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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싸움을 그치고, 눈사람을 만드는 이야기 - Side A.
문여정 지음 / 하하밤(hahabalm) / 2024년 10월
평점 :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이미 멀리 와 버렸다 해도
‘동경하는 길에 대한 마음’은 결코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은 미래에 수고를 들이는 일. 이것은 내게 익숙한 상황이었고, 나는 30대 중반에 다시 고시생 모드로 접어들었음을 실감했습니다. 그것은 모두에게 우려 섞인 응원을 받고 다시금 부모님의 무거운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었으며 무엇보다, 매일 불안의 시선을 느끼는 일이었다고 하는 저자는 법대에 들어가 고시를 보고 4년이 조금 넘게 변호사로 일하면서 일이 사람을 사귀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눈싸움을 그치고, 눈사람을 만드는 이야기가 궁금해 집니다.
‘변호사에서 작가로 넘어가는 여정, Side A 이야기’
눈 내린 날 태어나 늘 새해의 기분으로 생일을 맞습니다. 시험도 소송 서면도 하나의 글이라 생각하면서 서울대 법학과, 사법연수워느 로펌의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2017년을 기점으로 뒷면이 앞면이 되는 레코드 판처럼 출판사 하하밤을 2020년에 만들고 좋아하는 글을 쓰며 Side B의 시간을 살고 있는 문여정 작가는 <눈싸움을 그치고, 눈사람을 만드는 이야기>를 출간했습니다.
그토록 되고 싶었던 작가가 되고 나니 글은 생각보다 사적인 영역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로펌에서 일하던 때에도 풀리지 않는 문제는 어디서든 머릿속에 남아 있었지만 글에 대한 고민은 그보다 더 진하게 일상에 섞여 들어갑니다.
하고 싶은 걸 하는 밤’이라는 공감을 만들어 놓고도 선뜻 답을 내리지 못했던 나에게, 비로소 한 문장이 선명해졌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면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p.13
하고 싶지 않은 일들 속에서 온 신경을 가득 메우고 있던 눈의 결정들을. 그 아름다운 결정을 더듬어 팽창하는 우울의 둘레를 감싸고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 보기로 하나. 눈이 구를 때마다, 이번에는 하고 싶은 일들을 위해 눈덩이를 굴리는 것이라고. 틈틈이 되뇌기로 한다. 발 밑에서, 사각사각 눈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p.17
“동경하는 길을 바라보는 마음과
주어진 길을 좋아하려 애쓰는 마음,
그 사이에서 좌우로 흔들리던 청춘의 날들”
행복한 시간을 찾아 나서는 길은 낯선 미지의 영역입니다. 신림동, 독서실 무서운 법서를 펼쳐놓고 법률과 판례를 들여다보며 지냈던 시간을 벗어나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자신만의 다른 세계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저자의 꿈에 응원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용기라 말하지만, 실은 ‘눈덩이’에 대한 이야기를 굴려 가면서, 늘 강 건너 저 편을 향하던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 것은 이번에도 ‘좋아하는 마음’이었다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눈싸움은 그치고, 눈사람을 만들기로 했다는 문장은 현실에서는 끝나는 것이 아니므로 눈덩이를 굴려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고 그 눈사람을 계속해서 바라보는 일은 아름답고도 꽤 슬픈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이미 멀리 와 있다고 해도 동경하는 길에 대한 마음은 결코 사라지거나 줄어들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책 속에는 마음에 담고 싶던 말, 가슴을 울리는 말이 많이 있어서 이 책을 읽는 동안은 과거를 추억하며 회상하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북클립 서평단에서 협찬받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