 군더더기 없이 짧은 철학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그 여지를 주고 있지만, 나의 사고는 그 언저리에도 이르지 못하고 뱅뱅 원을 돌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진도로 언제 81장(章)에 이르는 그의 시를 다 읽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고전을 읽을 때 빠져들게 되는 보편적 진리의 깊고 그윽한 맛 때문이다.  조금 쉽게 해석한 도덕경이 없을까 찾던 중에 만난 이 책도 어렵기는 매일반이다.  너무 얇은 책은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고, 조금 두꺼운 책은 장황한 설명에 나의 사유가 끼어들 여지가 없게 만든다.  오전 내내 제1장도 이해하지 못한 채 제자리 걸음이다.  구제불능이다.

  말할 수 있는 도(道)는 상도(常道)가 아니고, 명명할 수 있는 이름은 상명(常名)이 아니다.  무명(無名)은 천지의 시작이고, 유명(有名)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항상 무욕(無欲)으로써 그 무의 오묘함을 보고, 항상 유욕(有欲)으로써 그 유의 왕래를 본다.  이 무와 유는 동시에 나왔지만 그 이름을 달리한다.  유/무를 동시에 말하여 현묘(玄妙)하다고 한다.  현묘하고 현묘하도다.  그것은 온갖 묘리(妙理)가 출몰하는 문(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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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텐진 갸초(달라이 라마).빅터 챈 지음, 류시화 옮김 / 오래된미래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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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떠난 빈 자리가 너무 컸던 탓일까 그분의 추천 도서 중 한 권인 <용서>를 천천히 읽었다.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를 제목으로 하는 책을 접할 때에는 왠지 옷매무새를 정갈히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이 들곤 한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판단했던 나의 선입견과는 달리 책의 내용은 현학적이거나 딱딱하지 않다.
오히려 지극히 담담하고 진솔한 이야기 전개가 나를 놀라게 한다.
우리는 가끔 진리를 논할 때에는 으레 어렵고 난해한 문장으로 읽어야 커다란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대초원에서 커다란 산을 보는 느낌, 잔잔히 흐르는 시내에서 파도와 같은 커다란 울림을 듣는 느낌.  이 책은 그랬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맑은 물에 내 영혼을 헹구는 것과 같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몸과 마음이 파랗게 젖어드는 느낌은 책을 손에서 놓는 그 순간까지 계속 되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곁에 머무르며, 그와 대화하고, 같이 여행하며, 존경의 시선으로 그를 관찰했던 빅터 챈에 의해 씌어진 이 책은 달라이 라마의 사상이면서 동시에 빅터 챈의 이야기이다.
권위적인 종교 지도자의 모습이 아닌 평범하고 인간적인, 때로는 짖궂고 장난기 가득한 달라이 라마의 모습에서 망명 정부의 지도자로서의 고뇌와 적개심은 찾을 수 없다.
공(空)의 개념과 상호 의존적 인간 관계, 자비와 용서에 대하여 과장되거나 종교적 ’선전’의 차원에서 역설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일관된 행동과 진심어린 인간애로써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언으로 전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실체적 진실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육신에 갇힌 우리의 영혼은 가장 가까운 육신과도 화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단 한 발자욱도 내딛지 못한다.  어쩌면 베를린 장벽보다도 휴전선 철책보다도 더 높은 벽이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자신이 느끼는 것을, 그 영혼의 몸짓을 자신의 몸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영혼과 육신의 슬픈 별리이다.  자신의 영혼을 바라보고 늘 관심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다른 사람을 사랑하겠는가.
나의 영혼이 나의 육신과 화해를 하고, 나아가 자연과 합일을 이루고, 우주와 내가 하나 될 수 있음을 달라이 라마를 통하여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좁은 몸뚱아리에 내 영혼을 가두고, 나와 너를 분리하는 것은 나와 온 우주와 일체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철저히 봉쇄하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몸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면서 외로움과 불안감, 집착과 미움을 키우는 일이다.
모든 사람이 바라는 행복은 나와 너를 구별짓지 않고, 오직 나의 마음이 너에게 닿을 때 충만함과 행복에 이를 수 있음을 성인들은 알고 있었다.  너를 위하는 길이 나의 행복을 찾는 지름길이니 결국 철저한 이타주의는 동시에 철저한 이기주의이다.  그러므로 성인들은 곧 위대한 이기주의자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어쩌면 달라이 라마의 용서는 먼저 나를 용서하라는 가르침이었다.
내 영혼이 내 육신을 용서하고, 내 육신은 또 내 영혼을 용서하여 결국은 온전하게 내가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조금씩 너와 화해하는 것.  그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양자 물리학의 끈 이론(string theory)에서도 상호 의존성과 공(空)의 개념을 조금씩 증명하고 있다.  먼 훗날 우리는 2500년 전 붓다의 ’깨달음’을 과학적으로 증명된 ’진리’로 인식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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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허둥지둥
켄 블랜차드.스티브 고트리 지음, 조천제.황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이런 종류의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 나는 책이 주는 병폐, 또는 책의 무용론을 말하고 싶다.
사회 경험이 부족한 학생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간결하고 명쾌한 논리에 감탄하고 말 것이다.
게다가 성격은 좋지만 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늘 허둥지둥 하는 주인공 밥과 그의 멘토 역할을 하는 CEO(chief Effecriveness Officer : 최고효율성책임자)의 이야기 형식으로 꾸며져 독자들은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얻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책이 있을까 싶을 것이다.
더구나 그 실천 방안이라는 것이 많기나 한가.  달랑 세 가지 뿐이니 맘만 먹으면 언제든 실천할 수 있겠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일의 동기와 목적이 타당한지 판단하여 부합하는 사람들과 제때에 순서에 맞게 진행하며, 일을 할 때는 헌신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만 지키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 또는 성공의 가도를 달릴 수 있다니 독자들은 그야말로 이 책이 성서에 비견될 만큼 혹하지 않겠는가.
또 있다.  책의 분량도 작아서 일단 읽기 시작하면 한두 시간 만에도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책만 있다면 굳이 두껍고 어려운 책을 끙끙대며 읽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단순하고 명쾌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목표를 성취할 수만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이 책의 저자도 그렇게 명확하고 획일적인 삶을 살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이다.  사회 경험이 일천한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아무런 비판의식도 없이 성공의 마스터키를 뒨 듯한 환상을 품게 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다는 아니지만 서구 문명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모든 경험을 플로우 챠트와 같이 획일적으로 정리하는 습성이 있다.  조건과 초기치만 설정되면 피드백 과정을 거쳐 정해진 순서에 따라 결과가 도출되는 식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명확하지도 않다.
이 책에서 말하는 행동 강령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와 좌절을 맛본 사람만이 가능할 것이다.  그 과정을 준비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인생의 과정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지름길, 또는 큰길 위를 걸을 때보다 샛길을 걷는 시간이 훨씬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비록 샛길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바라는 무지개는 태양이 비치는 한 샛길에서도 언제든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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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 너머에 - 아직도 가야 할 길 그리고 저 너머에
M. 스캇 펙 지음, 손홍기 옮김 / 열음사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다소 무겁고 난해한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는 자신이 목적하는 바가 따로 있겠지만, 그 기저에는 지적 허영심 내지는 우쭐함이 잠시라도 머물게 된다.
재미와 감동을 우선으로 하는 문학 작품들의 실제적이고 감각적인 텍스트와는 달리 철학이나 심리학과 같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독자의 지적 수준에 따라 때로는 암호 해독가가 되어야만 하는 이러한 부류의 책을 좋아라 하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많은 독서인 중에 소수가 된다는 것.
물질만능의 시대에 형이상학을 탐독한다는 것.
이런 수단으로 지적 허영심을 너무나 쉽게 충족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주의자'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사회 봉사자들도 마음 한켠에는 봉사를 통한 뿌듯함을 충족하려는 이기심이 상존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고 봉사자들도 그렇고 본 목적이 그것 하나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람의 심리나 일상 생활은 그만큼 복잡하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내가 저자 스캇 펙 박사에게 끌리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저자의 나이 마흔에 썼다는 <아직도 가야할 길>을 내가 처음 읽게 되었을 때, 기존의 심리학 서적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몇 가지 차이점을 보게 되었다.
정신과 의사라고 믿기 어려운 문학적 재능과 불완전한 존재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심, 그리고 많은 임상 경험과 사유가 없었으면 불가능할 법한 쉽고 평이한 문장 전개가 그것이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프로이트, 카를 융, 애들러 등의 심리학 서적을 이해하는, 어쩌면 그 벽을 넘어서는 계기가 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스캇 펙 박사의 책이라면 더 이상 그 필요성에 선택 기준을 두지 않게 되었다.  그야말로 조건 없는 책읽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예순이 되어 자신이 그동안 출간했던 책들의 내용을 정선할 필요성을 느껴 집필한 책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이 그것은 요약이 아닌, 자신의 사상과 견해를 '통합(synthsis)'하는 과정이요, '넘어 섬'을 의미한다.
책의 구성은 총3부로 되어 있는데,
개인과 사회가 가진 병리 현상의 근저에 있는 원시적이고 나태한 단순 사고를 비판한 1부와 우리가 훌륭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되풀이해야 하는 복잡한 선택의 문제를 다룬 2부, 그리고 적절한 지적, 감정적 대가를 치르고 났을 때 우리가 어떤 곳에 다다를 수 있는가에 대하여 쓰고 있는 3부가 그 주요 내용이다.
사실 스캇 펙 박사의 책 중에 이 책을 처음으로 선택한 독자라면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그저 고통 없는, 곧 언제나 편안하고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기에 저자는 이 책에서 깊이 있는 사고를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깊이 있는 사고를 한다는 것은 피상적인 사고를 하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럽다.(P.86)
저자가 강조하는 '생각하기'의 중요성이 삶을 이해하고 충만한 삶을 영위하는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그가 지은 다른 책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모든 중요한 일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하는 까닭에 우리는 생각하기를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질문은 너무 중요한 것이어서 네 스스로 그 대답을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단다.(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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