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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왕 외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86
소포클레스 지음, 장시은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평점 :

오이디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바이의 왕입니다. 테바이 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하는 신탁 때문에 세상에 나오자마자 산속에 버려졌습니다. 이번 열린책들 세계문학 286번째는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로 꼽히는 소포클레스의 대표작으로 「오이디푸스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를 한데 엮은 책으로 운명의 희생자로 주저앉지 않으려는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 고전이 주는 힘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 해줄거라 독자는 믿습니다. 서양 고전학 장시은 박사의 번역으로 읽었습니다.
<테바이 3부작> 중 신화의 순서상 마지막 이야기에 해당 되지만 상연은 가장 먼저 되었던 「안티고네」는 소포클레스의 초기작으로 오이디푸스 사후의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인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왕권을 두고 싸우다 서로를 겨눈 창날에 한날한시에 목숨을 잃습니다. 이에 왕위를 차지한 크레온은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온 폴리네이케스를 침략자로 규정하고 시신을 매장해서는 안 된다며 포고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동생의 도리로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러 주고 이를 안 크레온은 자신의 통치권에 도전하는 행위라며 안티고네를 체포해 굶어 죽도록 동굴에 가두었다가, 아들 하이몬이 약혼자인 그녀를 따라 죽어 버리자 뒤늦게 후회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내 피를, 내 손으로 흘린 아버지의 피를 마신 너희는
나에 대해 여전히 기억하는가?---p.112
이 작품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오이디푸스라는 한 인간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이디푸스에 관한 운명은 작품 속에선 신탁이라는 형태로 보여지는데 신탁은 그의 친부모와 그 자신에게 각각 내려집니다. 라이오스에게는 이오카스테에게서 난 자식에 의해 살해될 것이라는 신탁이, 오이디푸스에게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살게 될 것이라는 끔찍한 신탁이 내려진 겁니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신탁은 그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의 신탁은 인간이 거스를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운명과 같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주어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무기력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신탁, 즉 운명을 대하는 오이디푸스의 태도를 주목하면 다른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합니다. 오이디푸스는 처음에 자신의 아버지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전임왕인 라이오스를 살해한 범인을 찾기 시작하죠. 그런데 처음부터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탐문 수사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끔찍한 운명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탐문을 그치지 않고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는 이미 자신이 범인이며 신탁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직감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적인 최후 이후에 마치 총평과도 같은 느낌으로 코러스가 이런 문장을 관객에게 던져주는 것입니다. 이 문장처럼 오이디푸스는 승승장구하는 행복한 사람으로 볼 여지가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어 그동안 아무도 풀지 못했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냈고 테베의 왕좌를 차지하죠. 그 이후 그의 삶은 평탄하고 행복한 것처럼 보였지만 갑자기 발생한 전염병과 범인을 찾아내라는 신탁, 그리고 오이디푸스를 지목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말 때문에 불행이 시작됩니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고 그것을 보면서 코러스는 인간들 가운데 누구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말을 남기죠. 이 마지막 문장이 상당히 비극적으로 느껴져 남겨 봅니다.
시민들 중 그의 행운을 부러워하며 보지 않은 자 누구였는가?
어떤 무서운 재앙의 큰 파도 속으로 그는 휩쓸려 들어갔는가?
그러니 필멸의 인간은 저 최후의 날을 기다려 보면서,
누구도 행복하다 말해서는 안되리라.
고통을 겪지 않고 삶의 경계를 넘어서기 전까지는. ---p.120 오이디푸스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