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개
이언 매큐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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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은 1948년 6월, 영국 햄프셔 주 올더숏에서 데이비드 매큐언과 릴리언 바이올렛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 노동계급 출신의 군인으로 소령 계급을 달고 전역했습니다. 이 때문에 매큐언은 어린 시절 대부분을 영국이 아닌 해외에서 보내게 되는데요. 그의 가족은 그가 12살이 되던 해애, 비로소 영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매큐언은 영국으로 돌아오자 서퍽의 소년들을 위한 기숙학교인 울버스톤 홀 스쿨에서 교육을 받게 되는데요. 1970년에 매큐언은 서섹스 대학에서 영문학을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노리치에 소재한 공립 연구 대학인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수여 받습니다. 그는 등단한 이후로, 6번이나 부커상 후보에 오르게 됩니다. 1998년에는 장편, '암스테르담'으로 부커상을 수상하는데요. 이외에도 1981년에 '낯선 사람들의 위안'이, 검은개가 1992년에, 어톤먼트는 2001년에, 토요일이 2005년에, 체실 비치에서가 2007년에 각각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게 됩니다. 이런 매큐언은 2008년 더 타임즈가 선정한,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 목록에 올렸고, 데일리 텔레그래프 지는 그를, "영국 문화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100인들" 가운데 19위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작품은 원제, "Black Dogs"로 지난 1992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9년 5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이번에 제가 구입한 판본은 같은 해, 6월에 출판된 2쇄본 입니다.

이 작품의 제목과 관련해, "검은 개"에 대한 작가 나름의 설명이 대미에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다 그곳으로 돌아와 우리 곁에 유렁처럼 출몰해 떠돌 것이다. 유럽 어딘가에서, 언제가는"으로 매큐언은 우리에게 이 의미 심장한 메시지를 더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작품을 다 읽으신 분들은 이 검은 개가 의미하는 바가 어느 정도 명확하다고 여기실 텐데요. 저는 이를 "과거의 파시즘, 오늘날의 극단주의"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여기에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누구보다 정치적 감수성이 예민한 "준"이라는 한 인물이 참혹한 대전으로 폐허가 된 인적이 드문 프랑스의 어느 오지에서, 검은 개 두 마리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고, 이런 그녀에게 개 두 마리로 인한 닥친 죽음의 기억이, 스스로의 삶에 커다란 명시적 전환점이 됩니다. 여기에 그녀의 사위이자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 볼 수 있는 극중 제러미의 후일담은 단순한 개인의 체험을 넘어, 역사의 일그러진 단편과 맞물려, 그 실체로 이어지며 남게 되는데요. 그의 장모가 맞닥뜨린 그 땅에, 과거 게슈타포와 히틀러에 부역한 프랑스 비시 정부의 비밀 경찰로 이어지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굴절'이 바로 프랑스에 남긴 전쟁의 상흔이었습니다.

도저히 헤어질 수는 없고 그렇다고 다시 결합할 수 없는 묘한 부부인, 준과 버나드는 주인공 아내인 제니의 부모입니다. 이 두 사람은 유럽의 대전 이후의 세대를 표징하는 인물들이기도 한데요. 이들은 1936년과 1946년, 그리고 1953년을 거치며, 한 눈에 서로에게 사랑을 확인했고, 그 와중에 이 젊은 두 부부가 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각기 다른 외형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이들의 '분리된 삶'을, 현직 기자인 사위 제러미의 눈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시대의 상처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이토록 더할 나위 없는 자유주의의 번영속에, 오늘날의 유럽이 서구 자유 진영의 대표격으로 인식되는 현 시점에서,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고 그 땅에 수많은 시신을 묻을 수밖에 없었던 1946년의 프랑스는, 이 부부에게 세상을 온전히 눈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한국 전쟁을 몸소 겪은 세대에게, 전쟁이라는 실체는 아마도 동일하게 몸과 마음에 각인 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극중 3부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폴란드의 마이다네크 수용소에서, 제러미와 제니가 겪게 되는 그 마음 깊숙이 박히는 절망은, "방문객은 이곳에 와서 절망하거나, 아니면 손을 주머니에 더 깊숙이 찔러넣고 따뜻해진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악몽을 꾸는 이들에게 한 발 더 가까워졌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었다"라고 더해집니다. 수십만 명의 폴란드인, 리투아니아인, 러시아인, 프랑스인, 영국인, 그리고 미국인이 그 수용소여서 죽었다고 나와있는 그 몇 글자 마저도 우리에게는 먼 옛날의 뜬구름 같은 이야기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 작금의 인상일겁니다.

저 역시, 매큐언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유럽이 겪은 질곡의 역사를 특정한 개인의 지나온 삶과 연계시켜, 그것을 관통한 사람과 그저 역사로만 접한 후세대 간의 극명한 인식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결국 이 작품의 주인공인 제러미가 지난 날 장모의 좌절된 삶과 왜 프랑스 오지 마을에 은거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집요한 그의 집착은 이러한 겉모습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제러미가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양친을 잃고, 방황하던 십대 시절에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었던 그만의 사정, 다시 말해 그런 장치가 있었지만 말입니다. 즉, 자신이 보기에도 생각이 깊고 누구보다 감수성이 예민한 장모는 아내인 제니를 통해 맺게된 인연에서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그가 모친처럼 대하는 본심이 있었습니다. 그가 딸보다 더 오랫동안 별거한 장모와 장인어른 사이를 중간에서 이들을 잇는 역할을 자임한 것은, 제러미라는 인물의 본성을 엿보게 합니다

분명한 정치적 지향을 보였던 준은 1950년에 소련이 헝가리를 침공함으로써, 일말의 혁명적 아이디어를 삶의 지향점으로 계속 이어나가기 어렵게 됩니다. 버나드 역시, 그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본질적인 역겨움을 마찬가지로 몸소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대안으로 노동당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정치적 변절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당시 자유 노조의 시기라는 것은 그런 함축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겠죠. 때문에 버나드는 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의 삶을 위해, 그런 정치에 몸을 담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점에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준에 대한 원망과 두 사람 사이의 현격한 행동의 괴리가 나타나게 된 것이죠. 반대로 준이 말년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회의와 그것을 본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힘을 쏟은 것은 어쩌면 시대와의 타협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에 작품 속에서, "망각은 비인간적이고 위험하며 기억은 끝없은 고문이 될 터인데"라는 저의 눈을 절로 끈 문장은, 이처럼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는 마찬가지로 2부 '베를린'에서 겪은, 말살된 나치즘의 망령인 초기 네오 나치의 잔재, 그리고 그 당시에도 현실에 남아 있던 파시즘의 유령을 버나드와 제러미 둘다, 몸소 체험하게 되는 그 두려움의 실체는 1989년 그 시기에도 많은 유럽인들이 이미 역사를 망각하기 시작했다는 근거로도 읽힙니다. 우리가 애써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변하고, 끊없이 부정하고 망각했던 그 참혹한 역사의 잔재를 말입니다.


끝으로, 매큐언의 이 작품은 단순히 시대에 따른 이데올로기 투쟁이 아니라, 그 이데올로기가 왜곡된 정치 해석과 이행으로 유럽 사회에 남긴 상흔과 그러한 배경속에 과거를 살아갔던 한때, 청안의 젊은 부부의 인생 행로를 짚어나가는 나름대로 우리에게는 의미있는 서사이기도 합니다. 매큐언은 작품의 말미에서 콜린 크라우치처럼, 이 파시즘의 망령이 다시금 전유럽에 나타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었는데요. 검은 개를 맞닥뜨린 생전의 준이 라벤더 풀밭에서 미지의 존재에게, 생명을 위협당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집에 라벤더 비누를 풀어 놓은 것처럼, 파시즘과 전체주의의 망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역사의 증거를 유럽의 시민 모두가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 현 시점입니다. 그런 연유에서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이데올로기나 체제 그 자체는 참으로 역겨운 것이기도 한데요. 모두가 언급하는 시민의 정치적 선명성이란 바로 이런 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금 곱씹게 됩니다. 매큐언의 이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오랫동안 제게 각인될 것 같습니다.     


- 요즘들어 '자유주의적 관용'에 대해 고심하게 됩니다. 권력의 정당성을 어느 한쪽에게만 몰아주는 자유주의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정치적 자유주의, 물론 카를 슈미트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진정한 자유주의적 관용을 다시금 떠올려 봅니다.  




준의 신앙 표현이 숨막혔고, 자신들은 신앙이 있기에 선하고 신앙은 미덕이며 그러므로 불신은 무가치하거나 좋게 봐줘야 불쌍하다고 믿는 모든 신앙인의 무언의 가정이 불편했다.

준의 자식들은 자기 부모간의 차이라는 지겹도록 친숙한 주제가 얼마나 흥미로울 수 있는지 상상조차 못했다.

버나드는 벌써 수년 전 공산당을 떠나 노동당 의원을 지냈고, 기득권층이었고, 그중에서도 방송, 환경, 포르노그래피에 관한 정부 위원회를 담당하는 자유주의적인 분파에 몸 담았다.

빛의 목격, 진실의 순간, 전환점, 그런 것들은 필시 포화상태인 옛 추억을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 헐리우드 영화나 성경에서 빌려오는게 아니던가?

"그럼 왜 세상이 개혁되지 않았지? 무상의료며 임금인상, 가구마다 자동차며 텔레비전, 진동칫솔 따위가 다 갖춰졌는데, 어째서 사람들은더 행복하지 않은 걸까? 이런 개혁에 뭔가 빠진 게 아닐까?

30년대의 공개재판과 숙청, 집산화, 대규모 수송, 강제노동수용소, 검열, 거짓말, 박해, 대량학살...... 결국은 모순은 너무 커지고, 신념은 깨지지.

이런 수용소를 기획하고 짓고 그토록 공들여 집기를 들이고 운영하고 유지하고 마을과 촌락에서 인간 연료를 거둬온다는 것이. 그 정력이라니. 헌신이라니. 어떻게 이런 일을 실수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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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1
리처드 턱 지음, 조무원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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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프랜시스 턱은 1949년생으로, 영국의 정치 이론가이자 정치 사상가입니다. 그는 유년시절, 영국 뉴캐슬 타인 지역의 오랜 사립학교인 로열 그래머 스쿨을 거쳐, 케임브리지 대학의 지저스 스쿨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턱은 케임브리지에서 역사학으로 학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73년부터 1955년까지 케임브리지에서 가르쳤으며, 그 후 하버드 대학의 교수진에 합류하여 프랑크 F. 톰슨 정부학 교수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1994년, 영국 아카데미 펠로우로 선출됩니다. 이런 학문적 경력 이외에, 턱은 지난 브렉시트와 관련해. 자유로운 좌파 정책을 펼칠 수 있는 노동당 정부를 옹호했으며, 우익적 목표를 충족시키는 신자유주의적 구조를 강요하는 유럽연합 (EU)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Hobbes : A Very Short Introduction, First Edition"으로 지난 1989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0년 12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미셸 푸코를 통해, 오늘날 새롭게 재조명 되고 있는 토머스 홉스에 대한 리차드 턱 교수의 의미있는 개론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홉스는 과거 데이비드 흄에 의해 철저히 멸시되기는 했지만 근래 푸코의 혁명적 아이디어와 그 이전의 공리주의자들에게 사상적 영감을 제공한 사상가였습니다. 특히 홉스는 당시 종교라는 기득권과 새롭게 대두하고 있던 철학의 분리를 강조했고, 어떻게 보면 루소보다도 더 일찍, 소위 '자기 보전의 권리'라는 인간의 생명 유지와 삶의 보전이라는 측면의 권리를 누구보다 빨리 인정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러한 인식 가운데, 커먼웰스와 주권자라는 개념은 당시 영국 휘그당의 정치인들을 비롯, 일반 귀족 계층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바가 있습니다. 다만, 리바이어던 이후, 그가 이신론에 가까운 종교적 회의론자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당시 종교 보수주의적 시대에 정확히 배척을 당하면서 정치적 및 경제적으로 곤란한 만년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저자인 리차드 턱은 이러한 홉스의 사상이 근대성과 그 실험이라는 몇 세기의 인류 지성의 개변 시기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고 밝히고, 또한 현대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었던 공리주의적 아이디어의 배경적 지식을 제공한 이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학문적 성과는 충분히 재평가를 받아야만 한다고 여겨집니다.

홉스도 당시 여느 지식인들처럼, 인문주의자로서의 삶을 견지합니다. 이는 말 그대로 현실 정치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하며, 후에 등장할 프랑스 백과전서파의 축소된 의미처럼, 그런 학문의 지향을 추구했습니다. 이는 과거 그리스 철학과 문학의 지향점과 유사한 것일 텐데요. 여기에 스스로 찾게 된 광범위한 '철학'에 대한 관심도 포함해야겠습니다. 물론 초기에 홉스는 갈릴레이를 통해, 과학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만 갈릴레이가 신념으로 내비쳤던 '그 위험한 사상'으로 말미암아 교황청에 처벌을 받게 됨으로써, 그런 직접적인 원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홉스 역시, 현실 종교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됩니다. 물론 이런 완고한 종교적 기득권에 대해, 후고 그로티우스가 누구 못지 않은 영향을 홉스에게 끼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요. 홉스가 강고한 칼뱅주의자들에게 뜨악한 감정을 가졌던 것은 이를 어느 정도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홉스는 17세기의 종교가 유럽에 수많은 내전을 일으킨 당사자로 인지하고 이들 대부분이 명백한 '광신도 집단'이라고 인식합니다. 또한, 턱 교수의 입을 빌어, "홉스가 의무보다는 권리와 자유"에 관심이 더 컸다는 분명한 증언은 그가 영국의 유력 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당시 통치 시스템이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그다지 충족되지 못했던 현실의 한계에서 인지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문주의자들은 역시나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여기서 약간의 논외지만, 이 글의 후반부 논증을 거쳐, 홉스가 가졌던 이신론과 시민종교에 대한 관념들이 후에 등장할 계몽주의 사고를 미리 예견했던 것이라고 보는 저자의 분석은 저의 시선을 끌기도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홉스가 불편하게 여겼던, 당시 칼뱅주의자들은 그로티우스를 추방하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근대 회의론과 후기 회의주의 철학에 위협으로 여겼던 것도 네덜란드의 칼뱅주의자들이었는데요. 강경한 그로티우스와 타협하지 않는 칼뱅주의자들이 만난 역사적 사례는 홉스에게도 잠시 크롬웰 시기의 평안함을 제외한다면 이후, 스스로 고유의 사고를 위해서는 그다지 녹록치 않는 환경이었습니다. 귀족과 연계되어 삶을 이어가는 소위 명사라는 입장에서 홉스의 이신론과 도덕적 상대주의는 여러 측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데요. 이미 그로티우스는 종교가 강력한 국가의 통제를 받아야만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홉스 역시, 매번 그런 내면의 양심을 숨길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이와는 별개로 그로티우스는 노골적으로 "국민국가는 다른 국가를 도울 하등의 의무가 없으며, 단지 서로를 해치지 않을 의만을 지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자인 턱의 분석대로, 이런 그로티우스가 홉스에게 남긴 것이 적지 않았는데, 특히, 초기 자연권에 대한 아이디어이기도 했던 그의 생각은, "모든 권리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대명제였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비자유주의적인 원칙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런 그의 생각이 리바이어던을 관통하는, 홉스의 "자기 보존의 권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물론 자기 보존의 권리는 후에 장 자크 루소가 고안해 낸 생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읽히게 됩니다. 다만, 홉스도 존 로크의 작업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고, 후세의 루소가 이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따라서 시민과 주권에 대한 일반 의지를 고안했던 점은 어떻게 보면 이 시기, 홉스의 작업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디. 

이처럼 홉스의 유년 시절에 유행했던 몽테뉴와 같은 특별한 인문주의는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었는데요. 인간들의 신념과 관습의 다양성을 알리긴 했지만, 이것의 공통된 도덕적 분모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이들 인문주의자들이 세상에 대해 자포자기 하게 된 것은, 인간 존재 자체가 위험천만하고 서로가 경쟁하는 이념들 사이에서 인간들 대부분이 자신의 안전에 주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것을 인문주의가 효과적으로 뒷받침하는 데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 보존의 욕구는 그 자체로 도덕적 원리라는 일종의 '자연권'이라는 개념 자체는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를 위해 법을 연구하고 고안한 그로티우스는 물론이거니와, 홉스도 그러한 동질의 생각을 갖게 된 것인데요. 이는 여실히 그의 논저, '리바이어던'에 투영되기도 합니다. 생명과 자기 보존을 위해, 자연 상태에서의 불확실성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 설사 대안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이 자연 상태를 중인들에게 폭로하기 위해서라도 - 홉스는 어느 정도 사명감을 갖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이에 홉스는 그의 저서, '법의 기초'에서, "모든 인간은 자연권으로 인해 자기가 처한 위험에 대한 수단의 필요성과 그 위험의 크기를 스스로 판단한다"고 명백한 주장을 펼칩니다. 이러한 연계는 '시민론'과 '리바이어던'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홉스 정치 이론에서 특색이 있는 것의 거의 모든 부분이 이 단순한 명제에서 비롯되었다고 저자인 턱은 분석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홉스의 특별한 관점은, "외부세계에 대한 명백하고 객관적인 진실은 없으며, 모든 인간은 무엇이 자신에게 위험한지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을 하리라는 틀링없는 사실이 되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서사는 꽤나 설득력을 갖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상황에 대해 자신만의 평가에 근거하여 행동할 것"이라는 마찬가지의 현실론적인 분석은 쉽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결국 '자연 상태로 내몰린 인간'이라는 철학적 서사와 그런 배경을 통한, 현실의 재해석, 그리고 이러한 가운데 어떻게 하면 우리 인간이 자기 보전의 권리를 추구할 수 있겠는가는 당시 이단아였던 홉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홉스를 짜깁기 했던 소위 대전에 관여한 카를 슈미트와 레오 스트라우스로 대변되는 극단적 전체주의에 있어, 마찬가지로 큰 영감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로티우스와 존 셀든을 통해 점층된 사유로 강화한 홉스는 이후, 겸허하면서 중립적인 주권자라는 개념을 (새롭게) 잉태하기에 이릅니다. 이것은 후에 공리주의자들에게 시민들의 의지를 공리주의적 규범에 굴복시킬 수 있는 전능하고 중립적인 주권자가 필요하다는 이들의 감각으로 이어지는데요. 이 부분과 관련된, 저자의 분석대로, "홉스를 흠모한 공리주의자들은 사회적 목표를 보장하는 국가의 권리에 대한 그의 설명을 빌려 오면서도 그러한 사회적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설명을 끼워 넣었다"고 해석합니다. 결국 토머스 홉스는 이들 공리주의자들에게 결코 없어서는 안될 사상의 본류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홉스를 근대성과 근대주의의 기반을 제공한 인물로도 읽히는 근본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의 유명한 논저, '리바이어던'이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들을 공부하는 것의 폐단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차 있는 점과 홉스는 이러한 공부가 독자들로 하여금 '자유'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는 의견을 저자는 덧붙입니다.

당시 많은 인문주의자들은 "자유로운 코먼웰스의 자유로 인해서 그들 스스로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홉스는 이 점을 거부합니다. 또한, 홉스는 이 코먼웰스의 명백한 자유와 이것을 근본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주권자의 존재에서, 백성들이 이 주권자를 강제할 수 있는 것은 권리로서가 아니라 주권자에게 부여된 도덕적 의무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것을 백성들의 전방위적인 권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백성과 주권자, 양자 간의 도덕적 토대의 이해관계로 읽히기도 하는데요. 마찬가지로 오늘날 주권자에 대항할 수 있는 시민들의 권리가 협소하다는 사실 자체는 단순한 논리 관계가 아니라, 그것이 기반한 맥락이 의미심장하다고 여겨집니다. 권위와 전제적 권력을 휘두르는 비자유적 주권자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이 무조건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본다면, 홉스가 분석한 주권자의 존재 자체는 비정치적인 의미인 동시에, 어떻게 보면 정치 초월적인 의미로도 읽힙니다. 그런 측면에서 홉스가 종교가 더 이상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기를 바란 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끝으로, 저의 이 책과 관련된 서평은 꽤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글 말미에 적어두고자 합니다. 홉스의 핵심 사상을 담은 '법의 기초'와 '리바이어던'을 읽지 못한 관계로, 저는 그저 리차드 턱 교수의 해석에 홉스를 이해하는 데,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도덕적 상대주의에 대해 우리가 어떤 인식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 글이 충분한 반면교사가 되었고, 우리에게 법은 강제를 띠게 되지만, 무엇보다 세인 모두에게 도덕적인 측면의 본보기 내지는 귀감이 되어야 한다는 소위 이상적인 법철학에 근거한 여러 아이디어들에 대해 고심해 보게 됩니다. 더군다나 앞선 자연 상태에 대한 논법이 홉스와 루소가 서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이나, 칸트로 이어지는 철학의 재정립의 시기 이후, 우리가 인식하는 홉스와 그의 리바이어던이 후세에 얼마나 협소한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명철하게 쓰여진 유명한 논저 역시, 후세에 이르러 오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근대 정치의 현실은 조작, 기만, 협박이었으며, 이것을 포착한 고전 작가는 키케로가 아니라 타키투스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는 우리 내면의 정신적인 삶과 우리 앞으로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들에 대해서도 틀림없이 설득력 있는 지식을 가질 수 있다.

비록 데카르트가 윤릭학과 정치학을 자신의 새로운 철학적 기초 위에 두려고 했다고 다소 모호하게 포명하긴 했지만, 그는 눈에 띄게 성공하지 못했고 정치에 관해 좀처럼 쓰지 않았던 주요 철학자들 중 한 사람으로 남았다.

따라서 정부에 의해서 주장되는 권리와 의무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자연 상태에서의 권리와 의무로부터 비롯되거나 이와 양립 가능해야만 했다.

"리바이어던"에 담기 내용을 알게 되자 홉스의 오랜 왕당파 친구들은 그와 더이상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했고 홉스를 ‘무신론자‘,‘이단자‘,‘반역자‘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홉스는 1666년부터 죽을 때까지 자신의 신념을 이유로 투옥되거나 추방될 무서운 가능성에 직면해 있었다.

언어는 실재와의 관계가 난해하고 논쟁적인 단순한 형식 체계이지만, 추론에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기도 하다.

이들 인문주의자가 결국 믿게 된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위험천만한 세상, 그것도 경쟁하는 이념들로 인해 두 배로 위험해진 세상에서 인간들이 자신의 안전에 주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홉스의 우선적인 과제는 상대주의가 옳다는 점과 이것을 자신의 과학철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보이는 것이었다.

우리에 대해서 주권자가 가지고 있거나, 우리를 위해서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권리는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수단이 무엇인지 고려할 권리이다.

예컨대 일반적인 경제적 번영은 사회적 갈등을 잠재우기 위해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국가를 번영시키는 것은 그 무엇이든 홉스의 이론 안에서 정당한 듯 보인다.

시민과 주권자 모두의 주된 책무는 그들 자신과 동료 시민들의 물리적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다.

비록 교조주의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국가는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필요 외에는 어떤 종류의 교의도 고집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마키아벨리는 기독교가 정치적 관점에서 특별히 만족스러운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했으며 고대의 종교와 같은 것들이 훨씬 더 좋을 수 있다고 암시함으로써 이전 세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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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는 좌파가 아니다 - 진지한 민주주의자를 위한 선언
수전 니먼 지음, 홍기빈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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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난 수전 니먼은 미국의 도덕 철학자, 문화 평론가, 수필가 및 대중 지식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식인입니다. 그녀는 고교 시절, 학교를 중퇴하고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는데요. 이후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존 롤스와 스탠리 카벨의 지도를 받으며,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1989년부터 1996년까지, 그녀는 예일 대학에서 철학과 조교수와 준교수를 역임하고, 1996년부터 2000년까지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에서 철학 준교수를 맡기도 했습니다. 특히 니먼은 록펠러 재단의 연구 펠로우, 미국 학술 학회 협의회 (ACLS)의 수석 펠로우로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외 그녀의 학문적 연구 방향은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철학사 전반을 살펴보고, 이 시기의 라이프니치, 칸트, 헤겔, 니체, 쇼펜하우어, 프로이트, 카뮈, 레비나스, 한나 아렌트 등의 사상과 연구를 깊이 천착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니먼은 인간에게 주어진 도덕적 명확성이라는 보다 높은 철학적 과제와 인간 본성의 본질적인 탐구를 통해, 인간과 정치, 그리고 그것을 아우르는 '효용있는 철학'의 방향을 여전히 모색하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Left is Not Woke"로 지난 2023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4년 4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참고로 번역은 홍기빈 선생이 맡았습니다.

니먼의 이 책은 그녀 스스로가 뒷부분에서 2022년 4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있었던 애쉬비/태너 강좌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었는데요. 이 글에서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그녀가 출간한 논저들 대부분이 '진보주의와 그에 따른 철학의 현실적 문제'가 주요 탐구 주제였습니다. 또한, 이 글 역시,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논저라 여겨지는데요. 여기에 등장하는 워크(Woke)는 단편적으로는 깨어있는 자, 혹은 스스로 깨어있는 정치 의식을 기반으로, 남들과 다른 정치적 선명성을 가진 사람의 정치 등으로 해석해 볼 수 있지만, 보다 정확한 의미는 오늘날 정체성 정치 운동 내지는 그것을 지지하는 견고한 도덕적 지지행태를 뜻합니다. 즉, 니먼은 "이러한 정체성 정치는 결코 진보주의 운동, 좌파와는 다르다"는 이른바 그 한계를 제목에서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었는데요. 특히, 오늘날 정체성 정치 운동 전반이 우리 시대의 오랜 기초가 된 계몽주의와 결별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비판하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자인 니먼은 계몽주의에 기반한 보편주의가 결여된 '정체성 정치'는 그야말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녀의 주요 논점이기도 했습니다.

전통적인 좌파에게 있어서 '보편주의'는 자신들의 정체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기반이 되었던 원리였습니다. 그리고 정치학에서 로버트 달이 스스로 다원주의를 강조한 것은 어떻게 보면 이런 보편주의가 그것의 기반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보편성 및 보편주의가 결여된 좌파란 이 세상에 존재할 수도 없고, 또한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부분이 좌파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해석이기도 한데요.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로, 소위 그간 '좌파의 몰락'이라는 현상을 폭로했던 샹탈 무페의 언급이나,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래로 인한, 탈이데올로기, 탈인식론의 입장에서 인간을 체제를 유지시키는 경제적 지위로 해석하는 이런 '새로운 시대'는 진보주의와 좌파를 자의반 타의반 무능력한 무리로 몰아갔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분석에서 이 신자유주의 시대를 이 글 5장에서, "자기이익이라는 이데올로기"라는 아주 직접적인 문구로 시대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결국 이 자기이이익이라는 이데올로기와 보수주의를 결부시켜 생각해 본다면, 정체성 정치와 외형상 아주 확연하게 대립하는 보수 정치에 대한 양자간의 걸개를 대략 짐작해 볼 수도 있겠는데요. 극단적인 측면에서 이타주의를 개인의 이익으로만 치부하는 교묘한 비도덕적 작업과 사회를 이익이라는 수단으로만 해석하는 부류들이 적지 않다는 현실, 그리고 더 나아가 노골적인 탈계몽주의적 관점, 그에 따른 탈정치의 일면이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다시금 고민해보게 됩니다. 


저자인 니먼은 2장에서, 현재 범람하고 있는 부족주의와 관련해, 그동안 신자유주의가 각국의 시장과 경제적 이익 등을 여기에 연결시켜, 소위 세계를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개방시켜 나갔지만 그저 노골적인 경제적 이익화를 제외한다면 그것의 개방성은 대체로 제한된 의미로 국한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개방의 시대에 여전히 종식되지 않은 '인종주의'라는 존재는 이렇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니먼은 우리의 역사가 진보되어 왔고, 특히 미국 사회에서 흑백 분리와 같은 과거 지독한 인종 분리 정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미국 정치가 인종적으로 흑인인 대통령을 백악관의 주인으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과 완전히 왜곡된 반대편에 있는 인물인 도널드 트럼프를 정치에 등장시킨 것은 외형상 과거의 인종주의를 불식시킨 그런 현상의 반발력이 일으킨 현상이라고 봐야 할까요. 이에 니먼은 진보는 무조건 반발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철학적 맥락의 해석을 덧붙이고 있었지만 이런 단순한 맥락의 서사는 저로서는 쉽게 납득이 되질 않았습니다.

오늘날 미국 사회, 특히 대학 전반은 저자의 말마따나, 노골적인 "계몽주의 때리기"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현상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18세기 이후의 계몽주의적 역사가 인간의 권리, 사회적 진보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는 점을 당연히 니먼 만큼이나 동의하고 있는데요. 일전에 다른 독서 모임에서 토론에 참여한 이들이 "계몽"에 대해 매우 반감을 갖고 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저로서는, 인간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악의 본성'과 다른 영장류에 비해 두드러지는 폭력성과 그것을 끊임없이 도덕적으로 제어하고자 노력했던 계몽주의의 노력을 마찬가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다시금 떠오르는 것이지만 상대적으로 저자는 다른 인용들을 통해, 인간이 그 정도의 폭력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보다 철학에 기반한 도덕적 본질의 존재로 규정한 이면에는 계몽주의, 즉 보편주의의 오래된 역사가 기반해 있기에 그런 해석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인간의 역사에서 수많은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인간의 존재성 문제에도 불구하고 칸트와 같이, 이성이 기반이 된 도덕적 통제를 강조한 계몽주의자들이 있어 왔기에 인간의 본성을 새롭게 규정하게 되지 않았나 고민해 보게 됩니다. 과거 야만의 시대를 거쳐, 이 계몽주의 운동이 인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된 점이 우리가 체험했던 진보의 원동력이 되었던 증거입니다. 

우리는 흔히 워크 컬쳐를 일종의 진보주의 운동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인종주의와 관련된, 정체성 정치는 꽤나 단호한 사회 운동으로 보통 여겨지는데요. 물론 일전에 로빈 디앤젤로가 비판적으로 언급했듯, 아직도 미국의 많은 백인들은 작금의 인종주의가 별반 문제가 없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이것은 사회의 주류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라고 볼 수 있는 인종인 백인들이 자신들의 사회에 대한 성찰이 얼마나 미흡하고 미진한가를 엿볼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한데요. 니먼이 인용한 프란츠 파농의 사례를 다시금 살펴봐도, 인종주의는 인간의 보편성을 무시하는 동시에 개인의 인격적 개성도 무시하는 심각한 문제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워크 운동 자체가 소위 평범한 보수주의부터 극단주의 세력에 이르기까지, 이런 흐름이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은, '사상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그 경직성이 이들에게 부정의 대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들 극단주의 세력들은 워크 woke 가 초래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제한'이 인간의 영혼을 침식시킨다는 말로 강조하니 말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카를 슈미트 식의 정치적인 자유와 신자유주의 사이에 한가지를 택해야만 한다면 참으로 심각한 딜레마를 초래하게 될 겁니다. 니먼은 마크 릴라보다도 더 카를 슈미트, 혹은 그가 남긴 지적 유산을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었는데요. 슈미트는 정치를내편과 적이라는 '피아 식별'로 규정하고 이후의 정치의 건전성을 왜곡하는 줄도 모르고 후세의 지식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추앙을 받은 인물입니다. 이미 니먼도 언급하고 있지만 슈미트는 단 한번도 나치에 부역한 일을 진심으로 반성한 바가 없는 인물입니다. 물론 제 잘낫다고 과거를 성찰하지 않은 한 인물 때문에 정치가 변곡점에 휩싸였다고 싸잡하 치부할 순 없지만 세계 여러 곳에서 보이는 정치적 결단주의의 행태는 그가 어느 정도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수많은 진보주의자들이 카를 슈미트에게 매료되었다는 그녀의 평가는 이 시점에서 복잡한 감상을 들게 만듭니다. 이는 슬라보예 지젝 역시, 인정했던 부분이기도 한데요. 사회 내부에서 어떤 선택의 여지가 제한받게 될 때, 이 극단의 지점에서 그런 원인을 해석할 수 있는 수단을 찾게 되는 것은 지식인들 뿐만 아니라 이성으로 사고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습성이기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이 카를 슈미트를 호의의 시선으로 본 연유에도 기존의 보편의 논리와 그것의 궤가 상당히 달라, 이처럼 그간 정치철학에서의 '슈미트 대두'는 그저 신기한 현상으로만 볼 수 없는 특이한 광경이기도 합니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카를 슈미트는 진보 뿐만 아니라 평범한 우리에게도 특유의 사고로 흡사 손쉬운 해결책을 제시했다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인 니먼의 분석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있어 진보주의 혹은 진보주의자는 바로 좌파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좌파는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일련의 자세를 견지하는 정치라고 이 글에서도 드러나고 있는데요. 단순히 사회의 문제만을 나열하는 워크와는 사뭇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해묵은 논쟁들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이익으로 삼는 정치적 변절자들도 많은 것도 분명 사실이지만, 워크가 사회적 진보에 이르는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말마따나 워크와 좌파는 분명 확연한 차이점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또한 좌파는 이라크 전쟁과 같은 부도덕한 전쟁에 대해, 끊임없이 파고들며 비판했고, 더 나아가 이를 폭로했던 것이, 이들이 보이는 '도덕적 명징성'의 한 발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독한 편집증적인 태도로 문제를 파고들어, 일부의 이익으로 삼는 그런 행태를 비판해 마지 않는 점은 과거 좌파의 선명성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진정한 좌파는 이제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퍙가도 어느 정도 수긍이 되기도 하는데요. 즉, "좌파에 입장에 선다는 것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자신과 남들의 삶을 현실에서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지한다는 것을 말한다"는 4장의 논증은 이처럼 분명한 차별점으로 읽힙니다.

끝으로, 니먼은 시장의 자유가 국가의 기초가 되었던 시기를 거쳐, 푸코의 설명대로 이런 신자유주의가 세련된 인식으로 여겨지는 세계의 진면목을 우리는 매일 인식하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와중에 정치의 붕괴는 지속되었고 마가렛 대처 식의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시녀로 전락하는 몇 십년의 시기 동안, 아주 노골적인 정치적 파시즘이 정치 분열을 자양분 삼아, 미국에서 새롭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일 텐데요. 그가 등장할 즈음에 바로 앞선 정체성 정치가 도덕 본질의 왜곡된 현상으로 나타났고 낯색 하나 바꾸지 않은 노골적인 거짓말이 정치의 주요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즉, 다음 4년의 트럼프 임기는 분명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적지 않은 위기가 될 것임은 단편적인 추측이 아니라, 직면한 파시즘적 정치로 인해 그 심각성이 대두될 가능성이 몇해에 걸쳐, 농후하다 볼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진보주의 정치 그리고 좌파의 몰락은 많은 사회가 계몽주의적 보편성에 더욱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고, 설사 한줌도 안되는 좌파의 몰락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허위와 거짓 뉴스, 노골적인 거짓의 언사, 인종차별 등 과거 위선적인 조지 W. 부시의 시대조차도 감히 꺼낼 수 없었던 일들이 우리 정치의 자화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남을 포용하고 인정하는 것보다 증오하고 백안시 하는 것이 일상사인 인간의 본성에 빗대어 봤을 때, 이는 전자보다 손쉬운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극단주의는 바로 사람들의 이러한 본성을 더욱 부추겨, 정치를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갑니다. 이제 우리 정치와 더불어 세계 정치의 파국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를 무엇보다 고민해 봐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글 말미에 이르러 니먼은 어느 정도 회의적인 시선을 보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제시하는 일종의 '인민전선 popular front'의 아이디어는 꽤나 설득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이는 좌파의 연대, 진보주의의 탁월한 연합이 시민의 연대로 이어져, 도널드 트럼프와 극단주의자들의 발호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밝히는 것인데요. 그만큼 시민의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기가 다가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작금의 우리 정치에 있어서도 말입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의 정부 4년 내내 흑인이나 라틴계에 대한 인종주의를 공공연히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로부터 받은 표가 오히려 2016년 선거 당시보다 늘어났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슈미트와 하이데거를 감싸는 이들은, 반유대주의가 나치즘의 본질적 요소였다는 요즘 통용되는 전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워크 운동 덕분에 우리는 백인이라는 것이 여러 정체성 가운데 하나 정도가 아니라 인간 전체를 대표하는 것, 즉 중립과 규범 사이의 어떤 것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오늘날 부족주의는 더욱 역설적이다. 인종이라는 것 자체가 인종주의자들이 만들어낸 개념이라는 점 때문이다.

케냐의 몸바사에서 태어나느냐, 미국의 맨해튼에서 태어느냐에 따라 삶이 완전히 달라지고 수명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릴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또한 계몽주의가 내세우는 보편주의라는 것이 점점 비백인화되고 있는 세계에서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유럽의 특정 이익을 은폐하고 있다는 오늘날의 주장과 위험할 정도로 가깝다.

그러나 2020년 BLM 운동이 이렇듯 보편주의적 성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종주의 우파는 재빠르게 이를 정체성 정치의 한 사례로 몰아가버렸다.

하지만 유대인은 피해자이며 독일은 가해자라는 관계가 독일의 자기 이미지에서 중심을 차지하게 되는 바람에, 독일인은 유대인을 희생자 이외의 다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잃고 말았다.

인종주의 시스템이라는 것은 인간의 보편성을 부인하는 것과 동시에 개인의 인격적 개성도 부인하는 것이므로, 인종주의 시스템을 해체할 것을 자신의 신조로 삼은 파농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라는 것이다.

21세기 초입이라는 시점에서 ‘민주주의‘니 ‘자유‘니 하는 말들이 실로 어이가 없을 정도로 남용되고 오용되는 바람에 아예 진실성 자체를 의심받게 되었다.

극심한 검열과 문맹이 만연했던 시대, 누구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기 스스로 생각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사회를 폭파시킬 만큼 위험한 것이었으며, 교회 당국은 막강한 권력을 동원하여 이를 힘으로 억눌렀다.

자신이 자유주의 왼쪽에 있다고 여기는 독자들이 슈미트에게 끌리는 유일한 이유는, 자유주의의 실패와 위선에 대한 그의 신랄한 비판 때문이다.

왜냐하면 ‘인권‘이라는 개념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그 개념이 무엇이건 간에 벌거숭이로 날뛰는 권력에 제한을 가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는 권력을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진리를 내세우고 공정하게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행동할 때도 많다.

좌파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자신과 남들의 삶을 현실에서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지한다는 것을 말한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인종주의가 끈질기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정말로 창피한 일이며, 반세기 전의 민권 운동을 목도했던 이들이라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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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애덤 셰보르스키 지음, 이기훈.이지윤 옮김 / 후마니타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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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셰보르스키는 1940년, 나치 치하의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의사였는데, 그가 만난 적이 없는 부친은 1939년 폴란드 군대에 징집되어, 1940년 소련군에 의한 조직적 군 범죄이자, 폴란드 엘리트 계층을 말소에 희생 불가능한 사회적 타격을 입힌, '키틴 학살'로 희생 당합니다. 이런 쉐보르스키는 1961년 바르샤바 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그의 인생의 특별한 전환점이 되었던, 노스웨스턴 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R. 배리 패럴을 만나게 됩니다. 이후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본격적으로 정치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비로소 1966년이 되자, 그는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 대학과 시카고 대학을 거쳐, 뉴욕 대학(NYU)에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현재 그는 뉴욕 대학의 명예 교수이기도 합니다. 셰보르스키는 그의 총체적 학문 성과들 가운데, 비교 정치학의 방법론적 실행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 학자로 민주주의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여러 논저를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민주주의에서 선거제도와 이런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경향성을 그는 연구하기도 했는데요. 이외에도 민주주의와 시장, 민주주의와 자치, 민주주의와 경제적 개발에 대한 여러 논문과 글을 발표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Democracy and the Limits of Self-Government"로 지난 201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4년 7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오늘날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들이 주로 보편적인 선거 제도에 따른 정치 권력의 선출로 이해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장 자크 루소와 콩도르세로 대표 되는 프랑스 혁명 전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해석은 주로 그 이전의 귀족주의 및 귀족 정치에 대한 반대와 이견으로 후대에 잘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물론 오늘날 공화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혼용되어 쓰이고 있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현실 정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 그리고 헌법에 대체로 녹아 있는 공화주의적 가치는 여러 세월동안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 그 자체"로 뭉뚱그려 이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일전의 우리 정치에서 공화주의적 가치를 강조했던 필립 페팃의 주장들을 다시금 곱씹게 되는 이유이기도 한 데요. 마찬가지로 저자인 셰보르스키가 존 듀이를 꼭 집어 인용하며, "과거 정치 체제에서 경험한 폐해를 해결하는 것"으로 혁명 전후의 민주주의 실현에 대한 당위로 삼는 점도 앞선 페팃의 공화주의와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지금에야 민주주의 자체는 시민들에 의한 선출된 정부와 그 체제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니 만큼 과거의 사상과 오늘의 현실이 어떻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과정 속에 우리가 유념해야 될 민주주의의 이상과 그 민주주의의 명백한 현실적 한계가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더욱이 저자인 셰보르스키 역시, 로버트 달 만큼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으며, 그가 참혹한 대전을 거쳐 도달한 미국에서 여러 근본적인 정치 변화와 같은 일련의 체험 역시, 특유의 외부인이라는 입장의 시선으로 글 전반에 깊이 묻어 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각각의 장에서 주장하는 민주주의와 밀접한 가치들을 정치적 비교 분석의 전문가인 저자가 그 의의와 한계를 명확히 짚어 내고 있습니다. 인민의 자치와 대의제, 평등과 자유, 그리고 선거 제도 전반의 대리인이라는 특수성을 각각의 세밀한 논증 들을 통해, 마찬가지로 독자에게 상세히 알리고 있었는데요. 최근의 많은 정치학자들이 일관되게 우려하는 바와 같이, 저자도 포퓰리즘에 의한 전제적 민주주의가 초래할 정치 붕괴 가능성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많은 민주주의 사회가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확대와 각종 SNS의 범람으로, 정치에 있어 허위와 거짓 뉴스의 범람을 여실히 목도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바로 이런 문제들로 말미암아, '효과적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인'이라는 왜곡된 대적자를 실시간으로 어떤 딜레이도 없이 인식할 수 있는 작금의 환경입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 그 자체였던, 그동안의 '대의제'가 매우 이질적으로 변질되어 왔고, 그런 여러가지 요인 가운데, 인민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인정과 수용이 나날이 현실적으로 제한받아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주지하듯 일부 계층이 현실에서의 정치적 불신과 양비론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현재 미국의 FOX 뉴스와 같은 아주 철저하고 교묘한 이데올로그적 규합이 여기에 사태의 악화를 추동한 원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결국 저자가 서론에서 결론 내리고 있듯, "민주주의는 경제적 평등, 효과적 참여, 완벽한 대리인, 자유"라는 네가지 관점에서 모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도출해 내는 것에 이르는데요. 이러한 한계는 결국 이후의 논증을 거쳐, 시민의 전반적 삶과 우리가 스스로의 삶을 건전하게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특히 '경제적 평등에 대한 요구와 그런 목소리 자체의 억압'은 국가의 '일반적인 목적론'을 무위로 만들고 더 나아가 변질 시키는 동시에, 근본적으로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재산에 따른 권력 차별적인 권력 분배와 더 나아가 민주주의에 있어, 돈이 권력을 사게 되는 왜곡된 현실을 더욱 조장하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조지프 슘페터는 "민주주의의 원리가 의미하는 것은 정부의 지배권이, 경쟁하는 개인 또는 팀 가운데 더 많은 지지를 얻는 사람들에게 이양되어야 한다는 것 뿐"이라고 그 한계를 명확히 했는데요. 슘페터가 민주주의 정체에 대한 회의감을 숨기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다수파와 소수파의 대결이라는 측면에서 일반적인 정당의 정치적 대결이 타협의 산물임인 것은 저자의 분석 만큼이나 적지않은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의 근본적인 한계는 나날이 인민이 정치적 결정에서 더욱 배제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런 대의제 환경에서 모든 시민들이 다른 시민들을 통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민주주의적 자치'라는 여기에서 다소 대의적인 측면과 갈수록 멀어져, 그야말로 엘리트 정치인들에게 스스로의 권리를 위임하게 만드는 현실로 나아가게 되었는데요. 여기서 우리가 무엇보다 인지해야 하는 사실은 대의제 자체가 다른 한편으로 소위 권력에 가깝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부를 쌓은 사람들의 편익에 부합하는 일종의 대체제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입니다. 즉, 이들이 사회적 메커니즘을 자신들의 이익을 좀 더 보호할 수 있는 체제로 만들 수밖에 없다는 근본적 원인이 있다는 것인데요. 민주주의가 이런 계급주의적 권력 집중을 사실상 용인하게 된 배경에 대해 우리는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작금의 현실에서 자본주의적 이행으로 말미암아 더욱 통상 권력과 멀어진 '가난한 사람들'을 배제하려는 쪽의 소위 정치 개혁론, 즉 마치 요한계시록의 쌍두마차와 같은 과두제로 나아가고 싶은 자들이 사회에 상당수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미국 공화주의의 기초를 쌓은 과거 제임스 매디슨이라 할지라도 이런 귀족 정치와 같은 구체제로의 회귀는 용납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민주주의가 확실한 대의제로 나아갔기 때문이라는 양쪽의 모순과도 같은 방향성을 그 이유로 지적하고 싶은데요. 그런 맥락에서 소수의 지배 계층에 의한 일방적인 권력 집중을 이런 민주주의의 대의제가 어느 정도는 불식시켜 온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겁니다. 다만, 시민의 정치 참여와 헌법에서 인정한 고유한 자치라는 개념으로 놓고 봤을 때, 이 대의제의 한계는 다시 한 번 명확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대의제가 과연 시민의 자치와 균형적으로 양립할 수 있겠느냐의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원할한 '베드 Bed' 역할(자임했든 강요했든 간에)을 민주주의 말고는 대안이 없게 되면서, 여기에 신자유주의적 모략이 전세계 사회에 성공적으로 이식된 파급물이 이러한 불균형한 권력 관계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3장에서 저자가 새롭게 밝히는, "대의제는 사회 또는 경제 발전의 체계적인 산물이라기보다는, 국가와 시기에 따라 저마다 특이한 이유로 설립되었지만 대체로 경제가 발전한 곳에서 더 오래 살아남았다"는 문장은 이를 극명하게 대변한다고 보여집니다.


민주주의의 주요한 가치인 평등과 관련해, 글의 서두에서 저자는 "민주주의에서 시민은 평등하지 않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었는데요. 민주주의는 정치혁명이지 사회혁명은 아니라고 말하는 부분과 더 나아가 민주주의는 다양한, 때로는 상당히 거대한 경제적 불평등과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현실 분석은 이해는 되지만 한편으론 암울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 부분에서, 지난날 읽었던 앤드루 갬블의 복지국가가 어떻게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설명해주는 근거를 이 쉐보르스키의 논증에서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민주주의는 결코 자본주의와 그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과 재산권의 제한 초래하지 않는다"는 맥락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물론 헌법에서 보장되는 재산권 자체를 여기에서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런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 상황에서 민주주의자든 그렇지 않든 간에, 민주주의는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건 명백하다고 생각합니다. 평등은 바로 이런 실질적 의미를 갖고 있는 진정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지날날 매카시즘에 의해, 평범한 자유주의자들조차도 이 평등을 헌법에서 파내고 싶었겠지만, 저는 '모두가 평등한 자유'라는 이 놀라운 정치적 수식어에 우리에게 평등이 어떤 가치인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물론 셰보르스키가 인용한, 카를 슈미트에 따르자면 "민주주의가 지배층과 피지배층, 통치자와 피통치자, 명령하는 사람과 복종하는 사람의 동일성" 등으로 그 의미 부여를 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극명한 가치적 대립이 민주주의를 더 오도하게 만들고 본질적으로 이러한 대립 양상이 현실에서 정치적 부패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저자의 분석은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모든 인간이 법전에서와 마찬가지로 평등하게 태어났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불평등해질 수밖에 없는 고도화된 체계가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적 한계'일 텐데요. 더욱이 "법으로 제도화 된 정치적 평등이 사회적 불평등에 의해 효과적으로 침식된다"는 셰보르스키의 냉정한 분석 또한, 우리가 더욱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는 민주주의가 이런 냉엄한 경제적 불평등에 눈을 감았고, 바로 그점이 민주주의를 향한 일관된 비판점이라고 밝히기까지 합니다. 시민의 자치와 관련된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평범한 인민들이 본능적인 본성'으로 말미암아 현실 정치 자체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소위 정치 엘리트들에게 정치 자체를 위임하고 뒤로 물러서야만 한다는 세간의 평가는 일반적인 '정치적 평등'에 대한 반대적 근거로 공공연히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정치적 평등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평등에 대한 민주주의와 시민들의 요구를 어떻게 하면 현실 정치가 가납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고, 더 나아가 그것의 대안과 과거 사회 민주주의자들의 아이디어까지 차용하여, 대안적 의견으로 제시하는 노력들을 기울이는 것이 우리 시민들의 의무의자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것은 정치적 평등을 위한 일종의 사회적 진보로 이해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명백한 당위로서 말입니다.

'자유'는 민주주의에 있어, '그 자체로 알파이자 오메가'이기도 합니다. 다른 말로 민주주의에 있어 자유는 한편으로 '그 전부'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처럼 자유가 "모든 것"이라고 여겼던 대의제의 창설자들이 정당한 법의 적용으로 보장되는 안전에 대한 욕망과, 사적인 삶을 간섭하는 것에 대한 저항 사이에서 동요했고, 이것이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 사이의 정치적 긴장과 균열로 나타났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바대로, 시민들에게 있어 정치적 자유는 매우 중요하고 각자가 자신의 안전을 통해 스스로의 삶이 평온해지고 그에 따른 정신적 평온함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요. 자유 그 자체는 절대적인 동시에 상대적인 것으로, 자신의 자유 만큼이나 상대방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은 그 의미하는 바가 명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종래의 틀에 박힌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과 전반적인 '시민의 자유'를 논한 헌법과 이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은 자유가 스스로 온전히 존재할 수 없는 빈증이기도 합니다. 홉스 식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황이 모두의 자유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고래로 증명된 사실인데요. 자유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차치하더라도 '정치적 자유'가 없는 자유는 본질적으로 가능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베트남의 시민들이 스스로 자율적인 경제 활동과 인신의 자율성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정치를 비판할 수 없는, "정치적 자유가 전무한 이들의 현실"은 베트남인들이 자유를 항유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끝으로, 민주주의는 권력의 분산과 관련해, '권력의 균형적인 분립'을 강조합니다. 이는 행정부와 의회의 서로에 대한 존중과 권력적 균형을 용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행정부는 시민들을 위해 해야만 하는 행정적 조치와 그 체계 자체는 이들이 권력을 갖는 주요 이유이기도 하고, 반대로 독선적인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의회의 의무 역시, 그저 가볍게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요. 셰보르스키는 공의의 측면에서,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부에 대해 마땅히 비판할 수 있는 권리가 시민들에게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무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이를 강조하고 있었는데요. 사실 단순히 이론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도덕성을 바탕으로 정치 권력과 선출된 정부에 대한 비판적 권리가 있다는 해설은 앞서 설명한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근본적인 기반으로 읽힙니다. 여론 형성의 자유와 집회 및 탄원의 자유 역시 여기에 포함되어 있고, 우리의 권리가 그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국가가 이런 자원을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점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입니다. 저는 과거 신자유주의자들이 마땅한 시민들의 권리, 자신들이 추진한 다수 시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형태의 새로운 자본주의적 기법의 제안을 위해, 소위 정부의 행정력을 제한했고 (공공선과 공의의 의무를 피하는) 좀 더 고분고분한 정치를 만들기 위해, 시민의 권리 기반을 재고하는 등의 민주주의에 대한 개조가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돈과 힘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이 주도하는 정치에 대한 선호를 다른 여타 시민들보다 좀 더 수월하게 적용할 수 있게 만든 점은 어떤 면에서는 과거의 계급주의적 발상까지 떠올리게 만드는데요. 과거 제임스 매디슨이 다수에 의한 소수의 억압과 같은 머릿수의 차이가 아니라, 실질적 권력의 질적 차이는 힘과 부를 가진 소수 계층의 다수 지배라는 그늘을 이 사회에 드리우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저자인 셰보르스키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양상에서 우리 시민들의 권리가 정치 일반에서 어떤 식으로 '자원의 제한'을 목도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글 전반에서 비판적으로 논증하기에 이릅니다. 후반부의 셰보르스키가 언급하는 '실질적 시민의 자치'를 모색하고 대안을 마련해보고자 하는 의도에는 바로 앞선 맥락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그의 분석과 현실 인식은 어떤 정치학자들 보다 선연한 입장이라 볼 수 있겠는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마치 오늘날 우리 정치를 여실히 빗대는 것처럼 느껴졌던 6장의 대리인과 그 속에서 드러나는 다수결 정치의 한계, 이런 정치 권력을 선거와 여론 조작으로 획득하고자 하는 비도덕적인 정치 세력에 대한 논의들도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본질적으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위기인 것은 민주 정체를 자신의 입맛대로 해석하고, 현실에서 권력 쟁취에만 몰두해, 민주주의적 대의를 휴지 조각으로 만드는 '의도하는 자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나약한 민주주의를 공격하고 불신하는 데 힘을 기울여 왔지만, 우리의 무지와 나태로 말미암아, 극단주의적 포퓰리즘 정치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고, 그러한 시민의 의무 방기는 어쩌면, 우리가 작금의 정치를 불러들인 근본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본문 216 페이지에 띄어쓰기 오류 두 곳이 있었습니다.

-여느 정치학자들의 분석과는 다른 저자인 셰보르스키의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 결국 정치적 평등을 침식시킬 것"이라는 문장은 이론과 현실이 얼마나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날 셰보르스키가 예시를 든 과거 남아메리카의 과두제적 다원주의의 기대하지 않은 정치적 안정에 대비되어 민주주의 하의 정부의 권력 남용, 시민들의 목소리를 제한하는 등의 선출 정부의 오도된 정책들에 왜 우리가 대항을 해야하는지, 이 양자의 근본적 인식차이가 말하는 바는 거의 명백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대하지 않은 경제적 안정에 기반한 과거 독재 정치에 대한 향수, 왜곡된 사적 이익을 궤변화하는 일련의 의도된 정치인들이 가득한, 건전하지 않은 민주주의의 미래는 시민들에게 있어서 만큼은 그야말로 암울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민주주의가 자치, 평등, 자유로 이뤄진다는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대의제의 창설자들이 과거에 그랬듯이 갈등을 겪고 있으며,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이견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그들이 보여 준 이견과 다르지 않닥.

인민이 유일한 주권자여야 한다. 인민이 스스로 통치해야 한다. 모든 인민은 동등하게 대우 받아야 한다. 인민의 삶은 정부를 비롯한 타인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평등은 경제적 불평등 때문에 망가질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경제적 평등, 효과적 참여, 완벽한 대리인, 자유라는 네 가지 점에서 모두 한계가 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정치체제도 민주주의보다 나을 수 없다고 믿는다.

결국 개인의 선호를 가장 잘 반영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가능한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집단적 의사 결정 체계라면 반드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모든 참여자는 집단적 의사 결정에 동등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모든 참여자는 집단적 의사 결정에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집단적 의사 결정은 그 결정을 집행하도록 선출된 사람에 의해 시행되어야 한다. 법적 질서 아래에서 부당한 간섭 없는 안전한 협력 관계가 가능해야 한다.

경험적으로 볼 때,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해도 그들은 사회에서 불평등해진다. 또 사회가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불가피한 경향을 가진다고 해도 정치적인 처방이 필요할 정도로 이미 불평등이 만연해져 왔으며, 지금도 그렇다. 또한 법으로 제도화된 정치적 평등은 사회적 불평등에 의해 효과적으로 침식된다,

그러나 도덕적 근거가 아니라 순수하게 실증적인 근거에서, 즉 민주주의가 정치적 평등을 통해 경제적 평등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자는 사적 소유가 다른 재산 소유 방식보다 효율적이라고 믿으며, 국가는 ‘너무 크다‘고 생각하고, 거시 경제 균형이 투자를 촉진한다고 본다.

민주주의는 정부에 반대할 수 있는 구체적인 권리를 승인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이 권리마저도 매우 보잘것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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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트스트림의 덫 - 러시아는 어떻게 유럽을 장악하려 했나
마리옹 반 렌테르겜 지음, 권지현 옮김 / 롤러코스터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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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옹 반 렌테르겜은 1964년생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역사 교사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알자스에서 교육을 받고, 프랑스의 2년제 대학 프로그램인 카그네를 거쳐, 문학 수업의 독립 교육 과정 이후, 정식으로 프랑스어 교사 자격을 취득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르 몽드 지의 문학 자료 관련, 인턴쉽을 수행합니다. 1993년에 그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주하여, 1년 동안 르 몽드 지의 특파원이 되었으며, 1998년까지 르 몽드의 선임 기자로 활동합니다. 특이하게도 그녀는 2014년에 헝가리의 극우 포퓰리스트인 빅토르 오르반 내각의 법무부 장관이 운영하는 법률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는데요. 이 때의 경험은 그녀에게 '유럽 극우 포퓰리즘 원천'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게 됩니다. 또한 2003년, 당시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벌이던 시기에, 캔자스 주의 주도인 토피카에서 칼럼을 기고해, 프랑스 최고의 기자상인, "알베르 롱드르 상"을 수상했고, 2017년 3월에는 2016년 유럽 저널리즘 부문 "루이스-바이스 상"을 수여 받습니다. 특히 그녀는 유럽의 몇 안되는 전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의 전문가로 마찬가지로 독일 정치권에도 탄탄한 인맥을 보유하고 있는 언론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Le Piège Nord Stream"으로 지난 2023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4년 11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렌테르겜의 이 글은 일종의 르포르타주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또한, 러시아의 제안과 동시에 독일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탄생한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송로 즉, "노르트스트림"을 둘러싼 푸틴의 장기적 계획과 그가 보이는 서유럽의 정치적 분열 대한 명확한 의도를 폭로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저자인 그녀는 러시아의 통치자 블라디미르 푸틴을 가리켜, 명백한 "수정주의자"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녀가 말하는 수정주의자란, 전후 미국과 서유럽이 탄생시킨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수정'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닌 것을 말합니다. 과거 레닌그라드 출신의 KGB 요원이었던 푸틴은 구 동독의 드레스덴에서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구소련이 붕괴를 목도하게 합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저자는 푸틴을 사실상 '러시아 제국주의자'로 논증의 여러 곳에서 평가하고 있었는데요. 이러한 저자의 논법에는 지금의 푸틴이 과거 소련의 영향력 하에 있던 위성 국가들을 다시 러시아로 향해 정렬시키는 동시에, 유럽과의 정치외교적 관계를 '마더 러시아'의 입맛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을 마찬가지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런 의미에서 렌테르겜의 이 책은, 푸틴이 최초로 외교무대에 등장했던 2001년 전후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외교 당국이 푸틴과 러시아에 대해 그동안 얼마나 오판하고 있었는지를 르포르타주의 형식으로 세상에 낱낱이 드러내고자 하는 목적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앞서 푸틴의 변화된 러시아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독일 언론인인 후베르트 자이펠의, '푸틴 치하의 러시아'라는 그 기묘한 수식어를 좋아해 자주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푸틴 치하의 러시아 만큼 금세기 최악의 독재 국가를 설명하는 문구는 거의 없다고 보여지는데요. 독재자라는 정치적 용어 자체가 지금 우리 세대가 보기에는 무척이나 역겨운 것이기도 하지만, 거대한 중앙 집권적 국가, 특히 거대한 핵무기 보유 국가가 전직 스파이의 손아귀에 놓여 있는 것은, 그 국가가 포함된 주변의 국제 질서에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쉽게 생각할 수 없을 겁니다. 더욱이 전후, 자유주의적 질서라는 큰 틀에서 전세계를 시장 자유의 담론으로 묶은 작금의 지배적인 자유 경제적 질서 자체는 이 푸틴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기회로 여겨졌던 모양인데요. 독일이 과거 빌리 브란트 수상의 집권 이후, 소련과 고르바초프와 정치적으로 밀접하게 가까워지면서 자신들의 숙원인 통일을 이룩하게 되고, 그들의 주요 정치 세력인 '사민당'이 마찬가지로 러시아와 정치적 밀월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이러한 관계들의 파급은 아주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는데요. 물론 저는 독자들이 저 사민당이라는 간판만 보고 당의 정치적 색과 관련지어, 푸틴의 관계를 그저 표면적으로만 이해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양자의 관계는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지향과 같은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 개인의 사익과 국가의 이익이 서로 혼재되어, 의도하는 자의 손짓에 따라, 유럽을 사실상 정치적 난맥상에 빠트렸다는 보다 확실한 진실에 닿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7대 독일 연방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와 얼마 전에 퇴임한, 앙겔라 메르켈 사이에는 독일을 위한 그 거창한 에너지 해법, 더 심하게 말하자면 독일 만을 위한 '중상주의적 기법'인 '노르트스트림'이 그 사이에 놓여져 있습니다.

<지도는 발트해를 가로질러 독일에 이르는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의 개요입니다.>




독일은 전유럽을 통틀어 가장 발전된 산업 국가입니다. 전후 그들이 이룩한 경제 발전은 정말로 눈부시다는 표현 밖에는 달리 말할 수가 없는데요. 그들의 기초 산업은 물론,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첨단 산업들은, 'EU내에 정치는 프랑스, 경제는 독일'이라는 정당한 권력 함의의 원동력이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가운데, 독일 국내 정치 상황에서 '녹색당'의 연정 참여와 함께, 그에 따른 '탈원전'의 움직임은 지속되어 왔고,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의 붕괴로 그 우려는 정점을 찍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프랑스는 여전히 원전이 국내 주요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독일은 그러한 흐름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해 관계가 맞물려, 독일이 주도하는 '노르트스트림 사업'이 2010년대 이후 추진되는데요. 이에 저자인 렌테르겜은 10장에서, "천연가스에 중독된 독일이 환경주의자가 된다면, 가스프롬에게는 이익"이라는 비판으로 이를 가늠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러시아의 국영 가스 업체, '가스프롬'이 푸틴의 소유물임은 역시나 주지의 사실입니다. 특히 전직 독일 총리인 슈뢰더가 푸틴과 더 없이 밀착했고, 여기서 보여지는대로 그가 퇴임 이후, 가스프롬의 고위 임원이 된 것은 그다지 충격적이지도 않은 사실이기도 한데요. 여기에 과거 에마뉘엘 마크롱과 경쟁했던 프랑수아 피용 역시, 푸틴과 아주 밀접한 관계입니다. 이에 시의적절하게도 저자인 렌테르겜은, KGB 시절의 푸틴이 스파이로서 적에 대한 회유와 포섭에 얼마나 능통했는지를 글 서두에서 이미 밝히고 있었는데요. 구 동독 시절의 비밀 경찰인 슈타지와 협력하여 서독의 정보를 빼내려 한 것이나, 그 당시의 인맥을 통해 아주 유창한 독일어를 구사하는 장면은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자신과 같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인맥의 인물을 가스프롬의 회장에 앉히고, 막대한 매출을 올리고 있던 회사의 돈과 자원을 그가 수시로 부릴 수 있게 된, 독재자의 가용 자원이란 그야말로 엄청난 것으로 여기에 드러납니다. 그렇게 푸틴에게 현혹된 인사들이 이 글에만, 거의 십 여 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앞선 자들은 유럽 정재계 엘리트 및 고위 관료를 역임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11장에서, 렌테르겜은 2015년 러시아의 불법적인 크림 반도 병합 이후, 즉각적으로 노르트스트림 계약에 서명한 앙겔라 메르켈에 대해, 투마스 헨드릭 일베스 전 에스토니아 대통령의 입을 빌어, 논증 가운데, 아주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고 있었는데요. 일베스 대통령은 메르켈의 독일을 향해, "도덕성을 잃은 중상중의적 모습"의 전형이라고 강조합니다. 물론 자신의 정치적 결단에 대해 별로 사과하지 않는 메르켈 조차, 나중에 푸틴의 이러한 노르트스트림 책략에 대해 "악마와 같았다"고 12장 말미에서 고통스럽게 회고하고 있습니다만, 2022년에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의 책임이 어느 정도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메르켈은 당연히 인식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서유럽에 제공되는 천연가스는 우크라이나에 매설된 가스관을 통해, 공급되고 있었는데요. 우크라이나에게 있어 결코 적지 않은 '200만 달러'의 가스 통과 비용과 더불어, 이 매설된 가스관으로 말미암아, 우크라이나의 실낱 같은 안보가 역설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던 것인데요. 다만 우크라이나 내부의 오렌지 혁명과 국내의 나토 가입 요구는 독재자 푸틴에게는 대단히 모욕적이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저자는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역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다는 점은 분명했다고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노르트스트림과 관련된, 러시아의 일부 인사와 기업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바이든에 의해, "임기 말을 앞두고 있던 메르켈의 정치적 선물"로 해제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우크라이나에게 있어 비극적인 전환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이든의 나약함인지, 메르켈의 위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훗날, 2014년 유로마이단 이후 우크라이나 포로셴코 대통령의 총리였던 야체뉴크에 의해 중용된 코볼리에우는 노르트스트림 2가 완공되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면전에 돌입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고, 불길한 역사는 결코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저자인 렌테르겜 역시, '나약한 서구 유럽 동맹'을 푸틴은 매번 여실히 비웃었고, 그것을 기화로 그는 전격적인 우크라이나를 침공을 감행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복합적인 결과물 때문인지, 바이든 대통령은 젤렌스키에 대해 아낌 없는 군사 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바이든은 젤렌스키에 대해, 그 자신의 안전한 국외 탈출을 제의하지만, 젤렌스키는 그런 바이든을 향해, "지금 택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총알이 필요하다"고 화답했다는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서유럽은 자신의 안보 만큼이나 노르트스트림과 그에 결부된 우크라이나 문제를 정치적으로 세심하게 관리해야만 했으나, 안보를 경제 논리에 희생시킨 독일과 그것을 가능케 한 수많은 엘리트들이 앞서 언급했던 대로 유럽 내부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모두가 알다시피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막대한 돈에 대한 유혹, 거기에 적당한 직위까지 제공하는 이익의 제공자인 푸틴이 이들을 능수능란하게 관리했던 것은, 유럽의 정치가 그만큼 미국의 금권 정치와 닮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약간 논외지만 어쩌면 이런 것들이 소위 새로운 자유주의가 판을 깔아놓은 노골적인 개인의 이익 추구라는 결과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바대로 지난 역사에서 이전의 수정주의자가 권력을 잡고 전면에 나서서 과연 어떠한 참혹한 일이 벌어졌는지, 전유럽인들이 이를 인지하고 있다는 점은 타당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 역사가 일부에게는 처절한 반면교사가 되기에는 상당히 부족했던 모양인데요. 최근 독일과 러시아의 노르트스트림 계약에 이르러, 일부 지각있는 인사들이 이것을 보며, "2차 대전 당시, 독소 불가침 조약"과 어떠한 차이가 있냐고 되물은 점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여겨지는데요. 이제야 저는 독일과 러시아의 그 이상한 관계에 대해 비로소 이해가 되었고, 탈원전 이후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어떻게 전유럽을 옥죄는 결과가 되었는지도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5장에서, 이런 푸틴과 밀접한 친분이 있던 인사들을 나열하고 있었는데요.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고문이었던 스티브 배넌, 독일 극좌파와 프랑스 극우파 포퓰리스트들, 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와 마네오 살비니, 헝가리 오르반 빅토르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독일 전임 총리였던 앙겔라 메르켈은, '접근을 통한 변화', '교역을 통한 변화'가 러시아를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그 결과는 아주 명백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국가 안보가 결코 시장 논리에 좌우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푸틴은 잠재적 테러 공격을 빌미로 대규모 군사 공격을 감행해 체첸을 초토화하고 체첸 독립을 거부했다. 전쟁이 휩쓸고 간 도시들의 모습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조였다.

공식적으로 동방 정책(빌리 브란트)은 핵 강대국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고, 그 좋은 의도는 독일의 이익을 해치지 않았다.

노르트스트림AG 이사회에서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이 러시아를 올바른 길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독일은 충격에 휩싸였다. 정당들도 불편함과 역겨움이 뒤섞인 감정에 빠져들었다.

2023년 6월 1일 통과된 의회 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마린 르펜과 블라디미르 푸틴은 10년 동안 야합했으며, 국민 연합 전신인 국민전선은 "러시아 공식 담화를 직접 중계"하는 "러시아 권력의 전달자"였다.

슈뢰더는 독일이 러시아와 얽힌 오래된 정치적 역사, 그리고 특히 메르켈과 서너 번 연립 정부를 구성하며 권력을 놓지 않았던 독일 사민당이 낳은 부도덕하고 부패한 부속물일 뿐이었다.

훗날 역사학자들은 트빌리시를 차지하려는 푸틴을 사르코지가 막았는지, 아니면 반대로 사르코지 때문에 푸틴이 계속 제국을 확장할 수 있었는지 평가할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가 유럽으로 가는 매우 광활한 가스관 연결망을 펼쳐놓은 것이다. 유럽인들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선호하는 이유도 그래서인데, 이제는 그 의존성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푸탄은 전쟁이 통치의 한 방식이라는 점을 증명했다. 그가 생각하는 정치 개념을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보여줬다.

크림반도가 병합되고 겨우 1년이 지난 시점인 2015년에 독일이 거기에 서명한 사건운 제가 마주친 일 중에 가장 어처구니없는 경험이었습니다. 도덕성을 잃었고 절대적인 중상주의를 보여줬죠.

발트해 해저에 우크라이나 가스관과 천연가스 수송력이 동일한 두 번째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면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배제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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