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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끝나는가? - 벼랑 끝에 서 있는 일본
야마구치 지로 지음, 김용범 옮김 / 어문학사 / 2021년 4월
평점 :
이 글을 쓴 야마구치 지로 山口 二郎는 일본 오카야마현의 오카야마 시 출신으로 도쿄대의 법학부를 졸업하고 1987년에 영예로운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 코넬대학에서 수학합니다. 이후 홋카이도 대학의 법학부 교수를 역임하고 2000년 4월까지 동대학의 법학 대학원의 교수로 일했으며, 2004년 4월 이후에는 홋카이도 대학의 공공정책학과 교수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데요.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4년 4월에, 그는 근 30여년간의 교수생활을 마치고 호세이 대학의 법학부 명예교수를 맡게 됩니다. 야마구치 지로는 일본내에서 익히 알려져 있는 '리버럴 지식인'으로 1998년에는 민주당에 정치적 조언을 하기도 했으며, 그 스스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갖고 있는데요. 자민당이나 민주당 할 것 없이 다수를 위한 정책을 등한시할 경우, 그는 이를 그냥 넘어가지 않았고 과거 고이즈미 총리와 고인이 된 아베 총리의 정책에 강도높은 비판을 가한 바가 있습니다. 그의 이 책은 원제,"民主主義は終わるのか-瀬戸際に立つ日本"으로 지난 2019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1년 4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야마구치 지로 교수의 이 책은 개략적으로 전후(戰後)부터 현재까지 일본의 정치 상황을 돌아보고 지금 일본의 민주주의가 어떤 위기에 있는지 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현실 정치의 한계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1장과 2장, 그리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붕괴시킨 시장주의'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 4장을 우선 중요하게 읽어봐야만 하는 부분으로 추천드리고 싶은데요. 민주주의에 대한 상세한 개념을 정립시킨 로버트 달로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많은 정치 이론가들이 우리의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해 설명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인 역사가 분명 있기도 합니다. 자신이 온전한 법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보이고 있는 저자는 작게는 자신의 조국이 보이고 있는 비정상적이고 왜곡된 현실 정치와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과연 어떠한 길을 걸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학자적 양심으로 차근히 글을 써 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자민당의 그 유명한 '계파 정치'를 잘 설명하고 있고 최근의 고이즈미 정권과 아베 정권의 엇나간 소위 '개혁'과 '수상에 대한 권력 집중'을 아주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글 4장에서, "전 세계적으로 시장주의적 구조개혁, 속칭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경제정책이 전개되어, 그것이 민주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현재 의심되고 있는 민주주의 위기에 대해 원인을 찾아보려 합니다. 이는 일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우리 역시 신자유주의적 이행이 거의 완벽하게 마무리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을 다 열거하기 힘들정도로 민주주의에 신자유주의가 미친 해악을 강조한 정치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저자 역시 이를 강도 높게 인정하고 있었는데요. 이런 인식을 기반으로 과거 고이즈미 정권하에서 벌어진 소위 이름 뿐인 개혁들에 대해 저자는 "고이즈미 정권하에서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룰의 변경에 의한 강자로의 이익 때문이었다."라고 거의 가감없이 고백합니다. 이는 유사한 관점으로 페르하에어 역시 비판한 바가 있는 내용이기도 한데요. 신자유주의 능력주의에 대한 본질은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진자들만을 위한 사회 개조였으며, 레이건과 대처가 이를 잘 수행하여 이름만 거창하게 '자유 진영'일 뿐인 전세계적 신자유주의 체제의 틀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도 마찬가지로 저자는 2장에서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표리일체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이미 민주주의가 자유와 평등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데 앞선 자유를 앞으로 끄집어 내어 흡사 전통적 자유주의가 이 시대에 회귀한 듯한 '자유 민주주의'라는 표현은 이처럼 의도적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정치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스스로 보수 우파 정치인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자유 대한민국'이라고 연신 강조하는 이유에는 이러한 맥락이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18세기 이후로 우리의 자유에 대한 관념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을겁니다. 하지만 그저 '자유' 하나 만을 마치 교리적 가치와 다름없이 주장한다면 '공화적 자유'에 대한 본질을 축소하거나 왜곡할 수 있으니 이 점은 모든 시민들이 인지해야만 될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전후 일본은 세계를 향해, 더이상 침략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법적, 정치적 맹세'를 바탕으로 재해석된 국가입니다. 물론 전범으로 처벌을 받은 자들이 소수에 불과하지만 맥아더에 의해 조성된 체제의 기반은 '제한적인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구축된 것이기도 한데요. 저자는 '리버럴 지식인'답게 현재 일본 사회에 불고 있는 '역사 수정주의'에 대해 명백히 반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후 '평화 헌법'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수호해야만 하는 것으로 줄곧 주장하고 있었는데요. 그동안 편법으로 주입된 '집단 자위권'에 대한 문제는 위헌이라는 점도 그는 강조하고 있었고 이후 진행된 아베 자신에 대한 권력 집중과 극우주의자들의 지원을 명분삼아 '미국과 합일된 일본'을 착잡한 의미로 서술해 내고 있었는데요. 인접국인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지렛대 삼아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의 이행을 필생의 꿈으로 삼았던 아베는 이 글에서 인용된 야당 의원의 질의에서 "북한의 ICBM의 극적으로 해결된다면 자신의 안보 위협이 사라진 미국이 북한과 교섭하게 된다면 단거리 미사일을 보유한 북한이 여전히 일본의 위협이 될텐데, 스스로 일본과 미국은 백퍼센트 일체"라고 강조한 그는 결국 아무런 말도 못하고 눈만 껌뻑이게 됩니다. 이처럼 소위 엘리트라는 자들이 최소한의 정치외교적 식견 조차 없이 국가를 수중에 두고 자기 멋대로 부렸다는 점은 어느 국가에서나 불행한 일로 볼 수 있겠는데요. 그럼에도 일본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런 자민당과 총리를 비판한 야당과 건전한 시민 사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일 겁니다.
과거 트럼프 행정부 당시, 스티브 배넌은 아베 총리를 일컬어 "거의 완벽한 정치인 내지는 총리"라고 칭찬을 한 바가 있는데요. 그는 자신의 대통령과 아베가 거의 비슷한 부류로서 양국의 국내 정치를 혼란으로 이끈 바를 전혀 고려하지도 않고 앞선 찬사를 막무가내로 늘어놓은 바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이미 논하고 있듯, 고이즈미 총리가 자민당 계파 정치를 청산시키고 뒤이어 아베가 총리에 의한 권력 집중에 따른 왜곡 정치를 성공시켜, "현 총리를 위해 법정에서 위증까지 할 수 있는 가신(家臣)들"을 양산하기에 이릅니다. 본디 일본 정치가 강자에게 마땅히 고개를 숙이는 역사적 미덕을 갖고 있는 국가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국영 방송부터 정당 일색까지 총리에게 그저 고개를 조아리는 정치가 어떻게 민주주의 정치라고 부를 수 있는지 저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도 그런 전조를 느끼는 있는 중이기도 한데요. 저는 매번 이런 논저들을 읽을때 마다 이론과 현실 정치에 대한 괴리가 심하다는 것을 느끼고, 저자가 일관된 논증으로 여실히 비판하고 있듯,"높은 학력을 가진 정부나 대기업의 지도적 위치에까지 오른 사람들에 있어서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은 금전이나 권력을 포기하는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어쩌면 신자유주의가 매우 긍정하는 극도의 개인의 이익과 탐욕에 본질적으로 멀어지는 길이기에 '겸허한 지도층'이라는 단어가 현실에서 얼마나 보기 드물 수밖에 없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기득권과 엘리트들이 마땅히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해도 뭐라 할 정치 따위는 없다"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도달한 최종적인 결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으로,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민주주의와의 관계에서 필요한 정의감의 기준이 되는 것은,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것과 법 아래의 평등을 존중하는 것에 있다."고 한 발언은 모든 시민들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화적 자유도 역시 이러한 맥락 가운데 있는 것이고, 1장에서 저자가 민주주의가 시민들에 대한 '경제적 분배'에 대한 가치를 견지하는 것도 평등이라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여겨집니다. 과거 수백년 단위의 역사를 훑어 본다면, 우리 인간은 자유의 획득과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해 싸워왔다는 인식에 한번 더 공감할 수밖에 없는데요. 요 근래에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도 민주주의를 그저 자신의 정치적 선명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자들이 태반인 시점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들을 배제하려는 세태가 그저 개탄스러울 따름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인식에 대해 아쉬운 부분 한 가지를 꼽는다면, "왜 일본 시민이 신자유주의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일견 논의를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 신자유주의적 이행 자체가 시민들만의 의지로 거부할 수 있었겠는가에 대해선 극히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데요. 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프로파간다가 어느 국가에서나 매우 강력하면서 배타적인 전술이 되기에 이르고, 이는 "경제가 우선이다." 혹은, "시장의 합리주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다."와 같은 논법들을 양산해 내기에 이릅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대처의 "대안은 없다."는 앞선 맥락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자의 결론대로, "사회적 안전망과 최소한의 복지, 자원이 부족한 일부 시민들을 사회로부터 격리되지 않게 하기 위한 방안은 절대 시장이 해줄 수 없다"는 명백한 진실을 이쯤에서 밝혀두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글 서두에서 도출된 20세기 후반 선진 민주주의에 대한 4가지 구성 요소를 여러분께 소개하는 것으로 저의 장황한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자유 민주주주의 체제의 4가지 구성 요건-
1. 표현의 자유 및 집회결사의 자유를 중심으로 헌법으로 보장된 기본적 인권
2. 정치에 있어서의 대표민주제와 경쟁정 정당제
3. 경제에 있어서의 자유로운 시장 메커니즘
4. 경제성장의 과실이 공평히 배분되는 점
- 아베 총리가 견지한 정책관에 대해 저자는 "아베가 정책의 실패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국정 선거에서 승리하영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이유를 들어 자신의 정책을 정당화한다"고 비판하고 있었는데요.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아주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권력 집중에서 이처럼 자기 본위적이고 작위적인 판단은 건전한 비판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다수 국민의 판단을 오도할 가능성이 있는데요. 바로 이 점이 다수 기득권 엘리트들의 극명한 정치적 사고관이라고 볼 수 있을겁니다.
노동자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체제하에서 인간이 행복하게 된다는 것을 체감시킬 필요가 있었다
신중간대중이란 개념은, 국민의 9할이 ‘중류‘의식을 지니던 당시의 일본에 적합적이었다
재분배와 평등을 추진하는 좌파정당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쇠약해여 갔다
단체를 단위로 하는 교섭의 결과, 부패와 종이 한 장 차이에 지나지 않는 뒷거래나 기득권이 생겨났으나, 그것은 일반 시민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21세기에 들어서 이러한 원리나 건전함, 영어로 말하면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질림과 반발이 미국 및 서구에 퍼져 갔다. 이 반동은, 민주화의 진행으로서 반작용이다
그러나 인터넷의 보급은 언론공간의 열화를 촉진시킨것도 확실하다. 트럼프가 공공연하게 말하는 차별적 발언이나 허위정보 등은 그가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 인터넷에는 넘쳐나고 있었다
의회정치, 언론표현, 보도의 자유, 정치참가의 자유 등 민주정치의 토대를 만드는 기본적 원리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다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출세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퍼져 가는 가운데, 관료는 정권중추의 정치가의 사병이 되어 버렸다
그렇기에, 민주주의하에서 활동하는 정치가는 반대 세력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베에 있어서, 야당의원이란 함께 민주정치를 만들어 낼 경쟁적공존의 상대가 아닌 섬멸해야 할 적이다
1990년대 이후, 글로벌자본시장이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자유의 이념으로부터 시민적 자유가 깎여져나갔다. 경제적 자유, 더 말하자면 이익추구의 자유화가 중심이 되었다
아베 수상은, 정책의 실패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국정 선거에서 승리하여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을 이유로 자신의 정책을 정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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