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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세트 - 전3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 2013년 8월
평점 :

신곡은 지옥(이탈리아어: Inferno), 연옥(이탈리아어: Purgatorio), 천국(이탈리아어: Paradiso) 이렇게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편은 서른세 절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곡의 맨 앞부분에 이 시를 소개하는 절이 하나 있고 모두 100개의 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권짜리로 아름다운 날에서 출간된 <알기 쉽게 풀어 끈 신곡>을 오래전에 읽었고 이번에 민음사 3권으로 출간된 신곡을 읽었습니다.
증오심에 불타는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싸우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피가 흐르는 강 속으로 빠지고, 뜨거운 사막 위를 걸어야 하는 동성연애자들의 머리에 불이 쏟아진다고 묘사한 지옥에서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또한 그의 인생을 괴로움 속에 빠뜨렸던 위선적인 피렌체 시민, 그의 재산을 약탈한 사기꾼들과 탐욕스러운 횡령꾼들이 펄펄 끓는 기름 가마 속을 떠다니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지옥"은 지표에서부터 불타올라 지구의 중심에까지 이르는 지하의 심연으로 늪이나 호수에서는 악취와 증기가 피어오르며,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 열풍, 쏟아지는 비와 우박으로 하늘은 잠시도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미식가들도 더러운 것들을 마구 먹어야만 하며, 낭비가들과 탐욕가들도 결코 재산을 손에 넣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아비귀환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아는 인물들이 나옵니다. 교황 첼레스티노 5세, 교황 보니파시오 8세, 교황 니콜라오 3세, 교황 요한 22세, 교황 클레멘스 5세 등의 당대의 부패하고 무능한 교황들을 비판하고 있으며 귀도 다 몬테펠트로, 보카 델리 아바티, 베네디코 카치 아메네코, 에르콜라노 마코니, 쟈코모 다 산토 안드레아 등 당대의 정적들을 지옥에 등장시켜 복수하고 있으며 오타비아노 델리 우발디니, 브란카 도리아, 본투로 다티 등 이전 시대의 인물들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지옥의 구조는 다음과 같으며 역피라미드의 원추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지옥의 문 - 단테는 1300년 3월 25일 목요일 밤, 길을 걷다가 인간의 '악'을 상징하는 동물들에게 위협을 당한다. 이 때 베르길리우스가 그를 구해주고, 성모 마리아의 명으로 그를 지옥으로 인도해주는 길잡이가 될 것을 자처한다. 이후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지옥으로 내려가고, 그 곳에서 '지옥의 문'을 보게 된다. 지옥의 문에 새겨져 있는 글귀는 다음과 같다.
"슬픔의 나라로 가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 가거라.
영원한 가책을 만나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 가거라.
파멸한 사람들에게 끼이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가거라.
정의는 지존하신 주를 움직여
성스러운 힘, 최고의 지혜, 그리고
태초의 사랑으로 나를 만들었노라.
내 앞에 창조된 것이란
오직 무궁(無窮)이 있을 뿐, 나는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이니라.
나를 거쳐가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연옥은 카톨릭 교리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아있는 동안 지은 죄를 씻고 천국으로 가기 위해 일시적으로 머무르는 장소입니다. 12세기 유럽에서는 연옥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 ‘푸르가토리움(purgatorium)’이 등장하고 그 논리가 구체화 되었습니다. 가톨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13세기에 적극적으로 퍼져나간 연옥 사상은 공의회와 종교 심문에서 이단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14세기 작성된 단테의 《신곡》, 르네상스 시대의 성화, 조각 등에서도 연옥에 관한 수많은 이미지들이 등장시킵니다. 이처럼 중세부터 오늘날까지 연옥은 서양의 예술, 문학, 종교,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연옥에 대한 카톨릭과 개신교의 입장 차이가 큰 점도 있었습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천국과 지옥 흑과 백의 구조보다는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게 하는 연옥에 왠지 더 마음이 갑니다.
이윽고 수레를 탄 베아트리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천국 여행에 대비하여 자신과 그리핀의 눈에 비친 태양빛을 단테의 눈에 반사시켜 눈을 단련시켜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베르길리우스와 스타티우스에게 작별을 고하고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천국으로 오른다. 연옥편은 가장 철학적인 부분이어서 <신곡>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연옥의 구조는 피라미드와 같은 형태로 각 층은 일곱 가지의 대죄, 즉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색욕에 할당되어 있고 참회가 늦었던 자들은 연옥에 바로 입장할 수 없고, 연옥의 바깥에서 파문 후 인생의 30배만큼 파문당했다가 뉘우쳤을 경우 또는 자신의 인생만큼 참회에 태만했을 경우 기다려야 합니다.
단테와 그의 동행자는 차례차례로 여러 구역을 지난 뒤에 드디어 "지상의" 낙원에 도착합니다. 시인의 동행자는 이미 베르길리우스가 아니며, 그를 대신하여 "그의" 베아트리체가 "후광에 감싸여" 그를 천국으로 인도하게 되는데, "그는 그녀를 눈으로 똑똑하게 확인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녀로부터 나오는 신비한 힘에 의해서 옛날의 사랑에 대한 원초적인 힘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베다, 베르나르도, 요한 21세, 토마스 아퀴나스, 베네딕토, 아우구스티노 등이 천국에 가 있었고 하느님, 예수, 성모 마리아와 뜻밖의 인물 아담, 이브도 있었습니다.
“그대들의 씨앗을 생각하라! 그대들은 짐승처럼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덕과 지를 따르기 위해 태어났다.”_ 신곡 ‘지옥’편 26곡 중에서
지옥과 연옥, 천국의 세계를 거쳐 독자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단테의 박학다식함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단테가 만나게 되는 인물들입니다. 그는 이 환상 여행기에서 베르길리우스, 역대 교황들, 플라톤, 마호메트, 호메로스, 소크라테스, 토마스 아퀴나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스타티우스 등을 만나고 또 이야기합니다. 또 역사 속에 실존하는 이 인물들 외에 오디세우스, 아킬레우스, 제우스, 미노스 등 그리스ㆍ로마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물론 성서 속의 솔로몬, 유다, 다윗 등도 등장시켰습니다. 단테는 역사, 신화와 종교를 하나의 작품에 녹여내 그가 일생 동안 연구한 모든 것을 보여 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단테는 내세 순례의 안내자로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지옥과 연옥에서 동행했고 요절한 첫사랑이자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는 천국으로 불렀습니다.
단테는 신곡 속에 성서, 그리스ㆍ로마의 모든 고전,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플라톤의 우주론,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등 그가 일생에 걸쳐 연구한 모든 것을 매우 능숙한 솜씨로 자연스럽게 녹여냈고, 그리하여 인류는 중세를 넘어 근세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본성, 죄악과 구원, 영혼의 성찰에 대한 깊은 철학적인 내용이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으나 종교를 떠나 문학적 가치, 철학적인 내용으로 인간의 도덕성과 윤리가 계속 중요시되는 시기에 한 번쯤은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