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모른다

너도 나를 모른다

모르는 나와

모르는 너는

백지처럼 하얀 인연에

그렇게 편지를 쓴다.

 

네가 있는 자리에

또는 내가 있는 자리에

낯선 언어가 배달되던 날

평면의 일상에

숨죽인 메아리로 살아있느냐

 

오늘이 그리운 이에게

어제의 흔적은

습관처럼 메마른 자판을 스치운다.

 

모르던 사람들은

모르는 우리들로 남아있다.

 

 

 

<나의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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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사람에게

잊혀질 과거를 덧씌우는 일은

얼마나 잔인합니까

당신,

나는 빈 전화에 나의 목소리를 전하며

고목처럼 질긴 이 잔인함에

한없이 자책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떠난 후에 알게 되는 것,

그 미래형의 단어를

남들은 다 알고 있는 그 의미를

첫닭이 울기 전에

아니라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세 번을 부정하는 못난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세수도 거른 아침은

또 다시 바쁜 저녁을 맞을 테지만

현재형의 사랑은 영영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진실과 마주할 밤이 너무 두렵습니다.

 

 

 

아주 오래된 노트를 뒤적이다 낙서처럼 끄적인 시 한 편을 발견했다.

사랑의 경험도 많지 않은 나로서는 선명하게 그 기억이 떠오를만 하건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찾을 수가 없었다.

'미시 경제학' 노트에 적힌 이 시의 말미에는 이어 쓰기 위해서 적어 놓은 여러 단어들만 난무할 뿐 제대로 이어진 문장은 없다.

이렇게 답답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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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바람을 막을수 있을까
아름다운세상 편집부 엮음 / 아름다운세상 / 1992년 12월
평점 :
절판


추적추적 봄비가 내린다. 

괜스레 상념에 젖게되는 그런 오후. 

오래 전부터 미뤄왔던 서재를 정리했다. 

나의 시선을 머물게 했던 빛바랜 시집 한 권.





 

 

 

 

 

 

 

 

 

 

대학 시절 대학로의 어느 곳에서 내게 전해 주었던 그녀의 시집. 

지금은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된 책장이 내 기억 만큼이나 희미하다. 

그녀의 시를 옮겨 적으며 나는 시간이 멈춘 추억의 저편을 더듬었다. 

 

사랑이야 

네 눈빛은 그냥 그렇게 나에게로 오고 

내 눈빛은 그냥 그렇게 너에게로 가서 

우리 둘이 가운데서 그저 만나는 거다 

 

오다가 돌부리에 채이고 바람에 흔들릴 수 있겠지만 

상처 닦아 줄 넉넉한 마음 뒷짐지고 따라오다 

눈물 흘린 그 자리 닦아 널 앉히고 

기다리는 너에게로 마침내 도착하여 

우리 둘이 가운데서 그저 만나는 거다 

 

가다가 어두운 밤 강 건너며 서러울 때 있겠지만 

가슴속 눈물 꺼내 말갛게 씻은 빨래로 널어 놓고 

젖은 옷 말리며 기다리고 있는 너와 

조용한 웃음으로 만나는 것 

우리 둘이 가운데서 그저 만나는 것 

 

아, 다만 그렇게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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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시 태어난다면 

사랑을 담아내는 편지처럼 살리라 

 

폭포수 같은 서린 그리움에 

쉬이 얼룩져 버리는 백색의 편지지가 아니라 

오염될수록 싱그런 연두빛이었으면 좋겠다 

 

나 다시 태어난다면 

사랑을 담아내는 편지처럼 살리라 

 

가슴에 커져버린 암울한 상처에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이별의 편지가 아니라 

상흔속에서도 뿜어내는 

시작의 편지였으면 좋겠다 

 

미움은 온유함으로 지워버리고 

집착은 넉넉함으로 포용하면서, 

한장에는 사랑이란  순결한 이름을 새기고 

 

또 한장에는 

삶이란 소중한 이름을 써 넣으면서 

풀향보다 은은한 내음으로 

내 삶을 채웠으면 좋겠다. 

 

-----좋은생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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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마주이 수녀, 엠마뉘엘
엠마뉘엘 수녀 지음, 이정순 옮김 / 두레 / 200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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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은 어떤 기준으로 평해야 할까?

이 책을 읽은 지 만 하루가 지나도록 리뷰를 쓰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꿈꾸던 삶과 비교할 때, 수녀님의 인생은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이다.

자글자글 주름잡힌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짓고있는 수녀님의 사진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수녀님은 1971년 예순두 살의 나이로 교사직을 그만두고, 이듬해에 이집트 카이로의 빈민가에 들어가 넝마주이들과 함께 23년간을 살았다.

넝마주이들이 모여사는 극빈촌. 여성에 대한 차별과 범죄가 들끓는 그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차라리 '모험'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가난은 그녀를 바닷물의 소용돌이처럼 빨아들였다.

염소 우리도 마다 않고, 장날이면 시장에 가기 위해 수레 한 차에 무려 30여명이 빽빽하게 실려가는 것도 기쁨으로 여겼다.  벼룩이나 구더기도 친구로 맞이했고, 도무지 찾을 수 없는 유치원과 교육시설을 짓기 위해 전세계를 돌며 기부금을 호소했다.

수녀님이 그곳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이들의 교육이었다.  아이들은 글자를 배울 수도, 자연을 접할 수도, 자신들의 충동을 억제하여 자살을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알지 못했다.  그녀는 이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동물원과 나일강에 데리고 가고, 자연에 나가 그때까지 '꽃 한 송이 꺾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꽃을 구경시켜 주었다.  캠프를 열어 아이들에게 깨끗하게 바뀐 자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기회였고,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자극제였다.  수녀님은 그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비록 가난하고 헐벗었지만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나눔을 베풀 줄 알고, 가족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고자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수녀님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마음은 수수께끼다.  풍족한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갖고자 잠을 잊을 지경이지만, 반면 아무 것도 없는 빈털터리, 즉 구두수선공들과 넝마주이들은 자기 사는 곳에 만족해 하고 노래까지 부른다."

성별과, 나이와, 학력과, 심지어 종교에 있어서도 차별을 두지 않았던 수녀님은 황폐한 빈민촌에 함께 살면서 학교를 세우고,협동조합과 무료진료소를 만들어 그곳의 삶을 바꿔 놓았다.

그녀는 '왜 카이로의 넝마주이가 부유한 자보다 만족도가 높은지'를 되묻는다.

행복은 가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정신'에서 오는 것이라는 수녀님의 말씀은 23년간의 그녀의 삶을 담담히 기록한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한 사람의 삶은 그의 전 인생에 있어 1/3만 남을 위해 살아도 그는 행복한 삶을 산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적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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