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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1970년대 우리 인문주의와 심미적 이성의 한 절정을 보여준 한국문학의 대표작, 조세희 작가의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8년 6월 초판이 발행된 이래 1996년 4월 100쇄를 돌파하기까지 장장 18년간 40만 부가 팔린 책으로 이 책은 최인훈의 『광장』과 함께 우리 문단 사상 가장 오래도록 팔린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책입니다. 2022년 코로나19 로 안타깝게 우리곁을 떠난 작가 이기도 합니다.
백 십 칠 센티에 삼십이 킬로그램의 몸은 아버지를 온갖 더러운 잡역꾼으로만 몰고 갔으나 나이가 드시고 그것마저 체력에 부치기 시작했고 아버지의 더러운 일거리로 연명하던 우리 가족은 당신이 황혼기에 들자 경제를 책임질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인쇄소에 나가 고무 골무를 끼고 접지일을 하였고 나는 인쇄소 공무부 조역일을 하면서 세상은 땀흘리지 않고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습니다. 우리를 해치는 사람은 없었고 우리는 이질 집단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영호도 일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죽어라 일을 해야만 했고 영희 또한 빵집에서 일했습니다. 우리는 공부를 해야지만 우리구역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이 구역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 책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고 고입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고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조세희는 사람이 태어나서 누구나 한번 피 마르게 아파서 소리지르는 때가 있는데, 그 진실한 절규를 모은 게 역사요, 그 자신이 너무 아파서 지른 간절하고 피맺힌 절규가 『난쏘공』이었다고 말합니다. 긴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 난장이들의 소리에 젊은이들이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난쏘공』이 시대 문제의 핵심, 인간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햄릿을 읽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웃집에서 받고 있는 인간적 절망에 대해 눈물짓는 능력은 마비당하고, 또 상실당한 것은 아닐까라고 뼈아픈 말을 남겼습니다.
이책은 광주 대단지사건을 소재로 하며 상대원공단도 배경으로 나옵니다. 이러한 사회 비판적 요소 때문에 제5공화국 정권에서는 금서로 지정했으며 문학과지성 76년 겨울호에 수록되었고 1979년 제1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70년대 도시 재개발로 밀려난 서민 가정의 고통을 그려낸 작품이으로 구성은 총 3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각각 큰 아들, 작은 아들, 그리고 막내딸의 시점에서 자신들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명장면으로는 영호의 꿈속에서 막내딸 영희가 팬지꽃을 공장 폐수에 던져버리는 장면,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형 영수에게 동생 영호가 '형은 이상주의자야'라고 쏘아붙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문장의 호흡이 짧고 묘사도 간결한 이유는 원고 집필 당시에 작가의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손바닥만한 수첩에 글을 썼기 때문인데 이런 이유로 형성된 간결체가 이 작품의 또다른 매력이 되었고 이 소설을 읽다가 수위 높은 내용 때문에 잠깐 당황하는 면도 있습니다.
나로선 생각해 볼 것도 없었다. 큰 오빠는 우리의 집을 짓는 데 쳔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뜻을 잘 몰랐었다. 큰 오빠의 말에는 물론 과장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거짓은 아니였다. 어머니는 내가 열일곱 살이 되자 여자가 가져야 할 가족과 가정에 대한 그 전통적 의무가 어떤 것인가를 은연중에 가르치려고 했다.---p.130
나는 처음 약속대로 ‘안 돼요’라는 말을 그에게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안 돼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나는 전혀 다른 세상 사람과 생활하고 있었다. 우리는 출생부터 달랐다. 나의 첫 울음은 비명으로 들렸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나의 첫 호흡이 지옥의 불길처럼 뜨거웠을지도 모를 일이다.---p.131
이야기는 난장이 일가의 삶으로 요약되는데, 산업화의 과정에서 자기 삶의 터전을 일구지 못한 도시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과 절망이 인상적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는 자본계층의 삶과 대조적으로 연결되고 있고 어두운 그늘이 있는 만큼 더욱 밝은 부분이 있게 마련이라는 판단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분열되어 있는 대조적인 두 세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이야기는 난장이의 존재는 하나의 좌절된 삶의 상징처럼 부각되고 있습니다. 물질주의의 욕망에 삐뚤어진 개인적 이기심 등이 난장이 일가의 사랑에 대한 기대를 모두 짓밟아 버리는 이야기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사회계층의 등장에 나름 희망을 갖고 있으나 그것은 한낱 꿈에 불과해 안타까움도 더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