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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한승동 옮김 / 돌베개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일본의 몇 안되는 양심적 지식인이자 도쿄대 교수인 다카하시 데쓰야가 희생의 시스템이라는 주제로 후쿠시마와 오키나와로 의미있는 이 책을 집필했습니다. 더욱이 그는 일본 내 역사 왜곡 문제와 인권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자가 책에서 언급하는 소위 희생의 시스템은 어떤 자(들)의 이익이 다른 것(들)의 생활 (생명, 건강, 일상, 재산, 존엄, 희망 등등)을 희생시켜서 산출되고 유지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양보와 희생으로 다수의 이익을 실현한다는 개념은 역사상 여러 사람의 머리를 거쳐 정립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런 명목으로 보신을 위해 책임을 떠 넘기는 것은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얼마전에 읽었던 ‘기후 변화의 유혹, 원자력‘ 을 통해서 조금 깨닫게 된 것은 원전이 매우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전력 시스템이라고 홍보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은 핵 발전에 대한 거대한 이권과 그것에 매몰되어 결과적으로는 국민 다수 내지는 전력 생산의 혜택으로 포장해 반대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그야말로 소수 의견으로 만드는 그들의 해악한 전략상의 방법입니다. 이 책의 저자도 주장하고 있지만 핵 발전소를 유치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지역 발전과 지역 경제 부흥을 위해 거래를 했다고 해도 동시에 안전을 답보하지 않은 그와 같은 정치적 거래는 부당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실례를 이번에 후쿠시마 원전이 보여준 것이죠.
후쿠시마 사태 발생 이후, 저자가 밝히는 일본의 무책임의 크기는 참담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연간 일반인의 방사선 피폭 기준량은 1밀리시버트인데, 사고 지역의 방사선 피폭량이 연간 20밀리시버트 안쪽이면 괜찮다는 논리로 거기에는 어린 아이들도 괜찮다는 식의 주장은 일본의 관료들과 원전 관계자들이 얼마나 상황을 낙관하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사고난 현장에 투입되는 일용직 근로자들의 안전 대책은 거의 미비했으며, 피폭 노동자들의 실태를 도쿄 전력이 아직도 공개하지 않는 점과 언론도 굳이 보도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대체 관료들은 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경악할 만한 사례로 국제적으로 저명한 피폭의료 전문가라는 사람이 ˝매시 100마이크로시버트까지는 위험하지 않습니다˝ 라든가 ˝100밀리시버트의 누적 피폭선량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따위의 얘기를 하는 것이 더욱 이해가 안되더군요. 그외에도 사고 이후 일본 당국이 어떻게 사후 처리를 해왔는지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더불어 저자는 동일한 희생의 시스템의 한가지로 오키나와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 곳을 통해 오키나와의 현실에 대한 몇 권의 책을 리뷰했습니다. 그의 표현대로 오키나와는 일본의 식민지라고 말할 수 있으며, 전체 일본의 미군 기지 73%가 오키나와에 현존하는 상황에 국민들의 님비현상인지 아니면 일본 정치권의 고도의 정치적 전략인지는 모르겠으나 1972년 이후로 일본의 국민과 정부는 이런 오키나와의 상황을 전혀 개선시키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키나와의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로 민주당 정권이 붕괴한지도 오래 되었지만 현 아베 정권도 이를 해결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소위 미일간의 배려세 명목으로 막대한 주둔비를 쏟아 부으면서 일본 본토인들을 위해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들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한국 정부가 제주도에 미군 기지 전체를 때려박고 바다 건너 국민들과 관료들이 전혀 모른척 하는것과 동일하죠.
이렇게 우리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눈물로 절대 다수가 그 알량한 안정과 이익을 얻는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불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현실을 도외시한 맹목적 도덕주의 접근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우리 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그러한 상황을 개선시키고 시스템을 좀 더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 변화를 이끌어야 하겠죠. 더불어 충분한 토론과 대화를 선행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