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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기 민주주의 - 알고리듬이 선거가 되고 고양이가 정치인을 대체한다
나리타 유스케 지음, 서유진.이상현 옮김 / 틔움출판 / 2024년 3월
평점 :
1985년 일본 도쿄도에서 태어난 나리타 유스케 (成田悠輔)는 일본의 데이터 전문가이자 기업가로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그는 일본 내에서 데이터 알고리즘과 관련해, 전문성을 인정 받고 있는데요. 이런 저자는 도쿄대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2011년 도미, 그로부터 5년 뒤에, 메사추세츠 공과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이후 일본 이치바시 대학의 특임 준 교수, 스탠포드 대학의 객원 조교 등을 역임하고, 2008년 여름에는 도쿄의 리먼 브라더스 일본 지사에서 인턴으로 일한 경험도 있으나 2주일 후에 리먼 브라더스는 파산하기에 이릅니다. 그 유명한 2008년 뉴욕 발 세계금융 위기의 전조였습니다. 이런 그가 대표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는데요.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둘러싼 발언에서 "고령자는 더 노화가 되기 전에 집단 자결, 집단 처분과 같은 일을 스스로 하면 좋다"고 반복했고, 이는 뉴욕 타임즈의 큰 조명을 받게 됩니다. 일본 특유의 사회 분위기, 즉 타인과 사회에 누를 끼치는 것을 금기시 하는 분위기와 맞물려, 그의 발언에 많은 이들이 겉으로든 속으로든 동조를 했던 것은 명백한데요. 이는 서구의 철저한 합리주의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정적 여파를 끼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22世紀の民主主義 選挙はアルゴリズムになり、政治家はネコになる"로 2022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4년 3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저자인 나리타 유스케는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이 책과 관련해, 스스로가 데이터와 관련된 IT 지식인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인식의 한계를 명확히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즉, 정치학자가 철저히 분석한 '민주주의 담론'이 아니라, 다른 업계에서 경력을 인정받은 비 전문가가 민주주의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쓴 글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일반적인 자본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소위 전문가 그룹에 속한 이들이 어느 정도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 전반을 조지프 슘페터의 생각을 기초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나리타 유스케 역시 그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가 조지프 슘페터를 면밀히 읽고 이해했는지는 다소 불명확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현재의 민주주의가 "위선적 리버럴리즘과 일부러 결점을 드러내는 포퓰리즘의 롤러코스터적 상황"에 놓여있다고 진단하고, 이를 '경련'과 '열화'라는 단어를 수차례 언급하며 논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이 책이 종전의 가렛 존스와 유사한 민주주의의 양적 체제를 줄이기 위한, "과잉 민주주의"와는 그 궤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가 '민주주의의 병리적 상태'를 진단하는 방법과 분석에 문제는 있지만 민주주의를 보다 격리시켜, 자본주의적 체제 이행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는 극단주의적 발상에는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고 봐야 할 텐데요. 다만, 이 '민주주의의 열화 과정'에서 나리타 유스케가 명백하게 인정하고 있듯, 자본주의에 있어 승자에게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집중시키는 이런 독점적 체제가 온전히 민주주의 만의 문제라고 취급할 순 없을 겁니다. 이것은 최근 역사에서 현실 사회에 어떤 대안과 개선안을 제시하지 못한 '좌파의 무능'은 물론, 고도화 된 자본주의가 무엇보다 자본의 축적과 권력의 집중을 강력하게 용인해 왔다는 점에서, 이 체제를 원할하게 '공급'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무턱대고 비난만 하고, 그 한계를 편파적으로 수용하는 점은 그저 무지한 시민들에게만 먹힐 수 있는 아주 '손쉬운 언설'이라 생각합니다.
매우 공교롭게도 저자는 나치 독일의 '교활한 언론 선동'을 1장에서 인용하고 있지만 우리가 가히 목도하고 있는 트럼프와 같은 포퓰리즘 정치의 실질적인 폐해에 대해선 인식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개인의 정치적 발언의 자유 및 개방성을 실로 자기들만의 전유물인 양, 악용하는 저 선동 정치인들을 그저 민주주의 한계에 다다른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여실히 '지능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특히나 저 포퓰리스트들이 입에 발린 소리로,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는 점을 우리는 항시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글의 2장 이후, 저자가 선거 제도의 한계에 대해 쓰고 있는 부분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는데요. 여기에 소개된 브라질과 같은 문맹률이 적지 않은 국가들에게서 단순한 선거제의 운용은 현실에서 제한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저자 자신이 높은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저학력의 일반 시민들이, 다수의 기대에 야합하고, 쉽게 휩쓸리는 '동조 현상'을 가리키는 '중우 정치'에 반감을 갖게 되는 점은 맥락상 유사한 흐름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들을 사회적 재교육을 통해, 정치적 변별력을 갖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건전성에 시급한 부분이지, 그저 이 문제를 싸잡아 교육의 제한적 기회로 몰아가는 것은 심각한 오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 역시 이에 쉬이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지식 독점에 준하는 소수의 학력 집중에 대해 많은 사회학자들이 우려를 표한 바가 있습니다. 특히나 전문가 정치에 따른 민주주의 하에, 엘리트 지배 체제가 더욱 일반 대중과 멀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요. 민주주의가 평등의 기초에 의거, 일반 시민들에게 동등한 교육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이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닐겁니다. 결국 어느 정도는 저자가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인용하며, 체제가 이렇게 어려운 지경에 내몰린 것이,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들의 문제이면서, 애초에 대다수 시민들에게 주입되는 수많은 인터넷 정보들이 그 진위 여부가 불명확하다는 점은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떠한 위기에 놓여있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1980년대 이후, 일방 통행의 자본주의 (이를테면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그저 시녀로 거느리고, 사회 전반을 획일화 시켰다면,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심각한 부의 불평등, 경제적 불평등은 앞선 신자유주의가 신념화했던, "아웃소싱"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자가 3장 이후, 밝히고 있는 중국의 WTO 가입이 초래한 세계 경제의 변화, 값싼 노동력을 향해 빠져 나가는 기업들의 아웃소싱이 신자유주의의 분명한 이념과 맞닿아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더 많은 생산비 절감, 그리고 그에 따른 이윤 추구가 어떻게 민주주의의 비효율성과 연계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여기서 논의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문제점과 그런 현안들은 애초에 분석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았다고 여겨집니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정치적 비전문가가 인식하는 한계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뒤가 깔끔하지 않다고 판단됩니다. 그런 연유로 이 책의 결말이자 소위 대안이라고 적어 놓은 4장은, 다른 데이터 전문가에게는 인정할 만한 이야기들이라고 일견 추측해 봅니다. 이익과 돈에 연관되어 있는 '데이터'가 과연 건전한 현실 정치, 내지는 민주주의에 어떠한 도움이 될 것인지는 어느 정도 자명하다고 여겨지는데요. 더구나 탈진실, 대안적 사실과 관련되어 있는 '트럼프 현상'이 아직도 여전하다는 점과, 이렇게 의도적인 진실 왜곡과 주장에 편승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전락한 소위 '만들어진 사실'들이 현실 세계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모습은 이 한 가지 부분 만으로도 민주주의의 더할 나위 없는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장 후반부에서 저자는 "2008년 리먼 브러더스로 대표되는 금융위기 초기, 자업자득으로 위기에 빠진 금융기관을 그래도 구제하는 게 옳은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는데요. 이는 거대한 무능에 빠진 금융 자본주의가 초래한 전세계적 몰락을 목도했음에도 그래도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의 조력이 필요했다는 저자의 간접적인 판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 거대한 도덕적 해이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막대한 공적 자금으로 은퇴 잔치를 했던 소위 엘리트 금융인들이 머릿속에 박제되어 있는데요. 저는 그 시점에서 사실상 신자유주의는 생명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선거나 민주주의는 정보력이 부족한 빈자의 나라에만 남아 있는 비효율과 비합리의 상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제휴는 기묘하다. 자본주의는 강자가 기회의 문을 닫아버리는 구조, 민주주의는 약자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터넷에 가짜 뉴스와 음모론 그리고 혐오 발언이 확산했고, 이들이 선거를 잠식하면서 남미와 유럽에서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늘었다.
가난한 전제정치 국가들이 부유한 민주국가를 맹추격하기 시작했다. 정치제도와 경제성장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질된 셈이다.
그동안 민주국가에서는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예전보다 위축됐다는 우려가 제기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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