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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2
조세래 지음 / 문예춘추사 / 2023년 12월
평점 :

진실한 승부가 사라진 세상에
진정한 ‘승부’를 열망케 하는 소설!
『승부』는 온전하고 진실한 승부가 존재하지 않는 지금 시대에 진정한 승부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질문하는 소설입니다. 승부의 참다운 모습은 외면당한 채 오직 이기는 것만이 승부의 절대적 가치로 인정받고 있는 세태를 비판하고자 작가는 바둑이라는 웅장한 투혼의 장을 기획합니다.
우리나라가 낳은 4대 기성(棋聖) 여목 이상순과 그의 제자 설숙, 추평사, 그리고 추평사의 아들 추동삼, 이들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조선의 자존심을 걸고 대륙과 섬을 넘나들며 펼치는 파란만장한 승부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기대되는 영웅들의 서사가 시작됩니다.
“그래, 바로 이 얼굴이다. 내가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얼굴이 아닌가 번뇌하는 인간의 얼굴이 아닌가.” ---p.13 1권
중견화가 박민수는 은퇴한 대국수 정명운의 초상화를 부탁받고 그의 집에 드나들다 당대의 명반 벽송을 발견합니다. 보를 완전히 벗겨내자 신비스러운 나무색에 한 점의 뒤틀림과 잡티도 없는 천지정복으로 재단된 비자 바둑판이 모습을 드러내며 박화백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정명운 국수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독자로서는 소설의 후반부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는 박 화백에게 떠돌이 기객 추동삼을 찾아 벽송을 돌려줄 것을 부탁하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납니다. 그후 1권에서는 추동삼을 찾는 과정이 장구한 소설의 여정으로 보여집니다. 그것은 승부란 무엇인가를 묻는 길고 긴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천하 제일의 기객 ! 추동삼 찾기
박화백은 의문이 일기 시작합니다. 정국수가 평생 기보를 간직할 정도로 명국이었다면 추동삼은 어떤 확신 없이 그런 수를 두었을까. 박화백이 집에서 혼자 복기하며 느꼈던 의문수에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추동삼은 의심할 여지 없는 실존 인물이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1959년 전승의 실적으로 입단하여 한일기원의 기사가 된후 몇 개월 지나 협회로부터 제명을 당합니다.
추동삼과 정명운의 스승은 조선 근대 바둑의 마지막 명인 설숙이고, 설숙의 스승은 구한말을 살아낸 여목입니다. 청년국수 여목은 대원군의 조속한 생환을 위해 조선에 들어와 있던 청나라 대신 원세개와 바둑으로 한 판 승부를 벌이며 그와 교분을 트고 십 수 년 후 원세개의 초청으로 중국으로 건너간 여목은 중국전역을 종단하며 대륙의 고수와 명인들을 차례차례 굴복시키고 조선바둑의 위상을 확립하는데 조선으로 돌아온 여목은 바둑도장을 만들어 조선 땅에 기도를 보급하고 준재들을 양성하는데, 막역지우인 설숙의 조부 소담의 집에서 여목은 노비의 아들로 있던 소년 추평사를 만나고 그를 제자로 맞게 됩니다.
평사는 입문한 지 몇 년 만에 뛰어난 기재로 스승 여목의 총애를 받고 여목도장의 실질적인 후계자가 되지만, 삼일만세운동이 터지고 얼마 후 조선에 내려온 일본 바둑꾼들의 분쟁에 휘말려 억울하게 스승으로부터 파문을 당한다. 추평사는 아들 동삼을 설숙도장에 맡기고 비극적 생을 마치며, 이후 동삼은 아버지와는 살짝 다른 궤도로 자신만의 승부의 세계를 펼치게 되면서 2권의 이야기는 대를 이어 계속됩니다.
“묘수는 오히려 독이 되나니. 빛이 겉으로 드러나면 상하는 법이니라. 빛은 마음속에 잠겨 있어야 한다. 운석에 기운을 불어넣지 마라. 너의 운석은 오히려 말라야 힘이 생기나니...... ” ---p.223 2권
정국수는 왜 이다지도 어려운 당부를 자신에게 했는지, 설령 정국수 자신이 벽송을 끝까지 간직했다손 치더라도 정국수 역시 벽송 처리가 고통스러웠으리라. 벽송으로 인한 추동삼씨와의 갈등, 마땅히 대를 이어 벽송을 물려줄 만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과연 당대의 기개이 있어 이 천하의 명반 벽송을 물려받고 싶을까 그렇다면 박물관에 보관하여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벽송의 위대함을 설파하든지 한일기원에 맡겨 많은 바둑인들에게 벽송의 깊은 뜻을 길이길이 되새기는 방법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박물관과 한일기원 모두 너무 세속화됬고 상상만해도 가슴이 답답한 박화백은 이른 새벽 벽송을 차에 싣고 어딘론가 가는데.....
결국 그런 것인가, 태어남 그 자체가 승부이고 인간은 그 승부의 땅에서 살다가 죽어서야 승부의 강을 건너 피안으로 가는 것인가..... .
“새는 새장을 벗어나야 님을 찾고, 고기는 통발을 물리친 후에야 대해로 나아가며, 승부사는 승부를 떠나야 진정한 승부사가 된다”는 작가의 말은 『승부』 전편에 장엄하게 흐르는 기상입니다. 평생 바둑으로 펼쳐진 뜨거운 삶, 삶으로 은유된 위대한 바둑이 실로 『승부』의 장엄한 서사가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현존하는 세상에는 수많은 장인들을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부모의 대를 이어줄 자식은 많지 않습니다. 암울하고 혼란했던 시기에 자신의 삶 전체를 승부하는 잊혀진 영웅들을 생각해 보면서 지금 우리는 진정한 영웅을 그리워 하는지도 모릅니다. 문예춘추사의 멋진 소설을 읽는 동안 따뜻한 연말을 보냈습니다.
출판사 제공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