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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뉴스 - 디지털 저널리즘, 위기의 실체 ㅣ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33
박영흠 지음 / 스리체어스 / 2019년 2월
평점 :
서강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박영흠 교수는 현재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2020년에 불거진 검찰과 기자 간의 소위 부적절 관행에 대해 양자 관계를 명백히 '갑을 관계'라고 비판을 한 바가 있는데요. 저는 이런 검찰과 일부 언론의 밀착 관계가 민주주의에 어떠한 긍정적 영향이 있는지 명백하게 알지 못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박교수 역시 기성의 한국 언론이 얼마나 권력과 자본에 유착되어 있는지 그동안 끊임없이 발언을 해왔습니다. 특히, 그가 관심을 보여온 언론과 민주주의 그리고 언론 윤리에 대해 저 역시 많은 부분 공감하고 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박교수의 이 글은 최근의 언론 지향 뿐만 아니라 우리의 언론이 디지털 시대에 어떠한 변화를 맞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생각됩니다. 따라서, 이 책은 지난 2019년 2월 출간되었습니다.
다소 이른 결론일 수도 있지만 저자는 "언론과 시민 간의 건강한 파트너십"이야 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정리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정치인들이 오로지 입으로만 민주주의를 외친 것과 마찬가지로 언론 일각도 건전한 민주주의를 위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기 보다는 돈벌이와 자신의 얄팍한 권력을 위해 앞선 두 가지를 망각해 왔습니다. 아마도 많은 시민들은 현재 자신의 삶에 있어 돈을 추구하고 이익을 우선하는 일련의 노력들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심이 있을 겁니다. 어쩌면 이런 고심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부분일 겁니다. 마찬가지로 언론과 기자들 역시 과연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특별한 노력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 가감 없는 성찰이 필요하다 여겨집니다. 그런 측면에서 박교수의 이 글은 일관되게 기자들의 윤리관에 대해 논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반 시민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본과 언론, 신자유주의적 이행에 따른 전통적인 사회 개념의 형태를 유지하는 이론적 가지들이 어떻게 시장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지 약간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즉, 자본의 지배적 논리화 과정에서 이 언론도 그러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이런 사회적 이익화에 따라 언론 사주들도 돈을 벌고 싶어하고, 그런 측면에서 언론의 독립성이 크게 흔들리고 또한, 자본의 입맛에 맞는 기사들을 생산해, 이를 답습하고 시민들에게 강고한 인식으로 주입되는 등의 일련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글의 4장인, "일상적 삶 속에서 모든 자원의 배분을 오로지 시장 논리에 따라 수행해야 한다는 시장 물신적 사고가 빠르게 내면화되었다"는 주장이 이를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기본적인 헌법적 기초에서 뿐만 아니라, '언론의 자유'는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사항입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에서 만큼은 그저 이상주의적이고 이론적인 측면으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언론이 시민의 권리를 위해 사회의 정의를 위해 제 기능을 다해야 한다는 당위는 그저 책에서만 이론으로 배우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일반적인 의사들이 환자의 건강과 인간의 존엄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언론인들 역시 이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어야만 하겠는데요. 여기에서도 인용된 아마존닷컴의 창립자 제프 베조스의 공격적인 워싱턴 포스트 인수를 자본과 언론과의 관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로 뽑고 있습니다만, 더 엄밀히 현재의 언론 기반이 비정상적으로 변화된 것에는 1장과 2장에서 논증되는 바와 같이, 기득권의 권력 강화와 사회 전반에 대한 자본의 물리적 지배력 확대 그리고 이러한 이행들 속에 시민들이 정치 감시와 같은 본연의 의무에 더욱 멀어진 결과가 원인이 되었을 겁니다. 저자는 이 부분과 있어, 5장에서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이미 불신과 회의, 냉소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고 뼈아픈 고백을 하기에 이릅니다.
이 글의 앞선 2장은 '시장이 우선이냐, 광장이 우선이냐'라는 해석으로서 마누엘 카스텔식의 초기 인터넷 공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더 함양하고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어떻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자본의 물리적 지배는 사회 전체를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언론은 기존의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보루로서의 역할이 요구되었으나 실상은 자본의 논리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정치를 시녀로 만들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하는데요.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는 '법의 지배'가 '시장과 경제 전반이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이유로 죄를 지은 경제인들이 풀려나는 상황'을 우리는 이미 목도한 바가 있습니다. 도식적으로 '사법체계-언론-시장'을 삼각 구도로 본다면, 결정적으로 시장이 사법제도와 언론을 지배하고 있다는 식의 논리가 현실적으로는 통용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뭐 엘리트들과 기득권들은 이를 강력하게 부정하겠지만 실상은 어떠한지 시민들은 이미 충분히 분석 가능한 수준일겁니다.
따라서, 노무현 시대의 언론들의 광범위한 디지털 진행화가 결국은 민주주의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고, 언론의 사적 지배 뿐만 아니라 자본의 지배 역시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정치 따위에 신경 쓰지 말고 너의 밥벌이나 먼저 해결하던가 하라"는 왜곡된 사회적 논법들이 시민들에게 언론과 민주주의를 더욱 멀어지게 한 요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5장의 맥락을 아우르는 "저널리즘, 민주주의와 분리되다'는 문장은 이처럼 현실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사실상 대다수 정치인들에 의해 주도된 언론을 통한 당리당략을 위한 사적 이익 추구가 하버마스가 강조한 '건전한 공적 토론장'으로서의 기능이 유명무실해진 것과 그 궤를 같이 합니다. 이에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의 우리 정치는 18세기 이전의 '교육 받은 남성들에게만 투표 권리를 부여한 영국의 상황'과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극단적으로 그리스 민주주의처럼 시민이 노예와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직업 정치인이 국민과 민주주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이 정치를 하는 정당성으로 주장들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저들 역시 스스로의 사적 이익에 충실해, 민주주의 자체를 부차적으로 만든 주범이기도 합니다.
클로드 르포르를 포함해, 많은 정치 이론가들이 자본주의 안에 집 나간 도덕주의를 되찾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도덕을 상실한 자본주의'가 과연 시민들에게 '시민 본연의 시민 다운 삶'을 보장하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과연 언론과 시민들간의 진정한 파트너 십이 가능할 수 있을런지는 앞선 분석과 동일하게 회의적입니다. 저자의 강조대로 기사를 작성하는 언론인이 "투명한 증거를 기반으로 진실을 숭배"해야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가 못합니다. 기사의 독립성 역시, 사주나 언론사 고위층의 정치적 지향에 따라, 진실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아예 언론 기업 자체를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이해할 수도 없는 매우 고약한 사정이 있습니다. 자본가의 이익, 자본의 이익추구는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관점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조지 스티글리츠는 한국에 대해, "여느 서구 국가들보다 짧은 시간 내에 신자유주의화가 급속하게 이뤄진 국가"라고 논평한 바가 있습니다. 이것은 거의 진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정치를 위해 언론 자체가 자본에 대해 독립성을 갖고 있어야만 하고 언론인들 역시, 자신의 직업이 어떠한 의무를 갖고 있는지 한번쯤은 돌이켜 볼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널리즘이 부유한 지배 계급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또한 주권자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은 대리인으로서 시민들이 생업에 바빠 미처 하지 못하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임무를 수행하여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형 규범적 모델은 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지향성과는 달리 자본 권력으로부터 사회 평등을 보호하려는 노력에는 소홀했다
이러한 재화나 서비스가 무차별적으로 상품으로 교환되는 것은 사회 정의와 정치적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적절히 규제되어야 한다
시민 사회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국가 엘리트 집단과 대자본 중심의 지배 연합이 오랜 권위주의 정권 기간 유지해 온 기득권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한국 사회의 보수 헤게모니는 여전히 강고했고, 디지털 대안 언론의 인기와 영향력은 아직 인터넷이라는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다
자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변화는 당시 전 세계를 강타한 신자유주의 경제 프로그램과 무관하지 않다. IMF 외환 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 더 깊숙이 결합하고 신자유주의화가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시장 논리와 자본의 성장을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이데올로기가 맹위를 떨쳤다
일상적 삶 속에서 모든 자원의 배분을 오로지 시장 논리에 따라 수행해야 한다는 시장 물신적 사고가 빠르게 내면화 되면서 한국인의 생활 세계는 자본에 의해 잠식되었다
포털에 이르러 디지털 기술은 비로서 수익 창출의 도구로 확고히 자리매김했고, 사회 변혁을 바라는 이용자들의 정치적 열정은 포털에 의해 부지불식간에 자본 축적의 수단으로 전유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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