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리얼리즘 - 대안은 없는가, 2판
마크 피셔 지음, 박진철 옮김 / 리시올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크 피셔는 한때 자신의 이름보다 그의 블로그 별칭인 k-punk 로 유명세를 타던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는 레스터에서 태어났지만 유년 시절은 대부분 러프버러에서 보냈고, 그의 부모는 노동 계급의 보수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피셔는 공립 연구 대학인 헐 대학에서 철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이후에 코벤트리 외곽에 있는 워릭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이 기간에 피셔는 사이버 펑크에 관한 문화 이론 등에 심취하고, 나중에 kode9으로 알려진 음반 프로듀서 스티브 굿맨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이렇게 그의 경력 초기에는 사회에 대두하고 있던 인터넷 대중에 대해 관심을 갖고, 소위 캔슬 컬쳐 cancel culture, 즉 콜아웃 컬쳐 callout culture 라고 불리기도 하는 급진적 운동에 대해 날카로운 비평을 시작합니다. 또한 세계적 팝 스타였던 마이클 잭슨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담은 에세이도 쓰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에게 가장 큰 명성을 안겨준 논저는 바로 '자본주의 리얼리즘'으로 그의 사후에 문단과 비평가 집단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자본주의가 남긴 폐해와 이를 추동한 신자유주의에 대해 끊임없는 비판을 가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삶은 너무나 위태로워 그저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심각한 우울증 증세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논저가 출간을 앞두고 있던 2017년 1월 13일, 피셔는 48세의 나이로 서퍽의 펠릭스스토우의 자신의 집에서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 책은 원제, "Capitalism Realism"으로 지난 2018년에 초도 출간되었고, 이번에 번역된 판본은 2022년에 나온 제2판으로, 그의 아내인 조이 피셔의 서문과 동료이자 비평가인 알렉스 니븐의 서론이, 또한 소설가이자 동업자였던 타리크 고더드의 후기가 수록되었습니다. 이에 국내도 새롭게 증보된 원서 2판을 기반으로, 2024년 1월 번역되었습니다.

이제야 밝히는 부분이지만 지난날 마크 피셔의 이 중요한 글은 그동안 제가 지속해 온 사회과학 독서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던 논저였습니다. 이후에 접하게 되는 데이빗 코츠의 중요한 논저 만큼이나 그의 이 논저는 우리가 어떠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확실히 깨닫게 해 준 귀중한 보료였습니다. 이 책의 지난 판에서도 여실히 느낀 부분이지만 마크 피셔의 글쓰기와 주제 의식은 로버트 미지크, 마크 릴라와 닮아 있는데요. 우리가 만약 자본주의에 매몰되어 스스로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마크 피셔와 같은 신랄한 사회 비평이 무엇보다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그저 신자유주의자들이 손쉽게 내뱉는, "대안은 없다"와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는 지젝의 디스토피아적 발상은 우리가 어떠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만드는데요. 이에 피셔는 특히 젊은 세대들을 비롯,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자본주의의 대안'을 숙고하는데 모두가 발벗고 나서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면서, 우리가 스스로를 얼마나 이런 가여운 통제 속에 가둬 놓고 있는지 충분히 가혹할 만한 실정이기도 합니다.  

과거 에드먼드 버크 조차, 사회에 이어져 내려온 전통과 관습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과거 계몽주의적 역사가 만들어 온 사회적 토대 역시, 우리의 삶과 사회의 지속성을 위해 중요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점은 아마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특히 공익과 도덕성 그리고 시민의 삶을 위한 사회적 부조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에 피셔는 과거 최소한이나마 공공성을 유지하고 있던 후기 자본주의적 사회가 신자유주의로 인해 '사회 정의'를 포함한, 사회적 가치들이 시장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방해물로 치부되어 왔다고 해석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각자의 시민들이 그저 냉소하고 거리 두는 것 만으로는 문제의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피셔의 논증들 가운데 무엇보다 동의했던 점은 자본주의가 태생적으로 홀로 유지되거나, 체제의 확장을 지속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시장의 자유를 비롯, 모든 시민이 자발적으로 이에 동의하고, 나아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것에 반쯤은 체념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개인의 책임을 일절 능사로 삼고, 여기에 전통적 자유주의를 심각하게 오용한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래의 자유주의적 가치에서 파생된 개인주의가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개념화 되었고, 바로 이것은 새로운 사회를 구축하는데 '이익화'와 함께 중요한 맥락이 되었는데요. 또한 이 개인주의는 전통적인 공공성의 논의를 과거 역사 속의 흔적 정도로 내몰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피셔는 자신의 논저를 통해, 거듭 자본주의에 대한 도덕적 견제의 몰락을 중요한 비판 논거로 삼고 있지만 저는 이와 동시에, 시민들이 공공성의 개념을 실종시키게 만든 개인주의에도 주목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평생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지그문트 바우만의 외롭고 고단한 경주와도 꽤나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소위 하이브리드적인 모습으로 진화해 온 작금의 금융 자본주의는 사회를 대적한 신자유주의적 이행으로 말미암아, 시장의 기득권과 그 배타적이고 자유로운 확장에 어떠한 견제 수단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장 자유라는 논법은 거의 종교적 교리와도 비견될 정도였습니다. 더욱이 새롭게 발견된 금융 기법과 그에 따른 확장은 2008년의 대몰락 이후에도 시장이 틀어 쥔 주도권은 변함이 없었는데요. 저자의 말대로 라면 적어도 1980년대 이전까지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분명 존재했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자본주의에 의해 차단 당하면서, 가히'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세계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신자유주의와 함께한 자본주의는 더욱 사회에 '경제적 불평등과 인간의 소외 문제 등' 병리적 폐해를 심화시킨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적 속성이 내재된 간결하고 즉각적인 소비 문화에 의해, 삶에 있어 자신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그저 남을 의식하게 되거나, 시민으로서의 기본적 소양을 망각하게 되고, 공적인 문제에 대한 감각을 영영 소실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저자는 1장의 서두에서, "탁월한 자본주의 리얼리스트인 신자유주의자들은 공적 공간의 파괴를 경축했다"는 문장으로 그 본질을 마찬가지로 분석하고,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적으로 국가를 맹비난 하는 동안에도 은밀하게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는 비난 받아 마땅한 이들의 이중적 태도를 꼬집고 있었습니다.

뒤이어 4장에서 인용된 데이비드 하비 역시, "신자유주의자들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번성하도록 이데올리기적 분위기를 창출하는 지식인 전위 부대로 싱크 탱크를 운용한다"고 가감 없이 비판하고, 마찬가지로 이를 피셔가 도출한 분석에 대응한다면, 신보수주의자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이 그야말로 서로 결탁했다는 것에 시의 적절하게 인정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알랭 바디우와 데이비드 하비, 두 사람이 모두 명백하게 인정하는 '신자유주의 정치'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계급 권력 및 특권으로의 복귀와 관련되어 있다고 이를 또한 인정하고 있는데요. 저는 이 부분에 있어 현대 자본주의가 무엇보다 개인의 능력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진출 및 부의 획득에 일견 긍정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많은 부를 보유한 부자들과 이들과 자원을 공유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의 강고한 계급화를 차츰 강화시켜 나갔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뭐라고 하던 간에, 1980년대 이후의 이 신자유주의적 작업의 실체라는 것이 이러한 맥락에 기반했던 것이고, 말년에 이른 밀턴 프리드먼이 "사회에 정의 따위는 필요없다"는 발언을 철회한 배경에는 어느 정도 신자유주의적 이행의 결과물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인정한 바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물론 그에게 가했던 비판과 공격도 한 몫을 했겠지만 말입니다.

이기적 자본주의와 개인의 이익 추구를 무엇보다 긍정한 이 신자유주의가 오늘날에도 그렇게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는 점은 무엇보다 이데올로기적인 부정적 파급을 피하고, 6장 서두에 보이는 교육 현장에서의 '시장화'와 같은 여러 부정적 이미지들과 분리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피셔는 자신의 이 글에서 자본주의가 사회에 가져다 준 수많은 젊은 청년들의 '정신적 병증' 즉, 자신도 경험한 심각한 우울증과 더불어, 단순히 쾌락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향정신성 약품들의 범람 그리고 자본주의에 있어, 무엇보다 결여된 도덕성과 공공의 이익에 대해 전자와 맞물려 고찰하게 만듭니다. 이는 마치 지난 시절의 좋은 추억들을 떠올리며 그 반대의 지평에서 맞이하게 되는 매서운 현실에 절로 몸을 떠는 것과 유사한 인식 체계라고 여겨집니다. 오로지 시장이 가져다 주는 '이익'과 그것을 통해, 저절로 사회를 덕에 이르게 한다는 그 '메시아'가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데요. 이것에 대한 어떠한 논리적, 경제적 근거 없이 신자유주의자들이 우리에게 그저 눈을 감고 이를 믿으라고 강요했던 과거의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일전에 후쿠야마가 회고했던 바대로, 신자유주의자들이 아주 '손쉽게' 처리한 사회적 안전망을 뒤로 하고, 삶의 일관성을 졸지에 시민 스스로의 책임으로 전가시키고, 이런 숨겨진 본질을 규명한 피셔의 상상의 날개는 "신자유주의의 종합을 통해 자본의 인공 지능이 지구를 지배하는 미래상"과 같은 코미디 같은 미래를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경고를 담고 있는데요. 만약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붕괴 시키게 될 지독한 과두제가 아니라면 비인간적인 자본주의의 끝이 과연 무엇이 될지 참으로 궁금할 따름입니다.  

끝으로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현 사회에 억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피셔의 경고는 우리가 새겨들어야만 하는 부분일 텐데요. 그의 논증을 통해, 왜곡된 자본주의가 더 이상 다수의 이익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고, 1980년대 이전, 시민의 다른 모습이기도 했던 다수 노동자들의 기본적 욕망을 짓밟고 나타난 '신자유주의 이행'이 과연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되었는가를 피셔의 서사를 통해, 우리가 다시금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날이 엄혹해져 가는 경제적 불평등의 시대에서, 그 누구보다 선구자적 입장을 취했던 그는 아마도 우리가 병들고 굶주리고 가진 힘을 박탈 당하는 '시대의 실체'를 누구보다 폭로하고 싶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신랄한 이성을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한다는 서글픔은 누구보다 저에게 더해지는데요. 더욱이 7장에서 그가 도출해 내는 신자유주의의 비도덕적 합리성은 자본주의에 반하는 거의 계급주의적 속성으로 그 자체로 표면화 되어, 결국 축적된 부와 획득한 권력 유무에 따라 사람을 규정하는 매개가 되었습니다. 이는 한편으로, 자본주의가 시민들에게 끼치는 정신적 악영향을 진단한 리처드 윌킨슨의 작업과도 연결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토록 자본주의의 폐해가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지금도 끊임없이 고발하는 지식인들과 학자들이 늘어나는 시점에 피셔가 바라 마지 않았던 바대로, 그 대안을 조속히 우리가 발견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이 투영하는 세계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우리 세계를 외삽했거나 우리 세계가 악화된 모습처럼 보인다.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적으로 국가를 맹비난하는 동안에도 은밀하게 국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역사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절정에 이르렀다는 후쿠야마의 테제는 널리 조소받아 왔다.

슬라보예 지젝이 도발적으로 지적하듯이 어쨌거나 반자본주의는 자본주의에 널리 유포되어 왔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문화의 생산뿐 아니라 노동과 교육의 규제도 조건 지으며, 나아가 사고와 행동을 제약하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1975년에는 (무력화된 노동 조합, 민영화 된 철도 및 공익 사업을 비롯한) 현재의 정치경제적 풍경을 거의 상상할 수 없었다.

녹색 비판은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존립 가능한 정치, 정치 체계가 결코 아니며 사실상 인간의 환경 전반을 파괴할 운명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지만 공적 영역이 공격받고 ‘보모 국가 nanny state‘가 제공하던 안전망들이 분해됨에 따라 가족은 항구적인 불안정성이 지배하는 이 세계의 압력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장소가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수사가 기세를 떨치던 그 순간에도 새로운 종류의 관료주의, 가령 ‘목표와 목적‘, ‘성과‘, ‘임무 진술‘ 등의 담론은 증가해 왔다.

명백히 비도덕적인 합리성(신자유주의)은 명백히 도덕적이고 규제적인 합리성(신보수주의)과 어떻게 교차하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91년 잊힌 퇴조의 출발점 - 자유주의적 전환의 실패와 촛불의 오해
백승욱 지음 / 북콤마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승욱 교수는 1966년생으로,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동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그는 미국 뉴욕 주의 공립대학인 빙엄튼 대학의 방문 연구원, 한신대 중국지역학과 교수 등을 거쳐, 현재는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진보연대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요. 그는 이매뉴얼 월러스틴, 페르낭 브로델, 조반니 아리기 등을 활용하여, 신자유주의가 이식된 세계 체제에 대한 분석을 지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백승욱 교수의 사상적 단초들을 살펴봤을 때, 어느 정도 진보 쪽에 가까운 지식인으로 읽히는데요. 이번에 일독한 그의 논저도 그렇지만, 진보 진영에 뼈아픈 소리를 할 줄 아는 학자라고 여겨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지난 2022년 12월에 출간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이번 글은 지난 글의 서평을 포함하면 두번째 일독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출간된 '연결된 위기'는 사회학자가 보는 현실주의적 국제 정치라고 볼 수 있었다면 이 글은 1987년 이후의 한국 정치를 비판적으로 조망해보는 일종의 시론과 같은 성격으로 읽힙니다. 특히, 백낙청 교수 등과 같은 기존의 사회학자들이 한국 정치사에 중요한 변곡점으로 여기는 1987년이 아니라, 1991년 즉,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이 주도한 '3당 합당'과 그 이전의 공안정국을 통한 체제와 이어진 사회 급변을 자유주의적 맥락으로 다뤄 보고 있습니다. 이에 저자는 우리 사회에 크게 경제적 자유주의와 사법적 자유주의의 두 가지 이식과 그러한 변용이 과연 서구 자유주의 국가들의 유산인 '전통적 자유주의'와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를 요목조목 따져보고 있는데요. 저자의 말대로라면 우리 나라는 김영삼 정부를 지나 1997년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가 경제 구조로서 거의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착근했던 국가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착근이라는 표현을 착근을 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강한 요인으로 거의 당했다고 풀어보고 싶은데요. 물론 1980년대 이전의 개발 독재 세력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적 강화를 위해, 이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러한 맥락의 광범위한 사회 개조가 미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철저히 수행되었다는 점을 먼저 언급하고 싶습니다. 그런 연유로 일전에 강준만 교수 역시, 우리나라를 "철저한 신자유주의 국가"라고 규정한 바가 있습니다.

일전에 샹탈 무페는 레이건과 대처가 보수 정치의 기득권을 포함한, 신자유주의 이행에 대대적으로 나서면서 이에 대응해야만 했던 진보 좌파의 무능을 신랄하게 꼬집은 바가 있습니다. 물론 무페의 저런 의견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당시의 정치와 사회에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경제와 정치 세력의 '국가 개조'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이 휩쓸리고, 빌 클린턴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리버럴과 같은 소위 아류들이 정치 무대에 등장하게 되면서 진보는 거의 몰락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아마도 노조의 무력화로부터 시작된 시민 계층의 전반적인 고용 불안은 이 지점에서 진보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고 빠르게 진행되었는데요. 이는 베트남 전쟁 시기의 미국 지식인 계급과 프랑스에서의 진보 계층이 경험한 사회 대안으로서의 점진적 역할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만, 한국은 비록 외부의 요인으로 신자유주의를 국가에 이식하게 된 것이지만 너무 이상하게도 시민들 모두 이 신자유주의적 맥락을 아주 철저히 받아들인 국가였습니다. 이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 지배 헤게모니를 인정하고, 능력주의에 기반한 사회 체제의 변질에 이렇다 할 저항을 하지 않은 것인데요. 더욱이 나날이 심각해졌던 고용 문제와 자신들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 불평등 문제를 오로지 개인의 문제로만 국한해 받아들였던 점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소위 '먹고사니즘'이 이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2000년대까지는 본질적으로 제도적 정치와 시민들 자신의 삶이 현저하게 유리된 상태였다고 진단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 자유주의란 일반적인 인식과는 매우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저자가 초반에 지속적으로 서술하고 있듯, 시대가 흐를수록 공권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이것을 주도하는 세력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것과 같이 - 이를테면 검찰 - 이러한 맥락의 (제도적) 변화가 어떻게 자유주의와 맞닿아 있는지는 저로서도 의문이 듭니다. 더욱이 저자의 입을 빌어, 과거 박근혜 정권이 탄핵을 당하기 전까지,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완벽한 무능이 4년간 이어진 시기에, 과연 진보 야당이 제대로 일을 해왔는지에 대해선 누구나 진지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생각합니다. 결국 이러한 무능이 초래한 파급은 문재인 정부 시절의 '검찰총장'이 다음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는 당시 보수 야당이 소위 차도살인 (借刀殺人)에서의 차도 즉, 대상이 된 권력의 칼을 자신의 칼로 삼아, 결국 전무후무한 '차도 정권'이 탄생한 비극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명과 암은 바로 이 지점을 먼저 짚어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직 검찰 총장이 이끄는 이번 보수 정부는 거의 민주당이 만들어 준 셈이라는 인과론적 도출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이 글에는 몇 가지 놀라운 부분이 있는데요. 1990년 1월의 삼당합당이 연계된 이후, 박철언과 김종인의 중요한 정치적 역할, 특히 노태우의 오른팔이라고 여겨졌던 박철언의 놀라운 행보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김종인을 오이켄류의 신자유주의자로 평가하고 있었는데요. 이는 기존 언론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꽤나 신선한 평가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과는 달리, 박철언이 관여하여 소위 '통합 정권'에 대한 공감대를 그가 인식하고 있었다는 다른 서사는 진위 여부를 떠나 꽤나 놀라운 점이었습니다. 이처럼 당시 민자당의 탄생에는 여러 정치적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 분명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보수 독점적 엘리트 카르텔'이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은 이들이 성공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기조에 편승해 온 것으로, 권력의 향배나 권력의 이동의 논법들이 본질이 제거된, 그저 언론 지면상에 오르내리는 기사에 불과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상상 밖의 이야기들처럼 말입니다.

끝으로 한국 정치에서 병리적으로 작동하는 '적과 아'의 첨예한 대치 상황은 저자의 분석대로 카를 슈미트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는데요. 이건 약간 첨언이지만, 슈미트가 자유주의에 대해 가졌던 개인적 반감을 고려해 본다면 이렇게 만연된 대결의 정치가 결국 자유주의적 정치 질서를 파괴하는 데 일조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는 법에 의존하지 않는 공익에 대한 공감대를 망각한 시민들에게도 그 원인이 있는데요.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자체가 너무나 무분별하게 정치 기득권 세력에게 오용되었고 자신들 스스로 권력의 의지에 대한 시민 다수의 이해 요구를 넘어서는 무리한 차용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저자는 자신의 글에서 일관되게 '의지의 정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정치 철학적인 입장에서 이 의지의 정치가 무분별하게 권력을 위해 남용되었고 현실의 산적한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상대편에 대해 갖는 '정치적 우위'만을 위해 노력한 결과가 정치 체제 전반의 무능을 모두가 일조해서 증명해 낸 것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더욱이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에 있어 정치 전반이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는 부분은 앞으로도 당면한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여겨집니다.


-글 중후반부에 '1991년 연표'라는 색다른 기준의 분류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 시기의 진보와 통치계급이라는 구분으로 각자 자신들의 입장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기술해 놓고 있는데요. 이는 1991년을 경험해 보지 못한 독자들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의미가 있는 요약본이라 여겨집니다.   




현실에서 이런 시도는 성공하기 쉽지 않아 보이며, 그랬을 때 자유주의 헤게모니 수립의 취약성은 ‘영남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집권 세력과 ‘포퓰리스트‘에 장악된 민주당 간의 적대적 공생으로, 결국 비자유주의적 포퓰리즘의 득세라는 위기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자유주의(신자유주의를 포함해)에 대한 비난이 일상 언어적 습관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분석을 동반한 자유주의 ‘비판‘으로 나아가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오히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협력을 바탕으로 수립된 자유주의의 전화된 질서로서 새로운 국제 질서, 즉 유엔 안보리를 중심으로 한 전쟁 억제 체제가 크게 동요하고 있다고 보인다.

논의가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 이전으로 퇴행하게 되면서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 논쟁 자체가 불가능해지며, 즉 그것을 차단하게 된다.

책을 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지식인은 과도할 정도의 이론적 비관주의를 유지해야 하고 그것이 지식인의 사유의 건강함을 유지시킨다.

문재인-민주당 집권 세력이 정권을 상실하게 된 것은 언론과 공안 권력 두 세력을 완전히 자기 통제하에 두지 않으면 몰락한다는 심각한 강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김종인은 김재익 사단의 긴축, 안정화 정책이 결국 인플레이션 압력을 지연했을 뿐이고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10년간 방기해 낙후시켰으며 재벌 개혁의 시기도 놓쳤다고 비판한다.

87년 체제의 핵심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제기됐던 사회적 요구와 갈등이 대표되고 통합된 것이 아니라 배제됐다는 점, 따라서 기성 정당이 중심이 된 보수 독점적 엘리뜨 카르텔의 구조가 복원됐다는 점이다.

긴 시간을 지나고 나서 1991년의 질문을 제대로 짚고 가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정치 관념으로 추방과 검거, 시해 셋 말고는 어떤 담론도 등장할 수 있는 지금, 벗어나기 힘든 미로에 갇힐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존 메이너드 케인스 - 돈, 민주주의, 그리고 케인스의 삶
재커리 D. 카터 지음, 김성아 옮김, 홍춘욱 감수 / 로크미디어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커리 D. 카터는 전직 기자 출신으로, 현재 휴렛 재단의 경제 및 이니셔티브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버지니아 대학에서 철학과 정치를 전공했습니다. 과거에 허프포스트의 선임 기자로 10여년을 재직한 그는 2008년 뉴욕발 세계 금융 위기 당시, 투자 은행 들을 담당하는 기자로 일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경력을 갖고 있는 저자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복잡하고 난해한 금융 규제 정책이라는 본질, 모기지 사업을 통해 소비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 업계의 탐욕과 전세계적으로 무분별하게 부채가 쌓이도록 사실상 허용한 연준과 기타 정부 기관의 실패 등입니다. 사실 이는 민주주의 체제에 있어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적 발전을 위해 분명히 검토해야만 하는 과제이기도 합니다. 기존의 경제학과 그 범주 안에 속해 있는 지식권이 '시장'에 대해 갖는 배타적 인식을 고려해 본다면, 이 사회에 저자와 같이 사고하는 인물들의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의 이 책은 원제, "The Price of Peace"로 지난 202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1년 10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극적인 만남 만큼이나 현재 경제학계의 케인지언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의 관계는 다소 대립적이면서도 불명확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세계 경제 학계에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담론이 주류임은 먼저 밝혀야겠지요.모두가 오해할 수 있겠지만 케인스 역시 '시장의 자유'를 신뢰했습니다. 다만 자신의 시대를 통해 '자유 방임주의'가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아주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었는데요. 초기 케임브리지에서의 다소 철학자와 같은 사고 방식과 그런 삶을 긍정적으로 지향했으면서도 동시에 자유주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던 케인스는 참으로 다사다난한 인물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더욱이 E. H. 카와 마찬가지로 격동의 시대를 거쳐갔고 때론 중요한 정치 행위자로 참여했던 케인스 개인의 삶의 여정은 참으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청년기에 그가 버틀란드 러셀에게 영향을 받은 것과 양성애자로서, '남성 애인'과 애정 행각을 벌이는 장면이 드러나기도 했는데요. 이는 얼마간 단호하고 타협을 모르는 경제적 개입주의자로서의 이미지와 상당히 매치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처럼 전환의 시기에 그가 대영 제국과 영국 경제계를 비롯,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으로 인식되고 있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끼친 적지 않은 영향 등은 우리가 역사와 또 다른 일면의 자본주의적 역사에서 그를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젊은 시절, 그가 속한 '블룸즈버리 그룹' 혹은 '블룸즈버리 세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러 명사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던컨 그랜트와 레너드 울프, 버지니아 울프, E.M. 포스터, 리튼 스트레이치 등으로 구성된 이 집단은 케인스 자신 뿐만 아니라 당시 소위 영국의 엘리트 지식인들인 케임브리지 대학의 남성들과 킹스 칼리지의 여성들이 함께한 일종의 사적 교류 모임이었습니다. 이들은 종종 함께 모여, 예술과 철학, 영국 정치에 대해 토론과 의견을 교환했고, 특유의 엘리트 의식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일종의 기준점을 삼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를테면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공공연한 지지와 귀족주의적 태도와 비슷한 사회 인식 등을 포함해서 말이죠. 특히 카터의 이 책에서는 제가 평소에도 관심을 갖고 있던 버지니아 울프의 개인적 면모 등을 접할 수 있었는데요. 더욱이 1941년 3월, 그녀가 비극적 선택을 감행하게 되는 날의 일화에 있어, "오우세 강둑에서 그녀의 모자와 지팡이가 발견되었고, 그녀의 남편 레너드는 집 안에서 그녀가 남긴 쪽지를 발견했다"면서, 그 비극적 소식을 접한 케인스의 비통함도 엿볼 수 있습니다. 케인스와 그의 아내인 리디아, 그리고 앞선 울프 부부와의 각별한 유대는 비록 이 블룸즈버리 그룹 내에서 어느 정도 부침이 있긴 했지만 사인인 측면에서 케인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인간적 관계이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처음으로 명성 다운 명성을 안겨준 "평화의 경제적 결과"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에 관여했던 행위자로서의 주요한 의견이 담겨 있습니다. 패전한 독일 제국에게 막대한 배상을 안기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강조한 케인스는 그 이후에도 런던과 뉴욕이 경제적 호황을 통해, 부를 쌓고 있는 상황에, 유럽인으로서 어느 정도 부채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는 "오로지 배상금 때문에 독일에 금융 혼란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재앙에 강력한 촉매제가 된 것은 사실이었다"는 문장으로 그의 고민을 가늠해 볼 수 있기도 한 데요. 이후에 벌어진 프랑스의 불법적인 루르 지대 침공과 이를 통한 독일에 대한 직접적 압박은 다수 독일인들이 프랑스와 영국에 대한 증오를 쌓게 되고, 더 나아가 독일 정치가 비이성적인 선동가의 손아귀에 포획되는, 그야말로 불행한 역사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 점은 지난날 전후 처리를 위한 '파리 협상'에서의 프랑스가 보인 자기들만 아는 이기적인 태도에서 비롯되어, "반드시 독일을 손을 보고야 말겠다"는 압박과 더불어, 결과적으로 우유부단했던 미 윌슨 대통령의 정치적 무능까지 이어져, 전후 처리 자체가 결국 전쟁의 불씨를 남기는 파국으로 이어졌습니다 . 이 책의 3장 이후에 보여지는 우드로 윌슨의 노련하지 않은 국제 정치적 감각과 닳고 닳은 영국 정치인들의 요구에 마땅한 대처를 하지 못하는 미국의 외교의 난맥상 등은 애초에 윌슨에 대해 깊은 호감을 갖고 있던 케인스에게 이와 같은 '평화 협상'은 현실과 이상의 그 괴리를 실감하게 된 것인데요. 이후에 2차 대전 종전 후, 세계 경제 체제의 큰 변화를 초래한 화이트와 케인스의 지리멸렬한 협상도 바로 이러한 연장선 상에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1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시티 오브 런던이 주도하는 '금본위제'는 영국의 경제 뿐만 아니라 유럽과 전세계를 규정하는 경제 시스템이었습니다. 대전 시기에 급격하게 발생하는 인플레이션과 그 전쟁 수행 과정에서 필요한 채권과 자금을 융통 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차관을 도입하게 되면서 영란 은행의 금본위제는 본질적으로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제한적인 시기에 재무부를 총괄한 처칠이 과거의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다소 회의적으로 평가했던 케인스의 이 선견지명은 후에 옳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분명 정치적 셈법이 존재했으나 그래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던 로이드 조지와의 협업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서, 케인스는 자신의 일생에서 큰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바로 이 즈음에 그의 유명한 제일 주저, "평화의 경제적 결과"는 영국에서만 초간 5천부가 순식간에 완판되기에 이릅니다. 1차 대전의 전후 협상에서 실로 큰 실망을 맛본 케인스는 자신의 이 논저를 통해, 협상 막후에서 무능을 보인 영국 정부와 비협조적이었던 프랑스에게 다소 비판적 입장을 취하게 되는데요. 또한 윌슨의 가히 진보적인 프로젝트였던 '국제 연맹'이 미국 스스로 베르사유 조약을 비준하지 않음으로써, 대통령의 정치력 붕괴는 물론 전 유럽의 불행한 운명이 이미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과정이 케인스가 영국을 지배했던 '자유 방임주의'가 역사의 뒤안길로 쓰러져 갈 수 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배경으로도 읽힙니다. 제국주의적 경제 체제 하에 가공 무역을 통해 부를 쌓았던 당시 영국이 급격했고 너무나 비참했던 대전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점은 - 물론 그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 그저 '시장의 자유로운 거래'만으로는 당시의 위기를 헤쳐나가기에는 너무나 부족했다는 케인스 스스로의 성찰과도 맞닿아 있다고 여겨집니다.

연이어 세계를 뒤흔들었던 세계 대공황은 본질적으로 당시 미국 증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거의 모든 자금이 뉴욕에 몰리고 있던 당시는 버블에 대한 관념이 무지했던 시기이기도 했는데요. 모건을 비롯한, 뉴욕을 좌지우지 하는 부자들이 자시들의 자금을 통해, 며칠 간의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결국 '검은 목요일'과 '검은 화요일'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케인스가 당시 후버 대통령에게 간접적으로 조언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금융시장의 변덕스러운 동요가 새롭지는 않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미국의 사태는 충격적이었다"고 저자는 이처럼 케인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후, 이어진 4년 간의 가혹할 정도의 불황은 미국인들 뿐만 아니라, 유럽의 독일인들에게 까지 그 여파를 끼치게 되는데요. 결국 이 붕괴를 통해 케인스는 '화폐' 자체에 대한 재인식에 몰입하게 되고, 이는 다음 논저를 탄생시키기 위한 작업으로 이어지게 되는데요. 이 시기의 성찰을 통해 케인스는 "경제 침체가 정말 심각할 때는 정부가 자체적인 공공사업 프로젝트를 주도해 국내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는 소위 큰 정부의 개입을 기반으로 한, 최초의 시장에 대한 자구책을 도출하게 됩니다. 또한 이 이론은 케인스의 야망, 즉 고전주의 사상의 기본 교리를 재고하라는 호소까지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케인스의 화폐 이론에 대해, 밀턴 프리드먼의 반박과 이후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논쟁 등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지없이 토론의 주제가 되고 있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 이 지점에서 케인스가 가장 고려했던 부분은 그가 경제학자 이전에 버틀란드 러셀과 비트겐슈티인에 영향을 받은 철학자였기에, 스스로 엘리트주의자였지만 일반 노동자 계급의 처우와 이들이 기반이 된 사회 경제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부분인데요. 이는 영국의 철학적 유산이 된 데이비드 흄의 도덕 철학과 이를 바탕으로 소위 영국적 계몽주의가 번성시킨 '자유주의적 토대'가 명사 케인스에게 있어서도 사회를 해석하는 중요한 인식적 맥락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히틀러의 과도한 망상이 유럽에 대한 침략으로 이어진 2차 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연합국의 전후 처리 과정은 그 자체로 루스벨트 시대의 종언을 초래하게 됩니다. 물론 그의 남은 임기를 트루먼이 승계합니다만 "세계 민주주의 보루"라고 자처했던 루스벨트의 선명성에 어느 정도 동감했던 케인스에게도 지난 시절과는 완전히 변화된 세계의 출현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국내적으로 쿠데타 위협과 반대 세력의 꾸준한 공격을 받았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실로 굳건한 의지의 정치인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루스벨트와 케인스의 서신 교환을 비롯한 두 인물의 깊은 교류는 당시 정치에서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았습니다. 과거 1919년 전후에도 케인스는 무역에서의 보조금과 전쟁 부채와 배상금을 모두 없애버리고, 채무국들이 지고 있는 그 밖의 외채에 대해서도 3년 간, 국제 자금을 지원하는 등의 전체적인 시스템 개선에 일관된 의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에 케인스의 또 다른 주저라고 볼 수 있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은 명백히 "자본이 가진 희소성의 가치를 악용해온 자본가들의 누적된 압제의 안락사가 벌어진다"는 측면의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예견한 것이기도 한 데요. 이는 좀 더 폭넓은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던 케인스와 그의 반대편에 있던 시장 자유주의자들 혹은 자본가들의 공격을 받게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즉, 이는 오늘날 케인지언과 시장 자유를 긍정하는 신자유주의자들과 그것을 지지하는 경제학자들의 대척점과 유사해 보입니다. 일견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전통적인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경제학자들이 꾸준히 거부해 왔으나, 저 개인적으로는 2008년 이후, 앞선 인식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당시 붕괴한 금융 시장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막대한 공적 자금을 수혈 받은 상황에도, 기존 신자유주의자들의 이중적인 작태인 '대마불사'는 기존 체제의 명백한 이중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케인스의 사후, 그의 이념적 후계자로 읽히기도 했던,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그런 갤브레이스와 밀접했던 존 F.케네디의 시대를 언급하며 카터는 일종의 보론으로서, 글의 후반부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루스벨트 대통령이 서거하고 나서, 매카시즘의 광풍이 일었던 과거 미국 정치의 단면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만듭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과가 최초로 개설된 이후, 케인스주의적 맥락을 기반으로 탄생한 적절한 시장 개입주의와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이 대표적으로 '자유 시대', '자유 시장'을 옹호했던 정치적 신자유주의는 현대사의 헤게모니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여기에 케인스에 대해 냉소했던 하이에크 조차 막대한 돈을 가진 자본가들이 금융 시장에서의 과도한 이익 우려내기가 법의 경계를 넘나 들 정도로 매우 차별적이라는 것을 거의 예견하지 못했는데요. 더욱이 프리드먼도 민주주의를 공공연하게 적대했다는 점에서, 이들 신자유주의적 사조들이 과연 어떠한 인식의 인물들이었는지 우리는 고찰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권력의 지배적 상황에서 이미 전세계적 경제 기조는 한쪽의 우위가 극명한 상황이라, 소수의 케인지언들 만으로는 자유 시장 담론에 어떠한 개선된 조언을 건네기가 너무나 어려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또한 사상적 차원에서 이론적 변형과 변조는 너무나 쉽게 일어나는 점이어서, 학계 전반의 명실상부한 전통적인 케인지언은 꽤 찾아보기가 힘들어진 것도 분명합니다. 저는 단순하게 케인지언과 신자유주의의 대결 구도와 같은 구분만으로 현시대를 규정하는데 있어 매우 제한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보다는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구조적인 경제적 불평등이 초래하는 사회적 문제와 이렇게 폭력적으로 귀결된 사회정치적 맥락이 민주주의를 더욱 병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끝으로 저자인 카터는 자신의 글에서 몇 번이나 케인스가 에드먼드 버크와 장 자크 루소의 말에 귀를 기울여 왔다고 언급하고 있었는데요. 이를 달리 해석해 보자면, 케인스가 보수주의적 관점을 갖고 있었지만 시민과 민주주의를 위해 보다 유연한 사고를 견지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어법이라 생각합니다. 이에 일전에 질베르 리스트가 강조한 바대로 경제학과 그들이 추종하는 시장에 대해 우리가 경직되지 않고 좀 더 유연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데요. 더욱이 자본가들 역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민주주의 체제에서 어떤 누구보다 자신들이 큰 이익을 거두고 있다는 점을 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일전에 케인스가 제국주의 종언의 시기에서, 더 이상 자유 방임주의가 설 지점을 잃고 있다고 선구저적 시점으로 바라본 것처럼, 우리에게 있어서도 무분별한 시장의 합리주의 또한 거듭 시대가 요청하는 바대로 개선과 전환의 시도가 필요한 때라고 여겨집니다.                 



    

- 카터의 이 책은 전반적으로 양차 대전을 비롯, 어느 역사적 배경에서의 기본 지식과 초기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금본위제와 근대적 주식 시장, 제국주의적 경제 체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배경지식이 있어야 보다 수월하게 일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드로 윌슨 이후의 미국 국내 정치에 대한 기본적 지식도 요구됩니다. 그럼에도 번역이 잘 되었고 특히 개인으로서의 케인스의 행적과 현실 정치에서 그가 겪은 무거운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은 글의 특별한 장점으로 생각됩니다. 

-본문에 하이에크가 주도한 몽펠리에 소사이어티가 몽펠르랭, 몽펠레린 등으로 용어 일치가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소설가, 화가, 철학자, 시인, 미술 비평가들로 구성된 이 사교집단은 자신들을 블룸즈버리 세트라고 불렀는데, 이는 런던 근교의 지역 이름을 딴 명칭으로 이들은 모여 살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티파티와 디나파티 자리에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개인의 역량을 키워나갔다.

젊은 시절 케인스는 이런 제국주의적 상황을 도덕주의적 딜레마가 아닌 현실로 받아들였다.

윌슨은 대전의 승리자 중 유럽이 자초한 대혼란이 재발되지 않도록 국제연맹이 외교력을 발휘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비전으로 제시한 유일한 지도자였다.

그의 독특한 민주주의적 이상에서 대중의 안녕은 엘리트들의 문화 수준을 높이는 편익적 요소였지만, 대중 자체는 진정시켜야만 하는 위험 요소였다.

런던의 고위층은 런던이 전쟁을 겪으면서 월가에 넘겨준 금융 파워를 되찾으려면 영국에 투자하는 것이 미국에 투자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임을 증명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자유방임주의로 선한 결과를 낳을 수 없다면, 다시 말해 번영을 폭넓게 공유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결합한 이념적 연합은 불완정해질 것이다.

9월 14일에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당은 640만 표와 107석의 의석을 확보하여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동시에 분열된 독일에서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정당이 됨으로써,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케인스는 당시 독일이 총 2억 파운드를 뉴욕 은행들에 빚지고 있었고 그중 맨해튼에 있는 5대 은행에 각각 갚아야 할 돈이 평균 2천만 파운드 이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루스벨트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민주주의와 세계평화의 향방은 저도 깊이 우려하는 바입니다. 선생도 동의하겠지만 자국의 발전은 미국이 민주주의와 세계평화를 유지하는 데 가장 효과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시카고대학의 젊은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연방정부는 돈을 새로 발행해서 적자 비용을 조달하는 한편 완전 고용이 이뤄졌을 때에만 예산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미국 경제학자들은 연준이 1920년대의 통화 정책과 영국에 대한 원조 활동에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다고 믿었다.

자유당이 1924년 선거에서 전멸하자 윈스턴 처칠은 몰염치하게 당적을 바꿔 스탠리 볼드윈 총리 휘하 새 보수당 내각의 재무장관 자리에 안착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회사에서 퇴근해 바로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서울의 극서라고 볼 수 있는 신월동이 목적지였는데요. 지하철 5호선 신정역 인근에 위치한 헌책방이었습니다.






헌책방 입구 근처에 도착해서 찍은 사진입니다. 책 구매와 판매를 무게로 한다는 문구가 인상적 입니다.





모두 합쳐 9600원에 구매를 했는데요. 일반적인 중고 서점에 비하면 너무나 저렴한 가격에 구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1kg당 3000원으로 책정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움직이는 책의 1999년 초판 맨스필드 파크였습니다. 눈에 보이자 마자 바로 챙겼습니다.





이미 열린책들에서 꽤 많이 판매한 E, M, 포스터의 전망 좋은 방입니다. 이번에 발견한 판본은 동문사 판인데, 알라딘 서점에서 정확한 서지 정보가 나오지 않더군요. 1992년 판입니다.




저명한 스릴러 문학의 대가 마이클 크라이튼, 시드니 셀던과 비견된다는 딘 R. 쿤츠의 섀도파이어도 발견했는데요. 밤에 시간 때우기 목적으로 한번 읽어볼까 싶어 구입했습니다. 1994년 호암출판사 판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오늘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책방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꼼꼼한 사장님의 손길 때문인지 각 서가에는 꽤 분류가 되어 책들이 꽂혀 있었는데요. 나중에 한 번 더 시간을 내어 방문을 해보려고 합니다. 책값이 너무나 저렴해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들었던 헌책방이었습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호시우행 2024-01-12 05: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익한 정보네요.

베터라이프 2024-01-12 15: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청아 2024-01-12 1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무게로 책을 판매한다니 고급정보군요! 베터님 즐거우셨겠어요^^ 절판되어 구하지 못했던 책이 있는지 전화해봐야겠습니다.

<전망좋은 방>좋아하는 소설입니다. 영화까지 찾아봤었어요. 저도 새책보다는 중고책을, 중고책보단 도서관을 이용하는 한해를 보내고싶어요.

베터라이프 2024-01-12 19:02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미미님 ^^ 책방에 찾아가기 좀 난해했지만 가보니까 꽤 좋은 책들이 많았습니다 ^^ 이만하면 책값도 저렴하고 집이 가까웠으면 매일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요즘 케인스 평전을 읽다보니 블룸스버리 그룹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E. M 포스터도 버지니아 울프 만큼은 아니지만 그 그룹에 관여되어 있더라구요. 우연히 그의 책을 구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 미미님도 부디 천운으로 득템하시길 바랍니다 ㅋㅋ
 
엎드리는 개 안온북스 사강 컬렉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유진 옮김 / 안온북스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옥시타니 레지옹의 카자르크에서 태어난 프랑수아즈 사강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큰 명성을 얻은,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였습니다. 부유한 부르주아 부모 밑에서 자라난 그녀는 친증조모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러시아인이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익히 알다시피 필명이기도 한, '사강'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한 인물에게서 따온 것이기도 합니다. 사강은 평생에 걸쳐, 두 번의 결혼 생활을 했는데요. 첫번째 남편은 20살 연상의 아셰트 지의 편집자였고, 두번째 남편은 밥 웨스트호프로 젊은 미국인이었습니다. 이에 사강은 평생 동안 수십 편의 작품을 써냈고, 그녀의 삶이 관통한, 1950년대에 실험적인 누로 로망의 시대에 고유한 작품만으로 큰 명성을 쌓기에 이릅니다. 이와는 별개로 2000년대에 이르러 갑자기 그녀의 건강이 악화되었는데요. 그동안 쌓아 온 자신의 명성을 심각하게 추락시키는 소위 정치적 스캔들을 몸소 겪다, 2004년 9월 24일, 옹플뢰르에서 그녀는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녀의 이 책은 원제, "Le Chien Couchant"으로 지난 1980년에 초도 출간되었고, 본격적인 번역은 1984년에 이뤄집니다. 국내 번역은 2011년 번역판을 기본으로, 2023년 11월에 정식 출판 되었습니다.

스스로의 삶이 무미건조하고 무질서한 행렬에 불과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로제 게레는 어느 공장의 회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굴곡이 없는 그저 '평범한 삶'이 주어진,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무료한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금언이 문득 생각날 정도로 게레는 수동적이고 폐쇄적인 인물입니다. 사강이 유독 집중했던 주제이기도 한, 일상적인 남자에게 있어, 어느날 다가온 사랑과 열정에 대한 태도와 그로 인한 극적인 영향이 어떠한가와 더불어,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남성성이 제거된 반대의 극도로 불안한 인격이 예기치 않은 일들의 중첩으로 어떻게 파멸에 이를 수 있는지를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남성다움'이라는 단어에 대해 남들과 비슷한 보편적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이성을 가진 한 인간을 그저 남성다움이라는 본래적 관념을 주입해, 그 사람의 인생 전반을 좌지우지 하게 만드는 일련의 사고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는 충분히 공감하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여기 주인공인 게레는 스스로 자초한 어리석음과 또한 주변의 오해와 그를 향한 굴절된 인식으로 스스로 망가질 수밖에 없는 인물이기도 한 데요. 그에게 유일하게 찾아온 '따뜻한 유대'는 어떤 식으로 귀결될지는 충분히 짐작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다만, 그의 하숙집 부인이기도 한 비롱 부인, 즉 마리아와의 육체적 관계는 다소 비뚤어진 게레의 의도로 말미암아 시작됩니다. 저는 이 서사의 초반이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졌는데요. 게레와 마리아가 나이 차를 극복하고 서로 대화와 공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지만 극 초반에 게레가 비롱 부인을 다소 껄끄럽게 여겼던 부분을 고려해 본다면, '젊은 남자'와 '나이든 여자'의 연애 구도가 막 극적으로 다가오지는 못했습니다. 더욱이 게레에게 결여된, '남성적인 단호함'과 '결단력'으로 인한 스스로에 대한 경멸은 마리아와의 사랑으로 일정 부분 해소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나이든 여자'를 정부로 두고 있다는 주변의 간접적인 경멸에 대해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태도를 지우지 못하는데요. 저자의 입을 통해, 다소 조심스럽게 회자되는 젊은 남자가 '나이든 여자'와 연애를 하는 모습은 소설에서 거의 터부시 취급 되고 있는데요. 이 점은 현재의 사회적 공감대와도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바에서 보여지는 게레와 마리아의 '늙은 여자', '이모'등을 통해 벌이는 한 차례의 촌극은 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데요. 이와 유사하게 나이든 남자가 젊은 여자를 연애의 대상으로 삼았을 때, 보통의 사람들은 그 나이든 남자가 젊은 여자를 돈으로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고 흔히 생각할 겁니다. 또한 영화 '귀여운 여인'도 그렇거니와, 이러한 소재의 작품들은 의외로 자주 보이기도 하는데요. 반대로 젊은 남자가 나이든 여자를 만나는 상황은 전자와는 상당히 다른 어감을 갖고 있습니다. 혹자들이 말하길, 이는 부자연스럽고 심하게 말하면 역겨울 정도로 인식하기까지 하는데요. 이러한 인습적 배경은 혹여 일반적일 수 있는 관계에 대해 세인들의 '이성적 판단'을 다소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게레와 마리아 사이에는 이런 전자의 인습적 틀 말고도 마리아에 대한 누구나 짐작할 만한 반전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극 초반에 게레가 마리아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혹은 느낌은 바로 이러한 반전과 연결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요. 여기에 게레가 릴에 위치한 고급 바에서 벌인 난투극과 자신과 마리아 사이의 연결 고리를 갖고 있는 '개'를 둘러싼 페레올의 협박 사건은 극의 반전을 주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게레가 스스로 능동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것은 그가 강조하는 '따뜻한 연대'에 이른 애정으로, 오직 그가 원하는 사람이 '마리아'임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는 점은 자신에게 있어 삶 자체를 변혁시키는, '넥스트 레벨'그 자체가 아니었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물론 초반에 그가 마리아와 같은 늙은 여자에 대해 갖는 사회적 통념을 완전히 극복하기는 어려웠지만 말입니다. 이는 그가 냉혈한 범죄자 마냥 사람을 17차례나 칼로 찌르지 않았음에도, 누군가를 '17차례나 찌를 수 있는' 결단력의 증거가 거짓이 나마 절실히 필요했던 굴절된 인물로서, 마침내 그러한 왜곡된 인식 하에, 진정으로 스스로 원하는 사랑을 갈구했다는 점은 그의 인생 자체에서 필연적으로 비극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몇 번의 어리석은 결정과 선택을 통해, 진실로 그 같은 일들을 후회하다 결국 비극적 사랑으로 구원 받는다는 이런 이야기의 모체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는 그래서 거의 명확하다고 생각됩니다.




- 늙은 여자와 소심하고 남성성이 결여된 젊은 남자의 연애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어쩌면 사강이 다루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너무나 작위적인 설정이 몇 차례나 극에 등장해,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소 부족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기도 한 데요. 그럼에도 내면의 문제와 사회적 통념, 이 두 가지 특이점을 소설에 녹인 것은 어느 정도 신선하기는 했습니다.   

그 눈빛이 탐욕스럽고 위협적으로 느껴진 게레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녀가 무서웠다이 여자를 무서워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는 자신을 무자비한 범죄자로 바라보던, 그래서 온종일 진정한 남자로 살게 했던 그녀의 사자같이 형형한 시선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두려웠다.

"모두가 이 진창에서 벗어나려면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걸 보유주기만 할 뿐이지 방법 같은 건 없어. 각자 알아서 하는 거지."

"남자들은 항상 어딘가에서 남성성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지. 사무실에서든 여자들에게서든 늙은 말한테서든, 하다못해 축구장에서든 말이야. 남자들은 항상 그걸 증명해 보이려고 해. 하지만 당신의 상대는 여자가 아니잖아."

그는 누구에게나 그걸 털어놔야 하는지 몰랐지만, 관념의 법정이 어디에선가 그가 호소하러 오길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신경질적이고 고달픈 부모, 쪼들림, 중간쯤 되는 성적, 졸업, 좌절된 야망, 부모의 죽음, 군대, 창녀, 첫사랑, 회계학과, 상송에서의 인턴 생활 등등. 게레는 자신의 삶이 무미건조하고 무질서한 행렬에 불과하다는 것을, 특히 사랑과 모험의 왈츠와도 같은 그녀의 과거와 비교하자면 어떤 매력도 없는 잡동사니에 불과하다는 것을 진작에 받아들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아 2023-12-26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강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어떨지 오래 고민했습니다.
가장 최근에 읽었던 작품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베터님 리뷰를
보니 궁금하네요. 읽어봐야겠어요!ㅋㅋㅋㅋ 소설도 매섭게 읽으시는 베터님^^

베터라이프 2023-12-26 22:40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미미님 ^^ 제 개인적인 평가이긴 하지만 사강의 다른 작품에 비해 약간 사건의 연계도 그렇고 작위적인 느낌이 있어요 ㅠㅠ 물론 이 작품에 한해서 말입니다. 그래도 사회적 통념에 대한 약간의 우화로 이해하면 꽤나 생각할 거리가 있습니다 ^^; 제가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며 썼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 감안하시고 즐겁게 접하시길 빌어요 ^^ 그나저나 무덤에 있는 사강 여사께서 혹여 저를 원망하시지는 않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