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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에 관한 편지 ㅣ 고전의세계 리커버
존 로크 지음, 공진성 옮김 / 책세상 / 2021년 2월
평점 :
영국 서머셋 주 링턴에서 태어난 존 로크는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자유주의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인식론을 비롯해, 정치 철학, 고전적 공화주의, 자유주의 이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훗날 전반적인 대의제 정부에 대한 영감을 후세 사상가들에게 전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16세기부터 시작된 유럽의 종교 전쟁으로 인한 여파로 구교와 신교 사이의 직접적인 대결로 인한 극심한 사회 분열에 대해 로크는 크게 우려하기도 했는데요. 그가 원칙적으로는 칼뱅주의의 삼위일체론을 인정했지만, 성전에 대한 일부 다른 해석으로 말미암아 종교적으로 공격을 당하기에 이릅니다. 그럼에도 종교가 속세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뿌리 내리기 시작한 공화주의에 맞서지 않는 (건전한) 종교가 되기를 내심 바라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관용에 관한 편지 Epistola de Toleranta"를 라틴어에서 한국어로 온전히 옮긴 판이며, 이에 1968년 판을 저본으로 삼았다고 책 서두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초판 번역은 2008년 4월에 이뤄졌고, 제가 읽은 판은 개정판으로 2021년 2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로크가 살았던 17세기 유럽의 종교 전쟁은 그들이 믿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색할 정도로 사회 전반을 피폐한 지경으로 몰아갑니다. 누구를 위한 종교 개혁,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모르겠으나,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지식인 계층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엄혹한 세월에 놓여 있었던 것은 거의 분명해 보입니다. 이에 로크는 세속법과 종교의 매우 명확한 구분을 인정하고 또한 종교와 공화주의가 서로를 인정하여 양자의 권역을 서로 침범하지 않을 것을 강조한 글을 쓰기에 이릅니다. 바로 이 글의 도입에서 로크는 "참된 교회란 삶을 올바르게 하고 경건하게 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강조하는데요. 이것은 세속적 삶에 있어 인간을 영적으로 인도하고, 이들이 좀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교회가 뒷받침하는 것으로도 읽힐 수 있겠는데요. 특히 이러한 의무를 망각한 교회가 어떤 교리를 맹렬히 추종하는 열성분자들에 의해, 사회에 대체 어떠한 일이 자행되고 있는지 저자인 로크는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타인의 재산의 빼앗고, 신체를 절단하고, 더러운 감옥에 가두어 괴롭히고 마침내 목숨마저 앗아가는 행위"는 그야말로 로마서 1장에서 언급하는 이교도들이나 하는 짓이므로 이러한 행위가 소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로크라는 일개 개인이 가졌던 절망감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되기도 합니다.
영혼의 구원을 찾는 일이 어떠한 방식이든 간에 세속의 통치자들에게는 속할 수 없다는 단언은 마찬가지로 반대의 입장에서, "시민의 권리, 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가 종교에 속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좀 더 명확히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에야 서로 얼굴 붉히지 않는 '정교 분리'가 헌법에 의해 규정되어 있고, 종교인들이 자신의 성전에 대한 의무와 마찬가지로 공화주의가 뿌리 내린 사회에 있어 이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이에 우리가 인정하고 있는 종교에 대한 문제, 종교가 인간과 사회에 대해 가져야 할 관용의 원칙을 먼저 주장하기에 이른 사람이 바로 로크였습니다. 그는 종교적 구원이 종교에 있어 중요한 가치라면, 동일하게 재산권과 인간의 기본권은 통치가 해낼 수 있는 권리이자 의무라고 논증하는데요. 즉, 그리스도인이든 간에, 아니면 비그리스도인이든지 간에 양자는 모두 사회로부터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단과 이교도라는 명분으로 종교가 불신자들을 탄압하기에 이른다면, 이것은 결코 종교가 손을 대서는 안되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에 로크는 통치차의 통치 행위, 혹은 사회가 마땅히 보장해야 될 인간의 권리에 있어 종교의 개입을 거의 엄금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대전제로 단순히 사회와 종교가 어정쩡한 화해를 지속해야 된다는 소위 원칙을 넘어, 마땅히 서로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중요한 당위라고 여겨집니다.
이 세계에 종교적 권위가 갖는 영향력이 어떠한지는 누구나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무리 종교적 권위가 사회적 맥락에서 까지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을 기울인다 할지라도 부정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권위에 몰입한 광신자들을 처벌할 권리는 분명 '세속법'에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즉, 종교인인든 비종교인이든 사회적 틀에서 마땅히 인정하고 있는 법의 지배는 결코 종교가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정통 교리를 신봉하는 교회든, 소위 우상 숭배를 목적으로 있는 사이비든 간에, 공화주의적 통치자가 이를 구분해서 어느 한쪽만 처벌할 권리 또한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명확히 하고, 이것을 통치자의 '정치적 권리'라고 우리가 이해했을 때, 무엇보다 종교가 정치에 우선해, 관용을 교리만큼 중요하게 견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데요. 물론 자신들의 종교적 입장에서 우상 숭배라든지 이단이라는 설정은 그들의 영역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다만, 우리가 명확히 해야 하는 부분은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로서 개인의 정치적 권리와 함께 이는 누구나 법 앞에서 보장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인데요. 종교가 이런 사회적 원칙에 무분별하게 대립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절하게 정도를 지킬 수 있는 내부의 건전성이 어느 정도 요구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종교든 간에 자신들의 교리에 따라 이를 사회적인 수준에 까지 강요하는 것은 사실상 금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로크가 강조하는 관용의 원칙은 어느 정도는 우리가 믿고 있는 자유의 원칙과도 상당히 결부되어 있습니다. 사실 모두가 평등한 자유라는 관념은 로크 역시 지지하고 있었는데요. 종교의 자유라는 관념적 이해 또한 결국은 필요한 것이어서, 서로 다른 신을 믿는 경우나, 교리나 숭배의 방법이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종교적 관용은 나의 종교적 자유 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른 종교적 자유와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후반부에서 간략하게 등장하는 그리스도교 진영에 있어, 이슬람인들에 대한 표면적인 이단이라는 입장은 좀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는 다수의 종파가 소수의 종파를 억압하지 않는 것을 넘어 공화국의 평화를 위해 모두가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대전제에 의해서 존중 받는 것과 유사한 체계라고 여겨집니다. 로크가 앞으로의 종교 문제를 어떻게 예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화국 내에서 사실상 다양한 종교가 존립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통치자와 사회 구성원의 노력이 무엇보다 더 중요한 시기가 도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신앙으로서의 원칙에 대한 관용과 이해를 통해, 각 종교 간의 대립의 불식을 추구하는 것으로도 볼 수도 있겠는데요. 물론 종교와 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지점은 저자인 로크가 말하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세속적 삶에 기여하고, 또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구원을 위해 종교가 선량한 사람들을 인도하고, 속세의 법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 지금의 정교 분리의 대원칙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공공의 편익'이라는 부분에 있어 각자가 충분한 이해를 갖춰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된 교회는 삶을 올바르게 하고 경건하게 하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만약 자비와 온순과 호의를 세강 모든 사람에게는커녕 같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에게조차 결여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결코 그들에 대한 박해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잔혹함을 공화국에 대한 걱정과 법의 준수로 미화해서는 안됩니다.
실제로 어느 누구도, 자유나 목숨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이익의 일부분조차 자발적으로 박탈당하지 않으므로, 통치자는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자들에게 처벌을 가하기 위해 무력, 곧 자신의 모든 신민의 신체적 힘으로 무장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종교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할 권한을 하나님께서 그 어떤 사람에게 부여하신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도 엄숙하게 보존되어야 합니다. 이 권리들은 종교에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서 그들의 권위가 기원했든지 간에, 그 권위는 교회적인 것이므로 (어디까지나) 교회라는 틀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도대체 바티칸에서 준비한 것 외에는 혹은 제네바 (칼뱅주의) 공장에서 나온 것 외에는 어떠한 약이나 음식도 섭취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까?
왜냐하면 종교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인데, 어떤 사람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서 그에게 바로 그 예배에서 하나님을 기쁘지 않게 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도덕적 행위들은 정치적 지도자와 개인적 지도자, 곧 통치자의 지배와 양심의 지배 모두에 예속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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